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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연자방아 전설 (1)
제 943 호    발행일 : 2019.09.02 
글 AIC, 그림 김용길

  내 나이 서른넷이니 내가 미련 없이 집을 뛰쳐나온 지도 그럭저럭 열아홉 해가 된 셈이다.
  열다섯 살의 젖 내 나던 그 날부터 이만큼 뼈대가 굵어지기까지 내가 살아온 세계의 진기한 풍경 중에는 이야기를 찾는 요새 사람들의 흥미를 돋을 만한 것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 세계에 살아온 나로서는 너무나 절실한 현실들이었기에 실은 기억을 되살리기조차 겁이 난다.
  나는 이번 선거에 민의원에 입후보했다. 그래서 어제 저녁 선거 유세차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도착 즉시 내 눈을 끈 것은 폐허가 된 연자방아(둥글고 넓적한 돌판 위에 그보다 작고 둥근 돌을 세로로 세워서 이를 말이나 소가 끌어 돌리게 하여 곡식을 찧는 방아)였다. 바야흐로 연자방아는 옛날의 유물 속에 말려들고 있다. 가고 안 올 연자방아이기에 여기에 그 기념비로 연자방아의 전설을 적어 두려는 것이다.
  여기서 내 소개를 좀 하자. 나는 가봉자(加捧子, 의붓아들)였다. 그 때문에 이제부터 내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는 의붓아버지를 말한다. 왜 집이라는 곳을 뛰쳐나왔던지는 차차 알게 되겠지만, 그간 열다섯 해가 지나고 6.25까지 치렀으니 그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이 지금쯤 살아있거나 한지 모르겠다.
  나는 피나는 고학으로 그간 U 대학 정치학과를 나왔다. 어머니는 나에게서 큰 것이 나올 것을 확신하고 힘에 겨운 연자방아를 꾸준히 돌렸었다. 그 어머니에게 군밤 목판을 모개흥정(죄다 한데 묶어서 하는 흥정)하는 손님처럼 찾아가 고대하던 아름을 안겨드리고 싶다. 그때는 말없이 나와버린 옛날의 속죄도 할 수 있으리라. 이번의 승리로 나는 어떠한 연자방아를 돌리게 될지 나 자신도 모른다. 그러나 승리는 바람직한 것 아니냐? 이제껏 흘려 온 눈물과 참아온 수모를 어머니를 모시고 승리의 쾌재 속에 흘려버리고 싶다.
  이것은 내가 집을 뛰쳐나온 지 사흘째 되는 날 장바닥에서 만난 작은어머니가 집으로 들어가자고 끌면서 들려준 이야기를 더듬어 적어보는 것이다. 어서 시작한 연자방아의 전설을 이야기하고 이번의 승리를 위한 구도를 작성하련다.
  ‘피익’, ‘치익’ 밤껍질이 다투어 벌어졌다. 그럴 때마다 이쪽저쪽에서 누런 살결을 들어낸 밤알들이 어머니의 눈을 끌었다. 하늘의 뭉게구름은 뭉게구름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저대로의 골짜기를 달렸다. 움츠렸던 힘의 발산인 양 한오라기 뽀얀 김도 피어올랐다. 처음 며칠은 구수하다 못해 골까지 팼지만 이젠 어머니도 그것을 느끼지 못할 만큼 냄새에 젖어 있었다.
  그날은 어머니가 ‘오리다리’ 목에 전을 벌린 지 엿새째 되는 날이었다. 이웃한 다른 장사들과 어지간히 친숙해졌다.
  “밤낮 이삿짐만 싸면서 두 벌이가 되우?”
  “장사는 나처럼 자리를 타서 해야지.”
  햇빛을 따라 오전오후로 자리를 옮기는 감 장사 할멈을 보고, 다른 감 장사가 말을 건네자 할멈은 약간 복록 해진 돈주머니를 뒤집으며 이렇게 대꾸했다. 그 손아귀를 따라 아무렇게나 꾸겨 넣은 지전(紙錢, 지폐)들이 한 움큼 삐죽이 드러났다.

