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0일 법의 날을 맞이해서 MBC PD수첩에서 방영한 내용이 검찰을 뒤흔들고 있다. 경남지역의 건설업자인 정 씨(52)가 자신이 접대했다고 밝힌 검사들의 명단과 접대 내용이 담긴 문서를 PD수첩 측이 입수해 낱낱이 밝혔기 때문이다. 그동안 검찰 스폰서에 대한 여러 가지 사건이 많았지만 이번에는 성접대를 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는데다 현직 부산지검장 및 대검찰청 감찰부 부장의 실명까지 거론되어 있어 그 파장은 더 커질 듯하다. 현재 이 문제에 대해 많은 논의가 오가는 가운데 문제의 발단과 진행상황 그리고 반응 등을 알아보았다.

‘검사 스폰서’ 명단의 공개
이른바 ‘검사 스폰서’명단을 공개해 검찰을 불안에 떨게 한 이는 바로 건설업계에 종사하는 정 씨다. 그는 일찍이 지역사회에서는 손꼽히는 부자로 유명했으며, 어린나이에 물려받은 사업을 잘 이끌기 위해서 검찰의 보호를 받아야한다고 판단하여 검사의 스폰서 역할을 해왔다고 밝혔다.
그런 그가 25년간 자신이 접대한 내용이 기록된 문건을 공개했다. 그 문건에는 멀게는 1984년부터 가깝게는 2009년까지 자신이 접대했다고 밝힌 검사장급 3명, 부장검사 17명, 평검사 8명을 비롯한 현직 검사 28명과 변호사 29명의 실명이 적혀있다. 또한 언제, 어디서, 어떤 접대를 했고, 얼마의 촌지를 지급했으며, 누구에게 성접대 해주었는지에 대한 상세한 기록과 그 때 사용한 수표의 일련번호도 적어놓았다. 정 씨는 이 문건을 공개하는 이유를 자신이 그동안 뒤를 봐준 검사들이 정작 자신이 힘들 때 외면했다는 ‘배신감’ 때문이라고 PD수첩과의 인터뷰 내용에서 밝혔다. 그는 작년 8월 변호사법 위반으로 구속당했으나 관절수술의 이유로 같은 해 9월 구속집행정지 처분을 받은 상태이다.

검사 스폰서 리스트(일명 검찰 X파일) 내용
정 씨가 밝힌 문건에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현직 검사들의 실명도 거론되어 있다. 그 중 가장 화두가 되는 것은 박기준 부산지검장과 한승철 대검찰청 감찰부 부장이 접대 받았다는 내용이다. 정 씨의 기록에 의하면 2009년 3월 30일 한승철 감찰부 부장이 당시 창원지검 차장 검사에 부임했을 때 두 명의 부장검사를 접대한 것으로 되어있다. 1차 식사 후 2차로 룸살롱에서 술을 마신 뒤 부장검사 한 명을 성접대 하고 한승철 검사에게는 택시비라는 명목으로 백만 원을 지급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4월 13일에는 한승철 검사, 한 명의 부장검사, 평검사 열한 명이 정 씨에게 접대 받았다고 밝혔다.
또한 정 씨는 2003년에 당시 부산지검 형사 1부장이던 박기준 검사도 접대 했다고 폭로했다. 박 검사가 재직 중이던 형사 1부의 회식은 물론이고 부장검사, 평검사 회식 또한 접대 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그 때 사용했던 수표의 일련번호, 사용 액수 등이 상세하게 적혀있다. 현재 여론을 통해 스폰서 의혹이 불거진 탓에 박기준 부산지검장은 사표를 제출한 상태이고, 한승철 감찰부 부장은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 조치되었다.
이밖에도 문건에는 1984년부터 1990년까지 매월 지역지검장에게 2백만 원씩, 평검사에게 60만 원씩 돈을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등 25년간 검사 스폰서 노릇을 해온 정 씨의 행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검찰 비리 사례
검찰 스폰서 의혹은 이번만의 일이 아니다. 2005년 당시 노회찬(현 진보신당 대표) 민주노동당의원은 삼성그룹 측의 ‘떡값’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 전·현직 검사 7명의 실명을 밝힌 바 있다. 당시 이학수 삼성 비서실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의 대화를 안기부 도청팀이 녹취한 이른바 ‘안기부 X파일’에는 ‘삼성 측은 명절 때만 되면 현직 검사들에게 줄 떡값 리스트를 작성해 체계적으로 제공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검찰 측은 녹취록 관련자들에 대한 무혐의를 인정하여 사건을 종결시켰지만, 사회적 파장이 거세 실명 거론자 중 한명인 김상희 전 범무부 차관은 스스로 사직했다. 무혐의로 사건이 마무리되자 X파일 관계자들은 이 사건에 대해 노 의원과 이를 보도한 MBC 이상호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하기도 했다.
지난 2007년 10월에는 『삼성을 생각한다』로 화제가 된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일 당시 자신이 직접 검찰인사를 관리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에 양심고백을 통해 직접 작성했다고 알려진 ‘떡값 리스트’를 넘겼으며, 사제단 측에서도 자신들이 그 리스트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떡값 리스트에는 김 변호사가 검찰 간부 40여 명에게 매 해 명절마다 5백만 원에서 천만 원까지 직급에 따라 지급했다는 내용과 지급 받은 검찰 관계자 실명이 들어있다. 그 중에는 현 이귀남 법무부장관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명단이 공개되어 삼성특검이 이루어 졌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소극적인 대응으로 아무런 소득 없이 수사가 종결되었다.
이밖에도 가장 최근인 지난해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가 스폰서와 관련해 23일 만에 내정직을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천 전 내정자는 아파트 구입 시 한 사업가로부터 돈을 빌렸다는 혐의를 받았는데 결국 그 사업가와의 친밀한 관계가 들통 나 자진 사퇴하고 말았다.

