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신문방송사 충북대신문 The Chungbuk Times 교육방송국
전체기사종합취업대학사회광장사람특집문화동영상뉴스포토학술현상공모전문학
최종편집 : 2023.11.27 월 18:07
문학
문학 섹션
확대축소프린트
 신문사
<소설> 여행
제 955 호    발행일 : 2021.03.02 
심문수(국어국문학과·15/창문학동인회)

1.jpg

  안녕. 반가워. 널 만나게 될 이 날을 얼마나 바랐는지 몰라.

  어쩌면 널 못 만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기도 했어. 네가 정말 존재할지 확신이 없었거든. 그래서 그런가? 지금 이 순간이 마치 기적처럼 느껴져. 맞아. 이건 기적이야.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비를 넘었는지 생각하면 말이야.
  모든 길이 고비였어. 그리고 모든 고비는 순탄치 않았지. 따스한 볕이 내리쬘 때보다 찜통 같은 더위에 허덕일 때가, 시원한 바람을 맞을 때보다 찬비를 맞을 때가 더 많았어. 잘 닦인 거리보다 포장되지 않은 흙길과 진창이 더 익숙해졌고 말이야. 게다가 나무에는 맛있게 익은 과일이 아닌 덜 익어서 시고 떫은 과일이 대부분이었고, 친절한 사람보다는 비열한 사람이 더 많았지. 포기하고픈 마음도 없진 않았어. 온갖 유혹이 날 덮쳤고, 몇 번은 그 유혹에 넘어가서 멀리 돌아오기도 했으니까. 그래도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름 즐거운 여행길이었네.
  여행의 첫 발걸음은 눈 부신 태양 아래서 시작했어. 사실 그때는 네 존재를 전혀 몰랐지. 너무 실망하지는 마.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으니까. 어쨌든 그때는 내 양손을 꼭 잡아준 이들이 있었지. 좋은 분들이었어. 손이 무척 따듯했거든. 그들이 이끄는 대로 여행을 시작한 거야. 당연히 목적지도 몰랐어. 가보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들이 나를 데리고 가려던 곳은 그리 나쁜 곳이 아니었을 것 같아. 그곳에는 네가 없었겠지만 말이야.

  하지만 편안한 여행길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어. 내 손을 잡아주던 두 사람이 다투더니 한 사람이 떠나버렸거든. 그는 어디로 갔을까? 왠지 알 것 같지만 굳이 말하고 싶진 않네.
  눈 부신 태양이 사라지고 하늘은 금세 어두워졌어. 그날 나는 처음으로 어두운 세상을 보았지. 알록달록하고 요란한 빛으로 가득한데도 온 세상이 어두웠어. 그리고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지. 무언가 뒤죽박죽 뒤엉킨 소리였어. 새소리, 자동차 엔진 소리, 찬송가, 펜으로 무언가 쓰는 소리, 화투패 섞는 소리, 웃음소리, 화내는 소리, 울음소리. 내 손을 꼭 잡아주던 그녀는 나를 꼭 안고 거리를 지났어. 그 품이 너무나 따스해서 나는 두렵지 않았지.
  어느 날 나와 그녀는 다시 밝은 세상으로 돌아왔어. 길게 뻗은 거리에 볕을 받아 반짝이는 높은 빌딩 숲과 바람에 이파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나무가 조화를 이루며 서 있었지.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이 안정되어 보였어. 그곳에서 내 손을 꼭 잡아주던 그녀가 손을 슬그머니 놓더니 거리를 가리켰지.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있더라고. 덜컥 겁이 났어. 그 사이에 있다가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두운 세상으로 내던져질 것만 같았거든. 끔찍이도 싫었어. 그래서 여행을 그만두고 형광등으로 환한 방 안에 틀어박혀 지냈지. 처음에는 그곳에서 영원히 살 생각이었어. 할 수만 있다면 말이야. 하지만 따듯한 품을 가진 그녀는 이내 조바심을 드러냈고 나는 그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어. 그녀는 내가 여행을 떠나길 바랐거든. 다른 사람들처럼 말이야. 결국 나는 거리로 나왔고, 아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어. 마음처럼 잘 되진 않았지만. 워낙 사람들이 붐벼서 어깨에 치이고 발등을 밟히다 보니 그들의 속도에 맞춰 걷게 되었거든.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는데, 금세 익숙해지더라.

