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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09.07 월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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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가경 & 최지은
라이브로 쓰인 9일의 역사, 한국의 필리버스터
제 904 호    발행일 : 2016.03.21 

테러방지법에 대해 국민의 기본권과 국가의 안보가 대립하던 가운데 지난달 23일, 테러방지법안이 직권상정되자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막기 위해 당론으로 필리버스터를 시작했다. 지난달 23일부터 지난 2일까지 총 9일 동안 192시간 26분.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국회의원 38명이 참여했다. 이는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세계에서 가장 긴 필리버스터’라는 기록을 남기고 끝을 맺었다. 한국정치사에 새로운 한 획을 그은 필리버스터, 그 기록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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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버스터는 의회에서 수적 우세를 가진 다수당이 법안이나 정책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키려 할 때 소수당 의원들이 장시간 발언을 통해 의사진행을 합법적으로 방해하는 것을 말한다. 즉,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를 막기 위해 장시간 발언으로 국회 의사진행을 지연시키는 무제한 토론이다. 때문에 다수의 횡포를 막고 소수의 의견을 보호하며 존중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는 반면, 의회정치의 기본 원칙인 ‘다수결’을 방해한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필리버스터(filibuster)라는 말은 해적 또는 약탈자를 의미하는 스페인어에서 유래했으며, 1854년 캔자스와 네브래스카 주를 신설하려는 미국 상원의 법안통과를 막기 위해 반대하는 의원들이 의사진행 을 방해하면서 필리버스터가 정치적 의미로 처음 사용됐다. 현재는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73년 국회의원의 발언시간을 최대 45분으로 제한하는 국회법의 시행으로 사실상 폐기됐다가 2012년 국회선진화법이라 불리는 국회법 개정으로 필리버스터가 부활했다.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찬성하면 최장 100일까지 무제한 토론을 할 수 있으며 발언은 의원 한 명당 1회씩 주어진다. 단 한국의 경우 미국과 달리 의제와 관련이 없는 발언은 금지된다. 본인이 발언을 멈추거나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중단 결의가 있으면 토론은 중단된다. 무제한 토론이 끝나면 해당 안건은 즉시 표결한다. 최초의 필리버스터는 지난 1964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 5시간 19분의 연설이다. 당시 여당이던 민주공화당이 김준연 자유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 동의안을 상정하자 이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이어 1969년에는 박한상 신민당 의원이 법제사법위원회에서 3선 개헌안 저지를 위해 10시간 15분 동안 무제한 토론을 진행지만 개헌은 막지 못했다. 이후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3년 의원의 발언 시간을 제한하는 조항이 만들어지면서 필리버스터가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2012년 국회법 개정으로 이번 국회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을 저지하기 위한 의사방해연설이 진행됐다.
  우리나라 최장 필리버스터는 1969년 8월 29일 박한상 신민당 의원이 3선 개헌을 막으려 한 10시간 15분의 발언이었다. 하지만 이 기록은 우리나라의 이번 필리버스터로 인해 깨졌다. 지난달 23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테러방지법안을 직권상정하자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막기 위해 당론으로 필리버스터를 하기로 결정했다. 테러방지법에 대해 여당은 찬성, 야당은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필리버스터에 대해 “토론의 장이 야당 강경파 의원들의 총선 선거운동에 악용되고 있다”고 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테러방지법의 인권침해 우려 조항을 막아내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국에서 47년 만에 부활한 필리버스터는 이종걸 원내대표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그는 원내 지도부 회의에서 “필리버스터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다고 한다. 이에 의원총회를 통해 필리버스터 순번을 정하고 관련 전략을 논의했다. 이어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으로 상임위원회에서 테러방지법안에 대해 쭉 논의해 왔던 초선 비례대표 더불어 민주당 김광진 의원이 이날 오후 7시 5분 첫 테이프를 끊었다. 이렇게 시작된 필리버스터는 지난달 23일부터 지난 2일까지 총 9일 동안 192시간 26분.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국회의원 38명 참여하며 ‘세계에서 가장 긴 필리버스터’라는 기록을 세우고 막을 내렸다.
