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본 기사는 2017년 4월 사드포대가 배치된 이후에도 사드 배치 반대투쟁을 지속하고 있는 ‘사드배치철회투쟁위원회’의 시각에서 현재 성주의 모습을 조망했습니다.
지난해 8월 찾아갔던 성주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시내 곳곳에 빼곡히 붙은 사드 반대 현수막, 깊은 밤까지 어둠을 밝히던 1,000여 개의 촛불, 그리고 평화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 당시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외부인 개입설’은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었다. 그 후, 탄핵정국과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도 ‘사드’는 여전히 논란으로 남아 있었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지금, 성주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그래서 지난달 27일 성주를 다시 찾았다.
8월 21일 이후 그날의 진실
오전 10시 30분, 다시 찾아간 성주 군청 일대는 어딘가 모르게 조용했다. 지난해에 성주를 찾았을 때보다 침착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리 곳곳에 붙어있던 사드 반대 현수막은 모두 사라지고, 군청 앞 ‘사드 가고 평화 오라’는 현수막 하나만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촛불 문화제를 위한 무대와 천막들이 있던 성주군청 앞 주차장은 차들로 빼곡했고,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군청 앞으로 가보니 근처 잔디에 파란나비와 ‘평화는 성주로’라고 그려진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평화나비광장’이라 이름 붙은 이곳에는 여전히 사드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드배치철회투쟁위원회(이하 투쟁위) 이재동 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촛불문화제를 위해 설치된 무대 뒤의 천막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기자가 의자에 앉자 그는 “일단 참외 하나 먹고 할까요? 이거 제가 키운 유기농 재배 참외입니다”라며 머쓱하게 미소를 짓었다.
참외를 건네는 그에게선 지난해 7월 13일부터 300여 일 넘게 사드반대 집회를 이끈 투쟁가의 모습 대신 인정 많은 농부의 모습이 보였다. 함께 참외를 먹으며 기자는 “평소 일과는 어떠신가요?”라는 첫 질문을 건넸다.
“새벽 5시부터 아침 8시까지는 들일을 하고, 그 이후로는 주로 하우스에서 참외 일을 하고 있죠. 그리고 일하는 틈틈이 사드 투쟁 일을 하는데 솔직히 힘들어요. 아무래도 참외 수확 철이 코앞인데 농사일에 소홀해지는 부분도 있고요”
매일 밤늦게까지 촛불 문화제를 진행하고, 새벽녘에 일어나 농사에 나서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먹고 있던 참외가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의 노고가 담긴 참외를 다 먹은 후에야 기자는 준비해간 질문을 풀어놓을 수 있었다.
지난해 8월 21일 투쟁위는 사드 배치 반대에서 국방부에 제3부지 검토를 요청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꿨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그때 당시 상황은 어떤가요?
“처음에 성주 군수는 우리 성주만의 힘으로 사드 배치를 막아내자고 했어요. 그러다가 8월 17일쯤 국방부와 간담회를 갖은 뒤, 갑자기 제3부지 요청 쪽으로 태도를 바꿨어요. 그래서 저 사람이 왜 저러나 싶었죠. 당시 투쟁위는 성주군의회(이하 군의회) 대표, 우리 농민회와 군민 대표로 구성돼 있었는데, 이때부터 회의가 되지 않았어요. 군 의회 의원들도 다 제3부지 검토 쪽으로 의견을 바꿔 사사건건 부딪혔어요. 그러다가 8월 21일 투쟁위에서 제3부지 관련 회의를 했어요. 거기서 성산포대는 절대 안 되니 제3부지에 대해서 일단 말이나 해보자는 의견이 나왔죠. 그리고 갑자기 누군가 그걸 표결에 붙이자고 해 눈 깜짝할 새 투표가 진행됐고, 당시 군의회 쪽 위원들이 많았던 관계로 가결이 됐어요. 하지만 반대의견도 여전히 많았고 회의결과의 문구를 수정하자고 했는데, 당시 투쟁위 노광희 홍보단장이 협의도 없이 국방부에 제3부지 검토를 요청하겠다고 발표한 거죠. 그래서 저를 비롯해 일부 위원들이 제3부지 검토 요청은 협의가 안 된 것으로 원천무효라고 주장했어요”
그렇다면 다음날인 8월 22일에 성주 군수가 제3부지 검토를 국방부에 요청한 것 역시 합의가 되지 않을 사항인가요?
