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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유림
<기획>영화 속 숨은 심리학을 만나다
제 799 호    발행일 : 2009.02.16 
책장 속 ‘고리타분한 학문’이 아닌 세상 속에 스며있는 ‘쉬운 심리학’

  우리는 생각한대로 행동에 옮기지 못할 때가 많다. 누구나 한번쯤 머리로는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몸은 이미 컴퓨터를 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인지부조화’라고 부른다. 이 인지부조화이론에서는 ‘사람은 행동과 생각이 일치해야 안정감을 얻기 때문에 인지부조화가 일어나면 행동이나 생각을 바꿔버리곤 한다’고 말한다. 생각(공부)과 행동(컴퓨터)이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는 컴퓨터에서 다시 책상으로 몸을 돌려 행동을 바꾸지만, 곧 ‘10분만 컴퓨터하고 공부하자’라고 생각을 바꾼다.

  이렇듯 심리학은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있다. 이번에는 우리가 즐겁게 보았던 영화와 책 속에 숨어 있는 흥미로운 심리학을 공부해보자.


무능력한 자신을 가리는 가면, ‘페르소나’


  가끔 세상을 살다보면 스스로가 무능력하게 느껴지고 한없이 작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남들은 자신의 갈 길을 가며 성공 가도를 달리는데 나만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이 아닐까 불안해지는 것이다. 영화 ‘반칙왕’의 주인공 대호(송강호)도 그런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중 하나다. 영화 속의 대호는 지각을 일삼고 실적도 올리지 못하는 무능력한 은행원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런 그도 ‘타이거 마스크’라는 가면만 쓰면 자신의 자아를 능동적으로 찾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 속에서는 대호가 실제로 가면을 쓰고 행동하지만, 실제 우리들도 생활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가면’을 바꿔 쓰며 살아가고 있다. 심리학에서는 그런 가면을 가리켜 ‘페르소나’라고 부른다. 시끄럽고 코믹스러운 이미지로 티비와 영화에서 웃음을 주는 배우 임원희가 실제로는 굉장히 과묵한 성격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페르소나가 무엇인지 잘 설명된다. 우리도 상황에 따라 본래의 자신과는 다르게 행동할 때가 있지 않은가. 다르게 행동할 때 나오는 것이 바로 페르소나, 즉 가면인 것이다. 바로 이 페르소나가 사회적인 지위가 낮고 무기력한 대호로 하여금 ‘타이거 마스크’라는 가면을 통해 새로운 자아를 형성하고 평소의 소심한 임대호가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허영만 화백의 만화를 원작으로 제작해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타짜’. 이 영화의 주인공 고니(조승우)는 우연한 계기로 도박에 손을 댔다가 모든 돈을 잃고 본격적으로 도박의 세계로 뛰어들게 된다. 고니는 잃었던 돈의 5배만 벌면 도박을 그만두겠다고 결심하고 도박판에 뛰어들었지만 끝내 결심을 지키지 못하고 도박을 계속한다. 이렇게 도박을 끊지 못하고 중독의 상태에 이르는 것은 ‘충동조절장애’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심리학자 스키너(B.F.Skinner)의 상자 실험을 통해서 이 같은 중독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버튼이 달린 상자 안에 쥐가 있다. 이 버튼을 누르면 상자 안으로 먹이가 떨어진다. 첫 번째 실험에서는 버튼을 누를 때마다 먹이가 나오게 했다. 쥐들은 배가 고플 때 버튼을 눌렀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버튼을 눌러서 먹이가 바로 나올 수도 있고 나오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을 만들어 먹이가 무작위로 나오게 만들었다. 그러자 쥐들은 강박적으로 버튼을 계속해서 눌렀다. 이런 모습을 바로 도박 중독자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도박은 당첨이 확실하지 않아 큰돈을 벌 수도, 잃을 수도 있지만 중독자들은 그 불안정한 긴장감에 중독되어 계속 도박을 해야 편안해지는 심리 상태가 된다. 도박에 중독된 사람들은 이 편안한 심리 상태를 원하기 때문에 도박을 위해 모든 일을 서슴지 않으며 끊임없이 ‘충동조절장애’를 겪는다.


