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신문방송사 충북대신문 The Chungbuk Times 교육방송국
전체기사종합취업대학사회광장사람특집문화동영상뉴스포토학술현상공모전문학
최종편집 : 2024.04.22 월 19:31
문학
문학 섹션
확대축소프린트
 신문사
[수필] 반나절의 외출
제 945 호    발행일 : 2019.10.14 
영어영문학과 4학년(1995년 당시) 최정희


2.jpg


  어젯밤 늦게까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다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반나절을 자고 두어 시간을 보낸 뒤(식사와 세수, 화장도 하고)에 학교로 향했다. 도시 한가운데긴 하지만, 멀리 봉우리들이 푸른 물이 가득 고인 호수를 받쳐이고 시야에 들어왔다. 와아~.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 푸른 하늘 밑이라면 백호주의도, 쿤타킨테의 슬픔도 없으리. 학교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렸다. 갑자기, 제대로 환영도 못 받고 여름으로 향하는 봄이 아쉬워졌다. 워커맨을 가지고 오길 잘했지.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좋은 것은 세상의 소음(듣지 않아도 될 소리들)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준다는 것이다. 대낮이라 버스는 한가했다. ‘청주역’행 버스에 올라 맨 뒷좌석에 자리를 잡고 종점까지 갔다.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오랜만에 기차를 타 볼까? 이 시각에 다녀올 만한 곳이라면…. 무작정 충주행 비둘기호에 몸을 실었다.
  내가 탄 기차 칸은 한적했다. 촌로 몇 분, 커다란 보따리를 낀 아주머니, 그와는 대조적으로 아주 화려하게 성장한 여인 그리고 한구석에는 두 남녀가 다정하게 기대고 있었다. 나까지 모두 열 명이 안 되는 인원이 탄, 이 기차는 지금 충주로 가고 있다. 모두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탄 기차이겠지? 나처럼 무작정 충동적으로 탄 것은 아니리라. 엊그제까지의 무기력에 빠져 허우적대던 생활을 훌훌 털어 버리고 싶다. 왜 사는 건지? 삶의 목적의식이 무엇인지? 도대체가 의문투성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삶이란 살아가는 것이 아닌, 그저 살아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무엇이든 바퀴 달린 것에 몸을 실을 때 책을 보면 여지없이 멀미하는 나이기에 그저 무언가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일 외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멍하니 한참을 가자니 머리를 길게 땋아 늘어뜨린 여자아이가 올라탔다. 그 여자아이를 보는 순간 여고시절 공원에서 본 껌팔이 아주머니의 그 ‘폭리로 인한 손실’이 생각났다. 30대 중반쯤이었으리라. 아주 왜소한 몸에, 신기한 것은 항상 길게 머리를 풀어헤치고 치마를 입는다는 것이다. 여자라는 점이 사람들의 연민 의식을 자극하리라고 생각했던가 보다. ‘껌 좀 사 주세요.’ 그야말로 오뉴월에 피죽 한 그릇 못 먹은 소리. 백원 동전을 꺼내며(그때만 해도 껌은 백원이었다), ‘한 통 주세요.’ 자선을 한다는 우쭐한 생각에 의기양양하게 돈을 건네지만, ‘삼백원이유!’ 그 힘없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네?’ 손은 벌써 주머니에 들어가 허둥지둥 동전 두 개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 수법을 당한 사람들은 그 아주머니가 백 미터쯤에 모습만 보여도 슬슬 자리를 피한다.
  맨 앞쪽, 아니 기차는 지금 내 오른쪽으로 향해 가고 있으니까 맨 뒤쪽이 된다. 맨 뒤쪽 아주머니가 사탕 하나씩을 돌린다. 듬성듬성 땅콩 으깬 것이 섞인 알사탕이었다.
  ‘하나씩 잡수이소.’ 우리는 때아닌 사투리에 모두 사탕을 먹는 것이라는 생각을 잊은 듯 아주머니에게 시선을 모은다. ‘아니고 마, 그래 좋아하던 사탕도 하나 몬 잡숫고, 훌쩍 갈 끼 뭣꼬.’ 눈물이 말랐는지 입을 씰룩 씰룩하며 마른 울음을 운다. 아마도 주위의 누가 죽었나보다. 그리고 죽은 그 사람은 사탕을 좋아했던가 보다. ‘마, 우리 고모만큼 불쌍한 이도 없을 끼고마. 머리 올린지 일주일만에 청상과부가 되삐리더니, 둘째 서방까지 비명횡사할찌 누가 알았겄노. 자식이라곤 딸 하나, 지 버리고 시집갔다꼬 돌아도 안 보고. 그래도 지 엄니 임종은 맞아야 했을 거 아니가. 하이고오 흐흐…’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하소연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어 알사탕을 우물거렸다. 한참을 우물거리자니 충주역이다. 무작정 시내버스에 옮겨 타고 번화가에서 내려 또다시 무작정 걸었다. 신호등의 경음기가 울렸다. 건널목을 앞에 두고 딴전을 부리던 아이가 그 소리에 잽싸게 건넌다. ‘다른 도시에서는 흔한 신호등 경음기가 왜 청주에는 없을까’ 생각하며 건널목을 건넜다. 지하에 있는 좀 우중충한, 이름도 별로 기억에 남지 않을 볼링장에 들어가 핀을 쓰러뜨렸다. 에버리지 136점, 더블 스트라이크를 치고 터키를 향해 볼을 던지던 찰나 ‘쿵’하고 볼이 떨어져 나가, 베이비 스플릿을 내고 말았다. 하지만 웬일인지 무난히 스페어 처리를 했다. 평소의 내 실력으로 봐서 오늘은 운수대통이다. 옷가게에 들러 도저히 용기 없이 입지 못할 옷들을 몸에 대 보았다.
  종업원은 대뜸, ‘어머 언니가 그 옷 입으면 참 잘 어울리겠다. 한번 입어봐요. 응?’ 그래 입어봐서 밑질 건 없지. 미니의 차원을 넘어선, 아주 아슬아슬한 길이의 스커트에 하늘거리는 블라우스, 그 위에 망사조끼를 걸치면 그럴싸한 투피스가 된다. 아무래도 어색해하며 거울 앞에 섰다. 옷이란 자고로 입어서 편한 게 내 철칙이건만 도저히 신경이 쓰여서 입어보는 것조차 힘들다. ‘아주 잘 어울리네. 언니 이 못 사라. 아주 싸게 줄게.’ ‘글쎄요, 옷이 좀 촌스러워 보이네요.’ 구매 목적이 아닌, 단순히 눈요기를 위한 쇼핑일 때면 으레 써먹는 수법이다.
  서서히 황혼이 비끼고 있었다. ‘택시! 시외버스 주차장이여.’ ‘아니, 바로 요기를 돈 내버리가며 택시를 타?’ 며칠을 수염을 안 깍았는지 턱 주위가 거무튀튀한 운전사 아저씨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어느새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있었다. 터미널 안은 제법 시끌시끌하니 북적댔다. 하긴 모두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버스 옆자석에 할머니가 앉으셨다. ‘딸네 다녀가는 길인데, 아무리 내배 아퍼 난 자식 집이라고 해도 세상에 내 집만큼 편한 곳은 없구먼. 색시는 어디 가우?’ ‘저도 집에 가요!’
  제법 어둠이 내려 창에 내 모습을 비출 수가 있다. 조금 초췌해 보인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겠다.


