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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트] 윤리
제 942 호    발행일 : 2019.06.03 
약학과 2학년(1961년 당시) 김용남(金容男)


  앙상한 나뭇가지 끝으로 쌀쌀한 하늘이 추위를 한층 더 돋구는 듯 했다.
  “그래 너두 알다시피. 요새 내 형편이 어떻게 돼 돌아가는지 생각해봐라. 그냐 돈이 있으면야 네가 원하는 대로 가능한 한 다 들어 주구 싶다... 그만치 얘기했으면 알아들을 것이지 무슨 놈의 말버릇이 그따위로 애비한테 대드는 거야. 임마!”
  “저두 잘 알아요. 그렇지만... 꼭 필요한 것이라 간곡히 부탁드리는데... 그래 못 주시어서 미안하다는 생각은 않으시구 야단만 치실 게 뭐 있어요.”
  “아니! 이 녀석이 점점 한다는 소리가...”
  노기에 찬 말이었으나 끝을 맺지 못하시고 만 것은 논리의 궁핍에서만이 아니었다. 마음으로 쓴 울음을 참으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원망스러웠다. 나는 더 앉아 있고 싶지 않아 벌떡 일어나 전화통의 수화기를 들었다가 탁 놓아 버렸다. 친구와의 약속을 취소해 버리려다가 그래도 가보기로 했다.
  신을 주어신고 대문을 나섰다. 벌써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도로엔 행인의 발자취도 드물고 싸늘한 밤바람이 별빛 아래 휘돌 뿐이다. 답답한 속을 풀기 위해 아무 쪽으로나 발을 옮기며 심호흡을 했다.
  가슴속이 얼어붙는 듯 서늘하다. 두뺨과 코끝이 유난히 시리다. 근처 집들을 무사히 돌아보았다. 조용한 불빛아래 단란한 가정이 웃음꽃을 피우고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찬 공기가 감도는 우리 가정이 눈앞을 스쳤다. 고개를 더 돌려 우리 집을 다시 응시해 보았다. 역시 불빛이 있다. 겉으론 어느 누구의 집 부럽지 않은 안락한 평온이 깃들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다시 훽 고개를 바로 해 버리고 어슬렁어슬렁 발을 옮겼다. 그때 먼 곳의 소음에 섞여 가까이서 들리는 고함 같은 소리가 연신 귓가를 불안하게 하고 있는 것을 의식할 수 있었다. 상스러운 욕설이었다. 여느 땐 무관심해도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발을 멈추고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우리 집에서 너덧집 건너 퇴폐한 지붕의 조그마한 집에서 나는 소리였다. 나는 그 집에 누가 사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 왜 울음소리와 술에 취한 탁한 고함소리가 나는지도 안다.
  “응, 요 계집애. 이 밥통 같은 걸... 이거 죽지두 안구. 응! 애비가 왔어두. 그래 여태 뭘하구 자빠졌었니? 나가 뒈져... 윽!”
  “흐흐흑흑... 잘못했어요. 아버지. 흑흑...”
  “아, 요런. 누가 금방 잡아먹어? 우라질 년 울긴 왜 울어. 보기 싫다. 나가! 나가서 울어. 에익!”
  “아야야... 아유 아버지. 엉엉...”
  불도 켜있지 않은 컴컴한 마루에서 술에 만취된 노동자 풍의 아버지는 겨우 열두어 살밖에 안 돼 보이는 딸을 사정없이 발길질하는 것이다. 그는 수년 전까지만 해도 아내와 같이 다른 곳에서 잘살았다 한다. 그 후 병으로 아내가 죽은 담부터 노동하는 신세가 되고 술로써 집안을 망쳤다는 사람이다. 지금 맞고 있는 딸은 하나밖에 없는 혈육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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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어느새 그 집 앞으로 부지런히 걷고 있었다. 내가 그 집마당에 들어섰을 땐 그는 딸의 머리채를 무자비 하게 휘어잡아 마당에대 팽개치는 소름끼치는 순간이었다. 그 아이는 까무라치는 소리를 지르면 엎으러져 거의 움직이지를 못하고 신음 소리만을 간신히 토할 뿐이었다. 나는 다시 마당으로 내려와 아이를 때리려는 그 사람을 붙들었다. 술 냄새가 확 얼굴에 번져 왔다.
  “아저씨! 참의세요. 그만하세요.”
  “응? 놔둬요, 놔둬! 저놈의 계집애... 아놔! 내 자식, 내가 때리는데 상관할 게 뭐냐!”
  “얘, 정신 차려!”
  그러나 소녀는 얼굴에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공포에 떨고 있었다. 나는 손수건을 꺼내어 얼굴을 닦아주고, 그를 휩싸 안고 일어섰다. 소녀는 몽롱한 의식 가운데서도 공포와 의아해 내 팔 안에서 오들오들 떨었다. 그 전율의 파동이 내 몸속으로 물결처럼 스며들었다. 생전 처음 겪은 일이었다. 손에 가시가 찔려 피가 나는 것을 보아도 소름이 끼치는 나였지만, 남의 코피를 손수 닦아놓는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나도 모르겠다.
  마침 대문은 열린 채 있었고, 아무도 나와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가만히 내 방으로 그 아이를 안고 들어갔다. 그리고 침대 위에 소녀를 눕혔다. 소녀는 무슨 말을 할 듯 말 듯 했으나 종래 입을 열지 못하고 연신 오열하고 있었다. 완전한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부엌에서 더운물에 수건을 적셔와 그 아이의 얼굴과 손을 닦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모진 학대 속에서 거칠 대로 거칠어진 피부. 그러나 애띈 소녀의 가냘픈 귀여움이 어디엔가 남아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의 곁을 떠나 아버지를 생각했다. 불현듯 조금 전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산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중요한 것인지 종래 알지 못하겠다.
  얼마를 지났을까. 침대의 스프링이 움직이는 기척에 고개를 돌려 보았다. 소녀가 의식을 회복하여 침대 위에 일어나 앉으며 주위를 가만가만 둘러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곁으로 가서 ‘이제 정신이 좀 드니?’하고 다정히 물어보았으나 소녀는 아무런 댓꾸도 없이 빠안히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아직 더 누워 있어. 지금 밤중이야. 집에 가면 아버지한테 또 맞아. 맘 놓구 여기서 더 자. 응?”
  이렇게 내가 그를 붙들어 눕히려 하자 그제사 소녀는 일을 열었다.
  “괜찮아요. 갈래요. 가봐야 해요.”
  “아직 못가. 괜히 갔다가 또 맞는다. 여기서 자구서 낼 아침 아버지 술이 깨시거든 가. 응?”
  그러나 이처럼 소녀를 말리던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어린 애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 소녀에게서 의외의 말이 나온 것이었다.
  “아녜요. 난 가봐야 해요. 아버지는 술을 잡수셔서 속이 쓰리실 거예요. 이렇게 죽지 않고 살았으니까, 속 쓰리신 아버지 국이라도 끓여 드려야지요.”
  “............?!”
  나는 무엇으로 얻어맞은 것처럼 가슴이 뭉클함을 금할 수 없었다. 내 앞에 초라히 서 있는 이 어린 천사에게 나는 감히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 끝 -

충북대학보 제12호(1961년 6월 21일자)와 제13호(1961년 8월 30일자) 게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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