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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가희
우리가 저지른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 판결 이후의 과제
제 993 호    발행일 : 2026.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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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배상 판결 직후 영상통화를 하며 기뻐하는 응우옌티탄.                                                       (사진출처: 한베평화재단)

  “제가 평화운동가로 살면서 가장 극적인 날이었어요. 사무실 창문을 보며 구역질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이번 소송에서 지면 원고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내내 고민했어요.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우리는 이겼고, 그때 응우옌티탄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억울함이 덜어진 그분의 얼굴이 정말 환하게 바뀌었더라고요.” 한베평화재단 권현우 사무처장은 2023년 2월 7일, 법원이 최초로 대한민국 정부의 배상명령을 판결한 그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1999년 <한겨례21>의 “미안해요 베트남” 보도를 계기로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60년이 지나 국가배상 소송에서 승소했음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문제들이 남아있다. 우리가 가해자인 이 사건을 우리는 어떤 책임과 태도로 마주해야 할까.

민간인 학살의 실상

  1964년 5월 미국은 우리나라 등 우방국에 베트남전쟁 파병을 공식 요청했고, 당시 우리 정부는 국회 동의를 거쳐 그해 9월부터 파병을 시작했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한국군 약 32만 명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 그리고 작전에 투입된 일부 한국군에 의해 민간인 학살이 발생했다. 퐁니.퐁넛 마을, 하미 마을, 빈호아 마을 등에서 벌어진 사건이 대표적이다. 베트남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사망자는 최소 5천 명 이상으로 발표됐다. <한겨레21> 호찌민 통신원으로서 이 문제를 한국 사회에 최초로 알린 구수정 박사는 9천 명 이상 규모의 사망자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실제로 퐁니.퐁넛 마을에서만 70여 명의 사망자가 나왔는데, 2023년 승소한 국가배상 소송이 바로 이 학살을 다루고 있다.
  게릴라전이 주를 이뤘던 베트남전쟁의 특성상 군인과 민간인을 구별하기 어려웠다는 이유로 민간인 학살이 불가피했다는 인식도 있다. 실제로 많은 참전군인이 게릴라 공격으로 피해를 봤다. 그러나 민간인 학살은 교전 중에 발생하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을 한곳에 모아 고의로 사살한 집단학살이었다. 베트남전쟁의 작전 구역은 ‘프리파이어 존’과 ‘발포 제한 구역’으로 나뉘었다. 발포 제한 구역은 민간인 보호를 위해 사격이 엄격히 통제되는 곳이었다. 퐁니.퐁넛 마을은 바로 이 발포 제한 구역에 속했으며, 이곳에서 자행된 학살은 명백한 전쟁범죄로 평가된다.

소송까지 이어진 긴 여정

  2015년 퐁니.퐁넛 마을의 피해 생존자 2명이 최초로 한국을 방문해 진상조사와 한국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이어 2019년 4월, 원고 응우옌 티탄 외 102명은 진상조사, 사실인정, 공식 사과, 피해 보상 조치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5개월을 기다린 끝에 돌아온 답은 거절이었다.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거듭해도 정부는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그들은 제도를 통해 진실을 찾기로 결심했다.
  소송에 앞서 2018년 4월 21일부터 22일까지 “베트남전쟁 시기 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 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이하 시민평화법정)이란 민간 모의법정이 열렸다. 권현우 사무처장은 “진상 규명에 대한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우리도 소송이라는 제도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보자고 결정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어느 정도의 자료를 모았는지 확인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소송 전 준비 과정으로 시민평화법정을 열었어요. 법정이지만 대중의 언어로 진행해 일반 시민도 쉽게 볼 수 있게 계획했어요. 그리고 실제 피해자가 오셔서 증언하며 우리 시민들과 함께 호흡했고 소송으로 나아갈 동력을 만들었습니다”라고 시민평화법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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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평화법정 진행모습.                                                                                                   (사진출처: 한베평화재단)

