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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의 죽음 뒤 외면된 짐바브웨 국민들
제 897 호    발행일 : 2015.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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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 공화국은 아프리카 대륙 동남부에 위치해 있고 한국과 약 12,004㎞ 떨어진 ‘머나먼’ 나라다. 하지만 이제 한국인까지도 한 때 짐바브웨의 국민사자였던 세실을 알게 됐다. 13살의 나이로 최전성기(보통 4년에서 7년) 기간을 거치고도 6년을 더 지배한 세실이 한 미국인에 의해 잔인하게 도륙당한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일파만파 퍼졌기 때문이다. 전 세계는 세실의 죽음에 공분했지만 현지인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 이유는 아프리카 짐바브웨 정부의 부패 때문이다.

황게 국립공원의 ‘국민사자’ 세실의 비극

  황게 국립공원(Hwange National Park)은 짐바브웨의 남서쪽, 불라와요(Bulawayo)와 빅토리아 폭포(Victo -ria Falls) 사이 주도로에 있는 국립공원이다. 하마, 코끼리, 기린, 사자 등 다양한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모래사막과 삼림지대, 초원이 넓게 펄쳐져 있다. 이 곳에서 세실은 6마리 암사자와 24마리 새끼를 거느린 당당한 우두머리였다. 검은 갈기가 특징이고 사자로서는 드물게 인간과의 교감을 좋아해 국립 공원 내의 슈퍼스타였다. 또한 13살 수사자 세실은 영국 옥스퍼드대 야생보전연구팀(WILDCRU)이 위치추척 장치를 달아 생태를 관찰할 정도로 중요한 존재이기도 했다.
  우두머리에서 가장 힘이 센 ‘알파수컷’이 되기까지의 과정도 험난했다. 세실은 반대편 무리의 공격으로 인해 국립공원의 동남쪽 변두리인 링크와샤(Linkwasa)로 밀려났다. 이후 세실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사자 ‘제리코’와 파트너가 되어 힘을 키운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무리를 완성한 세실은 황게 국립공원의 우두머리가 됐다.
  하지만 세실은 미국인 치과의사 월터 파머(Walter Palmer)에게 잔인하게 참수당한 채 발견됐다. 지난 7월 1일 총과 화살에 맞은 뒤 목이 잘리고 가죽이 벗겨진 채로 공원 밖에서 발견된 것이다. 사냥 과정도 잔인했다. 먼저 화살로 세실을 맞춘 다음, 고통 속에 도망치는 세실을 40시간 동안 추적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총을 쏴 사살했다. 파머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은 인터넷을 통해 일파만파 퍼졌고 그것을 본 사람들은 그의 집과 병원에 찾아가 시위를 할 정도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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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이 죽을 수밖에 없던 이유

  미국의 AP(Associated Press)통신에 따르면, 파머는 “나는 법적으로 잘못한 것이 없고 사냥이 끝날 때까지 죽인 사자가 현지 명물인지 몰랐다”고 주장했다.
  아프리카 대륙 내 짐바브웨, 남아프리카공화국, 나마비아, 탄자니아 등에서 사냥은 애당초 불법이 아니다. 국립공원 등 보호구역 내에서의 사냥은 법적으로 규제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효성에 문제가 있다. 동물의 사체를 나무에 걸어놓거나 내장을 차에 달고 사냥감을 국립공원 밖으로 유인하는 방법을 사용하면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허점이 많은 만큼 사냥이 짐바브웨의 큰 수입원이 될 것 같지만 IFAW(국제동물보호기금) 자료에 의하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짐바브웨에서 돈을 받고 허락하는 ‘트로피 사냥(사냥한 야생동물을 전시하거나 기념품으로 삼기 위해 오락처럼 즐기는 사냥)’은 전체 관광 수입의 약 3.2%에 불과하다. 2012년 짐바브웨의 ‘트로피 사냥’ 수입은 2,000만 달러(약 236억 원)에 그쳤다. 또한 2012년 주요 아프리카 국가들의 ‘트로피 사냥’ 수입의 합계는 2억 3,475만 달러(약 2,817억 원)였다.
  하지만 불법적인 밀렵 시장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IFAW에 따르면 전 세계 밀렵 시장의 규모는 연 190억 달러(약 22조 8,000억 원)에 이르며 대부분의 밀렵이 아프리카에서 이뤄지고 있다. 아프리카 코끼리는 상아 때문에 매 15분마다 한 마리씩 희생당해 그 개체수가 2006년 55만 마리에서 2013년 47만 마리로 감소했다. 이는 아프리카 정부의 부패 때문이다. 부패한 관료들이 돈을 받고 밀렵을 눈감아 주기 때문이다. 때문에 밀렵은 아프리카 내에서 손쉽게 떼돈을 벌 수 있는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아프리카인들은 야생동물 사냥 가이드나 불법 브로커를 직업으로 삼고 있다.
  밀렵에 대한 규제의 미흡함에 대해 세네갈에서 온 디안카 가다페(국제경영학과 대학원.14) 학생은 “나라마다 규제 정도가 다르긴 하지만 짐바브웨는 처벌을 되도록 봐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냥 비즈니스가 짐바브웨 내에서 성황이다 보니 벌금을 낮게 매겨서 형식상 처벌 하는 것이다. 세네갈은 벌금이 1만 원에서 2만 원 정도며 현지인들에게는 엄청 큰돈이다. 하지만 짐바브웨는 1975년에 동물 보호법이 제정된 이후 한 번도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벌금이 낮은 편”이라고 밝혔다.
  세실이 죽을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미국인들이 잘못된 과시 문화인 ‘트로피 사냥’ 때문이다. 미국에서 사냥을 즐기는 사냥꾼들은 곰이나 새 같은 야생동물을 사냥해 목을 자르거나 가죽을 벗겨 박제해 놓는다. 또 미국은 사자의 신체부위를 기념품으로 주고받기도 한다. IFAW의 보고서에 따르면 사자 신체부위의 최대 수입국은 미국으로 1999년에서 2008년까지 사자 신체부위 거래의 64%가 미국인들에 의해 이뤄졌다. 야생동물이 과시용으로 쓰이는 것에 디안카 가다페는 사냥을 오락처럼 즐기는 미국인들 때문에 자연 생태계가 혼란에 빠졌다고 전했다.
  그는 “동물도 감정이 있다”며 “자신들의 벽에 진열하기 위해 사냥하는 것은 동물의 감정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행위 같다. 물론 아프리카인들도 동물을 사냥한다. 하지만 그들이 사냥을 하는 것은 한국인들이 고기를 먹는 것처럼,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자연 생태계에 어긋나는 행위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의견을 밝혔다.


