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학교에 재학 중인 박수향(서울시 신사동·23) 학생은 2년 전에 한국에 왔다.
“부모님께서 먼저 한국으로 왔고, 그 뒤 부모님의 권유로 한국에 오게 됐어요. 처음에는 북한에 있는 지인들이 그리웠지만, 지금은 학교에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서 행복해요”
이어 그는 탈북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남한에 오려면 압록강을 건너야 하는데, 압록강까지 데려다 주고 탈북을 도와주는 브로커가 필요해요. 브로커를 통해 탈북을 했는데 브로커에게 갚아야 할 돈이 많아서 한동안 생활비 대부분을 돈 갚는 데 이용했어요”
또한, 영어에 대한 어려움도 많았다. “북한에서는 영어나 외래어를 쓰지 않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영어 때문에 의사소통이 어려웠어요. 영어 때문에 물건을 사지 못할 정도로 일생생활이 힘들었어요”
그렇다면 우리들학교의 학생들은 우리나라에 오기 전에는 어떤 생활을 했을까? 익명의 학생은 “북한 학교에서는 김정일, 김정은 부자의 일생이나 성장 과정에 대한 공부를 주로 해요. 남한처럼 돈이 많지 않아 남한에 오기 전에는 꽃제비(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탈북한 어린이들을 지칭하는 은어) 생활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어요”라며 북한에서의 힘들었던 생활을 털어놓았다.
또 그는 남한에서의 생활에 대해 말을 이었다.
“한국에 처음 들어오게 되면 국가정보원으로 가게 돼요. 그곳에서 북한에서의 학력을 물어보는데 북한에서의 학력을 모르니까 제가 그곳에서 제가 말하는 학력이 저의 최종학력이 돼요”
이어 남한의 첫 인상에 대해 “한국에 왔을 때는 모든 것이 신기했어요. 한국음식도 신기했고, 학원들과 학교들도 신기했어요. 특히 밤이 됐는데도 거리가 낮처럼 환하고 네온사인이 화려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는 북한의 지역차이에 대해서도 말했다.
“북한의 교육은 지역별로 격차가 커요. 평양의 학생들은 돈이 많아 교육의 질이 높지만 다른 지역은 그렇지 않아요. 저는 지방에 살았고, 북한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는데 나눗셈도 할 줄 몰라요. 왜냐하면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 선생님은 배가 고파 교육에 대한 열의가 없었어요. 학생들도 졸업 후 의무적으로 농장이나 공장으로 가기 때문에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지 않아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죠”
더불어 그는 “한국 친구들에게 북한에서 왔다고 말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좋지 않은 시선을 받기 때문에 강원도나 경상도 출신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탈북자들도 한 민족인데 저도 당당히 북한에서 왔다고 말하는 시대가 빨리 오기를 바라요”라며 말을 마쳤다.
박소슬 기자








박소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