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박이의 정의는 ‘대대로 그 땅에서 나서 오래도록 살아 내려오는 사람’이다. 산업화와 도시화는 청주의 모습과 문화를 빠르게 변화시켰고, 토박이들은 삶으로써 청주를 기억했다. 하지만,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젊은이들은 청주를 떠나고, 남아 있는 토박이들마저 고령화로 점차 사라져가는 지금, 과연 누가 옛 청주를 기억해줄까? 이런 상황이 안타까워 그들을 기록하고 청주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청주시의 노력을 들여다보자.
변화한 청주와 옛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
청주는 1962년 이후부터 1980년까지 경제개발정책에 따른 산업화 정책을 시행했다. 청주는 수도권과 근접한 이점이 있어 공업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했으며 무심천 경계를 넘어 서쪽으로 개발이 진행된다. 1980년 이후의 시기에는 전국적인 주택지개발사업이 청주에서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특히 이 시기 청주는 대도시로 성장해 광역 도시체계를 이뤘는데, 이에 대응한 ▲토지이용 ▲교통 ▲광역시설정비계획 등이 수립되었다.
통합 청주시(2014년 7월 1일 출범)가 되기 이전인 2000년대에는 청원군 오창면과 강외면에 각각 오창과학산업단지(IT)와 오송생명과학단지(BT)가 조성돼 여러 기업의 전략 산업들이 입성했다. 이로 인해 이곳 지역에 꾸준히 인구가 유입되어 오창면은 2007년 오창읍으로, 강외면은 2012년 오송읍으로 승격하였다. 특히 오창은 10년 전보다 인구가 4배 이상 늘어났고, 아파트촌이 들어서 농촌이 아닌 도시 지역으로 변모했는데, 이 시기에 대규모 주택단지 공급의 필요에 따라 많은 아파트단지가 조성되었다.
더욱이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의 출범은 청주의 도시화를 더욱 가속화하였다. 청주 외곽에 대규모 개발이 일면서 청주의 옛 모습은 구(舊)도심에서나 조금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여기에 개발과 도시의 확장은 외부 인구의 유입을 가속화 했지만, 정작 청주에 대대로 뿌리를 내리고 살던 토박이는 청주를 떠나거나 노령화되어 사라지고 있다.
㈜열린기획 조성화 대표이사는 흥덕구 강내면 산단리에서 태어난 청주 토박이로 청주사랑과 역사문화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자를 만난 그는 일제강점기 이야기부터 꺼냈다.
“1911년 일제는 청주를 정비한다며 당시 청주읍성을 파괴한 것도 모자라 성(城) 돌들을 하수구 축대로 쓰는 등 청주읍성의 흔적을 지웠어요. 심지어 1932년 무심천 제방 공사를 하면서 신라 때부터 있어 온 남석교를 땅속에 묻기까지 했지요. 그 후 해방이 되고 청주 최초 호텔인 금수장이 헐리고 그 자리에 상당공원이 조성됐어요”
그의 이야기는 최근까지 이어진다. “대농청주공장이 떠난 자리는 현대백화점과 지웰시티 등이, 중원실업이 사라진 곳엔 율량3지구 상가와 그랜드호텔 등이 들어섰어요. 산업구조 개편과 맞물린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만 당시 청주를 견인했던 시설이었던 만큼 소중히 기억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도시 얼굴은 사람들 머릿속에 남아 있는 그 시대 공간의 기억으로 표현됩니다. 토박이들 머리에 남은 건물은 옛 관공서나 은행, 교회 같은 건물이 대다수고, 상업용 건물과 도로는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본정통’이 ‘성안길’로 이름을 바꿔 달고, 우암산 자락 판자촌이 ‘수암골’이란 새 이름을 갖게 된 것이 불과 얼마 전이지요. 본정통을 중심으로 극장과 백화점 및 개별상가가 밀집돼 성시를 이뤘었는데, 지금은 외곽 대단위 아파트단지를 배후에 둔 상업지역에 백화점과 극장, 먹거리 상가 등을 다 뺏겼어요. 도시의 확장과 발전에 밀려 정든 거리와 건물, 시장이 사라지고 위축되는 것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실제로 성안길은 1,500년 이상 청주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이었지만, 청주의 급속한 외연 확장과 함께 쇠락하고 있다. 그리고 긴 세월 동안 성안길이 간직한 수많은 이야기는 대부분 기록화되지 못하고 유실되거나, 곧 사라질 개인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이런 상황이 안타까워 청주시는 개인들이 간직한 청주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
토박이들이 만들어낸 마을기록
일제강점기 때 성안길에 있던 청주베이커리는 당시의 주민들에게 ‘뻬까리’, ‘청주뻬까리’라고 불리던 성안길의 대표가게였다. 이는 2014년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이 발간한 구술 자료집 <청주약국 앞 홍문당, 홍문당 옆 청주뻬까리>에 기록된 내용이다. 이 구술 자료집은 청주 토박이 10명의 구술을 토대로 1940∼1970년대 청주 성안길의 모습을 문화사적 시각에서 조명하였다. 수도권 집중 현상과 도시개발을 지속하는 가운데 구도심의 쇠퇴가 기정사실이라면 누군가는 그 흔적을 기억하고 기록하여 미래 세대에게 전달해줘야 한다는 마음으로 해낸 결과물이다.
