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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연자방아 전설 (3)
제 945 호    발행일 : 2019.10.14 
글 AIC, 그림 김용길


  아침이면 느지감치 석순이가 떠받치는 세숫물로 세수를 하고 조반을 마치면 사모님 족속들의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그날의 일과였다. 모임은 해방기념 뭐다 해서 심심치 않게 자주 있었다. 어쩌다 집에 있는 날이면 열 시쯤 일어나서 ‘세숫물이 어떻다’, ‘마루 청소가 어쨌다’, 뭐 이런 자질구레한 일들로 석순이를 볶다가 해를 넘겼다. 지금보다 훌륭한 것인지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지금보다 어깨를 펴고 살던 때였다. 그런 일로 그럭저럭 하루를 보내고 어둠이 문지방을 넘어 들기 시작하면 아버지가 돌아오는 시간이나 점쳐보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영화를 보고 외식을 하는 것이 시계처럼 되풀이되는 매일의 즐거움이었다.
  석순이의 모습이 또렷이 떠올랐다. 양쪽 볼이 가운데로 말려들어 간 보조개는 여전한 채 고개를 다소곳이 숙인 모습이었다. ‘사모님과 석순이’ 신화 속의 이야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석순이와 군밤 장사’ 거기서 어머니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도로를 걸어가는 한 쌍을 본 것처럼 친밀감을 느꼈다.
  “이 계집애야. 국을 끓인 거냐? 그냥 뜨거운 물을 부어온 거냐?”
  표독스러운 인상을 한 어느 날의 삶이 스크린처럼 재생됐다. 이불을 두르고 두어 술 끄적거리나 숟가락을 팽개친 지난날의 업보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귀밑이 후끈거렸다.
  ‘석순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옛날의 계원들이라도 만나면?’
  한때 희구 젖히던(바라는 것을 막힌 데 없이 하던) K시와는 팔십 리나 떨어진 곳으로 떠나와서도 궁상보다고 무서운 것이 지난날 익혀온 얼굴들이었다. 어머니는 더 고개를 묻으며 밤알을 굴렸다. 고소한 냄새가 배속을 흔들었다. 점심을 못 받은 창자가 쪼르륵 짤막한 그리고도 뚜렷한 하소연을 했다. 날마다 군밤을 주물러도 이제껏 어머니는 썩은 놈 하나도 맛보지 못했다. 냄새만 실컷 마셨다. 그러나 냄새는 밥통으로 들러가는 것이 아니었다. 뱃속에서는 여전히 잊어버리지 않을 만큼 쪼르륵 쪼르륵 신호가 왔다. 석순이도 그랬을 것이다.
  때마다 구수한 음식을 주무르면서도 한 입도 입에 넣을 것은 없던 석순이의 생활. 마음대로 쓸 돈은 한 푼도 없으면서 날마다 돈더미 속에서 골치를 앓아야 하는 은행원의 생활.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생활하는 하나의 세계가 엄연히 존재했다. 이렇게 말하는 것보다는 저런 세계가 합하여 하나의 세계를 꾸려나간다고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어머니도 그런 세계의 주민이 됐다.
  햇살은 꽁무니를 서쪽 산 아가리에 처박고 그날의 마지막 햇살을 성난 머리털처럼 곤두세우고 있었다. 어머니의 머리 위에서는 각다귀 떼가 분주히 그날의 끝장을 즐기고 있었다. 군밤 장수의 서글픈 회상도 아랑곳없이 행인들은 저마다의 해답을 궁리하며 총총히 어머니 앞을 지나갔다.