전 세계인들과 현지인들의 엇갈린 반응

  전 세계는 세실을 추모하는 애도의 물결로 넘쳤다. 지난 7월 31일 미국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 4명은 ‘트로피 사냥’을 금지하는 ‘세실법’을 발표했고, 그 외 국제기구나 동물보호단체도 야생동물 보호에 발 벗고 나섰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짐바브웨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는 것이 디안카 가다페의 견해다.
  “짐바브웨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그들은 ‘먹고 살기’에 바쁘기 때문에 세실의 죽음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왜 슬퍼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현지 언론은 꾸준히 짐바브웨 경제 상황의 어려움에 대해 소개하고 있지만 전 세계에 외면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짐바브웨는 최근 몇 년간 경제 붕괴로 인해 수많은 회사가 도산했다. 또 식수 부족, 전기에너지 부족, 일자리 부족 등 수많은 경제적 어려움이 산재해 있다. 짐바브웨 국민들은 생필품을 사려면 자국 통화로 가득 찬 비닐 봉지 몇 개를 들고 가야만 간신히 살 수 있다. 일부 국민들은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지폐를 기념품으로 팔고 있는 실정이다. 이뿐만 아니라 짐바브웨의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Robert Mugabe) 대통령의 장기 집권은 점점 더 짐바브웨를 회생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때문에 짐바브웨 국민들은 세실의 죽음에 대한 전 세계의 이목 집중이 달갑지 않다.
  이에 디안카 가다페는 “짐바브웨 국민들은 자신들이 사자보다 못한 존재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분명 짐바브웨 내에 국제기구나 다른 나라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다. 하지만 전 세계는 야생동물 보호에만 돈을 투자하고 있다. 그들이 냉소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이해가 간다”고 밝혔다.


겉치레보다 실속을 따져야 할 때

  지난 8월 30일 UN은 독일, 가봉 등 70여 개국이 공동 발의한 ‘야생 동.식물의 불법 밀거래 차단 결의안’을 193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결의안의 주요 내용은 야생 동식물의 불법 밀거래를 사전 예방하고 범죄조직의 밀매를 ‘중대범죄’로 규정하는 것이었다. 또한 UN은 회원국들의 야생동물 보호에 관한 법을 개정할 것을 요구했다.
  전 세계가 야생동물 보호에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에 대해 디안카 가다페는 정작 우선시되야 할 부분은 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현지인들의 목소리는 빠진 것 같다. 자연과 가까이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야생동물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관련법 개정이 이뤄지면 그것은 ‘허울’뿐인 규제일 뿐이다”


  미국 AP 통신에 따르면 세실이 도륙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9월 8일 미국인 치과의사 윌터 파머는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자신의 일터로 돌아갔다. 이에 여론뿐만 아니라 동물 보호 권리론자들은 다시 공분했고, 세실을 기리는 촛불을 밝히며 병원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했다. 하지만 짐바브웨 정부는 파머에 대한 처벌이나 자국으로 소환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전혀 없다. 또한 짐바브웨 국민들은 가난 때문에 세실의 죽음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모든 사람들이 세실의 죽음에 진정한 ‘작별’을 할 수 있는 날은 아직 먼 미래인 것 같다.

신지선 기자  wltjs7475@cbnu.ac.kr
김윤주 기자  yellowtree@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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