  소송을 위한 증거 수집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실제 소송 변호를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 베트남전쟁 TF팀 김남주 변호사는 “베트남이 전쟁 이후 공산화돼 국교가 단절된 탓도 있었겠지만, 민간인 학살 대부분이 은폐되거나, 생존자를 모두 죽여 증거를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자행됐기 때문에 입증이 어려웠다”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증거는 차곡차곡 쌓였다. 당시 8살로 총을 맞고도 살아난 원고 응우옌티탄과 12살이었던 그의 오빠는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사건 후 30분 또는 1시간 이내에 현장에 도착한 미군이 촬영한 희생자들의 사진과 미국 해병대 법무참모가 작성한 목격자들의 진술서도 있었다. 이들 미군 자료는 2000년대 미국 문서보관소에서 우리나라 학자에 의해 발굴됐다. 이 밖에도 학살 부대 중대장의 증언과 해당 부대 소대장들을 인터뷰한 취재기자의 증언도 나왔다.
  이렇게 오랜 준비 끝에 2020년 4월, 학살 피해 생존자 응우옌 티탄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2023년 2월 7일, 서울중앙지법은 사상 최초로 대한민국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2025년 1월 2심(항소심)에서도 정부의 항소가 기각되며 원고 승소가 유지됐다. 그러나 정부는 같은 해 2월 대법원에 상고했고, 아직 최종 확정판결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이 판결의 의의에 대해 김남주 변호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베트남전쟁 당시 국군에 의해 베트남 민간인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 국가가 스스로 배상 책임을 인정한 세계 최초의 사례라고 알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이런 판결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고, 전쟁범죄가 형사 처벌되는 경우는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전범 재판처럼 승전국의 힘에 의한 경우만 가능했습니다. 이번 판결은 국가가 자국의 전쟁범죄를 스스로 인정한 드문 사례입니다. 이 판결은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진행 중인 전쟁에 지켜야 할 규범이 있음을 확인해 줍니다.”

여전히 풀어야 할 실타래

  현재 진행 중인 국가배상 소송은 퐁니.퐁넛 마을 사건만 다루고 있다. 민변 베트남전쟁 TF팀은 또 다른 민간인 학살 사건인 하미 마을 사건에 대한 조사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에 신청했지만 “외국에서 벌어진 우리나라 공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는 조사 대상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남주 변호사는 “진화위의 각하 결정을 취소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지만 1.2심 모두 ‘법에 명시된 진화위의 목적이 민족의 정통성 확립과 국민 통합에 기여하는 것’임을 근거로 기각했습니다. 현재 대법원에서 3심을 진행 중인데 좋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지난 2월 출범한 3기 진화위에 하미 마을 사건 조사를 다시 신청할 계획이라며 “지난 3월 하미 마을을 방문해 유족과 생존자들의 소송 의사를 확인했고, 2기에 신청할 때 참여하지 않았던 분들도 참여 의사를 밝혔다”라고 덧붙였다.
  피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공식적인 인정과 사과다. 외교적 수사뿐만 아니라 군의 작전 규범과 국제인도법 준수 여부를 점검하고 개선하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과가 필요하다. 김남주 변호사는 “배상 판결이 확정되면 정부 차원에서 민간인 학살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면 더 좋겠지요”라고 말했다.
  권현우 사무처장은 “베트남전쟁 당시 우리나라 국민 의식과 지금의 국민 의식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베트남전쟁의 민간인 학살은 우리가 저질렀고,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과거사입니다. 이것은 학살에 참여했던 군인들의 책임을 따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정말 정의롭고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인지, 그 기준이 우리 국민에게만 한정되는 건 아닌지 스스로 물음을 던지게 하는 문제입니다. 지금 가장 큰 걱정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겁니다.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이미 고령이고, 그분들의 증언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라며 관심을 부탁했다.
  김남주 변호사는 끝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저희는 판결문을 영어, 일본어, 베트남어로 번역했습니다. 전쟁에서의 민간인 학살은 60년이 지나도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을 많은 나라 사람이 알았으면 해요. 또한 전쟁 비용으로 흔히 무기만 생각하는데 민간인 피해 배상도 비용에 포함된다는 인식이 퍼지면 전쟁을 함부로 시작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을 겁니다. 전쟁에도 규범이 있어요. 포성이 가라앉으면 그 규범이 아주 명확하게 보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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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베트남전쟁을 기억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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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은 우리나라의 전쟁 역사를 기록하는 종합 군사 박물관이다. 전쟁기념관 3층 해외파병실에 있는 베트남전쟁 파병 전시실에는 국군의 자랑스러운 업적으로 가득하다. 입구에 들어서면 “그대들 여기 있었기에 오늘의 조국이 있다”라는 문구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베트남 전쟁”이라는 제목의 6분 50초짜리 영상도 상영하는데, 민간인 학살 피해자 이야기는 단 한 줄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도움이 뿌리내린 곳, 평화와 희망이 깃들다”라는 문구로 파병의 의미를 강조하며 자부심을 심어주려 한다.
  특히 인터뷰와 모순된 “한국군은 백 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한다”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우리 역사에도 부끄러운 지점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를 식민 지배한 일본의 역사 왜곡에 분노하는 우리도 그들처럼 행동하고 있다. 과거의 잘못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가 어떻게 평화를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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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은 우리가 저지른 잘못을 직시하고 전쟁, 인권, 책임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이번 판결이 한국 사회를 넘어 전쟁을 바라보는 국제적 기준과 인식에 변화를 불러오길 기대한다.


김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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