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꼴릿 더 기브 미, 쪼꼴릿 더 기브 미!” 지프차를 타고 지나가던 미군들에게 춤을 추며 초콜릿을 얻어내던 어린 달구. 한국에서 지난해 말 개봉해, 1,4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인기를 끌었던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이다. 우리네 어머니와 아버지가 검정 묻은 얼굴로 아등바등 살아가던 그 풍경 속에서, 말끔하고 새하얀 피부의 이방 군인들의 등장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았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국가가 되었던 한국에, 서방 국가들로부터 많은 대외원조를 받아 회복의 토대를 마련했던 역사를 조금은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영화가 그려낸 50~60년 전의 가난한 한국은,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영화 속에서처럼, 이웃 국가들로부터 도움을 주고받는 일을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ODA)라 한다. 다시 말해, ODA는 정부를 비롯한 공공기관이 개발도상국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사회복지를 향상시키도록 돕는 일, 즉 ‘빈곤퇴치’를 취지로 하는 국제적 행위이다. 개발도상국의 정부라든지 지역, 또는 원조를 담당하는 국제기구에 자금 또는 물품을 증여하거나 빌려주고, 개발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거나, 평화 유지를 위해 군사력을 지원하기도 한다. 식량이나 구호물자를 보내주거나, 재난이 발생한 경우에는 지원인력과 약품 등을 지원하는 것도 ODA의 일환이다.
선진국들이 주도하는 ODA
요즘에는 국가 간의 직접적인 원조도 활발하지만 ODA를 담당하는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이 증가하는 추세다. 한 국가의 가치관이 원조정책에 반영되어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우려 때문이다. ODA관련 대표적 국제기구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 DAC)가 있다. DAC는 원조를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증가시키고, 그 결과를 효율적이게 하기 위해 회원국의 원조정책과 주요 프로그램에 대한 조언, 국가들 사이의 원조정책 및 그 기준에 대한 의견 조정을 한다.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World Bank)과 국제개발협회(International Development Association, IDA), 유엔개발계획(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 UNDP) 등도 주요한 ODA관련 국제기구다. 이 외에도 각 대륙, 국가마다 정부차원 및 비정부 차원의 ODA관련 기구들이 활동하고 있다.
또한 ODA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개발목표를 공유하고 공동의 노력을 모색하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다. 2005년 3월 90여 개 국가, 다자기구, 개발은행 및 NGO대표들이 프랑스 파리에 모여 원조효과성 향상에 체계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구체적 목표와 지표를 마련한 파리선언(Paris Declaration)이 그 대표적 사례다.
2013년 OECD 개발위원회(DAC) 회원국의 ODA 규모 출처: OECD 발표자료
한편, OECD 통계에 따르면 2013년 ODA 총액 기준 국가별 지원순위는 미국, 영국, 독일, 일본, 프랑스 순이다. ODA 규모에 있어 부동의 1위인 미국은 증여액면에서 2위 일본의 세 배에 가깝다. 50~60년 전부터 ODA 1위를 꾸준히 유지해오고 있는 미국은 지금도 ODA와 같은 소프트 파워(강제력보다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통해 자발적 동의와 행동을 하도록 하는 능력) 수단들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영국은 과거 식민통치를 했던 국가들로 구성된 영연방에 대해 지속적인 원조정책을 확립하는 등 일관성 있는 ODA 정책을 발전시켰다. 무엇보다 영국은 ODA정책을 전담하는 독립된 정부부서가 있다는 점에서, ODA정책의 부처간 분절화로 난항을 겪고 있는 국가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독일은 2차대전의 전범국이자 패전국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또한 국제원조프로그램을 통해 경제발전에 성공한 국가로서 국제원조 효과에 대한 모범 사례이기도 하다. 때문에 독일 국민들은 ODA에 대해 긍정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었고, 독일정부는 일찍부터 ODA 전담 부처를 독립적으로 운영하며 지속적으로 그 권한을 강화해왔다.
일본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위축되었던 국력을 회복하고 국제정치 무대에서 다시금 목소리를 내기 위한 수단으로 ODA를 채택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ODA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국가다. 2013년 기준으로 일본은 국민소득(GNI)의 0.23%를 ODA로 지출했다.
한편,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아프리카 대륙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유지하고 있던 프랑스는 샤를 드골이 집권한 1958년에서야 식민지의 독립을 허용했고, 이들 국가에 대한 ODA와 경제협력을 통해 관계를 유지하는 정책을 펴왔다.
뒤늦게 출발해 ODA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는 중국은 특히 아프리카를 ODA 중점지역으로 삼고 있다. 중국은 자국의 원조가 부가조건을 달지 않는 원조라고 주장하며, 자국의 ODA가 다른 국가들과는 다르다는 차별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2011년 중국의 국무원보도판공실이 발표한 <중국대외원조백서>는 1990년대부터 시작한 중국의 ODA를 바탕으로, 아프리카에 대한 중국의 투자가 이른바 아프리카경제발전의 동력이 되고 있다고 주장 한다.
ODA, 무엇이 문제인가?
어찌 보면 ODA는 그 국가 국민들이 낸 세금을 그들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곳에 사용하는 불필요한 정책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것은 전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이 정책을 반세기가 넘도록 이어가고, 그것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가 판치는 이 시대에 이러한 국가들의 행태는 ODA를 추진하는 동기에 대해 궁금증을 갖게 한다. 물론 ODA의 궁극적 목적은 대상국의 경제 및 사회발전에 있으나, 공여국들은 자국의 상황에 맞게 특정한 동기를 갖기도 한다.
