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CJ 대한통운 대전물류센터에서 잇달아 노동자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택배 노동자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에 약 700여 명의 CJ 대한통운 택배 기사들은 파업을 통해 근무 환경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근무하기에 파업까지 하게 됐는지 그들의 속사정을 알아보고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택배 기사의 하루
택배 기사의 하루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다. 밤새 허브터미널에서 분류 및 상.하차 된 물품들은 전국 각지의 서브터미널로 이송된다. 택배 기사들의 업무는 지역터미널로 모인 물품들을 다시 분류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 택배 기사 A씨(서울특별시 중랑구·50)의 업무는 아침 7시에 물품을 분류하며 시작된다. 한 레일에 4명의 택배 기사들이 배정돼 물품을 분류하는데, A씨가 일하는 터미널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자동분류기가 설치돼 있어 역순으로 정리해 싣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3시간 정도 분류 작업을 한 후 본격적인 배송을 시작하는데 한가할 땐 터미널 내 식당에서 늦은 아침을 먹기도 하지만, 바쁠 때는 어쩔 수 없이 거르거나 트럭을 운전하며 김밥이나 빵으로 때울 수밖에 없다. 15년 동안 택배업에 종사해온 A씨지만 아직도 김치나 쌀 등 무거운 물건을 배달하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너무 힘들 때는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가장으로서 가족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트럭을 가득 채운 물품들을 모두 배송하고 나면 같은 과정을 한 번 더 반복해야 택배 기사로서의 하루가 끝난다. A씨는 최소 400개 정도의 물품을 배달하며 하루 13시간 이상 노동을 한다. 신체.정신적으로 힘들 때가 많지만 고객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작지만 마음이 담긴 음료수 한 병이 그를 다시 일어나게 한다.
# 택배 기사 B씨(대전광역시 서구·36)에게 택배 기사라는 직업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이다. 택배 기사 중 여성은 흔치 않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많은 차별을 겪기도 했고 스스로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여성 택배 기사의 비율은 전국적으로 15% 정도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택배를 운반하는 그의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기도 한다. 크고 무거운 상자를 옮길 때마다 팔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끼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 일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퇴근 후 기진맥진해 누운 B씨의 팔과 다리는 멍투성이지만 자신이 선택한 직업이기에 후회는 없다.
열악한 환경이 불러온 파업
지난 8월 6일, CJ 대한통운 대전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하던 20대 남성이 감전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로부터 세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 10월 29일, 같은 물류센터에서 한 노동자가 후진하는 트레일러에 껴 사망했다. 잇따른 택배 노동자의 죽음으로 이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개선요구가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에 지난달 21일, 약 800여 명의 CJ 대한통운 택배 기사들은 서울특별시 중구 CJ 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택배노동자총파업대회를 열어 ‘노동조합 인정’과 ‘택배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에 참여한 CJ 대한통운 택배 기사의 수는 CJ 대한통운 전체 기사의 4%에 불과했지만 택배 기사 파업으로 ▲울산 ▲창원 ▲경주 ▲김해 ▲광주광역시(이하 광주시) ▲분당 ▲여주 ▲이천의 일부 지역에서 배송 차질이 빚어졌다. 이에 대해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이하 택배노조) 김진일 정책국장은 “택배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혹한, 폭염, 피부병 등 처참한 근무환경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며 “노동자들을 한낱 레일의 부속품으로 여기는 CJ 대한통운의 반노동적 행태로 인해 석 달 사이 3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사측에 ▲택배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해 공식 사과하라 ▲다단계 하청으로 책임과 위험을 외면하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라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공짜노동 분류작업 개선, 270여 개 서브터미널 환경 개선 등을 위한 교섭을 요구했지만 본사 측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우리의 의견을 묵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택배노조는 이날 시위에서 “CJ 대한통운의 ‘빠르고 즐거운 택배’라는 슬로건이 노동자들을 위험으로 내몰고 있다”며 ‘빠른 택배보다 안전한 택배 만들기’를 호소했다. 또한, 무보수로 약 7시간 정도의 시간을 분류 작업에 투자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개선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사측은 택배 분류 작업이 하루 7시간이 아닌 3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는 입장만을 발표한 채 택배노조 측의 입장에는 아무런 답이 없는 상태이다. 이에 대해 김진일 정책국장은 “원만한 해결을 위해 본사 측에 면담을 통한 문제해결을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응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편 지난달 28일 저녁, 택배노조와 800여 명의 택배 기사들은 “CJ 대한통운이 파업지역 택배 접수를 중단하는 이른바 집하금지 조치를 하면서 피해가 커지고 있다”며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지난달 29일 자정부터 배송업무를 재개한다”고 밝혔다.