  그리고 어느 날,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어. 갈림길이 나왔거든.
  사람들은 모두 한 길로 가려 했어. 하지만 그 길은 충분히 넓지 못했고, 결국 다툼이 일어난 거야. 마치 이전에 내 곁을 지켜주던 두 사람이 다툰 것처럼 말이야. 아니, 그것보다 더 심했어. 머리끄덩이를 붙잡아 당기고, 얼굴을 밀치고, 침을 뱉고, 몽둥이를 휘두르고, 욕설과 비명이 난무했거든. 앞서가는 사람을 넘어뜨리고 그를 밟고 나아가는 사람들. 쫓아오는 이의 눈을 찌르는 사람들. 세상은 여전히 태양 아래에 놓여 있었지. 이해가 되니? 질서 속에 사는 안정적인 사람들이 원한과 분노에 휩싸여 주먹을 휘두르다니 말이야.
  다른 길은 모두 어두운 세상으로 이어져 있었어. 그곳에 발을 들이는 사람은 몇 없었지. 나는 망설였어. 밝은 세상을 계속 나아가야 할까. 어두운 세상으로 들어가도 될까. 밝은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두운 세상으로 가는 것은 도망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후회하고, 후회하고, 또 후회했어. ‘형광등 아래에서 영원히 살았어야 했는데’, 하면서.
  결국 어두운 세상에 발을 들였어. 거리가 포장되지 않아 거칠었고, 주변은 진창으로 가득했지. 어깨에 기타를 걸치고 뚱땅거리는 사람, 주변 눈치를 보는 사람, 호수를 들여다보며 미소 짓는 사람, 비적비적 걷는 사람, 구걸하는 사람, 개와 함께 자는 사람,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사람, 유혹하는 사람... 밝은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온갖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요란했지. 온갖 잡다한 불빛과 소리로 말이야.
  나는 주뻣주뻣하게 천천히 나아갔어. 온갖 의문과 의심이 떠나질 않았거든. 내가 잘 하고 있는 걸까. 정말 이래도 될까. 정말 이 길로 가도 되는 걸까. 그녀가 속상해하지는 않을까.

  길은 이전과 달리 일(一)자로 쭉 뻗지 않고 굴곡졌어. 어두운 세상과 밝은 세상을 오가면서 말이야. 어차피 되돌아갈 수는 없으니 나는 길을 벗어나지 않으려 애썼지. 그러다 중간에 다른 길과 교차 되더라. 그건 갈림길에서 수많은 사람이 가고 싶어 했던 길이었지. 사람은 여전히 많았어. 그런데 조금 이상했어. 다들 눈을 가리고 있는 거야. 그것도 제 손으로 말이야. 그리고 그대로 어두운 세상으로 들어갔어. 계속해서, 계속해서 쉬지 않고 말이야.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것 같더라고.

  문뜩 궁금해졌어. 이 길은 누가 만든 걸까. 이 수많은 길을 도대체 누가 만든 걸까. 처음부터 존재하지는 않았을 텐데. 사람이 만든 것은 분명했어. 개나 고양이가 길을 만들지는 않으니까 말이야. 길이 있는 이유는 목적지에 가기 위해서야. 목적지가 없으면 길은 의미가 없는 거지. 그러니 길을 만든 사람은 목적지에 가기 위해 만들었다는 결론을 내렸어. 그리고 나는 목적지도 생각하지 않고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 목적지도 없이 길을 걷다니,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눈을 가리고 걷는 꼴이나 마찬가지였지. 그제야 목적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거야. 바보 같지? 맞아. 하지만 그날은 내 여행길에 있어 엄청난 전환기였어. 그렇게 여행을 멈추고, 홀로 혹은 다른 사람과 머리를 맞대어 목적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지. 그리고 그제야 너의 존재를 어렴풋이 느끼게 된 거야. 처음 길을 만든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다 보니 말이야. 그렇게 네 존재를 알게 되었고, 너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지.
  막막했어. 네가 무엇인지 명확히 모르니 어디 있는지도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거든. 그래서 일단 막무가내로 걷기 시작했어. 길이 아닌 발길이 닿는 곳으로. 밝은 세상도, 어두운 세상도 신경 쓰지 않고 말이야. 25층 빌딩과 터만 남은 폐허, 찬송가와 총소리, 열띤 연설과 분노에 찬 비명, 달콤한 케이크와 썩은 양상추, 라벤더 향과 오줌 냄새. 그것들을 보고 듣고 느꼈어. 그러면서 나는 너의 존재에 점점 확신하게 되었지.

