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어제 쌩얼로 마트 갔다가 썸남 만나서
멘붕이였어”
B: “헐 대박! 깜놀했겠다”
우리 학교에 다니는 A 학생이 친구 B 학생과 아침 등교길에 나눈 대화의 일부분이다. 이들의 대화를 순화시켜 보면 “어제 화장하지 않은 채 마트 갔다가 요즘 연락하는 남자 만나서 너무 놀라고 정신이 없었어”, “어머 어떡해? 깜짝 놀랐겠다”로 나타낼 수 있다. 이는 오늘날 ‘은어’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무분별하게 파생 및 사용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해 국립국어원의 ‘2012년 청소년 언어실태 전국 조사’에 따르면 중고생 응답자의 100%가 은어를 사용한 적이 있다고 답변해 큰 충격을 안겨줬다. 실제로 중학교에 재학 중인 장지혜(경기도 평택·16) 학생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서서히 은어를 접하기 시작했다”며 “현재 주변의 모든 친구들이 은어를 사용하고 있고 심지어 젊은 선생님들도 수업시간에 은어를 사용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은어’란 어떤 계층이나 부류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자신의 구성원들끼리만 빈번하게 사용하는 말을 일컫는다. 오늘날 이 같은 은어는 인터넷과 모바일 메신저의 발달로 인해 주로 특정 단어 및 문장의 줄임말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금방 사랑에 빠지다’는 ‘금사빠’로, ‘버스카드 충전’은 ‘버카충’으로 줄여 쓰는 것이다. 이밖에도 ‘귀척’(귀여운 척), ‘생일선물’(생선), ‘직찍’(직접 찍은 사진) 등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다양한 용어를 줄임말로 바꿔 의사소통을 행하고 있다. 성남의 모 대학교에 재학 중인 유예나(경기도 성남·21) 학생은 “인터넷과 모바일 메신저로 대화를 나눌 경우 길게 쓰는 것보다는 줄임말로 쓰는 것이 편하다”며 “평소에 ‘엄빠’(엄마아빠),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 등의 은어를 자주 사용하는 편이다”고 전했다. 이어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정지민(경기도 안성·17) 학생은 “친구들끼리 대화하다 보면 은어를 30~50% 가량 사용한다”며 “요새 은어를 모르면 친구들과 대화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처럼 주로 줄임말 형태로 나타나는 은어는 젊은이들과 밀접한 게임, 스포츠, 군대 등으로부터 파생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리즈시절’이라는 은어는 현재 잉글랜드 프로축구 2부 리그에 속해 있지만 과거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리즈 유나이티드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한창 잘나가던 시절’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우리 학교에 재학 중인 김경수(청주시 가경동·21) 학생은 “주로 게임할 때 ‘엄크’(엄마와 영어 ‘critical’의 합성어로 게임하는 도중 엄마가 갑자기 방에 들어와 죽었을 때 쓰는 말), ‘파덜어택’(영어 ‘'father’와 ‘attack’이 합쳐진 말로 게임 도중 아버지가 들어와 혼났을 때 쓰는 말), ‘쥐쥐’(GG, 게임에서 졌을 때 주로 쓰는 말)와 같은 은어를 사용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유성재(청주시 사창동·26) 학생은 “군대에서 ‘깔깔이’(방상내피), ‘뽀글이’(봉지라면), ‘짬통’(잔반통), ‘왕고’(최고참) 등을 사용한 경험이 있다”며 “전역 후에도 ‘뽀글이’나 ‘왕고’ 같은 은어는 여전히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젊은이들의 과다한 은어 사용은 기성세대와의 의사소통을 단절시키고 소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은어가 이들의 결속력 및 유대감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 외 사람들에게 소외감 및 고립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중고생 자녀 2명을 두고 있는 최정혜(부산 수영구·47) 씨는 “아이들이 평소 자신들만의 은어를 사용할 때 알아듣지 못한 적이 많다”며 “이럴 때마다 아이들과 소통이 잘 되지 않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또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이 모(경기도 안성·50) 교사는 “반 아이들 모두가 아는 은어를 혼자 못 알아들을 때 소외감 및 세대 차이를 느끼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과다한 은어 사용은 우리말 파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들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우리 학교 국어국문학과 이호승 교수는 “은어를 자신의 집단이 아닌 다른 집단 및 사회에서 사용하게 될 경우, 은어가 점점 확산되기 시작해 결국 표준어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며 “환경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하고 통제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립국어원 공공언어지원단 박주화 주무관은 “청소년들의 언어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현재 다양한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며 “지난해의 경우 토론회 개최, KBS 다큐멘터리 제작, 수기 공모전 등을 실시해 청소년 언어문화 개선에 대한 방향을 논의하고 관심도를 높였다”고 밝혔다. 더불어 “올해에는 청소년들이 찾는 수련원을 통해 언어문화 교육을 시행할 예정이며 이밖에도 공익광고 공모전을 실시하는 등 여러 정책을 펼칠 계획”이라고 전했다.또한 국방부도 ‘군 용어 순화 추진단’을 구성해 앞으로 군 용어를 체계적으로 정비할 계획이다. 국방부 기획조정실 노치형 담당자는 “현재 육해공군 별로 은어가 무분별하게 쓰이고 있어 심할 경우 의사소통이 안 될 수도 있다”며 “개선해야 할 용어를 선별해 체계적인 군 용어로 순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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