“당시 성주 군수 기자회견은 군의회와 군청 쪽 투쟁위원들만 참여했고, 기자회견 장소인 군청 대강당을 군 공무원들로 채워놓고는 성주 군민들의 뜻을 왜곡했죠. 아무래도 어딘가에서 압박을 받지 않았나 싶어요. 당시 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장에 있었는데 제3부지 검토 요청이라는 군수 말을 듣고 강력히 항의하다가 강당 밖으로 끌려나왔어요. 끌려나와 보니 공무원들이 입구를 막고 주민들을 들어가지 못하게 했어요. 정말 천불이 나서 소리도 지르고, 울기도 많이 했어요. 그때 심정은 말로 다 못하죠”
새로운 투쟁위를 이끌다
9월 10일 기존 투쟁위 해체되고, ‘촛불지킴단’과 새로운 ‘투쟁위’가 생겼는데 그 과정은 어땠나요.
“사실 기존 투쟁위는 얼마 못 갈 거 같았어요. 그래서 성주군 전교조, 여성농민회, 농민회 등이 모여서 어떻게 투쟁을 이어갈지 미리 논의하고 있었어요. 8월 22일 군수의 기자회견을 계기로 사실상 해체 수순에 들어갔고, 결국 9월 10일 일방적으로 투쟁위 해체를 선언하더군요. 하지만 우리는 이미 대비하고 있어요. 기금을 비롯해 현수막, 천, 물감 등 투쟁에 필요한 한 달 치 물품을 미리 준비해놓고 있었어요”
이재동 위원장은 투쟁위가 해체된 날 저녁에 바로 촛불지킴단 모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틀 만에 200여 명이 참여한 촛불지킴단 회의에서 노성화 씨가 단장으로 뽑혔고, 촛불 집회를 계속 이어갔다. 다음 날인 9월 13일에는 그를 위원장으로 하는 주민 중심의 새로운 투쟁위가 발족했다.
촛불, 하루도 쉴 수 없다
오늘(5월 27일)로 촛불 집회가 319일 째예요. 이렇게 이어지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안 지친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그래도 주변에서 아프면 안 된다고, 지치면 안 된다고, 보약도 챙겨주고 신경을 많이 써줘 힘이 돼요. 특히 성주에 있는 의사와 약사들이 신경을 많이 써주고 있어요”
투쟁위가 주민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관으로부터의 탄압도 있었다. 집회에 참여하는 자영업자는 세무조사를 하겠다는 협박이었다.
“집회에 참여하던 제 친구 중에도 겁을 먹고 안 나오는 이가 여럿이에요. 실제로 촛불집회에 나오는 사람은 200여 명밖에 안되지만 나오지 못해 미안해하는 사람이 많아요. 배신자라고 욕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지 말라고 해요. 다 마음은 같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촛불 집회를 그만둘 수 없어요. 지난 대선에서 2번 후보의 성주 득표율을 보고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고 욕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성주군 유권자 3만 명 중 20%가 바뀌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 생각해요. 성주 유권자 절반이 노인인데 보수 언론의 보도만 믿고, 사드 반대 투쟁이 불순세력의 책동이라고 생각하죠. 우리의 투쟁으로 이분들이 바뀔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아요. 답답한 상황이죠. 이런 상황에서 20%가 변화를 선택했다는 것은 놀라운 변화라고 생각해요”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 집회를 도와주는 사람 중에는 어린 자녀를 둔 부모가 많다. 이들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촛불을 든다.
“주말에는 어디 놀러 가지도 못하고 아이들 손잡고 촛불 집회 나오는 분들을 보면 참 안타깝죠. 한편으론 고맙지만, 저 아이들이 무슨 고생인가 싶어요. 하지만 고생하는 아이들 때문이라도 이 싸움을 포기할 수 없어요. 사드 문제는 성주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평화가 달린 문제에요. 그러니까 열심히 싸워야죠”
소성리, 4월 26일의 아픔을 돌아보다
인터뷰가 끝난 후 이재동 위원장의 차를 타고 2기의 사드 배치가 완료된 롯데스카이힐 골프장(이하 사드 부지) 인근 마을인 소성리로 향했다. 성주군청에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15분 정도 올라가면 나오는 작은 마을이었다. 이재동 위원장은 운전을 하며 계속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생각을 해봤는데 이 투쟁은 즐겁게 해야 한다고 봐요. 아무리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해도 재미없으면 많이 안 오죠. 다들 성주 촛불 문화제는 집회의 새로운 형식이라고 하더라고요. 외국 기자도 취재를 오고…. 저번에 광화문 집회에서도 저희가 하는 방식을 많이 참고했다고도 들었어요.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우리가 괜찮게 하는 것 같아요”
소성리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많은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지난해 성주군청에서 봤던 현수막의 물결이었다. 마치 소성리 마을회관까지 우리를 안내하는 것 같았다. 소성리 마을회관 인근 도로에는 간이 검문소가 설치돼 있었다. 이 검문소를 지나 차량으로 1~2분가량 올라가면 사드 부지 입구가 나온다. 이곳은 사드 장비 반입을 막는 최후의 보루였다. 이 검문소를 성주와 김천 주민을 비롯해 다른 지역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이 ‘평화지킴단’이란 이름으로 지키고 있었다. 지난 2월 28일 국방부와 롯데 측의 사드 부지 교환 계약이 있은 후, 평화지킴단은 검문소 없이 24시간 경계를 서며 사드 반입을 감시해왔다. 그러다 지난 4월 26일 경찰의 물리력을 앞세워 사드 2기가 반입되면서 현재의 검문소를 설치했다.
