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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철
아픔을 기억하려는 노력
제 978 호    발행일 : 202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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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빌딩 옥상에서 바라본 5.18 민주광장과 옛 전남도청

지난 2017년 8월 개봉한 영화 <택시운전사>와 지난해 11월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 두 영화는 각각 1,200만 명과 1,300만 명이 넘는 관객 수를 기록하며, 여전히 신군부 세력의 불의에 많은 사람이 분노하고 관심을 둔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렇게 지난겨울, 영화 <서울의 봄>은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영화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차 잊혀 가겠지만 신군부에 의한 아픔의 역사를 품은 광주는 이러한 잊힘을 거스르고 있었다. 한 청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한 졸업식부터 기억이 머무르는 공간에서 진실을 알리는 목소리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아픔을 기억해 가는 광주에 다녀왔다.

47년 만의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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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정선엽 병장의 명예졸업식이 열린 조선대 서석홀.

  지난 2월 16일, 졸업 시즌을 맞아 광주 조선대 서석홀에서는 한 사람만을 위한 특별한 졸업식이 열렸다. 주인공은 전자공학과 77학번 고(故) 정선엽 군. 올해로 68세의 나이였을 그는 여전히 스물세 살의 모습으로 47년 만에 학교를 떠났다.
  육군 병장으로 국방부에 근무하던 정선엽 군은 12.12 군사 반란 희생자 중 한 명으로, 영화 <서울의 봄>에 등장한 조민범 병장의 실존 인물이다. 1956년 전남 영암에서 나고 자란 정선엽 병장은 네 살 터울 형을 따라 광주로 유학해 동신고등학교를 거쳐 1977년, 조선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1학기를 마치고 입대한 정선엽 병장은 국방부 50 헌병대 소속 헌병으로 복무하며 12.12 군사 반란 당시 경계근무에 배치됐다. 1979년 12월 13일 새벽, 근무 경력이 부족한 후임을 대신해 요충지인 육군본부 B-2 벙커 초병 근무를 자원했고 진입하는 반란군의 무장해제 지시에 저항하다 4발의 총상을 입어 향년 23세의 꽃다운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3개월 앞으로 다가온 전역을 기다리며 부푼 마음이었을 정선엽 병장의 안타까운 죽음은 명백한 전사였지만, 신군부에 의해 순직으로 기록됐다. 반란군인 1공수여단이 기록한 당일 작전일지에 따르면 “1979년 12월 13일 새벽 2시 10분께 1공수여단 병력이 상부의 벙커 돌격 지시에 따라 벙커 출입구에 헌병 근무자 2명 중 1명은 체포하고, 1명은 반항 사격과 함께 벙커로 도주해 사살됨”이라고 당시 상황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권력을 잡은 신군부는 이를 ‘계엄군 오인에 의한 총기 사망 사고’로 왜곡했다. 유가족은 정선엽 병장의 명예 회복을 위해 43년간 싸웠다. 결국 지난 2022년, 유가족과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의 노력으로 국방부로부터 전사 확인과 국가유공자임을 인정받으며 명예 회복의 길이 열렸다. 여기에 영화 <서울의 봄>의 흥행 속에서 정선엽 병장의 죽음이 재조명받으며 모교 조선대의 명예 졸업식 추진으로 이어졌다.
  명예 졸업식이 열리는 조선대 서석홀 입구에는 학내 모든 13개 단과대와 총학생회의 이름이 적힌 14개의 화환이 놓여 동문인 정선엽 병장의 졸업을 축하했다. 방학 중임에도 많은 학생이 고인의 명예 졸업식에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졸업식에 참석한 조선대 김춘성 총장은 “군사 반란을 막기 위해 희생한 자랑스러운 동문의 명예 졸업장 수여식에 깊은 경의의 뜻을 표한다. 명예 졸업식이라는 이 자리에서 정선엽 동문의 흔적을 이어가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그에게 전하는 작은 예우”라며 존경과 감사의 뜻을 표했다.
  조선대에서 촬영해 의미를 더했던 영화 <서울의 봄>의 김성수 감독도 영상 기념사를 통해 마음을 전했다. 김 감독은 “조선대에서 촬영하는 동안 정선엽 병장의 모교라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하다 이후에 알게 됐다. 이번 명예 졸업장이 큰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졸업식에 앞서 지난 2월 5일, 정선엽 병장의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1심 재판부 판결이 있었다. 재판부는 국가가 정선엽 병장의 죽음을 총기사고로 왜곡했음을 인정하며 유가족 1인당 2,000만 원씩 총 8,000만 원을 국가가 배상하라는 판결을 했고, 정부는 항소하지 않기로 해 판결이 확정됐다. 이에 조사를 담당했던 송기춘 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은 “위원회가 정선엽 병장 사망 사건을 조사하는 데 도움을 주신 수많은 분이 계신다.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며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정선엽 병장의 훌륭한 인품과 죽음의 숭고함이 더욱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바람이 불기도 전에 이미 총을 내어준 허망한 밤을 떠올릴 때도 이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하며 흐뭇하게 미소 지을 수 있을 것”이라며 고인과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조선대와 총동문회는 정선엽 병장을 대신해 동생 정규상 씨에게 명예졸업증서와 기념패인 ‘의로운 동문패’를 전달했다. 동생 정규상 씨는 가족 대표로 “명예 졸업식을 열어 준 조선대와 이렇게 자리를 빛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졸업식에 참석한 나병수 씨는 “선엽이와는 입대 동기로 인연이 있었다”라고 본인을 소개하며 “뒤늦게나마 사실이 바로잡혀 많은 분의 위로 속에 졸업식이 마무리돼서 기쁘다”라고 말했다.
  학생 대표로 소감을 전한 안형준 조선대 총학생회장은 “불의에 맞선 선배님의 의로운 행동이 잊히지 않도록 후배들이 알릴 것이고, 선배님의 삶이 미디어의 소재로 소비되고 마는 것 또한 조심하겠다”라고 말했다.
  신군부가 왜곡하려던 한 청년의 죽음은 결국엔 바로잡힌 진실로 세상에 알려졌다. 정선엽 병장의 명예 졸업식은 그에 대한 위로와 존경의 의미를 넘어 꺼지지 않을 기억에 대한 의지였고, 같은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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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정선엽 병장의 졸업증서 수여식.