검찰의 대책
현재 정 씨의 리스트 공개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과거의 사례로 미루어 보아 검찰에게 내부 일 처리를 맡기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듯하다. 지난 2005년이나 2007년처럼 ‘제 식구 감싸기’식의 실명 거론자 사퇴, 또는 증거 부족으로 인한 무혐의로 끝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성낙인 서울대 법대교수를 중심으로 진상규명위원회가 조직되었으나 이마저도 확실한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위원회 구성원 중 검찰 관계자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PD수첩 방송이 나간 후 검찰은 문건을 공개한 정 씨를 재구속하기 위해 구속집행정지 취소신청을 하였다. 정 씨는 구속집행정지 취소에 관한 심문이 예정되어 있던 23일, 본인 스스로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여 음독을 시도, 결국 재구속 되지 않았다. 현재 진실을 밝히기 위해 대질 심문을 주장하는 정 씨와 이를 부정하고 독자적인 진상규명을 위해 땀 흘리고 있는 검찰과의 첨예한 대립이 예상된다.

각계의 반응
이번 검사 스폰서 의혹에 대한 각계의 반응은 다양하다. 먼저 성 접대에 대한 문제 때문에 여성단체가 반발했다. 박영미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등 57명은 성매매관련 법률 위반 혐의로 리스트에 거론된 28명의 검찰관계자를 대검찰청에 단체 고발한 상태이다. 또한 정치계의 반응도 거세다. 여야간 검사 스폰서 특검 도입에 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등 주요 야당들은 벌써 특검법 발의에 나섰고, 이에 맞선 여당은 특검법 필요성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를 지켜본 후 입을 떼겠다는 조심스런 자세를 취하고 있다. 법무부 내부에서도 이귀남 법무부장관이 직접 검사들의 룸살롱 출입 및 골프 등 향응과 관련된 행위에 대해 전면적으로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이 지금까지 보인 행보는 스스로의 문제를 더욱 미궁으로 빠뜨렸다. 과거에 비추어 봤을 때 이번에도 검찰 측이 안일한 대책을 내세워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 또 다시 되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래서는 정의사회는 고사하고 국민들마저 외면할 분위기다. 더 이상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느낌이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검찰 스스로 채찍을 들고 내부 규율을 엄격히 해 법치국가 실무자로서의 양심을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