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1일, 미얀마 군부 쿠데타 발생 이후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등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WhatsHappeningInMyanmar(미얀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게재된 수많은 사진과 영상들이 세계인을 큰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전쟁이라도 난 듯 쉴새 없이 울려 퍼지는 총성 아래, 최루탄 연기가 자욱한 거리를 헤치며 핏빛으로 물든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쫓으며 망설임 없이 총구를 겨누는 군인. 국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군이 권력을 지키기 위해 국민을 죽이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나라, 미얀마에 대해 취재해 봤다.
미얀마 쿠데타, 도대체 왜?
미얀마 군부 쿠데타 발생 원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미얀마’라는 국가가 지닌 역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국가 정식 명칭인 ‘미얀마 연방공화국(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에서도 알 수 있둣, 미얀마는 70%의 버마족과 30%에 해당하는 140여 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연방 국가다. 국토 안쪽에 위치한 ▲만달레이 ▲바고 ▲양곤 등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일곱 개 주의 주민 대다수는 버마인(Burman)이고, 그 바깥에 있는 ▲몬주 ▲ 산주 ▲진주 등의 7개 주는 주로 나머지 소수민족들이 주로 거주하며 어느 정도 자치를 하고 있어 행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지역과 구분돼 있다. 그리고 지금 미얀마가 겪고 있는 문제들의 근원이 바로 이런 사회 구조에 있다. 11세기 버간 왕조(미얀마의 첫 번째 왕조) 시절부터 소수민족 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민족 간 내전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군대가 중요해지고, 무력이 중시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즉, 다민족 국가에서 발생하는 필연적 분열이 군부에게 ‘나라가 혼란하니 어쩔 수 없이 우리 군이 정치를 하겠다’라는 정당성을 쥐여주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고 미얀마에 민주화의 조짐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미얀마 국민의 열망은 꽤 오래전부터 싹을 틔워왔다. 1824년 영국-미얀마 전쟁 발발 이후 세 차례에 걸친 전쟁 끝에 미얀마는 1886년 영국령 인도제국의 일부로 병합되어 오랜 기간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그러던 중 1948년 드디어 영국 식민지의 그늘에서 벗어난 미얀마는 의원내각제 형태의 민주주의를 채택했다. 그러나 선출된 미얀마의 중앙정부가 4개 소수민족의 자치권을 박탈하면서, 소수민족들의 봉기가 발발해 심각한 내전에 휩싸이고 만다. 그리고 이 혼란을 틈타 세력을 키운 미얀마 군부가 1962년, 네윈 장군 주도로 미얀마 현대사 최초의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후 네윈은 약 26년 간 버마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며 군부 통치를 펼친다. 버마식 사회주의는 ▲불교와 정치의 일원화 ▲소수 민족 탄압 ▲타국으로부터의 엄격한 고립주의 ▲국가 내 모든 산업 국유화 등을 내세웠는데, 이 과정에서 국가의 모든 부는 군부가 독점하게 됐고 국가 경제가 크게 위축돼 미얀마는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이에 분노한 미얀마 시민들은 양곤의 대학생들을 주축으로 반군부 민주항쟁을 대대적으로 일으키게 되는데, 지난 1988년 8월 8일에 일어나 ‘8888항쟁’이라고 불리는 시위가 바로 그것이다. 한 달간 지속된 8888항쟁에서 무려 3천여 명의 시민이 군부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한편, 이를 계기로 아웅 산 장군의 딸 ‘아웅 산 수치(이하 수치)’가 미얀마 민주주의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떠오른다. 그는 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등에 업고 미얀마 민주화 운동 전면에 나서 군부 독재의 종식과 미얀마 민주화를 주도했다. 결국 1988년 네윈 정권은 소 마웅 장군의 군부 내 쿠데타로 무너졌지만 군부 집권은 계속되었다. 1990년 치러진 총선에서 수치가 이끄는 NLD(민주국민연맹)당이 지지율 82%로 압승을 거뒀지만, 군부는 이를 무효화하고 2011년까지 통치를 이어갔다.
