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이 말하는 가족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혼인이나 혈연으로 맺어진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하지만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이 같은 개념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서 응답자의 69.7%가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니어도 주거와 생계를 공유한다면 가족이라 여길 수 있다”라고 답했다. 이 같은 국민적 인식 변화에 힘입어 지난달 27일, 여성가족부는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하며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고 모든 가족이 정책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리고 이런 변화의 파도 속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법안이 있었으니, 바로 ‘생활동반자법’이다.
내가 선택하는 내 인생의 동반자, 나의 가족
생활동반자법이란, 생활동반자 관계(혈연이나 혼인으로 이뤄진 민법상 가족이 아닌 두 성인이 합의 하에 함께 살며 서로 돌보자고 약속한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이를 국가에 등록하면,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복지혜택이나 법적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개인이 본인 의지로 선택할 수 없는 혈연관계, 이성 간의 성애적 사랑을 전제로 하는 혼인관계와 달리, 관계의 결합 방식을 ‘서로 돌보며 함께 살겠다’는 약속에 두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유사한 법안으로는 프랑스의 ‘팍스(PACS)’와 스웨덴의 ‘삼보(SAMBO)’ 등이 있다.
이 같은 법을 고안한 배경에 대해 국회에서 보좌관으로 일하며 생활동반자법 초안 작성에 참여하고, 생활동반자법의 개념을 다룬 책 <외롭지 않을 권리>를 펴낸 황두영 작가는 “1인 가구도 폭증하고 있고, 인구 구성상으로 봐도 결혼제도가 포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는 상황 속에서 다른 방식의 가족 결합 방식이 필요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어떻게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고민하에 외국의 여러 사례를 참고해 이런 법안을 준비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혼인과 생활동반자 관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일단 혼인은 이성 간 성애적 사랑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또 혼인은 굉장히 많은 권리와 의무를 혼합하고 있다. 친권, 양육권, 외국인이라면 국적까지 결부돼 있다. 생활동반자법은 여기서 조금 무게를 덜어서, 실제로 성인 둘이 함께 살 때 구체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이를 국가나 지자체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 것인가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춰 동거 생활에 필요한 관련 법들을 정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생활동반자법,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이런 생활동반자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기자는 우리 학교 학생과 청주 시민을 만나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들어봤다.
# 김령희(심리학과·19)
저도 매우 긍정적인 입장입니다. 결혼하지 않고 동거만 하는 커플의 경우, 응급 수술 동의서 작성 등 여러 위기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의 보호자로 인정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생활동반자법이 제도적 안전장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 무엇보다 가족이라는 형태가 꼭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만 규정될 시기는 이미 지나지 않았나요. 사회가 변하고 있는 만큼, 법도 그에 발맞춰 가야죠.