  시민들은 열광했다. 필리버스터에서 의원들의 발언을 토대로 테러방지법에 대한 뉴스와 게시글이 쏟아졌다. 유명 TV 프로그램인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본뜬 ‘마이 국회 텔레비전’ 국회방송의 시청률은 평소의 10배가 넘었다. 또한 필리버스터를 인터넷으로 중계한 팩트 TV의 누적 시청자 수는 지난달 29일 기준 510만 명이었다. 필리버스터 실시간 요약 사이트도 만들어져 온 종일 생중계를 보지 않아도 내용을 알 수 있게 됐다. 또한 의원들의 발언 속기록 전문을 담은 <필리버스터>라는 제목의 책이 출판돼 1천 500만 부 이상 판매됐다. 이뿐만 아니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자발적인 시민 필리버스터도 진행됐다. 실제로 시민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조성주(서울.23) 씨는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의 권한만 강화하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며 “사람들의 노력이 성과를 낼 수 있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번 필리버스터는 이종걸 원내대표의 “이종걸과 한두 사람의 잘못으로 38명 의원이 보여준 열정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국민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을 한순간에 날려버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죄송하다. 죽을 죄를 지었다”는 말로 중단됐다. 필리버스터의 시작은 ‘야당 정치의 부활’을 알리는 듯했지만 “소수정당이라 힘이 없다”는 눈물 섞인 호소로 끝을 맺었다. 테러방지법안 통과 또한 막지 못했다. 필리버스터 효과는 4.13 총선이 끝나봐야 정확히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외국의 필리버스터는 어떨까? 국가마다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 필리버스터 사례가 있다. 실례로 미국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의제와 관계없는 내용을 말해도 상관없어 때로 성경을 읽거나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낭독하는 경우도 있었다. 16시간의 휴이 롱 루이지애자나 상원의원의 필리버스터에서 그는 자신이 준비한 원고로 부족하자 로크포르 치즈 샐러드 드레싱의 레시피와 굴튀김 요리법을 얘기했다. 이는 미국의 의회 역사에서 대표적인 필리버스터로 손꼽힌다. 또한 현재 미국 민주당 대통령 경선 후보인 버니 샌더스는 무소속 상원의원이던 2010년 12월 10일  당시 부시 행정부의 소위 ‘부자 감세’ 조치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에 나섰다. 그의 열정적인 연설은 8시간 37분 동안 이어졌고 그를 일약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케 했다. 이어 프랑스의 필리버스터는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대부분의 나라는 무제한 연설로 진행하지만, 프랑스는 엄청난 양의 수정안을 내는 이른바 ‘수정안 전투’로 진행한다. 수정안 전투란, 법안에 반대한 정당이 거의 무제한적인 수정법안을 제출하고, 표결 이전에 수정 법안에 대한 토론을 주장하는 것이다. 수정안 최고 기록은 지난 2006년 여름, 프랑스 사회당과 공산당이 에너지 산업 관련 법안에 반대하기 위해서 시작한 때이다. 총 37,537건의 수정법안이 제출됐다. 이를 쌓으면 에펠탑의 4배 높이가 될 것이라 했다.
  옆 나라 일본 같은 경우는 재미있는 사례의 필리버스터가 있다. 2015년 9월 18일 일본의 야당들은 아베신조정권의 집단 자위권 법안(안보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에 나섰다. 안보 법안을 반대하는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는 여론의 전폭적인 지지속에 이루어졌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배우 출신인 생활당의 야마모토 다로 의원이었다. 그는 아베 총리에 대한 문책 결의안 표결이 진행되는 참의원 본회의장에서 거북이 같이 매우 천천히 걷는 ‘우보 전술’로 투표함이 있는 단상까지 걸어갔다. 여당 의원들로부터 “빨리 투표하라”는 야유가 쏟아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느린 걸음을 유지했다. 결국 야마자키 마사아키 참의원 의장이 “투표 시간을 2분으로 제한하겠다. 시간이 지나면 투표함을 폐쇄하겠다”고 경고하자 야마모토의 발걸음을 아주 조금 빨리했다. 그는 투표까지 총 6분의 시간을 사용했다. 투표 직전 야마모토는 다른 의원들을 향해 몸을 돌린 후 손에 염주를 든 채 참배하는 시늉을 했다. 전날 참의원 특별위원회에서 이뤄진 아베 정권의 법안 강행 처리 후 일각에서 나온 ‘민주주의의 사망’, ‘자민당은 죽었다’는 등의 지적을 의식한 ‘퍼포먼스’로 볼 수 있다. 또 투표를 마친 야마모토는 단상 옆에 앉아 있는 아베 신조 총리를 향해 다시 참배하는 시늉을 했다. 아베 총리는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이날 기자들은 만난 야마모토는 자신은 “어떻게 해서든 안보 법안 처리를 늦출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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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가경 기자
gbdls5473@cbnu.ac.kr
최지은 기자
chlwldms5325@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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