그 사이 군부에 저항하는 미얀마 시민들의 민주 항쟁은 계속됐다. 2007년 8월 15일, 군부의 예고 없던 천연가스 가격 인상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이 기폭제가 되어 승려들을 중심으로 ‘샤프란 시위(시위에 나온 승려들이 샤프란 색의 옷을 입었다는 데에서 비롯한 명칭)’가 일어났다. 이에 군부는 늘 그랬듯 무력으로 시위대를 진압했고, 2008년에는 자신들의 집권에 유리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헌법까지 개정한다. 개정 헌법에는 전체 국회의원의 25%를 군부에 자동 할당하고, 군부는 언제든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으며, 국가비상사태 시 대통령의 모든 권력은 군사령관에게 이양한다는 독소 조항이 자리잡았다. 이후 같은 해에 수치와 많은 국민의 강력한 투쟁과 폭력적인 미얀마 군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으로 자유선거가 한 차례 치러지긴 했으나, 군부가 부정선거로 압승을 거뒀다. 하지만 이런 연속된 좌절에도 불구하고 수치와 미얀마 국민들은 민주화에 대한 투쟁을 이어갔고, 그 결과 마침내 2015년 총선에서 수치가 이끄는 NLD당의 승리로 정권 교체에 성공하면서 반 세기 넘게 이어진 군부 독재에 마침표를 찍었다. 물론 군부는 여전히 군사력과 경제력을 무기로 권력을 쥐고 있었지만 지난 미얀마 역사를 생각하면 이는 엄청난 진보였다.
이후 5년의 임기가 지나고 지난해 11월 8일 총선에서도 수치와 그가 이끄는 NLD당은 전체 의석 중 83%를 차지하며 미얀마 문민정부 2기 시대를 열었다. 이에 힘입어 수치는 군부를 견제하기 위해 헌법 개정을 시도하는 등 미얀마의 안정적인 민주화를 위해 힘썼다. 그러나 군부는 선거 직후부터 ‘유권자 명부가 860만 명 가량 실제와 차이가 있다’라며 꾸준히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결국 지난 2월 1일 민 아웅 흘라잉을 중심으로 한 미얀마 군부는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렇게 쿠데타가 일어난 지 약 4개월이 흐른 지금, 지난달 28일 기준 미얀마 인권단체 AAPP(정치범지원협회)가 발표한 미얀마 군부 관련 희생자는 ▲사망 756명 ▲체포 4,501명 ▲감금 3,449명을 기록했다.
미얀마 국민이 전하는 미얀마 현지 상황
이처럼 군부에 의한 희생자가 날마다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미얀마 국민은 이번 쿠데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기자는 SNS를 통해 이번 시위의 주역인 1020대 미얀마 국민 열 명을 만나 구체적인 현지 상황을 들어봤다.
Q. 현재, 미얀마의 전체적인 상황은 어떻습니까? 외신 보도를 보면 상황이 점점 나아지기보다는 악화하는 것으로 보이던데요. 일반적인 일상생활이 가능한 상황입니까?
- 케이진떠(24) : 상황은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있는 양곤은 동네 곳곳마다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어 간단한 외출조차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공무원인 부모님은 독재자 군부를 반대하는 시민불복종운동(이하 CDM*)에 참여하고 계신데, 출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체포당할까 봐 거주지를 옮겨 숨어 살고 계십니다.
- 찬(20) : 하루하루 상어가 가득한 강에서 헤엄치는 기분입니다. 민간인들 사이에도 ‘달란’이라 불리는 군부가 심은 스파이들이 있어서, 일상생활을 하며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마치 시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해야만 합니다.
- 메이탁툰(15) : 미얀마에 있는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밖에 나가기만 하면 군인들이 휴대폰을 검사하고, 휴대폰에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시위와 관련된 것이 나오면 즉시 끌고 가는 상황입니다. 제가 다니는 학교를 물론 모든 학교가 문을 닫은 지 오래인데, 군부는 오는 5일부터 다시 등교를 재개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저를 포함한 학생 대부분은 군부 아래에서 교육받을 순 없다는 이유로 등교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Q. 외신에는 주로 대도시인 ‘양곤’ 위주로 현지 상황이 보도되고 있는데요. 군부 공격이 집중된 특정 지역이 따로 있는 건가요? 시위는 주로 어느 지역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요?