1.jpg

  대여섯 장사들은 모두 부러운 눈길을 그곳에 주저앉혔다. 어머니도 그쪽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무심결에 한 손을 돈주머니에 찔렀다. 돈이 손에 잡혔다. 순간 아무도 없는 방에서 과자 봉지를 혼자 차지한 어린애처럼 마음이 흐뭇했다.
  ‘얼마나 되지?’
  어머니는 벌이를 헤아려 보았다.
  ‘처음에 어떤 학생이 50원어치, 다음에 어떤 여자가 어린애를 데리고 와서 100원어치, 또 어떤 할머니가 50원어치… 또… 그렇지 방금 사간 애가 30원어치.’
  모두 230원이었다.
  ‘오늘도 벌써 한나절이 다 되었는데’
  어머니는 장사를 처음 시작하고 사흘째 되던 날 1,370원을 벌었던 것을 생각했다. 그날은 이웃들도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고 제법 우쭐해지기도 했다. 어머니가 부끄럽다는 생각을 제일 급속도로 털어 버린 날도 바로 이날이었다. 그러나 보통 날은 늘 500원 정도가 고작이었다.
  ‘많이 팔아야지.’
  어머니는 돈을 다시 한번 꼭 쥐었다가 놓고는 밤껍질에 틈을 내고 밤을 젓고 손을 분주히 놀렸다. 한나절의 발걸음들은 한가로웠다. 한가로운 사람들이 분주하지 않게 그렇다고 심심하지도 않을 만큼 ‘오리다리’를 오갔다. 고등학생 셋이 히히 덕거리며 어머니 곁을 지나칠 때였다. 어머니는 용기를 내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하여 입을 열었다.
  “군밤 좀 사요. 예?”
  학생들을 쳐다보는 어머니의 눈매는 어렴풋한 기대로 반짝였다. 그런데도 녀석들은 들은 체도 않고 여전히 발걸음만 옮겼다.
  “후우.”
  어머니는 등골이 후끈하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웃 장사들의 기술을 본떠 본 것이 그만 실패를 하고 만 것이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 처음 나올 때처럼 주위가 부끄러웠다. 수건을 눈 위로 더 쓸어내렸다. 몇 번씩 다져 먹은 마음이건만 잠시 흔들거렸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내 그 자리에 전을 벌리기 전에 모든 것을 이기자고 아래 위 이틀 비벼대던 전날의 매서운 마음의 변화란 책장을 넘길 때 잠시 흔들거리는 촛불과 같은 것이었다. 어머니는 다시 밤알들을 뒤적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관심사는 물론 용모나 옷차림 따위는 아니었다.
  ‘도대체 저 사람은 돈이 있느냐? 돈도 아무 돈이나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군밤을 사 줄만한 돈이 있느냐?’
  어머니는 지나가는 이들의 얼굴 위에 이런 방정식을 세우고 열심히 풀어 보는 것이었다. 심심찮게 시간을 보내는 데는 기술이 필요했다. 밤을 굽기만 하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또 그것은 지루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이런 셈을 몇 번 해보는 동안에 어렴풋이나마 어떤 답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제 막 그럴싸한 사람이 지나쳤다. 저쪽에서 또 그럴싸한 얼굴이 둘이나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이 바로 앞에 왔을 때 어머니는 또 한 번 불러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고개는 이내 수그러지고 말았다. 조금 전의 어떤 학생들처럼 그들도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숱한 사람들을 거저 지내 보내는 중에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해는 점점 등 뒤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젖가슴을 문질렀다. 젖이 돌았던 것이다.
  ‘향실이 올 때가 됐는데…’
  지난달에 돌이 지난 향자를 업고 올 향실이가 기다려졌다. 어머니는 할머니, 아빠들의 손에 매달려 지나가는 행실이 또래의 아이들을 몇 차례 눈길로 전송했다. 왼쪽 젖이 아프기까지 했다. 어머니는 다리 쪽에 눈길을 머물렀다. 군밤도 지나가는 사람들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좀처럼 향실이는 보이지 않았다.
  “여보! 밤 다 타. 뭐 그리 정신 팔 게 있어.”
  옆에 앉은 감 장사의 말에 어머니는 화독 위를 살폈다. 탄내가 강하게 숨을 따라 들었다. 순간 불에 덴 사람처럼 밤알을 저었다.

(제944호 계속)

충북대학보 제30호(1963년 9월 20일자)부터
                제33호(1964년 1월 10일자) 까지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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