# 김태일(청주시 청원구·36)
적극 찬성합니다. 저는 지난 2016년에 결혼했는데, 혼인신고는 아직 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이유는 아내가 법적 구속, 결혼이라는 가부장적 제도 안에서 생겨나는 일련의 것들에서 탈피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뭣보다 결혼은 당사자 둘이 행복하고자 하는 거잖아요? 그런 부수적인 과정이 크게 의미가 있나 싶더라고요. 그렇게 사실혼 관계를 유지한지 이제 6년이 지났는데, 그간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서 오는 불편함을 크게 느낀 적은 없었어요. 그래서 ‘굳이 생활동반자법 같은 법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나? 없어도 지금도 괜찮은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최근에 여러 일을 겪으면서 생각이 변했어요.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중 세 가지만 얘기해 보자면, 첫 번째는 건강보험제도예요.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는 혼인신고 한 부부 중 한 명만 직장을 다니면 상대방은 자동으로 가입이 돼요. 그런데 우리 부부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 제가 직장을 다니더라도 아내는 별도로 지역가입자가 돼요. 여러 서류를 통해 사실혼 관계를 입증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긴 하지만, 회사를 이직하게 되면 그 번거로운 과정을 또 반복해야 해요. 두 번째는 아내가 직장에 다닐 때 생겼던 문제인데, 회사별로 차이는 있지만 기혼자의 경우 결혼장려금이나 가족 수당 등을 지급해요. 그리고 이를 위한 근거 자료로 혼인증명서를 요구하죠. 우리 부부도 회사에 가족수당을 요청했지만, 당시 회사 이사장의 판단은 ‘법적 혼인관계가 아니면 가족 관계로 인정할 수 없으므로 수당을 지급할 수 없다’였어요. 그런데 이후 새로 오신 이사장님은 우리를 가족으로 인정해주셔서 수당을 받게 됐어요. 결론적으로 문제는 해결됐지만, 조직 수장의 주관에 따라 우리가 가족인 걸 인정받을 수 있고 없고가 달라진다는 것 자체가 불쾌하더라고요. 마지막은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인데, 얼마 전 교통사고로 아내가 지금 입원한 상태예요. 병원은 수술을 진행할 때 꼭 보호자 동의를 받잖아요. 아내의 실질적인 보호자는 6년째 함께 사는 저인데, 병원에서 저는 보호자로 인정받을 수가 없어요. 입원 수속을 아픈 아내가 직접 하거나, 멀리 계신 아내의 부모님이 오셔야 하니 많이 어렵죠. 혼인신고 말고 우리가 가족임을 증명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 생활동반자법이 생긴다면 이런 어려움을 조금은 덜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 김혜지(정치외교학과·18)
어떤 법안을 시행할 때는 그 법의 옳고 그름은 물론, 그 법이 얼마나 효용성이 있는지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생활동반자법은 독거노인의 고독사 문제, 동성애 차별 문제 타파는 물론 비혼주의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좋은 법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비혼주의자라 결혼을 하지 않을 생각인데, 운 좋게도 저희 언니도 같은 생각이라 서로가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 함께 살기로 약속했어요. 친언니가 없었다면 친한 친구와 생활동반자 관계를 맺지 않았을까 싶어요. 실제로 비혼을 결심했는데 형제가 없는 주변 친구들의 경우 생활동반자법이 법제화되길 바라더라고요.
# 신지수(청주시 서원구·30)
요즘 결혼제도가 지닌 여러 문제로 인해 비혼을 결심하는 2030들이 정말 많잖아요? 그런데 그 많은 사람이 모두 연인이든 친구든 상관없이 무조건 ‘혼자’ 살고 싶어서 비혼을 택한 건 아닐 거란 말이죠. 결혼제도를 거부할 뿐이지, 내가 원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닐 거예요. 또 제가 30대가 돼서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제도를 알아보니 대부분 기혼자를 위한 상품뿐이더라고요. 결혼하지 않으면 받을 수 있는 대출 금액과 조건이 정말 열악해요. 국가가 이런 식으로 혼인을 부추기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로요. 만약 생활동반자법이 실행된다면 굳이 결혼하지 않아도 내가 선택한 동반자와 함께 사는 사람도 기혼자와 동등한 경제적 혜택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요.
# 전준현(기계공학부·19)
사랑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에 부담을 느껴 결혼 대신 동거를 택하는 커플이 늘어나는 지금, 꼭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연인이 아니더라도 같이 살면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좋은 법이라 봐요. 법 제정과 함께 새로운 가족 형태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가 동반된다면 더 긍정적인 효과가 도출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정수연(농업경제학과·19)
1인 가구, 비혼 동거 가구 등 가정 형태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 체제도 응당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향후 함께 살고 싶은 만큼 마음이 맞는 사람이 생긴다면, 이 법을 통해 새로운 가족을 꾸리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 허지성(심리학과·19)
노년층에게 꼭 필요한 법이라고 생각해요. 나이 들어 보호자 없는 사시는 어르신들이 생활동반자법을 통해 서로가 서로의 보호자가 돼준다면 굳이 양로원 같은 시설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안정적인 공동체 형성이 가능할 것 같아요. 개인의 심리적 안정 측면에서나, 국가적 복지 측면에서나 이익이라고 봅니다.