- 아웅(15), : 규모만 다르지 사실상 미얀마의 모든 지역에서 군부의 단속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은 대도시인 양곤에서도 비교적 치안이 좋은 지역에 살고 있지만 백 퍼센트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 달 셋째 주, 냄비와 프라이팬을 두드리는 야간 시위를 벌였던 날, 우리 집 바로 뒷집에 사는 사람이 군경의 총을 맞고 죽었습니다. 총소리가 들리는 순간 우리는 즉시 시위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곧바로 각자 집으로 흩어졌습니다. 그 이후 우리 가족 중 누구도 야간 시위에 선뜻 참여 못하고 있습니다.
- 케이진떠 : 시위는 현재 미얀마 전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역에 따라 시위대의 모습이나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미디어에 보도되지 않는 시위도 많습니다. 인터넷 연결이 차단된 상태다 보니 시위가 벌어지는데도 언론에는 보도되지 못하는경우가 많아요.
Q. 인터넷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와서 드리는 질문인데요. 지난 3월 말, 군부가 미얀마 내 인터넷 통신망을 전면 차단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현재 인터넷 사정은 어떤가요?
- 케이진떠 : 말씀대로 지난 3월 15일, 오전 1시부터 9시까지 미얀마 내 인터넷이 차단됐었습니다. 이후 무선 인터넷 연결은 완전히 끊어진 지 오래고, 현재는 FTTH(가정 내 광케이블)을 통한 와이파이만 사용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하루종일 되는 게 아니라 되는 시간이 따로 있습니다. 이마저도 되지 않는 지역에서는 서로 문자메시지로 뉴스를 공유합니다. 텔레비전에는 군부의 거짓 정보를 제공하는 채널만이 송출되고, 실제 상황을 볼 수 있는 채널에 연결된 도구마저도 군경들이 압수해가고 있습니다.
- 하루(21) : 인터넷이 차단된 이후로 현지 상황을 쉽고 빨리 공유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보 흐름도 늦고, 사실이 아닌 가짜뉴스도 많이 퍼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Q. 무례한 질문이기는 합니다만, 시위에 참여했다가 군부에 의해 다치거나 목숨을 잃은 시민 희생자가 굉장히 많다고 들었는데요. 혹시 시위에 직접 참여해 보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있으시다면 그때 어떤 감정으로 시위에 나가게 되셨는지 듣고 싶어요.
- 야민(25) : 지난 2월과 3월에 열렸던 모든 시위에 친구들과 함께 참여했습니다. 지금 같은 상태로는 미얀마에 일말의 희망도 없다고 느꼈고, 무엇보다도 어리석은 군부 정권의 지배 아래서 사는 것이 죽도록 싫었어요.
- 흐텟(20) : 지난 3월 15일 저녁, 내 친구 중 한 명이 실제로 시위 중 복부에 총을 맞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는 고작 25세밖에 되지 않은, 사랑하는 아내와 세 살짜리 아들이 있는 아버지였습니다. 이 일로 저를 포함한 친구들은 큰 슬픔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그 슬픔이 저희를 멈출 이유는 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우리나라와 다음 세대를 위해 계속해서 시위에 나가 싸울 것입니다. 그래야만 진정한 정의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열(20) : 제 주변에도 시위에 참여했다가 부상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은 사람이 몇 있습니다. 그리고 제 주변인은 아니지만, 가장 슬픈 일은 두 형제 중 한 명이 군인에게 목숨을 잃었는데 그 옆에 있던 다른 한 명의 형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시위에 나갈 때마다 항상 ‘우리의 투표를 인정해라’, ‘사람들을 쏘지 말라’라고 외칩니다. 저희의 외침이 군부에게는 그렇게 어렵고 비현실적인 바람인 건지, 진정 화가 납니다.
Q. 미얀마에서는 이렇게 참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 UN 등 국제기구는 이렇다 할 대처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달 24일에는 이번 쿠데타의 주범인 민 아웅 훌라 잉이 미얀마 국민과 세계 시민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ASEAN(동남아국가연합) 회의에 버젓이 참여해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요. 국제기구들의 이 같은 행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케이진떠 : 민 아웅 훌링의 ASEAN 회의 참석을 미얀마 국민은 강력하게 반대해 왔습니다.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참여하기에, 우리는 ASEAN 회의에서 민 아웅 훌링이 체포될 수도 있다는 기대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ASEAN 회의가 진행되는 도중에도 미얀마에서는 총격으로 인한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 흐무(19) :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만 해도 저는 정치에 별 관심이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우리는 UN이 미얀마 문제에 성명만 발표하지 말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길 바랍니다. 만약 그들이 지금처럼 미얀마 문제를 단순히 언급하는 것으로 그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사망자 수는 700이 아닌 7,000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그저 학교에 돌아가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싶을 뿐입니다.
