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13일, 국제유가(미국 서부 텍사스유* 기준)는 배럴(1배럴:158.97리터)당 106.91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 오르락내리락하는 현상을 보이더니 지난해 10월부터 국제유가는 꾸준히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6개월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달 28일을 기준으로 북해산 브렌트유는 배럴당 48.47달러에 거래됐다. 또한 국제유가의 선행지표인 서부 텍사스유(WTI)는 배럴당 44.45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최근 5년간의 유가 동향을 분석해봤을 때 최고치를 찍었던 113.93달러(2011년 4월 29일)에 비해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이다. 한편, 국제유가 하락에도 이라크, 이란,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베네수엘라 등 주요 산유국이 속해있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는 평소와 다름없는 공급량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란의 비잔 남다르 장가네 석유장관은 지난달 19일(현지시간) 테헤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OPEC은 지금 당장 감산에 나설 계획이 없으며, 원유 가격이 25달러 선이 되더라도 감당할 수 있다. 유가 하락 때문에 오는 6월 5일로 정해져 있는 정례회의 이전에 긴급회의를 열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원유시장 공급 과잉과 그에 따른 유가 하락이 쉽사리 멈추지 않을 전망이며 전문가 또한 유가 하락에 대해 섣부르게 판단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국제유가, 왜 떨어지는 것인가
이렇듯 ‘석유 전쟁’이라는 말까지 언급되고 있는 가운데, 도대체 왜 국제유가는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는 것일까. 주간 금융경제동향에 기재한 우리금융경영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유가 하락에는 여러 가지 배경이 뒤섞여 있다.
먼저 새로운 원유 추출 방법의 발견이 국제유가 시장의 유가 공급 속도를 가속화시켰다. 특히 OPEC의 원유생산이 전통적 방식에 정체돼 있는 사이 2012년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셰일오일(지표면 부근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셰일층 안에 갇혀 있는 원유)’이라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원유시추기술로 생산된 원유가 급증하면서 원유 공급량이 크게 증가했다. 셰일오일은 시추비용과 과정이 복잡해 채굴단가가 높아 경제성이 떨어져 생산하지 않던 원유였다. 하지만 최근 새롭게 시추기술들이 개발되면서 셰일층에 갇혀있던 원유의 시추가 급증하게 됐다. 2011년 130만 배럴 수준이던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량은 향후 2020년까지 480만 배럴 수준으로 증가하게 되며 미국 전체 원유 생산량의 절반을 넘어서게 될 전망이다.
이러한 셰일오일의 생산량의 증가로 OPEC회원국들은 원유 생산량을 줄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러시아를 비롯한 비 OPEC회원국들이 오히려 석유 생산을 늘리면서 이른바 ‘유가 치킨게임*’이 벌어졌다. 이에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 또한 회원국 동의 없이 원유 수출가격을 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인하했다. 이 결정 이후 주변 산유국들이 줄줄이 가격인하를 결정하면서 국제유가 하락의 단초가 됐다.
셰일오일의 증가와 중동석유시장의 치킨게임으로 원유의 공급은 크게 증가했는데 원유의 수요는 그 수준을 맞추지 못하는 것도 이번 유가하락의 큰 배경 중 하나다. 2000년대 이후 원유의 수요는 기존 선진국들보다는 신흥국이 주도했다. 2014년 OPEC의 자료에 따르면 선진국의 원유 수요는 2005년과 대비해 500만 배럴이 감소한 반면 신흥국의 수요는 1,100만 배럴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경제성장 둔화로 인해 기존의 신흥국들의 성장률 역시 둔화되면서 원유수요까지 함께 급감했다. 특히나 중국의 경제둔화는 원유 수요 감소의 큰 역할을 했다. 세계은행이 2015년과 2016년 신흥국의 실질GDP 성장률 전망치 결과를 여러 차례 하향조정한 것을 볼 때 앞으로의 원유 수요는 더욱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산유국들은 왜 제 살 깎아 먹기 식의 치킨게임을 이어가는 걸까. 여기에는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특히 미국과 사우디의 대립이 큰 역할을 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경우 원래 우방이었던 사우디와의 관계(사우디의 IS 지원)가 복잡해지면서 사우디를 경계할 필요성이 대두됐고 이것이 유가하락의 배경이 됐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과거 구소련이 유가하락으로 인해 붕괴됐던 전례가 있었던 만큼 이 분석은 신빙성 있는 이야기다. 더불어 러시아까지 견제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까지 미국은 기대할 수 있다.