  그러고 보니 너를 바라보면서 걷던 도중에, 정확히는 드넓은 황야를 지나던 중에 어느 이상한 알을 발견했었어. 둥지에서 떨어졌는지 홀로 동떨어져 있는 알이었지. 그것을 집어 들자 새가 알을 부수기 시작했어. 그것은 정말이지 엄청난 투쟁이었어. 마치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려는 듯이 말이야. 하나의 세계를 부수고 나온 새가 힘겹게 날개를 퍼덕였어. 내가 물었지. 어디로 가려고 그렇게 발버둥 치냐고. 새가 말했어. ‘아브락사스’. 그리고 멀리멀리 날아갔어.

  새가 떠나고, 나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어. 가파르고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 능선을 중심으로 반은 푸른 이끼가 돋아난 밝은 세상, 다른 반은 썩어가는 이파리가 뒤덮인 어두운 세상인 산(山). 그래, 우리가 서 있는 이 산. 나의 목적지이자 너의 보금자리. 이곳에 오는 길에 한 노인을 만났어. 제 몸보다 훨씬 큰 거대한 바위를 굴리며 능선으로 오르는 노인이었지. 정확히는 바위를 능선으로 올렸다가 건너편으로 굴러 떨어뜨리고, 그걸 다시 굴리며 오르는 노인이었어. 네가 아는 사람일지 모르겠네. 밝은 세상과 어두운 세상을 계속해서 오가는 노인을 보면서 고통받는 것 같아 참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만큼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어. 나이 든 노인인데도 항상 발전하려 노력하는 것 같았거든.
  그 노인을 지나고 지금 이곳에 도착한 거야. 사실 할 말이 더 많은데 나 혼자 너무 떠든 것 같네. 우리는 서로를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사이지만,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더 많아. 이제 우리는 영원히 함께할 테고, 서로를 끝없이 알아 가겠지. 자, 이제 네 얘기를 듣고 싶은데, 해주겠니?


<끝>

Name Pass  

목록보기
최근기사
글로컬대학30 사업 선정...
2024년을 새롭게 열 ‘개화’ 선본 제56대 ...
2024년 우리 학교를 이끌어 갈 제56대 총학...
우리 학교의 요리왕은 누구일까? 장쿱이의 꿈
우왕이와 찰칵, 생협 포토쿱 설치
공지사항 More
<안내> 신문방송사 60주년 기념행사
2015학년도 수습기자 추가 모집
2015학년도 수습기자 및 편집기자 모집
2013학년도 신문반송사 현상공모 안내
2012년 CBNU UCC 공모전 심사결과
영상뉴스 More
사진뉴스 More
전체기사 종합
취업
대학
사회
광장
사람
특집
문화
동영상뉴스
포토
학술
현상공모전
문학
동영상뉴스
수습기자모집
PDF자료실
지난호보기
신문사 소개 기사제보 독자참여 개인정보 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

28644 충북 청주시 서원구 충대로1, 충북대학교 신문방송사(발행인 : 고창섭 | 주간 : 구본상)

행정실 : 043-261-2934    충북대신문 : 043-261-2936    The Chungbuk Times : 043-261-2935    교육방송국 : 043-261-2953

Copyright ⓒ 2008 충북대학교 신문방송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