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 최순실 1위, 정윤회 2위,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 지난 2014년 11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이었던 박관천 전 경정이 수사과정에서 한 말이다. 당시 허무맹랑한 거짓말로 치부됐던 이 말은 지난달 현실로 드러났고, 국민들은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전국 각지에서 진상규명과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집회와 시국선언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기자는 지난달 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있었던 촛불 집회 현장에서 참가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촛불로 타오른 국민들의 분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세상에 알려지자 민중총궐기투쟁본부(이하 투쟁본부)는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라고 적힌 포스터를 인터넷에 배포하며 지난달 29일 오후 6시 청계광장에서 시민 촛불 집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이날 기자는 오후 5시가 조금 못 돼 광화문역에 도착했다. 집회가 열리는 청계광장까지는 5분 정도 걸어야 했다. 청계광장에 도착하자 각 언론사에서 나온 기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이미 상당수의 시민들이 집회 참여를 위해 모여 있었다. 청계광장 주변에는 광장을 에워싸듯 경찰이 배치돼 있었고, 철도 노동자들의 총파업 투쟁이 진행되고 있었다. 제법 매서운 추위가 몸을 움츠리게 하는 날씨였지만 모여드는 시민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집회시작 시간인 오후 6시가 되기 전부터 이미 청계광장은 시민들로 가득차고 있었다.
오후 5시 40분쯤 철도 노동자들의 총파업 투쟁이 끝나고, 주최 측인 투쟁본부는 촛불 집회 준비에 들어갔다. 당초 예상 보다 참가인원이 현저히 늘어나 현장정리와 질서유지를 위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본격적인 집회가 시작됐다. 경찰 측은 집회 참가자를 3,000~4,000여 명으로 예상했으나, 이날 참가자 수는 주최 측 추산 3만여 명, 경찰 추산 1만 2,000여 명이었다.
집회가 시작된 후에도 참가자는 계속 늘어났다. 오후 7시쯤에는 청계광장 전체가 인파로 가득 차, 취재하는 기자들조차 자리를 내줘야 할 상황이었다. 청계광장에 있는 한 언론사의 전광판 뉴스에서 집회 참가자가 2만여 명이 넘는다는 보도가 나오자 참가자들이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집회는 시민들의 자유발언으로 이뤄졌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 그리고 다양한 직업을 가진 참가자들이 단상에 올라 자신의 생각을 말했고, 다른 집회 참가자들은 힘찬 함성과 박수로 그들을 응원했다. 이날 참가자 중에는 정의당 노회찬 의원,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 이재명 성남시장 등 정치인들도 있었다. 단상에 오른 노회찬 의원은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이 진실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라며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하지 않는 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해 참가자들의 커다란 호응을 받았다.
오후 7시 30분,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거리행진을 시작했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박근혜는 퇴진하라”, “최순실은 책임져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피켓을 들고 청와대와 마주한 광화문으로 향하였다. 곧 거리 행진은 신고 된 집회경로를 벗어나,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에서 경찰과 대치했다. 일부 참가자들은 “그대로 청와대로 가자”고 외치거나 경찰버스를 발로 차고, 경찰의 방패를 뺏기도 했다. 경찰 역시 최루액을 한 차례 쏘며 대응했고, “더 이상 전진하면 캡사이신을 사용하겠다”는 경고 방송을 해 자칫하면 거리행진이 폭력시위로 변질될 위기상황도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참가자들은 방패를 뺏은 사람에게 “돌려줘라”고 외쳤고, 폴리스 라인을 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구호만 외치는 평화시위를 선택했다.
오후 9시 40분, 집회 주최 측이 집회 종료를 선언했고, 참가자들은 해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젊은 층을 중심으로 1,000여 명은 집회 장소에 그대로 남아 “최순실 구속하라”, “박근혜는 퇴진하라”, “가자 청와대로”를 외쳤다. 그들은 자정이후까지 그 자리를 지키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분노했다.
대통령에게 절망한 민심
집회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실망을 넘어 절망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50대는 “박근혜 대통령의 실체가 이 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며 “우리 국민만 불쌍하다”고 격앙된 감정을 보였다. 이어 그는 “박근혜-최순실 뿐만 아니라 이를 다 알고도 눈 감고 있었던 새누리당에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말했다. 뉴스를 접하고 참을 수 없어 나왔다는 박정훈(서울특별시 성북구·33) 씨는 “누구보다 법을 준수해야 할 대통령이 위법임을 알면서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했다는 것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함께 동행 한 김학수(서울특별시 서대문구·34) 씨도 “무엇보다 화가 나는 것은 나라의 기밀을 허술하게 다뤘다는 점”이라며 “국가의 안위가 걱정이 된다”고 전했다. 아내와 함께 촛불을 들고 온 홍준호(서울특별시 관악구·38) 씨는 “무엇보다도 국민을 존중해야 할 대통령이 국민을 기만하고 거짓증언을 했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자질에 의심이 간다”고 밝혔다.
대통령에 대한 절망은 집회에 참여하지 않은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청계광장 입구에서 집회를 지켜보고 있던 곽도후(서울특별시 강북구·39) 씨는 “이전에도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대통령은 꼭두각시였고, 검증도 안된 한 여자가 국정을 농단했다는 사실에 너무 허탈하다”고 한숨지었다.
한편, 참가자 중에는 지금 사태의 해결책은 박근혜 대통령 하야뿐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다수 있었다. 김현석(서울시 도봉구·53) 씨는 “더 이상 대통령과 정부에 기대할 것이 없다”며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모두 총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속되는 대통령 퇴진 요구
이번 집회를 주최한 투쟁본부는 국민이 자발적으로 집회에 참여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냄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을 퇴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투쟁본부는 이후에도 집회를 계속 이어갈 방침이다. 지난 5일 오후 4시, 광화문에서는 ‘박근혜 퇴진 범국민 행동의 날’ 집회가 열렸고, 오는 12일 오후 4시에는 서울시청광장에서도 역대 최대인 100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위한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투쟁본부에 참여중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남정수 대변인은 “참여하고 싶어도 직장일이나 여러 일이 겹쳐 함께하지 못하는 국민들을 위해 계획된 날 이외에도 집회를 지속할 계획”이라며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학계, 정당 등의 의견을 수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응집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오는 12일 집회를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 퇴진에 동의하는 모든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학계, 정당 등을 총 망라하는 운동본부를 조직해 ‘범국민적 박근혜 퇴진 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김노을 기자 doce26@cbnu.ac.kr
유현상 기자 press@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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