한편 사우디의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의 칼리드 알팔리 총재는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수도 리야드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유가 하락이 미국에 대한 견제는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인하며 “OPEC에 속하지 않은 산유국들이 감산을 하지 않는데 OPEC회원국만 감산하라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칼리드 알팔리 총재의 강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사우디가 원유 감산을 통해 셰일오일로 영향력이 급부상하고 있는 미국을 견제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셰일오일의 경우 전통적 원유 방식보다 시추비용이 많이 들기에 유가가 하락하게 되면 셰일오일 생산에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세계 석유에너지 패권을 둘러싼 중동과 미국의 다툼이 이어지는 한 유가 하락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달러화 강세가 유가 하락의 배경으로 지목됐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양적완화를 종료함에 따라 달러화의 가치가 높아졌고 더불어 달러의 유동성 또한 제한된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적으로 달러의 가치와 유가는 반비례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에 달러화의 가치 상승은 자연스레 국제유가의 하락을 가져왔다. 달러화 강세가 계속되는 한 국제유가 하락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유가 하락 호재인가 악재인가
그렇다면 이와 같이 복합적인 원인으로 발생한 국제유가 하락이 우리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와 같이 100% 원유를 수입하는 나라는 호재일 수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사상 최대를 기록하며 3년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 2일 한국은행은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가 894억 2000만 달러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 수치는 2013년 811억 5000만 달러보다 10% 가까이 증가한 수치여서 그 의미가 크다.
그런데 산업별로 구분해서 보면 그 영향에 대한 명암이 나뉜다. 물류.항공회사업계, 자동차.선박 수출업계의 경우 유가 하락이 반갑기만 하다. 특히나 유류비가 40% 이상 차지하는 항공업계는 이번 유가 하락의 최대수혜자가 됐다. 반면 정유.석유화학업계는 타격이 크다. 원유를 가공하는 정유.석유화학업의 경우 원유를 수입해 최종 판매하는데 까지 최소 한 달여가 소요된다. 그런데 이 기간 중에 원유값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 여기에서 발생하는 피해가 고스란히 정유.석유화학업계로 돌아가게 된다. S정유업체에 근무하는 김동한(울산시 중구.27) 씨는 “최근 회사가 위기체제로 운영되고 있어 분위기가 좋지 않은 편”이라며 “하루 빨리 유가가 평년 수준을 되찾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정유.석유화학업계의 대다수가 몰려있는 한국무역협회 울산지역본부의 ‘2014년 울산 수출입 평가 및 2015년 수출 전망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울산의 수출액은 전년 대비 5.8% 감소한 873억 달러에 그칠 전망이다.
산업별로 유가 하락에 울고 웃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유가 하락의 이익보다는 피해가 더 뚜렷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경상수지가 개선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수출이 늘어나 형성된 흑자가 아닌 수입 감소와 유가 하락으로 인해 발생한 ‘불황형 흑자’라는 이야기다.
국제유가, 바닥 찍고 다시 올라서나
유가 상승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미국의 셰일오일.가스 시추공 수가 줄었다는 소식 덕분으로 보인다. 지난달 28일 경제동향간담회에 참석한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정보통계센터 소장은 “유가 반등의 지표라고 할 수 있는 시추공 수가 작년 12월부터 급감하기 시작했다”며 “선행지표인 시추공 수가 줄어드는 것을 보면 몇 개월 후부턴 유가가 안정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시추공 수 감소는 실제 산유량이 감소한 건 아니지만, 조만간 생산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할 수 있어 국제유가 상승의 주요 원인이 된다.
그러나 유가 상승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저유가 상황이 향후 수년간 고착화할 것으로 내다보는 입장과, 40달러 선에서 한동안 유지되다가 다시 상승할 것이라는 입장 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 금융기업 UBS는 투자 보고서를 통해 최소 5년 안에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까지 오르기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았다. 미국 증권회사 골드만삭스 역시 유가 흐름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내비쳤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30달러까지 떨어질 것이며 유가 하락이 예상보다 장기화되고 떨어지는 폭 역시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지하 기자 kjha0921@cbnu.ac.kr
최영은 기자 choyouneu@cbnu.ac.kr
*서부 텍사스유(WTI, West Texas Intermediate)
영국 북해에서 생산되는 브렌트유, 중동에서 생산되는 두바이유와 함께 세계 3대 유종 중 하나. 국제 원유시장보다 미국 내에서 주로 거래되며 국제유가를 선도하는 가격지표로 가장 많이 활용된다. 3대 원유 중 가장 품질이 좋다.
*치킨게임
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극단적인 게임이론.








김지하&최영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