택배 기사의 근무 실태
올해 상반기, CJ 대한통운은 택배 기사의 근무환경을 더욱 열악하게 만드는 ‘배송다변화’를 일방적으로 추진했다. 배송다변화는 2인 1조 시스템을 적용해 지역별로 오전, 오후 한 차례씩 택배트럭이 출발하는 시스템이다. 새벽에 도착해 분류된 택배들이 오전 9시 반에서 10시경 1차 배송을 나가고, 이후 도착한 물량은 오후에 2차 배송이 진행되는 식으로 운영된다. 이에 택배 기사들은 <CJ대한통운택배기사권리찾기전국모임>(이하 권리찾기모임)을 꾸렸다. 권리찾기모임 측은 전국적으로 퍼져있는 307명의 택배 기사를 대상으로 택배 기사 근무 환경 실태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 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답한 택배 기사들 중 75% 이상이 주 70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었으며 절반인 47.5%의 기사들이 점심식사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함께 69.7%에 달하는 기사들이 오후 8시를 넘어서까지 근무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대부분의 택배 기사들이 오전 7시 이전에 출근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하루 13시간 이상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오래 일하는 택배 기사들의 휴식 시간은 제대로 보장되고 있을까. 설문 조사에 따르면 대다수의(97.3%) 택배 기사가 ‘나에겐 휴식 시간이 없다’라고 응답했다. 기사들에게 휴식시간이 없는 이유는 택배 기사들이 서브터미널에서 물품 하차와 분류 작업을 도맡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근무환경 ▲근무시간 ▲노동강도에 대해 약 90%의 기사들이 불만을 나타내고 있었다.
권리찾기모임 관계자는 “택배 기사에 대한 사측의 대우는 매우 불합리하다”며 “회사의 양적 성장을 위해 기사들을 무시하고 희생만 강요하는 사측의 태도는 매우 실망스럽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택배 기사가 맡고 있는 분류작업은 적게는 4시간, 많게는 6시간이 넘도록 이어지는데, 이는 택배 기사에게 엄청난 고역”이라며 “하지만 사측에서는 ‘관행’이라는 미명하에 무임금으로 택배 기사의 노동을 착취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김진일 정책국장 역시 “사측에서는 ‘특수고용노동자’라는 택배 기사의 지위를 악용해 공짜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며 “원청인 CJ대한통운 측에서 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에서도 이번 택배 파업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과 A관계자는 “이번 사고에 대해 사측으로부터 사업장에 대한 개선 계획을 받았고 택배 노동자를 인터뷰해 근무 환경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며 “근로감독관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및 민간 전문기관이 합동해 관련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노동자의 사망 사고가 우리나라에서 적지 않게 발생한다”며 “고용노동부는 사고 예방을 위해 노력하는 부처인 만큼, 사고 예방을 위해 계속해서 노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택배 기사 A씨는 “터미널이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도 춥거나 덥고, 먼지가 많은 등 근무환경이 열악하다”며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택배비가 저렴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택배비의 인상을 통해 택배 기사 처우 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택배 파업에 대한 시민들의 목소리
약 8일 동안 CJ 대한통운 택배 기사들의 파업이 이어지면서 배송 중단 지역의 고객 불만도 높아졌다. 택배 기사의 파업 기간 동안 발생한 배송 피해 사례와 파업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A (광주시 남구·45)
급하게 화장품이 필요해 주문을 했고, CJ 대한통운으로 배송되는 것을 확인했는데 10일이 지나도록 물건이 오지 않아 확인해 보니 광주시까지는 배송이 됐지만 택배 기사 파업으로 물건을 받지 못했던 거였어요. 그 사실을 알고 주문을 취소했는데 택배를 기다린 10일의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파업을 하게 됐으면 소비자에게 확실히 알려줬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파업을 하는 입장은 이해가 가지만 소비자로서 받은 피해를 생각하면 마냥 옹호할 수만은 없네요.
B (광주시 남구·47)
사건이 터진 후 물품이 일주일 이상 배송되지 않아 직접 우편집중국을 방문해 물품을 받아온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급한 택배일 수도 있는데 그것을 무시한 채 배송을 막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이해할 수가 없는 행위입니다.
김도영 (여주시 오금동·18)
4일전 A/S 문제로 택배를 부쳤는데, 아직 해당 서비스센터로 도착하지 않았다고 해 조금 불안합니다. 저에게 급한 택배여서 하루빨리 문제가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지만 택배 기사님들도 일에 대한 만족과 행복을 느끼셨으면 하는 바람에 이번 사태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불평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김지연 (청주시 서원구·20)
평소에 택배로 물건을 많이 시키는데 배송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혹시 중간에 잘못된 건 아닌지 항상 마음 졸이며 배송 위치를 조회해요. 택배는 저를 비롯한 현대인의 삶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택배 파업이 사회에 큰 혼란을 빚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가끔 택배 아르바이트를 가서 택배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기사님들이 힘든 걸 알기 때문에 택배 파업에 대해 응원은 하지만 제가 사는 청주시의 택배 기사들이 파업을 했다면 짜증이 많이 났을 것 같아요. 어서 CJ 대한통운이 택배 기사님들의 처우를 개선했으면 좋겠습니다.
유성혜 (인천광역시 서구·41)
택배 운송하는 시간 외에 물건 상.하차하는 시간도 엄연히 근무시간이라고 생각하며 업체는 기사들이 일한 만큼 정당한 수당을 지불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택배 상.하차 시간이 근무시간이 아니라면, 상.하차 직원이 따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근 세 달간 3명의 택배 노동자 사망이 초래한 이번 파업은 약 8일 간의 파업 및 시위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비록 노조 측의 요구사항이 사측에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이번 파업은 택배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박시형 기자
sh981126@cbnu.ac.kr
김채완 기자
kimchaewan@cbnu.ac.kr








박시형&김채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