군사 반란 이후 이어진 신군부의 만행

  12.12 군사 반란을 성공시킨 신군부 세력의 등장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참담한 비극으로 이어졌다. 개헌 논의가 진행되던 1980년 5월, 각 대학의 총학생회와 교수단이 중심이 된 학원민주화운동이 전국으로 확산했다. 이는 양대 정보기구(보안사령부, 중앙정보부)를 장악하며 국내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한 전두환의 퇴진과 민주화를 위한 구체적 일정 제시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번졌다. 여야는 개헌안에 대한 논의 끝에 5월 20일 본회의를 거쳐 대통령 직선제를 보장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 통과를 앞두고 있었다. 잇따른 민주화의 요구에 신군부 세력은 시국 수습을 명목으로 정권 장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전두환의 지시에 따라 보안사령부는 ▲비상계엄 전국 확대 ▲국회 해산 ▲국가 보위 비상 기구 설치의 내용을 담은 시국 수습 방안과 지속적 정국 장악을 위한 주요 정치인 연행을 기획한다.
  개헌을 앞둔 5월 17일, 신군부의 압력 속에 진행된 비상국무회의를 통해 비상계엄 확대안이 통과됐다. 이는 기존에 제주도를 제외하고 선포됐던 비상계엄을 17일 자정을 기하여 전국으로 확대하는 내용이었다. 이른바 5.17 내란으로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국회 통보 절차를 무시한 채 ▲정치활동 금지 ▲대학교 휴교령 ▲언론보도 사전검열 강화 ▲집회 및 시위 금지 등의 불법 조치를 감행한다. 전국 단위로 확대된 비상계엄에 따라 계엄군 투입 규모 역시 확대됐다. 5월 18일 오전, 광주 시민들은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계엄군은 이를 무력 진압하는 과정에서 유혈사태를 빚으며 5.18 민주화 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진압 강도는 나날이 높아졌지만, 언론은 기능을 상실했고 외부와 연결된 교통과 통신마저 차단된 상황에서 광주 시민들은 계엄군에 맞서 싸웠다.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낸 지옥과도 같았던 열흘간의 외로운 항쟁이었다.