- 흐라잉(17) : UN은 그저 별 같잖은 성명만을 내가며 미얀마 국민을 위하는 척하려 듭니다. 이런 점만 봐도 UN은 국제 갈등을 해결할 만한 능력이 없는 집단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현재 UN은 미얀마 군부를 지원하는 중국과 러시아 세력조차도 막지 못하는 무능력한 국제기구입니다. 제발 UN을 포함한 다른 국제기구들은 잔인한 테러리스트, 민 아웅 훌링을 체포해 주십시오. 그래야 미얀마 국민이 살 수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이 기사를 읽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 케이진떠 : 지금 미얀마에서 일어나고 있는 군부의 시민 학살이 1980년 한국 광주에서도 일어났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이자 선진국입니다. 그래서 우리 미얀마 국민도 민주주의를 쟁취하면 언젠가 한국처럼 될 수 있다고 격려하며 계속 싸우고 있습니다.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위해 한국에서 많은 분이 도움을 주시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미얀마와 함께해 주시는, 미얀마를 지지해 주시는 한국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 미얀마 국민은 인터넷이 다 끊겨 우리 소식이 외부로 전달되지 못해도 군부 독재에 맞서 계속 싸울 것입니다.
- 흐텟 : 미얀마 국민은 국가와 국민에게 아무 이익이 되지 않는 독재적이고 무능력한 통치자를 원치 않습니다. 이 길고 험난한 전투는 우리의 미래를 짓밟으려는 끔찍한 독재자와의 싸움입니다. 슬픔에 잠긴 미얀마 국민을 위해, 다른 국가들과 UN에 이렇게 호소합니다. 수많은 미얀마 국민이 날마다 무장한 군인들에 의해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그리고 제발 도와 주세요.
- 흐라잉 : 쿠데타로 군부가 정권을 찬탈한 지도 벌써 4개월이 흘렀고, 그간 많은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미얀마 국민은 언젠가 이 혁명에서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가 곧 정의고, 정의가 곧 민주주의이기 때문입니다. 충북대신문을 포함해 미얀마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주시는 모든 한국인 여러분께 감사를 전하며, 늘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한편, 우리 학교 역사교육과 학생들도 지난 3월 말 중문에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시민들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으로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응원하는 대자보를 부착했다. 이와 관련해 역사교육과 제43대 ‘고래’학생회 유동기(역사교육과.19) 학생은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과거 우리나라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그래서 미얀마 국민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뭘지 고민하던 중, 우리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과 내부 합의를 통해 많은 학생의 힘을 모아 성명문을 작성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미얀마 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늘 변함없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미얀마 국민은 반드시 군부를 타도할 것이고, 우리는 그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라며 지지를 표했다.
기사를 준비하는 몇 주 동안, 매일 아침 SNS를 통해 미얀마 소식을 확인했다. 하루는 나와 같은 나이인 대학생이 귀가 잘리고 코가 찢어진 채로 집에 돌아온 날도 있었다. 중학생 남자애 세 명이 무릎을 꿇고 아스팔트에 얼굴이 갈린 채로 군화에 짓밟히는 사진이 올라온 날도 있었고, 아빠 무릎 위에 앉아 가만히 평화 시위를 하던 딸과 아버지가 총을 맞고 쓰러졌다는 소식이 올라온 날도 있다. 또 하루는 ‘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시위 선두에 선 중학생이 총에 맞아 숨졌다는 뉴스가 전해지기도 했다. 티셔츠에 적은 희망적인 문구와는 달리, 숨진 그 학생의 가슴에는 자신이 군인에 의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예상했는지 ‘내가 죽으면 장기를 기증해 주세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부모님의 연락처와 긴급수혈을 위한 혈액형이 적힌 이름표가 걸려 있었다. 그 어떤 것 하나 괜찮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도 미얀마의 거리는 민주주의를 향한 이들의 외침과 그들이 흘린 피로 가득하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총구 앞에 선 국민, 그리고 권력을 지키기 위해 국민에게 총구를 겨눈 군인들. 국가를 망치고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굳이 적지 않겠다. 인간다운 인간이라면 누구나 정답을 알 테니까.








정윤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