혐오의 장벽을 지나, 모두가 외롭지 않을 ‘권리’를 위해
이처럼 기자가 만난 모든 사람이 다양한 이유로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반겼다. 취재 과정 중 문득 기자는 ‘이렇게 좋은 법이 왜 지금까지 발의조차 되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여러 SNS에 게재된 생활동반자법 반대 의견을 조사해봤다. 생활동반자법을 반대하는 이들의 주된 주장은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생활동반자법이 동성애자를 위한 법이라는 것이다. 이성 간의 결합만을 인정하는 현 결혼제도와는 달리 생활동반자법은 이성이 아닌 동성 간에도 가족이 될 수 있기에, 동성애자들이 이 법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종교계의 반발이 거세다. 실제로 생활동반자법 관련 기사 댓글창에서 “동성애자들이 결혼 대체제로 사용하는 것 아니냐”, “나라에서 나서서 동성애를 조장하는 것 아니냐”라는 부정적 의견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황두영 작가는 “동성혼이라는 게 아직 우리나라에서 법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성소수자 커플들이 결혼 대안으로 생활동반자법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동성혼이 불법이라 발생한 문제이므로 동성혼을 어떻게 해야 할 건지부터 정리해야 되는 문제다. 동성 커플에게 적당한 권리를 부여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생활동반자법이 꿩 대신 닭으로 와있는 거지, 생활동반자법에서 이게 핵심적인 논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혼자 사는 독신가구가 700만 명을 돌파한 상황에서, 이 많은 사람이 모두 성소수자이지는 않을 것이다. 생활동반자법의 적용을 받을 사람 중에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선택하기에 여러 불편함이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나이를 먹고 친구와 같이 살림을 합쳐 서로 돌보며 살기로 한 사람도 있다. 그런데 성소수자를 반대하고 그들에게 권리를 주지 않겠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의 권리가 빼앗겨도 되는 것인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두 번째 이유는 기존 가족제도를 위협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생활동반자법이 통과되면 결혼 대신 동거를 택하는 커플이 많아져 무분별한 동거 가구가 생겨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저출산도 심화되어 가정이 붕괴되고 말 것이란 주장이다. 이에 대해 황두영 작가는 “가족 붕괴라는 게 보통 ‘출산율이 떨어진다’ 혹은 ‘가족 수가 줄어든다’, ‘1인 가구가 급증한다’ 등의 현상을 말하지 않냐. 이런 것들이 만약 정책의 유효성을 평가하는 수단이라면, 현행 가족제도가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 명확하게 입증된 셈이다”라며 “프랑스는 팍스를 도입한 이래로 혼인 자체는 줄어들었지만, 팍스를 통해 가족을 이루는 사람의 수는 훨씬 많이 늘어났다. 그런 방향으로 기존 제도를 혼란스럽게 할 수는 있겠지만, 중요한 건 제도 자체라기보단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가족생활을 하고, 누구와 어떻게 살고 싶어하는지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신지수 씨는 “저출산과 결혼하는 사람이 줄고 있는 현상이 국가 차원에서 큰 문제라는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최우선적인 국가의 역할은 국민이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저출산과 혼인 가구 감소 문제는 가정을 꾸리기 좋은, 아이를 낳고 싶은 환경과 제도를 마련해야 할 문제지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반대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본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마지막 세 번째는 복지제도 남용의 수단으로 사용될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생활동반자 관계를 체결한 이들을 가족으로 인정하고 이에 맞는 복지혜택을 부여하면, 복지혜택만을 위해 생활동반자 관계를 맺는 이들이 무분별하게 생겨날 것이란 주장이다. 이에 대해 황두영 작가는 “일단 생활동반자 관계는 한 명과만 맺을 수 있으며, 기혼자는 불가하다. 내가 한 사람과 함께 사는 데에 있어서 필요한 경제적, 법적 의무를 지니겠다는 법이기 때문에 그렇게 가볍게 맺을 수 있는 계약은 아니므로 남용하기가 쉽지 않다”라며 “사실 혼인도 경제적인 이유로 하는 사람이 많다. 복지제도가 아니더라도 재산을 모으기 위해 하는 사람도 꽤 있고, ‘신혼부부 특별공급 주택’처럼 ‘결혼하면 이거 줄게’하는 정책도 있다. 그런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혼인이 남용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혼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가족을 맺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니까 사람들이 서로 더 잘 돌보면서 살 수 있도록 나름의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것인데, 남용이라는 말은 맞지 않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있다. 혈육 간의 정은 그 무엇보다도 깊다는 뜻의 속담이다. 하지만 뉴스를 보다 보면 ‘어떻게 가족끼리 저래’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의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자식을 제 손으로 버려놓고 아홉 살 이후로 얼굴 한 번 비치지 않다가 딸이 죽자 ‘나도 가족이니 상속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주장해 비난을 샀던 모 아이돌의 친모도 그중 하나다. 그런 일들을 접하다 보면 “피가 섞였다고 다 가족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또 이와는 반대로, 서로가 서로를 가족이라 여기고 사랑하며 살았음에도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해 슬픔을 겪어야 했던 이들도 있다. 20년을 사실혼 관계로 함께 살았지만 법적 부부가 아니라는 이유로 아내가 무연고자로 분류돼 제대로 된 장례조차 치르지 못했다는 한 부부, 고아원을 나온 이래로 가족처럼 서로 의지하며 지냈지만 친구가 죽자 혈연관계가 아니므로 장례는커녕 시신조차 찾을 수 없었던 보호종료아동 A씨와 그의 친구... 내가 누군가와 가족이 된다는 것, 그리고 그걸 남들에게 인정받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과연 무엇일까? 피가 물보다 진하다면, 사랑은 그보다도 더 진하지 않을까?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는 지금, 세상의 모든 가족이 차별받지 않고 보호받을 수 있는 법이 절실하다.
정윤채 기자
sunwillrise@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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