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신문방송사 충북대신문 The Chungbuk Times 교육방송국
전체기사종합취업대학사회광장사람특집문화동영상뉴스포토&만평학술현상공모전문학
최종편집 : 2026.09.07 월 19:58
특집
특집 섹션
확대축소프린트
 권령민
한국과 일본의 전시 현장에서 만난 일본군 ‘위안부’의 기억
제 995 호    발행일 : 2026.09.07 
매년 8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고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국가 기념일이다. 2017년 12월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통과로 이때까지 민간에서 진행하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 국가 기념일로 지정됐다. 기림의 날을 맞아 국내.외의 ‘위안부’ 관련 전시를 취재했다.

사진으로 남은 돌아오지 못한 13명의 ‘위안부’ 피해자

  지난 8월 6일부터 17일까지 인사동 마루아트센터에서 안세홍 작가의 사진전 ‘뒤안길에 새긴 이름’이 진행됐다. 이 전시는 해방 이후에도 돌아오지 못한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3명의 이야기를 담은 사진전이다.
  전시장 입구에는 ‘위안부’ 피해자인 이수단, 김순옥, 리광자, 박서운, 박대임, 배삼엽, 이귀녀, 현병숙, 박우득, 하상숙, 백넙데기, 김의경, 박차순 할머니의 전신 흑백 사진이 걸려 있었다. 마치 할머니들이 살아서 눈앞에 서 계신 것 같았다. 좁은 전시장임에도 우리나라 사람은 물론 일본인을 비롯한 많은 외국인으로 북적였다.

1.jpg

  할머니들의 전신사진을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이수단 할머니가 아기 인형을 안고 있는 사진도 있다. 이수단 할머니는 1922년 평안남도 숙천군 출생으로, ‘돈도 주고, 옷도 주고’라는 말에 속아 ‘위안부’가 됐다. 해방 후에는 돈이 없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중국 따두천촌에서 한족 남성과 결혼했으나, 자녀 없이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고단한 삶을 살았다. 말년에는 자식을 갖지 못한 아쉬움에 아기 사진과 인형을 곁에 두고 지냈다. 사진은 인형을 들고 “너희 엄마와 아빠는 어디로 갔니? 이제 나랑 같이 살자”라고 속삭이는 이수단 할머니의 모습을 안 작가가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2.jpg

  중국의 한 쪽방촌 같은 곳을 배경으로 한 사진 속 김순옥 할머니는 한복을 입은 채 처량한 모습으로 서 있다. 평양 출신인 할머니는 스무 살을 갓 넘긴 나이에 ‘공장에 취직시켜 주겠다’는 말에 속아 ‘위안부’가 됐다. 조선 이름을 빼앗긴 채 ‘가요코’라 불리며 예쁜 얼굴 탓에 위안소로 끌려가는 일도 잦았다. 김순옥 할머니도 돈이 없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중국에서 가난한 삶을 이어갔다. 2003년 안 작가가 방문했을 때 할머니는 지병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민족적 정체성을 잊지 않으려 평소 조선 노래를 부르고 한복 입기를 즐겼다. 안 작가는 그런 할머니를 위해 한복을 선물하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김순옥 할머니와 이수단 할머니는 서로를 의지하며 고단한 타향살이를 함께 견뎠다는 것이다.
  전시장에 내걸린 다른 피해자들의 사진 역시 유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대부분 인물의 얼굴을 조명한 사진들로, ‘위안부’ 피해로 인해 고독하고 굴곡진 삶을 살아온 할머니들의 비극성을 강조하기 위해 어두운 표정에 집중한 작품들이 주로 선정.전시됐다.
  전시장 안쪽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의 궤적과 당시 위안소 내부의 구조도 및 외형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존재의 결정적 증거인 ‘관동군 위안소 운영 현황 보고서’가 눈길을 끈다. 이 보고서는 일제강점기 만주 연변 지역에 주둔했던 일본 관동군이 작성한 위안소 관리 문서다. 안 작가가 중국에서 입수한 이 문서 본문에는 위안소 설치 경위와 현황, 병사 이용자 수, 민심 안정 상황 등이 기록돼 있어 일본 정부의 책임을 입증하는 핵심 증거 자료가 된다.
  이와 함께 피해 할머니들의 생생한 증언이 담긴 영상 자료도 상영됐다. 현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영상 속 할머니들의 고단했던 삶에 깊이 공감하며 숙연한 태도로 관람을 이어갔다.
  전시장 끝자락에는 관람객들이 피해 할머니들을 본뜬 일러스트에 색칠하거나 준비된 종이에 방명록을 작성하는 공간이 마련됐다. 현장에서 만난 관람객 김명점(서울 노원구) 씨는 “가슴을 울리는 전시로, 마치 할머니들이 바로 곁에 계신 듯한 느낌을 받았다”라고 소회를 전했다.

