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 낙엽이 발에 부딪치며 소리를 낸다. 일찍 와버린 추위로 곱던 단풍도 고개를 숙인 탓이다. 아쉬운 가을의 끝자락에 사창동에 있는 한 미술관을 찾았다.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계탑 근처의 수많은 골목들 중 눈에 띄는 간판이 보인다. 바로 ‘무심갤러리’다.
이런곳에 갤러리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소박한 문이 관람객을 맞는다. 이곳에서 이번 달 9일부터 18일까지 우리학교 미술과 김정희 교수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청주 무심갤러리와 서울UM갤러리가 공동선정한 ‘제8회 올해의 좋은 작가 미술상’ 수상을 기념하는 초대전으로 총 14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계단을 내려가니 40평 남짓의 작은 미술관이 눈앞에 펼쳐졌다. 전시장으로 들어서자 조용하고 평온한 분위기에 압도된다. 작품으로 생긴 그림자는 욕실 타일 같은 바닥을 캔버스 삼아 또 다른 그림을 만든다.






 
디귿(ㄷ)자 형태의 벽면에는 그릇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걸려있다. 모양과 크기, 색깔 모두 다양하지만 하나같이 똑같은 그릇들이다. 갤러리라는 화려한 이름과는 달리 너무나 평범한 작품들에 실망하기엔 아직 이르다. 관람객 자신의 시간을 내주고 걸음걸이를 늦춰 다시 돌아보면 새로운 ‘그릇’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미술관에서는 총 3종류의 그림을 관람할 수 있다. 회색 바탕의 캔버스에 그릇을 그린 작품, 골판지에 갈고리를 이용해 그릇 모양을 새긴 작품, 어두운 바탕의 캔버스에 사포로 그릇을 만든 작품. 특히 골판지에 새겨 만든 작품은 매우 생소한 느낌이다. 그러나 그림을 본 관람객들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을 느낀다.
바라볼수록 작품 속의 그릇은 새롭다. 물질과 물질, 물질과 감성, 평면과 입체, 진정한 행위와 환상은 서로 충돌되고 보완되어 조화롭게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 듯 했다.
지금까지 작가의 전시회 주제는 늘 ‘thing’이었다. 지난 2007년 'some·thing', 2009년 'every ·thing'에 이어 올해는 ‘draw·thing’ 시리즈다. 이번에 열리는 ‘draw·thing’은 덧칠된 두터운 캔버스 속에서 작가가 예술의 진정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번 전시회의 화두는 ‘그리기란 무엇인가’다. 김교수가 생각하는 그리기란 과연 무엇일까. 그는 아직까지 그 해답을 찾지 못해 ‘그리기’를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해답을 찾는 작가의 부단한 노력이 바로 ‘그리기’인 것이다. 이러한 고뇌로 매번 독특한 아이디어와 다양한 형태, 기법을 보여주는 작가의 전시회는 관람객에게 늘 반갑게 다가온다.
갤러리를 찾은 관람객 중에는 작가의 작품을 보고 갸우뚱 거리는 사람도 있다. ‘똑같은 그릇만 그려져 있는데 저게 미술인가.’ 앞으로 이러한 감상에 의아해 할 필요가 없다. 관람객 개개인만의 감수성으로 작품을 대하는 것이 바로 김정희의 미술 감상법이기 때문이다. 이곳을 찾은 관람객은 저마다 다른 삶의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미술관에 모여 작품을 보면 모두가 작품 속에 녹아든다.
가을의 늦자락을 지나 겨울의 문턱에 다가온 요즘, 가까운 무심갤러리를 찾아가 김교수의 작품에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
남소연 기자 suwon1995@cb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