의도적인 기억의 왜곡, 영화 ‘메멘토’


  누구에게나 안 좋은 기억,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다. 수작으로 꼽히는 영화 ‘메멘토’는 인간의 심리와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주인공 레너드(가이 피어스)가 아내를 강간하는 범인을 잡으려다 뒤에 있던 공범에게 각목으로 머리를 맞아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충격으로 레너드는 10분 이상 새로운 기억을 지속하지 못하게 된다. 아내를 살해한 범인을 찾아야 하는데 바로 10분 전의 상황도 기억하지 못해 메모하거나 사진을 찍어 남기고 중요한 사실은 몸에 문신을 새겨 기억하려고 한다. 레너드는 이렇게 죽을 각오로 범인을 찾아다니지만 마지막에 밝혀진 건 결국 아내를 죽인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이었다. 레너드는 자신이 아내를 죽였다는 기억을 의도적으로 지운 것이다.

  메멘토에서는 우리가 객관적이고 정확하다고 믿던 기억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이야기한다. 사람은 의도적으로 기억을 망각할 수 있다. 심리학자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성욕이나 학대의 경험과 같은 기억은 스스로에 의해 의도적으로 망각돼 무의식의 세계에 자리 잡아 이후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레너드가 자신이 아내를 죽였다는 기억을 왜곡해버리고 자기방어를 위해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고 끊임없이 범인을 찾아 나서는 이유다.

  일상생활을 해칠 정도는 아니지만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강박’은 거의 모든 이들에게 존재한다. 큰 인기를 끌며 드라마로까지 만들어졌던 일본 소설 ‘공중그네’ 속 인물들은 일상에서 어느 순간 강박을 느끼거나 늘 했던 일을 처리하지 못해 이라부 종합병원의 정신과 의사 이라부를 찾는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보이는 강박증은 불안 장애의 하나이다. 불안장애를 앓는 사람은 손 씻기, 숫자 세기, 확인하기, 청소하기 등과 같은 행동을 반복적으로 함으로써 강박적인 생각을 멈추려고 한다. 하지만 손 씻기와 같은 행동은 일시적인 편안함을 제공할 뿐 불안을 더 크게 만든다. 심리 강박에 젖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은 고민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자신을 이상하게 볼 거라는 생각에 혼자 끙끙 앓다가 이라부에게 털어놓고 이라부는 그 이야기를 들어주며 환자들과 소통한다. 이라부의 기괴한 행동이 처음에는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바로 그 행동이 문제를 당당하게 마주하고 해결하는 인지 행동 치료의 방법이다.

  강박증은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에 강박증 환자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허점을 보이지 않으려고 솔직해지는 일을 피하려 한다. 때문에 이라부식 심리 처방은 등장인물들이 솔직하게 변화하고 즐거운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확실한 처방이다.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고 엄격해 보이고 싶은 심리가 불러온 ‘병’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치료제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마돈나가 되고 싶은 천하장사의 ‘성정체감장애’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에는 평범하지 않은 성 정체성을 가진 주인공 동구(류덕환)가 등장한다. 동구에게는 인생에 실패한 권투 선수 출신 아버지와 철모를 때 일찍 결혼해 자신을 낳았지만 아버지의 손찌검과 행패에 집을 나간 엄마,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점점 닮아가는 남동생이 있다. 이런 가정환경에서 동구는 마돈나의 노래를 듣고 마돈나 같은 가수를 꿈꾸게 된다. 동구는 성전환 수술을 결심하고 수술비 마련을 위해 씨름부에 들어간다. 전통적 남성성의 상징인 씨름을 통해 여성이 되고 싶은 꿈을 이루려는 동구.

  동구처럼 자신의 성을 부정하고 반대의 성이 되고 싶어 하는 이런 현상을 가리켜 심리학에서는 성정체감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라 부른다. 성정체감장애를 가진 사람은 반대 성이 되고 싶은 강한 열망을 지속적으로 표현하고, 자신의 성에 대해 불쾌감을 느껴서 부적절하게 생각하는데 이러한 행동은 어린 시절 부모의 태도, 대인 관계 문제, 동경하는 상대에 대한 열망 등이 그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동구의 경우는 비정상적인 가정환경에서 마돈나의 음악을 들으며 동경하게 된 것이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어렵고 두꺼운 심리학 교재에만 있을 것 같았던 심리학을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와 소설 속에서 찾아보았다. 하지만 조금 더 가깝게 보면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도 심리학적 요소가 있다. ‘빵+쿠키 3000원’이라는 표시가 붙은 제품과 ‘빵 3000원(+서비스 쿠키)’라는 표시가 붙은 제품 중 후자가 더 잘 팔린다는 사실 알고 있는가? 바로 사람들의 공짜 심리를 이용한 마케팅의 예이다. 이렇듯 심리학은 우리 생활 곳곳에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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