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26일, 타조 ‘타돌이’가 동물체험농장에서 탈출해 도심 한복판을 헤매던 사건이 발생했다. 타돌이는 포획돼 다시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갔지만, 타돌이가 탈출한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타조를 관리.감독할 주체가 확실하지 않다는 점, 너무 쉽게 탈출할 수 있는 환경에서 지냈다는 점 등이 지적되면서 동물원의 동물복지 문제가 다시금 주목받게 됐다. 이러한 이유로 동물원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날 동물원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동물과 사람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는 청주동물원 김정호 수의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앞으로의 동물원을 그려봤다.
야생동물의 이야기
동물복지에 주목하게 한 사건은 이번 타조 ‘타돌이’ 탈출 사건 외에도 지난해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탈출한 얼룩말 ‘세로’, 부경동물원에서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채 좁은 공간에서 지낸 갈비사자 ‘바람이’, 대구 달성공원에서 탈출한 침팬지 두 마리가 있었다. 그중 달성공원 침팬지 한 마리는 포획 이후 회복 과정에서 폐사했다. 이들 모두 좁은 동물원에 갇힌 동물이었고, 이에 일부에서는 동물원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동물원의 존재 이유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동물원은 다친 야생동물이 보호받고 머물다 가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동물원의 역할은 생태형 동물원에서 시작하고 있다. 생태형 동물원은 사람들의 관람보다는 동물의 생활환경에 초점을 두고, 다친 야생동물을 보호.치료한다.
청주 상당구에 자리한 청주동물원은 생태형 동물원의 대표 주자이다. 청주동물원은 ‘5R.1E’를 지향한다. 5R은 야생동물 구조(Rescue), 구조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곳으로 온 동물을 보호하는 책임(Responsibility), 동물에게 해로운 것들을 줄임(Reduction), 가능한 동물을 야생으로 방사(Release),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연구(Research)를 뜻한다. 1E는 이곳의 동물은 인간의 유희를 위한 존재가 아님을 교육(Education)한다는 의미다.

▲ 늑대의 행동특성을 고려한 늑대 방사장.
청주동물원이 생태형 동물원이 된 건 2018년부터이다. 2018년 열악한 사육 농장에서 웅담을 채취하려고 기르던 반달가슴곰 세 마리를 구조한 이후로 치료 및 보호가 필요한 다른 동물도 데려오게 됐다. 부경동물원에서 열악한 환경에 노출됐던 갈비사자 ‘바람이’는 청주동물원에서 생활하면서 건강을 회복했다. 다른 독수리와 다르게 생긴 부리로 인해 먹이 경쟁에서 밀렸던 독수리 ‘하나’는 기아와 탈진 상태로 구조됐고,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적어 동물원에서 보호 중이다.
청주동물원은 그곳에서 지내는 동물들이 자연에서 지낼 때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동물마다의 습성에 맞춰 방사장을 설계했다. 네 마리가 함께 지내는 붉은 여우 방사장은 면적이 넓고 바닥은 콘크리트가 아닌 흙과 풀, 낙엽으로 뒤덮여 있다. 또한, 나무 타기를 좋아하는 여우들의 행동 특성을 고려해 나무가 길게 뻗어 있다. 늑대 방사장은 땅 파기를 좋아하는 늑대를 위해 부드러운 흙으로 채워져 있고, 계단식으로 쌓여있는 바위와 곳곳에 배치된 나무는 늑대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복잡한 구조로 구성돼 있다. 물새장은 홍학, 해오라기, 두루미 등 다양한 종의 물새가 서식하는 만큼 청주동물원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다. 물새들이 날개를 다치지 않도록 천장은 지붕이 아닌 높은 높이의 그물로 덮여 있다. 물새들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 관람객들은 전망대 쌍안경으로 멀리서 물새장을 관찰해야 한다. 여러 종의 물새가 종마다 무리를 지어 다니는 물새장을 보면 자연 속에 있는 물새를 보는 것 같다.

▲ 여러 종이 함께 생활하는 물새장.
‘불편한’ 동물원
청주동물원은 동물에게 편안함을 제공하는 만큼 관람객에게는 ‘불편한’ 동물원이다. 청주동물원의 불편함은 입구에서부터 시작된다. 산비탈에 자리한 청주동물원은 가볍게 산책하려는 마음으로 방문한 관람객에게는 입구부터 난관이다. 동물생태해설을 듣기 위해 동물원의 맨 꼭대기에 있는 사자 방사장에 올라가면서는 조금씩 숨이 찰 정도다. 그러나 청주동물원이 산에 위치한다는 지리적 특성은 오히려 동물들이 자연과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 산에 있던 도토리나무를 베지 않고 그대로 둔 덕에 미니돼지와 염소들은 방사장 내에 떨어진 도토리를 먹는다. 미니돼지와 염소는 야생을 최대한 구현한 방사장에서 함께 생활한다.
청주동물원에는 수달과 왜가리가 함께 미꾸라지를 나눠 먹는 풍경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왜가리는 청주동물원에서 보호하는 동물이 아니라 산에 서식하는 야생동물이다. 수달이 미꾸라지를 먹는 시간이 되면 왜가리가 수달 방사장으로 날아와 미꾸라지를 나눠, 정확히 말하면 뺏어 먹는다. 이곳의 왜가리는 수달에게 먹이를 줄 때, 관람객이 별로 없을 때 수달 방사장에 자주 나타난다. 야행성인 수달이 방사장에 나오지 않을 때는 수달 방사장에 수달은 없고, 왜가리만 있는 당황스러운 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청주동물원이 불편한 동물원인 이유는 단지 산비탈에 있어서만이 아니다. 청주동물원에는 볼 수 없는 동물이 많다. ‘동물원’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동물인 코끼리와 기린도 없다. 청주동물원에서 코끼리와 기린과 같은 외래종을 보기 힘든 이유는 외래종의 비율을 줄이고 고유종의 비율을 늘리기 위해서다. 외래종은 우리나라의 기후와 종의 특성이 맞지 않아 이들을 보호하는 데에 쓰이는 에너지가 상당하다. 예를 들어, 코끼리는 열대지역에서 서식하기 때문에 한국의 동물원에서 보호하기 위해서는 난방이 필요하다. 난방을 가동하면 비용은 물론이고 유해가스가 발생해 환경을 오염시킨다. 그래서 청주동물원은 외래종 보호에 쓰이는 에너지를 최소화하고자 외래종의 비율을 줄이는 것이다.
외래종뿐만 아니라 청주동물원은 동물원에서 생활하는 동물의 종과 수를 줄이고 있다. 초기 청주동물원에는 130종의 동물이 있었지만, 지금은 대략 60종의 동물이 생활하고 있다. 청주동물원은 기존에 있던 동물이 생활하던 공간을 떠나면, 새로운 동물로 채우지 않고 옆 공간과 합쳐 남은 동물의 사용 공간을 넓혔다. 합치는 것뿐만 아니라 공간 자체를 넓히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청주동물원을 찾은 관람객은 못 본 사이 동물원이 커진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청주동물원 생태해설사는 전했다.