충북대학보 제582호(1995년 10월 13일자) 게재글

Name Pass  

목록보기
최근기사
충북청주FC와 개화 총학생회가 함께 한 ‘충...
학생들의 꿈을 배양하다, 씨앗 마일리지 제도
새롭게 돌아온 ‘벚꽃과 함께하는 푸드트럭 축...
총학생회, 편입·복학생과의 소통을 위한 간담...
청주시 소상공인을 위한 ‘청주페이 플러스...
공지사항 More
<안내> 신문방송사 60주년 기념행사
2015학년도 수습기자 추가 모집
2015학년도 수습기자 및 편집기자 모집
2013학년도 신문반송사 현상공모 안내
2012년 CBNU UCC 공모전 심사결과
영상뉴스 More
사진뉴스 More
전체기사 종합
취업
대학
사회
광장
사람
특집
문화
동영상뉴스
포토
학술
현상공모전
문학
동영상뉴스
수습기자모집
PDF자료실
지난호보기
신문사 소개 기사제보 독자참여 개인정보 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

28644 충북 청주시 서원구 충대로1, 충북대학교 신문방송사(발행인 : 고창섭 | 주간 : 구본상)

행정실 : 043-261-2934    충북대신문 : 043-261-2936    The Chungbuk Times : 043-261-2935    교육방송국 : 043-261-2953

Copyright ⓒ 2008 충북대학교 신문방송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