‘위안부’ 문제를 직시하고 공감하려는 일본 민간의 노력

  안세홍 작가의 사진전 현장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깊이 공감하는 일본인 관람객들의 모습을 봤다. 통역사를 동반해 안 작가의 작품 설명을 경청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은 일본 현지 내 관련 전시 개최 여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실제 일본 국내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전시를 상설로 운영하는 곳을 확인했다.
  신주쿠 중심가인 이세탄 백화점 앞 정류장에서 와세다 대학 방면 버스를 타고 ‘니시와세다’ 정류장에 내렸다. 번화한 신주쿠 도심과 달리 조용한 분위기의 대학가였다. 정류장에서 도보로 약 5분 거리를 이동하자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박물관(WAM: Women’s Active Museum on War and Peace)’이 모습을 드러냈다.

3.jpg

  이 박물관은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오후 1시부터 6시 사이로 운용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 입구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당한 각국 여성들의 얼굴 사진이 전시돼 방문객을 맞이한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선 내부에는 대여섯 명의 관람객이 정숙한 분위기 속에서 전시를 둘러보고 있었다. 관람료는 18세 이상 500엔, 18세 미만 300엔이며, 초등학생 이하는 무료다. 현장 직원에게 입장료를 지불하자, 방문 계기와 소속 단체를 적는 작성지와 한국어 안내 리플릿을 주었다.
  전시의 도입부는 ‘WAM’의 설립 취지와 존재 이유를 설명한다. WAM은 2005년부터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진상 규명에 앞장서 온 일본의 민간단체다. 이 단체는 <아사히신문> 기자 출신이자 여성운동가로 활동하며 일본군 성노예제 책임자 처벌 및 고발에 앞장섰던 고(故) 마쓰이 야요리(1934~2002)의 뜻을 기려 설립됐다. WAM은 한국뿐만 아니라 대만, 필리핀, 동티모르, 오키나와 등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저지른 성폭력 피해 관련 증언과 자료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전달하며 일본 정부의 가해 책임을 명확히 규명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곳의 전시 자료를 살펴보다, 처음 접하는 한국인 ‘위안부’ 여성들을 향한 일본군의 잔혹한 만행을 알게 됐다. 일본군은 그들의 추악함을 감추기 위해 ‘위안부’ 여성을 살해하고, 그 시신에 콜라병과 우산 손잡이를 꽂아 그 주검까지 모욕하고 짓밟았다.

4.jpg
▲ 피해자들의 증언이 담긴 자료들.