청주동물원 방사장 유리창에는 모두 새 충돌 방지 스티커가 붙어 있어 관람객은 깨끗한 유리창을 통해 동물을 볼 수 없다. 동물원 곳곳에는 동물에 관해 설명하는 수의사 노트를 볼 수 있는데, 수의사 노트에 적힌 참매 ‘매르씨’의 사연을 읽으면 새 충돌 방지 스티커가 붙은 이유를 알 수 있다. 지난 5년간 울산에서 구조된 참매 21마리 중 20마리는 건물 유리창이나 차량에 충돌해 다쳤고, ‘매르씨’도 유리창에 충돌해 상처를 입어 청주동물원으로 왔다. 수의사 노트에는 ‘유리창 충돌 방지 가이드를 부착하면 도심지 새들이 조금 더 안전해질 수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청주동물원 김정호 수의사 인터뷰
동물들을 가두던 동물원 역사의 끝이 여생을 편안하게 살아가는 야생동물의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해피엔딩이길 바라는 이가 있다. 바로 청주동물원에 근무하는 김정호 수의사이다. 그는 청주동물원이 생태형 동물원으로 변화하는 과정의 중심에 있었다. 청주동물원 진료사육팀장 김정호 수의사에게 청주동물원과 동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Q. 청주동물원에서는 코끼리와 기린 등 외래종을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원에 비해 동물의 종과 수도 많지 않습니다. 이는 청주동물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줄 수 있을 텐데, 이 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보통 동물원에서 진행하는 동물해설 시 60분 동안 100종이 넘는 동물을 모두 설명하기 위해서 해설사가 한 동물당 할 수 있는 설명은 몇 초뿐입니다. 관람객이 몇 초 동안 들을 수 있는 설명은 그 동물이 어떤 생김새를 가졌는지 정도이고, 동물들이 가진 이야기는 듣지 못하죠. 동물원에 왔다가는 많은 사람이 호랑이가 왜 주황색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를 가졌는지, 새의 귀는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해요. 많은 동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동물들이 가진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하는 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Q. 청주동물원을 관람하다 보니 곳곳에 생태해설과 수의사 노트가 있더라고요. 이를 통해 동물들의 이야기를 잘 알 수 있었는데, 청주동물원 인스타그램에도 동물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 같네요.
인스타그램 계정은 청주동물원에서 만들었는데, 원래 월요일에 휴관한다는 공지사항만 올리던 계정이었습니다. 그런데 휴관 공지는 네이버에 검색만 하면 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이것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제가 직접 동물들의 이야기를 올려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이곳에 있는 동물들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잖아요. 게시물에 달린 댓글을 하나하나 보고 있는데 동물들을 응원해 주는 댓글이 많아졌습니다.
Q. 수의사님께서는 앞으로 동물원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과거 동물원은 사람들의 유희거리였지만, 이제는 동물원이 야생동물의 보호소와 치료소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강아지와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은 보호자가 있고 그들의 보살핌으로 크는 동물입니다. 그러나 야생동물은 달라요. 야생동물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생존해야 하는 동물이에요. 야생동물들의 특성상 자신의 아픔을 보이는 것은 야생에서 자신이 도태될 위험을 보여주는 것과 같죠. 그렇기에 동물원은 고통을 숨기는 야생동물들을 보호하고 치료해야 합니다. 저는 동물원이 한계치에 다다를 때까지 위험에 처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동물을 데려와 보호하고 싶어요.
Q. 앞으로 동물원이 야생동물들을 보호하고 치료하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5R의 하나인 Research죠.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들에 관해 연구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동물에 관해 아는 것부터 출발해야 해요. 동물과 사람은 함께 공존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동물에 대해 잘 몰라요. 동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나름대로 필요한 도움을 준다고 한 행동이 동물들에게는 필요하지 않거나 오히려 불편함과 해를 끼치는 일도 있어요. 수의사인 저도 계속 연구하며 동물에 대해 알아 가야만 그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청주동물원에서 만난 불편함은 인간과 동물이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제시했고, 그것은 결국 동물에게도, 인간에게도 이익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을 ‘불편함’이 아니라 ‘새로움’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이 새로움이 퍼져 더 이상 새로움이 아닌, 당연함이라고 느낄 수 있을 때까지 동물원이 변화하길, 동물들의 편안한 모습을 보며 인간도 편안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송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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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