검문소를 지난 후 기자는 차에서 내려 사드 부지 쪽으로 이어진 길을 걸어갔다. 경찰이 2명씩 짝을 지어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돼 있었고, 사드 부지 입구에는 원불교 신자들이 73일 째 연좌시위를 하고 있었다. 연좌시위장 옆에는 경찰 10여 명이 길을 막고 있었다. 위로 더 올라가려 하자, 출입증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다며 경찰이 저지했다. 할 수 없이 검문소로 되돌아오니 평화지킴단원 한 분이 의자를 내주며 말을 건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언제부터 이 일을 하고 계셨나요?
“그냥 다들 시간 될 때마다 나와서 하죠. 자세한 날짜는 잘 모르겠네”라고 김천대책위원회 여창동 씨는 말했다.
사드가 기습배치 된 4월 26일 상황은 어땠나요?
“자정쯤 이었나, 계속 경계를 서다가 다들 씻고 잠시 쉬러 가는 시간이었어요. 집이 성주읍 쪽에 있는 사람이 많으니까 길을 내려가 다들 집으로 갔어요. 그런데 갑자기 지금 사드 반입될 기세라고, 비상이라고 메시지가 와서 차를 타고 막 달려왔지요. 와서 보니 소성리로 올라가는 입구를 경찰이 다섯 겹으로 막고 있더라고요. 아는 분한테 들으니 어르신들 못 나오게 대문까지 막았데요. 나중에 가까스로 마을 안으로 들어갔는데, 마을 안에 있던 사람들은 자기 차로 길을 막았지만 경찰이 창문을 깨고 다 견인해 갔어요. 그 뒤로는 무슨 공무집행방해니, 교통방해니 출석요구서가 막 날아오더라고요”라고 투쟁위 이혜경 여성위원장이 말했다.
출석 요구서를 받아본 분 있나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여기 그거 안 받아 본 사람이 있나”, “난 두 번”, “언제는 대구에서 오라카고, 경산에서 오라카고 몸을 두 개로 쪼개야 되나”
지난 4월 26일 밤 12시. 경찰 8,000여 명이 사드 기습배치 작전을 시작했다. 소성리 사드 부지와 연결되는 모든 입구와 마을회관 인근, 근처 민가의 입구까지 길을 에워싸고 모든 움직임을 통제했다. 사드 레이더, 발사대 등을 사드 부지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주민과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였다. 사드 장비가 마을회관 앞을 지날 때 사람들은 물병을 던지고 절규했다. 수 십일을 막았는데 그 짧은 시간에 눈앞에 사드가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경찰들 복장이 어땠는지 알아요? 팔꿈치, 무릎, 정강이에 두툼한 플라스틱 보호대를 차고, 최루탄과 캡사이신 액 매고, 허리춤엔 곤봉, 손에는 방패 들고 완전무장을 했는데…. 마을 주민들, 어르신들 상대로 그런 완전무장을 해?”라며 이혜경 여성위원장은 증언했다.
그때 다치신 분들은 없었나요?
“있었죠. 우리가 마을회관 아래 길에서 진입 못 하고 있을 때 봤는데 구급차가 차벽에 막혀 못 나오고 있었어요. 5시가 넘어서 구급차가 나왔는데, 안에 한 명은 기절해 누워있고, 다른 한 명은 얼굴이 누래 떠서…. 김천을 가야 하는데 군 구급차라 운전자가 군인이니 길을 모르더라고요. 사람이 다쳤는데 관내 119는 못 부르고…. 참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요”라며 이혜경 여성위원장이 답했다.
