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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시혜&최해준
패스트 패션의 그림자 - 당신이 오늘 산 옷, 내일을 파괴한다
제 962 호    발행일 : 2021.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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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삶을 사는 현대인들은 빠른 것을 좋아한다. 빠름을 좋아하는 세태는 급기야 패션으로도 이어졌다. 유행과 소비자 기호를 즉각적으로 반영하는 ‘패스트 패션’이 바로 그것이다. 빠르게 제작해 유통해야 하는 특성상, 가격까지 저렴한 패스트 패션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패스트 패션이 환경과 인권을 파괴한다는 비판이 일면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패스트 패션, 환경오염의 주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은 ‘최신 유행을 즉각 반영한 디자인, 비교적 저렴한 가격, 빠른 상품 회전율로 승부하는 패션 또는 패션사업’을 말한다. 주문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패스트 푸드처럼 빠르게 제작해 빠르게 유통한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일반 패션업체가 계절별로 연 4~5회 정도의 신상품을 출시하는 것에 비해 패스트 패션업체는 보통 1~2주 단위, 심한 경우는 1~4일 간격으로 신상품을 출시한다. 패스트 패션업체는 합성섬유 같은 저렴한 옷감으로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므로 저렴하면서도 다양한 스타일의 의류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한다.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패스트 패션 브랜드로는 Zara(스페인), H&M(스웨덴), GAP(미국), UNIQLO(일본) 등이 있다.
  문제는 패스트 패션으로 만들어진 의류들이 그 출시 주기만큼이나 빨리 버려진다는 데 있다. KBS 환경 스페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에 따르면 세계에서 한해 생산되는 의류는 약 1,000억 벌이고, 버려지는 의류는 약 330억 벌이라고 한다. 유행이 지나서, 작아져서, 잘 안 입게 돼서 등의 이유로 버려진 옷들은 소각되면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소각되지 않는 옷들은 매립되거나 저개발국가로 옮겨져 ‘쓰레기 산’을 만든다. 버려진 옷의 매립처리는 의류 생산 공정에서의 화학 처리 때문에 토양을 오염시킨다. 또한, 2016년 기준 의류와 신발 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약 40억 톤으로, 전 세계 배출량의 8%를 차지했다.
  쉽게 버려지는 옷들을 만드는데 들어간 자원도 만만치 않다. 청바지 한 벌을 생산하는 데는 표백과 염색 등에 8,000L의 물이 필요하다. 가장 기본적인 흰색 티셔츠 한 장을 생산하는 데도 2,700L의 물이 소비된다.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데 2L 생수 4,000병이 필요하다니, 얼마나 많은 양의 물이 의류 생산에 소비되는지 어림하기도 쉽지 않다.
  세계자연보호연맹에 따르면 미세플라스틱 오염의 약 35%가 합성섬유 제품을 세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이에 대해 다시입다연구소 정주연 대표는 “플라스틱과 마찬가지인 합성섬유가 들어간 옷이 전체 의류 생산량의 70~80%를 차지한다. 합성섬유 속 미세 플라스틱은 의류를 세탁하면 할수록 빠져나가 바다로 유출된다. 바다에 사는 어류가 미세 플라스틱을 먹고, 인간은 미세 플라스틱을 먹은 어류를 먹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다”라고 경고했다.
  그렇다고 천연섬유가 합성섬유보다 환경에 더 나은 것은 아니다. 중앙아시아에 있는 아릴해는 주변에 대규모 목화밭이 조성되면서 넓이가 90% 가까이 줄었다. 세계에서 4번째로 큰 호수였던 아릴해의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수많은 생물종이 멸종했고, 아릴해를 터전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또한, 목화 재배에는 전 세계 농약의 10%가 사용된다.

낮아지는 가격, 사라지는 권리

  패스트 패션의 ‘다품종 소량생산’은 SPA 방식으로 이뤄진다. SPA란 전문점(Specialty store retailer), 자사상표(Private label), 의류(Apparel)의 첫 글자를 조합한 용어로 옷을 직접 생산하고, 자체 유통망을 통해 직영매장에서 판매하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앞서 언급한 대표적인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이 모두 SPA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이들을 ‘SPA 브랜드’라고도 부른다. 이들은 소수의 스타 디자이너 대신 저렴한 수백 명의 일반 디자이너들을 고용해 수많은 디자인을 만들게 하고, 이 디자인을 바탕으로 임금이 싼 저개발국가의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노동 착취’를 수반한다.
  지난 2013년 4월 24일 아침, 방글라데시 수도 타카 인근의 빌딩형 의류공장 ‘라나플라자’가 붕괴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직전 노동자들이 라나플라자 앞에서 건물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는 소동이 있었다. 붕괴 징후 때문에 전날 대피령이 내려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납품기한을 맞춰야 했던 관리자들은 노동자들을 협박해 공장을 재가동했고, 얼마 후 9층짜리 건물은 힘없이 내려앉았다. 이 사고로 공장 노동자 1,136명이 죽고, 2,500명이 다쳤는데, 이들이 만들던 것은 SPA 브랜드인 H&M, ZARA, 망고 등의 제품이었다.
  이들은 월 3,000다카(약 4만 원)라는 임금을 받고 일하고 있었으며, 사고 당일은 붕괴 위험 경고에도 불구하고 납품기한을 맞추기 위해 일을 해야만 했다. 결국,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옷을 판매하는 SPA 브랜드가 저개발국의 저임금 노동자를 착취하며 더 빨리 더 많이 만들기를 강요하다 벌어진 참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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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붕괴 사건 이후 SPA 브랜드들은 국제노동기구, 방글라데시 현지 노조와 함께 ‘방글라데시 화재 및 건물 안전 협정’을 체결했다. 협정은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1,500곳을 조사해 ▲고층 빌딩에 스프링클러 설치 ▲비상계단 사이에 방화문 설치 ▲화재경보기 설치 등을 하겠다는 내용이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백 마디 말보다는 한 벌의 슬로우 패션

