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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준수&주민준
드러난 간호사 생활의 민낯
제 928 호    발행일 : 2018.03.19 

“하 진짜 너무 두렵다”, “그만두고 싶다”, “근데 그만둬도 문제다”, “뫼비우스의 띠 같아”. 지난 2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아산병원의 故 박선욱 간호사(이하 박 간호사)가 그의 남자친구에게 보낸   메시지 내용 중 일부이다. 박 간호사의 죽음으로 간호사의 ‘태움’ 문제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 태움이란 간호사들 사이에서 오가는 용어로, 영혼이 재가 되도록 태운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즉, 선배 간호사가 신입 간호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괴롭힘을 통해 길들이는 규율 문화를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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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떠오른 태움 문제

  박 간호사는 입사한 지 6개월 된 신입 간호사로 간호사 생활의 압박감과 선배의 태움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박 간호사 사건은 그의 남자친구가 ‘SNS 간호학과, 간호사 대나무숲’에 호소문을 올리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는 여자친구인 박 간호사를 죽음으로 내몬 원인 중 하나가 태움이라고 주장했다. 호소문에 의하면 사건이 일어나기 전 박 간호사는 환자의 배액관(수술 후 뱃속에 고이는 피나 체액을 빼내는 관)을 찢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 때문에 박 간호사는 수간호사와 사수에게 면담을 받았고, 밤새 소송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다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박 간호사는 병원 내에서 가장 힘들다는 내과계 중환자실을 지원할 만큼 간호사에 대한 열망이 컸다. 사수에게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 하루 세 시간씩만 자며 열심히 하던 박 간호사를 죽음으로 내몰게 된 태움은 왜 생겨난 것일까.

신입 간호사와 프리셉터

  신입 간호사의 현실은 그들이 상상하던 모습과는 다르다. 익명을 요청한 간호사 A씨는 “막상 간호사가 되니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며 생각했던 것보다 근무환경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며 “간호사 고유의 업무도 힘든데 그 밖에 다른 종류의 일까지 겹치면서 많이 힘들었다”고 전했다.
  일부 병원에서는 신입 간호사들을 위해 프리셉터십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프리셉터는 일정기간 동안 특정 부서에서 신입 간호사의 교육을 위해 파견된 선배 간호사로 신입 간호사의 간호기술 습득과 병동 환경에 적응을 돕는다. 프리셉터의 자격은 영국중앙간호사회의 지침에 따라 주치 간호사로서 동일 분야에서 12개월 이상 근무한 간호사이다.
  프리셉티십은 신입 간호사에게 ▲개인의 요구에 맞는 교육 ▲임무 수행에 대한 즉각적인 피드백 ▲세밀한 관찰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 단점으로는 프리셉터와 신입의 근무시간이 일치하지 않으면 교육이 어렵다는 점과 프리셉터로서의 업무와 역할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부재해 비효율적인 교육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프리셉터로 선정된 간호사의 업무 경감 없이 신입 교육 업무가 추가된다는 것도 문제점이다. 프리셉터는 자신의 고유 업무를 수행하면서 신입 간호사 교육을 해야 하기 때문에 프리셉터 임무에 소홀해진다. 제대로 된 프리셉터십을 받지 못한 신입은 업무상 실수를 하게 되고 그 일로 질책을 받으면 프리셉터와 신입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 된다. 간호사 간의 태움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비롯된다.
  간호사 B씨는 “프리셉터십은 실제 간호 현장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학생으로 공부하고 실습할 때와는 마음가짐이 달라야 한다”며 “간호사는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기 때문에 프리셉터 입장에서는 보다 엄격하게 교육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과정에서 프리셉터와의 갈등으로 인해 퇴사하는 간호사도 있다”고 덧붙였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태움 문화가 시스템 자체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태움 문화 해결을 위해서는 인력 충원과 실습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인력 부족으로 신입 간호사는 제대로 된 실습 없이 현장에 투입되고, 프리셉터는 과중한 업무로 제대로 된 교육을 하지 못하고 신입 간호사에게 질책으로 일관한다는 것이다.

선배의 태움보다 버티기 힘든 병원의 태움

  ‘간호사 간의 태움’으로 이번 사건의 모든 것을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지난달 28일 서울아산병원 앞에 박 간호사의 죽음을 추모하는 흰 리본과 함께 A4 2장 분량의 대자보가 붙었다. ‘박 간호사의 죽음은 우리 모두의 죽음입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는 박 간호사의 입사동기인 간호사의 이름으로 작성됐다. 대자보는 “본 사건의 원인이 단편적으로는 신입 간호사에 대한 선배 간호사의 태움으로만 비칠 수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간호사 근로 환경의 구조적 문제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겨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방적인 괴롭힘이 있었는지 밝혀져야 하지만, 이 사건 자체가 ‘가해자인 선배 간호사와 피해자인 후배 간호사’의 구도로만 비춰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업무 부담이 괴롭힘을 정당화할 순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면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개인의 잘못으로만 원인을 돌리는 것을 우려했다.
  실제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 1,000명 당 간호사 수는 4.8명으로 평균 9.3명인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다. 보건의료노조가 2016년 실시한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실태조사에 참여한 전체 보건의료노동자의 82.6%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부서의 인력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또한 인력부족으로 건강이 악화됐다는 답변은 69.8%에 달했다.
  이러한 병원의 인력부족은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보건의료노조의 ‘보건의료 노동자 실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간호사의 하루 평균 연장근로 시간은 60분이며, 간호사의 87.9%가 매일 연장근로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실태조사에 참여한 대부분의 간호사는 ‘업무시간을 직접 간호와 기록으로 모두 소모하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출근해야만 약물준비나 물품 카운트와 같은 업무를 할 수 있다’고 전했다. 간호사 A씨는 “인력부족으로 인해 삼교대 근무가 불가피하다”며 “나이트 근무를 해도 다음날 아침에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건강이 나빠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주어진 업무시간 외에도 초과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올해 보건의료노조가 발표한 ‘폭언, 폭행, 성폭력, 태움 관련 간호사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72.7%가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고도 수당을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심지어 28.3%의 간호사는 시간외근무수당 신청 자체를 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밖에도 보장받지 못하는 휴가제도, 불편하고 비능률적인 근무 복장, 환자들의 무리한 요구 등 다양한 애로사항이 간호사들을 괴롭히고 있다. 간호사 B씨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자신의 권리만 주장하면서 간호사에게 화를 내는 환자들이 더러 있다”며 “특히, 바쁠 때 무리한 요구를 하는 환자가 있으면 정말 난감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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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현재 국회에는 간호사를 포함한 보건의료 인력기준을 정하고 이를 준수하도록 명시한 <보건의료 인력지원 특별법>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명시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하지만 병원 측의 예산문제.근본적 원인에 대한 해석차이 등으로 3년째 계류 중이다. 최근에도 간호 인력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간호 인력의 양성 및 처우 개선에 관한 법>, 의료기관 내 인권 침해를 방지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이 또한 계류 중이다.
  지난달, 한 주 최대 노동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시키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보건업은 여전히 무제한 근무가 가능한 특례대상 업종에 포함돼 개정된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 보건의료노조는 병원의 장시간 노동은 업무 특성상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인력 부족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건업을 노동시간 특례대상 업종으로 유지할 명분이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나는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지 않겠습니다’는 4개의 문장으로 구성된 나이팅게일 선서의 두 번째 문장이다. 타인의 안녕을 위해 헌신하는 그들이 자신의 생명을 해치지 않고,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해본다.


오준수 기자  ioh0503@cbnu.ac.kr
주민준 기자  offside0731@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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