경찰은 동틀 무렵이 돼서야 철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드 2기는 배치를 완료했다. 이에 투쟁위는 오전 9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폭력진압과 사드 반입을 강력히 규탄했다.
매일 이렇게 하시는 게 힘드시진 않으세요?
“우리도 예전의 일상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어요. 솔직히 요즘,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인데 이런 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게 안타깝죠. 저녁에 집에 가서 따뜻한 된장국에 밥 먹는 게 소원이에요. 우리 몇 달째 바깥에서 밥 먹고 있어요. 어쩌다 집에서 밥상을 차리면 애들이랑 신랑이 ‘이게 얼마만이냐’고 해요” 투쟁위 신봉남 여성위원의 말이다.
그렇게 힘드신데 이 일을 계속 하시는 이유라면?
“평화를 원하는 거죠. 우리 자식들이 살아갈 세상에는 전쟁과 같은 위협이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힘들어도 참는 거죠. 사드가 갈 때까지 힘들지만 끝까지 해볼 생각을 해요” 투쟁위 김현선 여성위원의 말이다.
촛불로 밝힌 성주의 밤
오후 5시 30분, 인터뷰를 마치고 저녁 8시에 예정돼 있는 촛불 문화제 취재를 위해 평화나비광장으로 이동했다. 시작 시간이 가까워지자 부모님의 손을 잡고 나온 아이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촛불을 밝혔다. 성주로 귀농한지 2년째라는 여정희(성주군 성주읍.44세) 씨도 이날 집회에 참여했다.
“큰 힘은 없지만, 내 작은 힘이라도 지역의 아픔을 치유하는 데 보태겠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참여하고 있어요. 우리는 촛불 집회라고 안 하고 ‘촛불 문화제’라고 해요. 즐기는 분위기 속에서 집회가 이뤄지니까 서로 가족 같아요 . 투쟁이라고 하면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여긴 그렇지 않아요. 우리 아이들이 여기서 잘 살 수 있을까, 마음의 고향으로 느낄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집회에 참여하고 있어요”
밤 9시 30분, 소성리 마을회관에서는 별빛문화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차를 타야했던 기자는 돌아올 채비를 해야 했다. 그런 기자에게 이재동 위원장이 다가왔다. “차 타요. 역까지 데려다줄게요” 기자를 배웅하는 차 안에서 그는 자신이 걸어 온 삶을 들려줬다.
“난 사범대를 다녔었죠. 그 길을 계속 갔으면 선생이 되는 건데 이건 아니다 싶었지요. 난 고향을 선택했어요. 지금까지 농사지으며 농민 운동도 하고 있어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니 부모님 반대가 엄청 심하셨죠. 큰돈 들여 대학 보내놨는데 겨우 고향에서 농사짓게 다고하니 속에서 천불이 났던 거죠. 근데 그거 압니까. 제가 살아보니 삶은 자기가 하고 싶은걸,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하는 거 같아요. 나 같은 경우에는 그게 고향을 위해 일하는 거지. 그렇지만 너무 서두르지는 말아요. 천천히 여러 일을 경험해보고, 꿈을 결정해도 늦지 않아요. 눈앞에 닥친 현실만 보지 말고 이것저것 다 경험해 봐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오면 또 봅시다”
촤송희 기자
shypine@cbnu.ac.kr
손은택 기자
grace@cbnu.ac.kr
하주희 변호사와의 인터뷰
문재인 대통령은 사드 배치에 절차적 문제가 있는 만큼 국회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지속해서 밝혔다. 특히 절차적 문제에서 중점적으로 얘기되고 있는 것은 국회 동의, 주민 동의, 환경영향평가와 관련된 법적 문제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점을 알아보고 그 밖에 살펴볼 법적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미군문제연구위원장을 맡고 있는 하주희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국회동의>
Q. 국방부 입장은 사드배치는 이미 국회에서 동의된 한미상호방위조약 내 SOFA협정에 따라 이뤄져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조적으로 사드배치에 대한 국회동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드배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범위를 넘는 것이기 때문에 국회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반도 방어를 그 목적과 범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사드는 미국 MD의 일환으로 그 방어 범위가 한반도를 초월한다. 중국과 러시아가 사드 배치에 험한 말을 쏟아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미국 전문가들도 사드가 중국을 대응하기 위한 도구라고 ‘자백’하고 있다. 게다가 사드는 우리가 운영에 관여할 수 없기 때문에 주권의 제약에 관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심각한 재정적 부담을 주기 때문에 헌법에 따라서 반드시 국회에서의 충분한 논의와 사전 동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환경영향평가>
Q. 5월 24일 JTBC 보도에 따르면 환경부는 아직까지 환경영향평가서를 제출받지 못했다고 알고 있다. 또한 국방부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한다고 하고 있다. 아직 환경영향평가가 완료되지 않았는데 사드가 사실상 배치된 점, 국방부가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한다는 점에서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나?
