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스와 피카소는 20세기 전반 미술계의 최대 라이벌로 알려져 있다. 서로 다른 미술의 길을 걸어온 두 사람에게는 남다른 인연이 있다.
어느 날, 피카소가 파리에서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전시회를 찾지 않았다. 어렸을 적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아온 피카소에게 사람들의 무관심은 큰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이때에도 그를 인정해준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마티스였다. 마티스는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분명 천재적인 화가”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때부터 피카소는 유일하게 자신을 인정해준 마티스를 멘토로 여기고 따랐다.
하지만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둘 사이가 멀어지는 계기를 맞는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사진 때문이었다. 20세기 초 사진이 예술의 한 분야로 자리 잡게 되면서 화가들은 새로운 화법을 찾게 됐는데 마티스와 피카소는 이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마티스는 예민하고 항상 신중했던 반면 피카소는 열정적이고 늘 직감에 의존했다. 이런 성격 차이에서 나온 화풍의 대립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는데, 마티스는 피카소의 콜라주 작품을 쓰레기라고 칭하며 비하했고 피카소는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50여 년을 살아온 마티스의 성격을 멸시했다. 그렇게 이 둘의 사이는 계속해 악화될 뿐 나아질 기미가 보이진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둘의 사이를 가로막았던 대립이란 벽은 마티스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허물어졌다. 마티스는 건강이 쇠약해지면서 1954년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피카소의 그림 옆에 내 그림을 두지 마라. 나의 그림이 피카소의 열정으로 인해 빛을 잃을 테니까”이란 말을 남기며 숨을 거뒀다. 그는 피카소와 라이벌 관계였지만 사실 피카소의 재능을 늘 인정해왔던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피카소는 슬픔과 죄책감으로 인해 마티스의 장례식장을 찾아가지 못했다. 대신 <캘리포니아 화실>이라는 그림으로 마티스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표현했다. 또한 피카소는 “마티스는 내 영원한 멘토이자 최고의 라이벌”이란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처럼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달랐지만, 사진의 등장을 인해 달라진 미술의 미래를 걱정했던 두 사람. 잠시 서로 대립하는 시기도 있었지만 결국엔 서로의 재능을 인정하며 최고라 칭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빛나는 우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홍지희 기자 hjh38124@cbnu.ac.kr
류도연 기자 tjdwls9933@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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