사실 ODA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적인 의견도 만만치 않다. ODA는 원조 공여국에게는 수단으로, 수혜국에게는 획득하기 위한 목표로서 인식되기 때문에 양측의 이해관계가 얽히기 쉽다. 즉, ODA는 정치.외교적 동기를 갖게 되고, 결과적으로 국가 간에 공여국의 이데올로기, 대외정책, 안보 라인 등의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과거 미국과 소련이 경쟁하던 냉전체제에서 각자의 이데올로기 확산을 위해 경쟁적으로 ODA를 활용한 것과 국가의 위상을 높일 목적으로 하는 ODA 등이 그 예다.
ODA를 통해 공여국이 수혜국에 정치적 간섭을 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 원조기관인 국제개발처(USAID)는 2009~12년에 쿠바에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보급해주면서 쿠바의 젊은 층을 중심으로 반정부세력을 조직화하려 시도하기도 했다. 또한 공여국들은 ODA를 통해 수혜국에 경제발전 기반을 마련해줌으로써 미래에 진출할 시장 확보라는 경제적 동기도 갖고 있다. 심지어 ODA를 통해 신식민지 정책을 추진하는 사례도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프랑스는 과거 식민지였던 국가들의 독립을 인정해주면서 이들 국가에 대한 ODA와 경제협력을 통해 관계를 유지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프랑스는 아프리카 국가들과 소위 ‘식민지 협약’을 통해 강제적인 연대를 맺어 비판을 받고 있다. ‘식민지 협약’은 프랑스가 만든 아프리카 단일 통화 세파(CFA)프랑의 사용, 외환보유고의 강제 예치, 천연자원 독점권, 유사시 프랑스 군대의 주둔권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CFA는 ‘아프리카의 프랑스 공동체(Communauté française d'Afrique)’의 약자로 ‘공동체’라는 명목 하에 아프리카 국가들을 자신의 지배 아래 두려는 프랑스의 의도가 다분하다. CFA로 묶여있는 국가들은 독자적인 재정정책, 통화정책을 사용할 수 없다. 수출, 투자 등 경제정책들을 수립할 때도 프랑스의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프랑스가 아프리카 국가들에 제공하는 원조 재원 대부분이 프랑스 자체 돈이 아니라 식민지 시절부터 프랑스 재무부에 강제 예치되어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돈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프랑스는 여전히 평등과 박애를 추구하는 아프리카 원조의 대표주자의 이미지를 잘 유지하고 있다.
2012년 12월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오랫동안 ODA를 시행한 유럽 국가들의 NGO를 통한 지원 비율을 발표했는데 네덜란드 20%, 독일 10%에 불과했고, 심지어 스페인과 영국은 5%, 프랑스는 1% 남짓에 지나지 않았다. 정부기관에 비해 비교적 원조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NGO를 통한 원조가 빈약하다는 이 수치자료는 인도주의적 차원의 원조 역시 미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프랑스 파리1대학 교수인 필리프 리프만(Philippe Ryfman)은 ODA관련 기구들이 원조 전문성을 기르는 데는 관심이 없고, ‘자금의 흐름’과 ‘미디어의 관심’을 쫓는 데만 관심이 있다고 지적했다. ODA 사업을 담당하는 NGO들마저도 평가에 급급해 개별적이고 단기적인 성과를 올리기 위한 사업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비록 사업 수는 증가하더라도 질이 낮아지고, ODA의 근본 취지인 인도주의에서 벗어나 지역 주민들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서구사회의 원조가 자신들의 정체성까지도 다시 옭아매는 정책’일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는 서구의 일방적이고 우월적인 접근 방식에 대한 지적이다. 서방 국가들이 ‘자신들은 우수한 문명에 먼저 도달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가진 높은 수준의 문명을 전달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의식을 갖고 ODA에 접근하기 때문이다. 선진국, 개발도상국, 최빈국 할 것 없이 모든 국가는 저마다의 고유한 ‘문화정체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ODA의 상당수는 이것을 서구식으로 일반화, 획일화하고 있다.
ODA, 우리의 관심이 희망
동기, 방식, 효과성 등을 둘러싼 수많은 논란과 비판의 중심에 ODA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도 도움을 받았던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한국전쟁 직후 폐허가 되어 절대빈곤의 국가로서 고통받던 땅이었다. 1957~62년에 미국은 인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양의 ODA를 한국에 지원했고, 지금의 한국은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원조를 주는 국가로 성장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저마다 전쟁과 빈곤, 저개발과 가난 등 아픈 기억들을 갖고 있다. 그 기억을 통해 본다면 국제사회가 나아가야 할 미래가 어디에 있는지 명확하다. 인간은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미래를 만들어나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앞서 경험한 국가들이 자신들의 기억을 되짚으며, 현재 고통 받고 있는 국가들에 힘을 보태주는 세상은 그저 유토피아적 바람만은 아닐 것이다.
ODA와 관련해 국가마다 얽혀있는 문제점들을 들춰보면, 사실 국제관계에서 ‘순수’한 의미의 원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보다 차원을 좁혀 개인의 인식 관점에서 생각해보아도, 점차 시대가 변해 후대들에게 있어 동정, 연민 따위의 원조의 근간이 되는 감정들은 무감각하며 더 이상 가치 있는 이슈가 아니기에, 원조라는 이슈 역시 우리들의 일상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는 가장 넓은 눈을 가질 수 있는 시절을 살고 있다. 우리로 하여금 세상이 움직여지는 때가 이르기까지, ‘먹고 사는 문제’에 갇혀 우리의 시야가 매몰되기 전에, 삶이 점점 건조해져 ‘남과의 삶’, ‘나누는 삶’을 외면하기 전에, 우리는 가장 넓은 눈을 뜨고 있었으면 한다. 그렇게 된다면 원조에 대한 관심을 권고하여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비단 부질없는 바람만은 아닐 것이다.
안드레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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