이전까지 5곳으로 분산되어 있던 청주의 역사적 기록물들을 한곳으로 모아놓은 ‘청주시기록관’이 복대동 옛 전경 숙소를 리모델링하여 2017년 개관했다. 청주 100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청주시기록관은 ‘장롱 속의 개인 기록물도 청주의 역사가 된다’는 취지하에 2018년 7월 10일부터 9월 10일까지 청주 토박이들이 소장한 민간 기록물들을 수집했다. 추억이 빼곡한 앨범, 손때 묻은 교과서, 군 생활을 기록한 추억록 등 다양한 민간 기록물들이 기증되었고, 공무원 응시원서부터 임용장, 발령통지서를 비롯하여 날짜별로 기록된 업무 일지들은 꼼꼼히 쓴 청주시의 연혁이자 자서전이 되었다. 또 반상회의 활동 사항을 선전하기 위하여 발행하는 반상회보도 청주를 기록하는 문화유산이 되어 청주시기록관에 전시돼 있다.
청주시기록관 이민주 기록연구사는 “청주시기록관에는 많은 청주 주민분들의 기록들이 저장돼있다. 그동안 <청주약국 앞 홍문당, 홍문당 옆 청주뻬까리>를 비롯하여 <청주, 기록으로 기억하다>, 용암동 연례행사인 용천제를 기록한 <용박골 이야기>, 사직2동 주민들이 직접 저술한 <사직2동 주민자서전> 등 청주 주민분들이 자신의 기억과 기록물들을 기증해주시고, 조사에 참여해주셨다. 이곳 청주시기록관은 개인의 기록이 마을의 기록으로, 마을의 기록이 청주의 기록이 되어 만들어졌다. 다만, 인구수가 많은 ‘동’에서는 주민분들의 기록이 많지만, 인구수가 적은 ‘리’의 경우에는 주민분들의 기록이 많이 없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청주를 문화로 기록하다
청주는 ‘기록의 도시’기도 하지만 ‘문화의 도시’기도 하다. ‘문화도시’란 시민이 공감하고 향유할 수 있는 도시문화의 고유성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 사회성장구조와 지속 가능한 도시발전체계를 갖춘 법정 지정도시이다.
<지역문화진흥법> 제15조에 따라 청주는 2019년 12월 제1차 ‘법정문화도시’로 지정되었고, 2020년부터 ‘기록문화 창의도시’가 비전이 됐다. 기록문화 창의도시는 ▲시민 ▲기록 ▲창의를 바탕으로 시민의 기록을 통해 도시의 정체성을 찾고, 창의로운 결과를 도출하려는 청주시의 목표로서 진행됐다.
그중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문화도시센터는 다양한 기록문화 프로그램인 ▲기록활동가 양성사업 ▲동네기록관 ▲청주 기록문화 축제 등을 통해 청주의 정체성을 지켜나간다.
첫째, 시민기록가를 양성하는 ‘기록활동가 양성사업’은 기초과정 교육을 수료한 집중과정 교육생들을 ‘청주人 아카이브’와 ‘마을 아카이빙’으로 나누어 현재의 청주를 기록하게 한다. 청주人 아카이브는 청주를 사랑하는 지역토박이 및 문화인물을 선정하여 청주에서의 삶과 활동에 대한 구술채록을 진행하고, 마을 아카이빙은 4군데 마을을 정해 직접 마을 주민들의 삶과 마을의 모습을 기록한다.
둘째, 동네기록관은 동네 아카이빙과 주민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장으로 마을의 이야기와 주민의 기억을 기록하고 수집하는 기록문화 커뮤니티 공간이다. 현재 2020년 선정된 10곳(▲문의면 ▲중앙동 ▲우암동 ▲우암동(체험) ▲금천동 ▲내덕동 ▲운천동 ▲산남동 ▲영운동 ▲용암동)과 2021년에 새로 선정된 5곳(▲가덕면 ▲흥덕구 ▲성안동 ▲안덕벌 ▲상당구)을 더해 15곳이 있다. 청주 4개 구 곳곳에 자리한 동네기록관은 토박이들의 기억저장소이자 기록의 장이다.
셋째, 청주 기록문화 축제는 우리의 ▲추억 ▲일상 ▲공유 ▲공감을 토대로 시민들의 일상을 주제로 하여 기획한 기록문화 프로그램이다.
청주시문화산업재단 도시문화센터 임수진 선임은 “단순 유형의 기록물에 국한하지 말고,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문화, 기억, 마을, 공동체 등 우리 주변을 둘러싼 모든 살아있는 것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문화뿐만 아니라 예술도 중요하다. 때문에, 우리 센터는 ‘메이드인 청주’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청주 도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 공연예술단체를 지원하고 있고, 지역 문화예술인들과의 소통을 통해 청주 고유의 기록문화를 창출한다. 문화는 다양하다. 토박이들이 줄어들고 외부의 유입이 많아지는 건 당연한 사회 현상이다. 다만 청주의 남아 있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외부 문화와 어우러지는 문화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청주를 기록해야 한다”라고 전했다.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도시의 공통점은 ‘얘깃거리 많은 도시’이다. 그 도시들이 간직하고 있는 많은 이야기는 바로 도시의 샘터가 되고 근본이 된다. 청주의 기록문화는 뇌리의 바닥까지 내려가서 희미해진 옛 기억을 길어 올리려고 최선을 다해주신 토박이 어르신들 한 분 한 분의 애향심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문화자산이다. 그리고 과거 청주의 모습을 담아 기록하려는 청주시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이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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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