  전시장 안쪽에는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이 담긴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한국의 김학순, 배봉기, 이경생 할머니를 비롯해 대만의 황아타오 할머니, 일본의 시로타 스즈코 할머니 등의 증언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끈 인물은 김학순(1924~1997) 할머니였다. 17세 때 베이징에서 일본군에게 끌려갔다. 김학순 할머니는 “내 순결을 빼앗고, 나를 이렇게 만든 자들을 찢어버리고 싶다”라는 울분과 함께, 하루 10명에서 많게는 30명의 군인을 상대해야 했던 고통스러운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오직 위안소 탈출만을 생각했던 김 할머니는 위안소를 찾아온 조선인 남성에게 간청한 끝에 한밤중 탈출에 성공했다.
  이후 1990년 “‘위안부’ 동원은 민간 업자가 자행한 일”이라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뉴스로 접한 김학순 할머니는 사실을 밝히기로 결심했다.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할머니는 그해 12월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의 용기 있는 증언을 시작으로 필리핀, 네덜란드 등 전 세계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할머니는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정말 힘들지만, 사실은 역사에 남겨야 하며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을 남겼다.
  전시장에는 질문 형식의 전시물도 있었는데, ‘위안소에서의 생활은 어땠는가’라는 질문 아래에는 일본군에 저항하다가 담뱃불로 몸에 화상 흉터가 남은 김영숙 할머니의 사진 자료가 제시됐다. 당시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가 생기자, 자살 방지를 위해 일본군이 직접 ‘위안부’를 감시했다. 전시물에는 “인간답게 살아갈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날들은 지옥이었다”라는 피해자들의 절규 어린 증언이 기록돼 있다.
  당시 위안소 운용 형태가 세 가지 유형이었다는 전시물도 눈에 띄었다. 자료에 따르면 위안소는 ▲군 직영 위안소 ▲군 위탁 운영 위안소 ▲일본군 지정 위안소로 나뉘어 운영됐다.
  당시 일본군 병사들의 가해 증언 자료도 있었다. 일본군이었던 ‘콘도 이치’는 자신이 일본군 위안소를 이용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2000년 중국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관련 재판에 출석해 가해 사실을 증언했다. 그는 “현지를 방문하면 중국인들의 고통스러운 얼굴이 떠오르고, 전신이 바늘에 찔리는 듯했다”라며 “살아 있는 동안 전쟁의 진정한 모습을 전하며 저지른 죄를 속죄할 것이다”라고 말을 남겼다.
  전시장의 마지막 공간에 들어서자 동그란 테이블 위에 일본군 ‘위안부’ 관련 자료 및 학술 자료들이 정갈하게 비치되어 있었다. 이 공간은 방명록 작성과 관람을 마친 방문객들이 서로 생각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비록 언어의 장벽으로 현지인들의 대화에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그곳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역사 부정 태도와 달리, ‘위안부’ 문제의 진상을 올바르게 직시하고 공감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5.jpg
▲ 위안부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일본인들.

  역사는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온전히 기억할 때 비로소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절규 어린 증언이 한낱 과거의 유산으로 잊히지 않도록, 진실을 끊임없이 기억하고 후대에 전하는 일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시대적 책무다.


권령민 기자
dinosaurmin@chungbuk.ac.kr

6.jpg
목록보기
최근기사
D등급에서 9월 투표까지, 충북대·교통대 통...
학생들의 선의 노린 포교 수법, 개인정보 제...
<양심의 빈자리> 학내 공용공간, 잘 사용하...
고물가 시대, 학교 주변에서 찾은 가성비 밥...
원청교섭 나선 정부기관, 노란봉투법 현실은....
특집 More
한국과 일본의 전시 현장에서 만난 일본군 ‘위안부’의 ...
유전자변형식품(GMO), 우리는 무엇을 알고 먹고 있나
우리가 저지른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 판결 이후의 과제
4·19의 정신으로 묻다, 지금 개신인이 느끼는 불의는?
우리 곁에 살아있는 충북 독립운동가를 만나다
전체기사 종합
취업
대학
사회
광장
사람
특집
문화
동영상뉴스
포토&만평
학술
현상공모전
문학
동영상뉴스
수습기자모집
PDF자료실
지난호보기
신문사 소개 기사제보 독자참여 개인정보 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

28644 충북 청주시 서원구 충대로1, 충북대학교 신문방송사(발행인 : 직무대리 유재수 | 주간 : 이장원 | 부주간 : 신꽃비)

행정실 : 043-261-2934    충북대신문 : 043-261-2936    The Chungbuk Times : 043-261-2935    교육방송국 : 043-261-2953

Copyright ⓒ 2008 충북대학교 신문방송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