현재 사드체계 배치 사업과 관련한 환경영향평가를 ‘소규모환경영향평가’로 대신 할 수 없다. 국방부는 마치 면적이 ‘소규모’이기 때문에 ‘소규모환경영향평가’로 대신해도 되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소규모환경영향평가’는 ‘환경보전이 필요한 지역이나 난개발이 우려되어 계획적 개발이 필요한 지역에서 개발 사업을 시행할 때에 입지의 타당성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조사ㅇ예측ㅇ평가해 환경보전방안을 마련하는 것’으로서 현재 사드체계 배치사업은 소규모환경영향평가의 요건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드체계 배치사업은 배치 초기, 계획단계부터 ‘환경보전계획과의 부합 여부 확인 및 대안의 설정·분석 등을 통하여 환경적 측면에서 해당 계획의 적정성 및 입지의 타당성 등을 검토’하기 위해 ‘전략환경영향평가’가 필요한 사업이다. ‘환경영향평가법’에 의하면 사업시행면적이 33만 제곱미터 이상의 사업에 ‘전략환경영향평가’를 하도록 돼있다. 국방부가 교환계약을 통해서 확보한 성주 골프장 부지가 148만 제곱미터 이상이다. 그리고 국방부는 지속적으로 성주에 배치될 사드는 괌의 것과 유사하다고 했고, 주한미군 사령관은 한국에 오는 사드포대는 괌보다 규모가 크다고 말했다. 괌 포대는 약 97만 제곱미터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국방부는 부지 148만 제곱미터를 확보하고, 미군에게는 ‘328,779제곱미터를 공여했다’고 밝혔다. 너무 눈에 보이는 꼼수다. 그리고 미군에게 공여를 328,779제곱미터를 공여하였다고 해 사드를 배치하는 사업면적이 그것에 한정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실제로 미군 기지를 포위해 우리 군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령 백번을 양보해서 33만 제곱미터 미만이라고 하더라도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상의 군사시설 설치사업이거나 군사기지 안에서 시행되는 면적 20만 제곱미터 이상의 사업에 해당함은 분명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환경영향평가를 ‘사전에’ 진행해야 한다. 결정적으로 국방부는 사드배치 부지를 성주로 발표하면서 “지역주민 안전을 보장하면서 건강과 환경에 영향이 없는 최적의 배치구조”라고 했는데 거짓말을 한 것이다. 사전에 아무런 평가를 한 것이 없다.
<주민동의>
Q. 지난해 12월 14일 국회에서 하신 기자회견에서 국방부에 사드 배치 법률적 절차에 대해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국방부는 국방시설 사업법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것이 문제라고 했는데, 국방시설 사업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려준다면.
이 부분은 단지 절차 문제가 아니라 국내법을 적용하느냐 마느냐 문제입니다. 국방부는 미군에 넘겼으니 국내법 적용이 안 된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국방·군사시설 사업에 관한 법률’에는 “대한민국에 주둔하는 외국군대의 부대시설과 그 구성원·군무원·가족의 거주를 위한 주택시설 등 군사 목적을 위하여 필요한 시설”을 국방군사시설이라고 보고 있고,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 역시 “이 법은 헌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대한민국에 주류(駐留)하는 외국군의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에 대하여도 적용 한다”라고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방부가 계속 국내법 적용 안 되는 것만 주장하고 있으니 법치주의나 기본권 보호의 측면에서 답답할 따름이다.
Q. 이외에 국방부가의 사드 배치 과정에서 위법적인 부분이 또 있을지?
현재 사드 문제의 해법과 관련해서 중요한 것은 헌법질서와 국민주권의 수호 문제다. 사드 배치로 인하여 국민의 평화적 생존권, 환경권, 건강권 등 기본권이 침해될 개연성이 있는데 이에 대한 어떤 검토도 없다는 것이다. 철저히 주권과 평화를 지키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한미동맹은 국민을 위한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국민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치과정에 헌법적 원칙이 지켜졌는지 철저하게 조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손은택&최송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