  패스트 패션은 무수히 많은 자원을 소비하며, 환경을 파괴하고 오염시킨다. 지금처럼 패스트 패션이 주도하는 의류 산업이 계속된다면 2030년에는 전체 탄소 배출량의 49%를 의류 산업이 차지할 것이란 경고도 나왔다. 또 저렴한 가격을 위해 저개발국가의 노동자를 착취하며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패스트 패션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슬로우 패션’이 주목받고 있다. 슬로우 패션은 지속 가능하고, 친환경적이며 윤리적인 패션을 추구한다. 슬로우 패션은 쉽게 사고 쉽게 버리며 환경을 오염시키는 패스트 패션과 달리 덜 만들고 덜 사는 것을 추구한다. 슬로우 패션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입지 않을 의류는 구매하지 않기 ▲중고 의류 소비하기 ▲슬로우 패션을 실천하는 브랜드에서 구매하기 등 실천 가능한 영역 내에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면 된다.
  현재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슬로우 패션 브랜드로는 ▲얼킨 ▲큐클리프 ▲199REO ▲터치포굿 ▲파타고니아 등이 있다. 이들 중 ‘199REO’는 폐방화복을 업사이클링해 제품을 생산하며, 수익금의 50%는 소방관 권리 보장을 위해 소방단체에 기부하고 있으며, ‘파타고니아’는 폐그물을 100% 재활용한 소재로 제품을 만들고 강하천을 살리기 위한 ‘푸른 심장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이처럼 슬로우 패션 브랜드들은 버려지는 의류뿐만 아니라 환경 파괴가 우려되는 플라스틱 등을 리사이클링(재활용)하고 업사이클링(새활용)하며 환경 보호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한편, 슬로우 패션 실천 방법인 중고 의류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기자는 우리나라에서 중고 의류를 가장 많이 취급하는 서울 ‘동묘시장’을 찾았다. 중고 의류는 흔히 ‘구제(舊製) 의류’라고 부르는데 ‘옛적에 만든 옷’이란 뜻으로 주로 수입 중고 의류를 말한다. 중고 의류라는 이름답게 몇몇 옷들에 작은 얼룩이나 약간의 보풀 등이 발견됐지만 제품 대부분이 새 옷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진열돼 있었다.
  동묘시장의 구제 의류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S 직원은 “구제 의류는 현재 생산되지 않으며 전 세계적으로 몇 개 남지 않은 제품들이라 나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런 구제 의류의 장점을 활용해 빠른 제조공정을 거쳐 저렴하고 유행을 반영한 새 옷인 패스트 패션에 대응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해당 매장에서 S 직원의 추천으로 고른 옷은 유명 브랜드의 중고 의류. 소비자가격보다 30%에서 최대 90%까지 할인하는 구제 의류의 특성 덕에 브랜드 매장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었다. 현재 동묘시장에서 수요가 가장 많은 제품은 ‘버버리’의 머플러다. 새 상품의 가격은 70~85만 원대의 고가제품이지만, 동묘시장에서는 3~5만 원대에 판매된다. 하지만 제품의 상태와 질은 새 상품 못지않다.
  동묘시장 외에 중고 의류 소비를 위해 주목할만한 시장으로는 다시입다연구소의 ‘21% 파티’가 있다. 21% 파티의 21%는 2020년 다시입다연구소 측에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나온 ‘사놓고 입지 않는 옷의 평균 비율’인 21%에서 따왔다. 동묘시장과 달리 21% 파티는 물물교환으로 거래를 한다. 즉, 자신이 입지 않는 상태 좋은 옷(최대 3벌)을 준비해 방문하면 가지고 온 옷의 수량만큼 교환티켓을 받아 다른 사람의 입지 않는 옷과 교환하는 이벤트이다. 2021년 8월 기준으로 21% 파티를 통해 총 1,147개의 아이템이 교환됐고, 총 665명이 참가했다. 정기적으로 열리진 않지만 21% 파티는 지금까지 홍대, 울산, 서울역 등에서 개최되었고, 오는 12월 11일에는 제주도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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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으로 정주연 대표는 “패스트 패션이 사라지면 환경 파괴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한다. 패션 브랜드들이 바뀌기를 기다리지 말고, 소비자인 개인들이 먼저 전화 한 통, 메일 하나, SNS 태그 하나 등을 통해 패션 브랜드에게 환경 정책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라며 소비자의 실천을 강조했다.

  전 세계적 팬데믹을 초래하고 있는 코로나19의 출현과 현실이 된 기후 변화를 경험하면서 이전부터 끝없이 제기된 환경파괴에 대한 경고가 과장이 아니었음을 많은 사람이 느낀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여전히 수많은 플라스틱과 일회용품을 사용하며 환경 파괴에 동참하고 있다. 예전 같지 않은 계절과 기후를 보고도 변하지 않는다면 재앙은 더 빨리 인류를 찾아올 것이다. 지금 나의 편리가 내일은 나의 재앙이 된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되었다. 이 기사를 읽은 독자가 패스트 패션에 대한 변화 요구와 함께 슬로우 패션을 실천하는 소비자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배시혜 기자 bsh1210@chungbuk.ac.kr
최해준 기자 Kirby0728@chungb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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