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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현
쉬운 길찾기 위한 도로명주소, 길 잃고 헤매다
제 872 호    발행일 : 2014.02.10 


  올해부터 전면 시행된 도로명주소를 놓고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는다. 정부와 지자체는 도로명주소가 아직 정착되지 않아 불편한 점이 있을 수 있고 정착이 되면 더 편리하다며 홍보를 강화하고 있지만, 시민들은 낯설고 불편한 도로명주소 체계가 실생활에서 혼란을 부추긴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1개월여가 지난 지금도 도로명주소는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한 채 겉돌고 있는 실정이다.
  도로명주소란 도로에 이름을 붙이고 주택 ・ 건물에는 도로를 따라 순차적으로 번호를 붙여 도로명과 건물번호에 의해 표기하는 새로운 주소를 말하는 것으로 2011년 7월 29일 도로명주소 고시 이후, 기존 지번주소와 병행사용하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이는 종전 지번 주소와 시 ・ 군구 및 읍 ・ 면까지는 동일하지만 리 ・ 지번 ・ 아파트명 대신 도로명과 건물번호를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폭에 따라 8차선 이상은 ‘대로’, 2차선 이상 7차선 이하는 ‘로’, 나머지는 ‘길’로 나뉘게 된다. 또한 도로번호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진행돼 20m 간격으로 건축물 순서대로 도로의 왼쪽은 홀수, 오른쪽은 짝수 번호가 부여된다. 단 도로명주소는 사람이 거주하는 건물에만 적용되므로 임야나 논밭에 대한 토지대장이나 등기부 등 부동산 관계 문서에서는 토지 소유권을 보호하기 위해 지번을 계속 사용하게 된다.
  한편, 도로명주소가 전면 시행됨에 따라 공문서부터 주민등록증까지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주소는 모두 도로명주소로 변경된다. 그렇다면 모든 공공기관에서 도로명 주소로 행정업무를 처리하도록 됐는데 그 실상은 어떨까. 실제 도로명주소에 대한 시민 체감도는 아주 낮다. 청주 시민 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본인의 거주지 도로명주소를 알고 있는 경우는 21명으로 절반에 채 못 미쳤다. 김영수(청주시 흥덕구 ・ 31) 씨는 “도로명주소 제도가 시행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실제로 우리집의 상세한 주소는커녕 어느 도로에 위치한지도 모르겠다”며 “어느정도 일정하게 나눠진 동에 비해 도로주소는 길이도 들쭉날쭉하니 헷갈리고, 지금까지 어느 도로인지 봤던 경우도 없었다보니 새 주소는 실제로 사용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은 택배와 같은 배달 현장에서는 더욱 심각하다. 배달물에 도로명주소만 적혀 있는 경우에는 어느 곳인지 알 수가 없어, 택배기사들이 작업시간이나 배달 시간 틈틈이 검색을 통해 지번주소를 찾아두고 배달한다. 청주시 흥덕구의 택배물을 담당하고 있는 한 배달부는 “배달물에 도로명주소와 지번주소가 같이 쓰여 있는 경우는 다행이지만 도로명주소만 적혀 있는 경우에는 어느 위치인지 알기가 힘들어 배달하기 난감하다”며 “그나마 검색을 해서 찾으면 다행이지만 검색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직접 고객님들께 전화를 걸어 물어봐야하는데, 이런 과정을 거치다보니 배달 시간이 지체되는 것은 물론 지연되는 배달로 인한 불만도 많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지난 설처럼 물량은 쏟아지는데 이런 과정까지 거치게 되니 택배물량 소화에 문제가 많았다”며 “왜 굳이 기존 주소를 두고 새 주소로 바꾸려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는 음식점 상황도 마찬가지여서 주문하는 사람들은 대개 지번주소로 배달을 주문할 뿐 아니라 도로명주소로 시키려 할 경우 음식점에서 난색을 표하며 지번주소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우리 학교 근처의 음식점 8군데에 음식 배달을 시켜보니 5군데에서 지번을 요구했으며, 나머지 3군데 중 1군데에서는 도로명주소로 집을 찾지 못해 다시 전화가 오는 실정이었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은 이렇게 도로명주소의 문제점으로 크게 세 가지를 지적한다. 먼저, 새로운 주소 체계가 이전 지번 주소와 체계가 많이 다르다보니 사람들이 습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되는 점이다. 일종의 문화로써 몸으로 체득한 것을 모두 지우고 새로운 주소 체계를 외우려다보니 많은 어려움이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기존의 지번주소에 비해 도로명주소는 체계적이며 과학적이라고 하지만 실생활에서 사용하기에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기존 지번주소가 일제의 잔재라며 과학적이지 않고 뒤죽박죽이라고 하지만 ‘동’과 ‘번지’의 두 단계만 외우면 되는데, 새로운 도로명주소는 어느 길인지 찾고 주소가 홀수인지 짝수인지에 따라 길의 좌측이냐 우측이냐 따지는 등 여러 단계를 거치다보니 복잡하게 된다. 이로 인해 오히려 혼란만 더 가중되는 것이다. 황 소장은 “도로명주소 준비기간이 17년에 이르고 4000억 원이 투입됐다고 하지만 현재 바뀌지 않은 교통 표지판이 교체되면 더욱 많은 예산이 소비될 것이고, 교통흐름에도 혼란을 가져와 교통사고 발생률까지 높이는 등 엄청난 손실이 야기될 것이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우리의 역사 ・ 문화 ・ 환경 등이 담긴 동네 이름들이 사라지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올해부터 사라지는 동·리의 법정지명이 전국적으로 5000여 곳에 이르는데, 서울 종로구처럼 조선 초기부터 행정구역명으로 지정돼 500년 넘게 유지돼 온 지명들마저 사라지게 된다. 새 주소 이름인 '국회대로'를 예로 들어보면 국회뿐 아니라 목동과 화곡동, 신정동까지 새 주소를 쓰게 되면 동 이름 없이 국회대로만 주소에 남게 된다. 황 소장은 “지명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다”며 “<원미동 사람들>이 ‘부천로 사람들’이 되고 대하소설 <토지>의 ‘평사리’가 ‘악양서로’가 됐을 때 잃는 것은 비단 동 이름만이 아니다”라며 “인덕원, 퇴계원 등의 원은 옛날 숙소와 주막이 있던 곳이지만 새 주소로 이 같은 역사는 사라질 것이고, 말죽거리나 마장동이라는 이름의 유례나 문화유산도 사라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 점은 문화재 및 한글 전문가들도 우려하는 점으로 우리나라는 서양처럼 도로 중심의 문화가 아니라 삶 속에서 역사 ・ 문화 ・ 환경 등이 모여 동 이름이 결정돼 왔다며 동 이름이 사라진다는 것은 이 모든 게 사라지는 것이라 걱정하고 있다. 얼마 전 대한불교청년회 회원 등과 함께 새 도로명주소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정동채 전 문화부 장관도 "일본 강점기에 왜곡된 동 이름이 문제라면, 양수리를 ‘두물머리’, 신촌을 ‘새터’와 같이 이름을 바꿔 전통적 지명을 복원해야지 도로를 중심으로 사는 곳을 표기하는 것은 전통문화 관점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도로명주소는 100년 만에 지번체계를 바꾸는 국가적 사업이다. 이러한 큰 사업인 만큼 여론을 수렴해 불편사항을 잘 해결하고 주소 체계의 문제점을 개정해 보완시켜 나갈 수 있을지 앞으로 귀추가 주목된다.


이승현 기자

AidenLee@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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