1.jpg

  해는 날마다 뜨고지고 하면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쓰고 달은 선물을 맛보이는 요술쟁이다. 봄이라고는 하나 아직도 따뜻한 아랫목이 그리운 4월 어느 날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보는 묵은 잡지를 뒤적이다 아랫방에서 잠이 들었다. 그날도 어머니는 열 한시가 지나도 안 돌아오셨다. 얼마를 자다가 무슨 소리에 눈을 떴다. 어머니도 자리에 누워있었다. ‘쾅! 쾅! 쾅! 쾅!’ 둔중한 소리가 몇 차례 계속됐다.
  “문 따!”
  취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아버지였다.
  “응?”
  어머니는 놀란 토끼처럼 벌떡 일어나 앉았다. 석순이를 깨웠다. 석순이가 쪼르르 문간으로 달려나갔다. 시계는 한시 오분을 가르키며 헐떡이고 있었다. 나는 그때 어머니의 얼굴색이 여러 번 변하는 것을 자던 눈으로도 알아챘다. 지금 생각하니 연락도 없이 늦게 돌아온 아버지다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문을 치는 데서 어떤 불길한 일을 예측했던 것 같다.
  “잠만 자면 세상일이 다 되는 줄 알아. 이 병신들아!”
  혀 꼬부라진 목소리가 불빛처럼 밀려 들었다.
  “이 한명운이가 누군지 몰...으”
  끝말이 희미하게 말려들면서 ‘쿵’하고 마룻장이 울렸다.
  “들어가세요. 아저씨!”
  잠에 취한 석순이 목소리도 들렸다. 어머니가 달려나갔다. 나도 따라나섰다. 아버지는 마루 위에 엎어 누워있었다. 술 단지 같은 냄새가 코를 쑤셨다. 전에도 술에 취한 것은 있었지만 이날처럼 취한 것은 처음이었다.
  “뭘 하고 다니는 거요?”
  어머니의 원망이 밤공기를 찢었다. 이 소리에 ‘앙’하고 향실이가 잠을 깼다. 석순이가 방으로 들어갔다.
  “으... 먹었다. 한잔 자셨단 말여.”
  아버지는 얼굴을 마루에 묻은 채 목소리에 일종의 리듬이 붙었다. 벌게진 목덜미에 핏대가 올라왔다.
  “아이고 그놈의 원수 같은 술!”
  어머니는 지나가는 사람처럼 한마디를 던지고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웬일인지 다리가 오들오들 떨렸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이건 우리 아버지가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중에도 아버지가 불상한 생각이 들었다. 다리를 덜덜 떨며 아버지를 일으켰다.
  “아버지 들어가세요.”
  말을 하고 나니 콧등이 찡했다. 아버지는 살포시 눈을 떴다.
  “으... 대천이냐? 나 물 좀.”
  신음에 가까운 한마디에서 괴로움의 절정을 엿볼수 있었다. 순간 아버지가 가장 무서운 짐승으로 보였다.
  “석순아! 물 좀 떠 줘!”
  아버지 곁을 떠날 겸 나는 석순을 불러 댔다. 아버지는 찬물 한 그릇을 다 마셨다.
  “대천이 들어 와!”
  어머니의 분부였다. 어머니는 방안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네 방에 가서 자!”
  어머니는 내가 얼굴도 채 들어 밀기 전에 톡 쏘았다. 발작을 일으킨 사람의 말처럼 차가운 한마디였다.
  내 방에 가서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창문으로 한밤중의 별빛이 방안에 흥건히 흘러들고 있었다. 이 별 저 별을 잡고 신화 같은 이야기들이나 마음껏 듣고 싶었다. 하지만 별들은 이따금 껌벅껌벅 아는 척만 할 뿐 말이 없었다. 껌벅이는 의미를 알아낼 수 없는 마음은 안달이 났다. 어제 이맘때의 나와 지금 내 동무들의 세계도 생각해 봤다. 그것들은 모두 내 세계의 것이 아니었다. 하긴 술 취한 아버지를 바라보던 순간도 이미 내 세계와는 분열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 순간만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쏟아져 내리는 전설의 나라에 내가 살았다.


충북대학보 제30호(1963년 9월 20일자)부터
제33호(1964년 1월 10일자) 까지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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