탄흔처럼 남아있는 그날의 기억

  5.18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이자 광주 시민들의 최후항쟁지였던 옛 전남도청. 도청 앞 5.18 민주 광장 건너편에 있는 전일빌딩은 광주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남아있었다. 전일빌딩은 2016년 12월, 리모델링 사업 과정에서 건물 9층과 10층에서 계엄군의 헬기 사격 흔적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이후 조사를 거쳐 245개의 총탄 흔적을 발견하며(추가 조사에서 25개 발견) ‘전일빌딩245’라는 이름과 함께 5.18 기념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2020년도부터 9층과 10층은 ‘5.18 메모리얼 홀’로 조성돼 안내해설사의 해설과 함께 보존된 헬기 사격 탄흔은 물론 여러 자료를 보며 1980년 5월의 광주를 공부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 중이다.
  이곳에서 5.18 민주화 운동의 현장에 있었던 5.18 메모리얼 홀 안내해설사 ㄴ 씨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ㄴ 씨는 1980년 5월 18일을 기점으로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당시 상황을 묻는 말에 ㄴ 씨는 “광주에 올라와 같이 지내던 전남대생 남동생이 5.18을 앞두고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시위 참석자로 상무대에 끌려갔더라. 이를 모르고 실종된 동생 소식에 걱정이 된 어머니께선 저와 동생이 머물던 광주 집으로 올라오셨다. 당시 어머니께서 본가에 안기부 직원들이 들이닥쳐 동생의 물건을 가져갔고, 광주로 들어오는 길목의 경계가 삼엄하다고 이야기하셨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계엄령이 확대 선포된 5월 18일부터는 분위기가 험악해지면서 시민들이 계엄군의 무력 진압에 다치거나 죽는 걸 두 눈으로 목격했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피해자 가족이 5.18 관련자라는 이유로 억울하게 상무대로 끌려간 피해자들의 구명운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5.18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ㄴ 씨가 안내해설사의 길을 걷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5.18 피해자 구명운동을 하면서 피해자 가족들의 이야기를 정리했다는 ㄴ 씨는 “현장에서 목격한 것 외에도 피해자 가족들의 억울함을 수기로 작성하면서 신군부와 계엄군에 대한 수많은 증언을 들어왔다. 여전히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왜곡된 해석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음에 안타까움을 느껴 이를 바로잡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안내해설사를 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서울의 봄> 개봉 이후 관람객 수가 크게 늘었음을 체감한다. 특히 외지 방문객이 늘면서 제대로 된 진실을 알릴 수 있어 큰 보람을 느낀다. 요즘 우리의 아픔을 공감하는 마음이 커진 것 같아 큰 위안을 받는다”라고 말한 후 전일빌딩245를 찾는 방문객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정권 찬탈의 야욕에 휩싸여 신군부 세력이 자행한 군사 반란은 흘리지 않아도 됐을 수많은 이의 피와 고통이 묻어난 역사로 남았다. 5.18의 진실이 밝혀지고 정선엽 병장의 명예 회복이 진행되던 과정은 역사적 진실에 대한 많은 이의 관심과 공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광주는 지난겨울, 잊힘의 흐름 속에서 기억마저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비상식이 상식을 이기던 민주화의 새벽에서 한 줄기의 빛을 위해 싸운 노력은 많은 이의 잊지 않으려는 의지로써 완성돼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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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광장에서 바라본 전일빌딩245(좌)와 계엄군의 헬기사격 탄흔(우).


이우철 기자
2021013033@chungb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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