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직 한여름도 안 됐는데, 벌써 땀이 흘러내린다. 주위를 둘러보니 길거리 사람들의 옷차림은 이미 짧아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긴 옷을 걸치고 있다. ‘드디어 제모를 해야만 하는 계절이 온 것인가…’. 사무직의 특성상 단정한 옷차림이면 괜찮았지만 더워지는 날씨에 긴 옷을 입고 업무를 보자니 능률도 떨어지고 은근히 다른 사람들의 눈치도 보인다. 돈도 들고 귀찮기도 하고 가끔은 털 많은 여자로 태어났다는 게 서글프기도 하다. ‘셀프로 할까, 전문가한테 맡길까?’ 고민하면서 인터넷을 검색해본다. - 직장인 박주희(인천 서구.29)
#2. 고3 수능시험을 마치자마자 달려갔던 곳이 피부과. 20대는 털 없는 매끈한 피부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 번 그 맛(?)을 보니 정기적으로 피부과를 찾아 관리를 받고 있다. 어느 덧 햇수로만 7년째 관리를 받고 있는데 덕분에 계절과는 상관없이 입고 싶은 옷을 마음대로 입고 다닌다. 본의 아니게 패션피플이라는 소리도 듣고 있는데 그 즐거움이 꽤 크다. 지금은 취업준비생이라 돈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만둘 수 없다. 내가 당당하게 다닐 수 있는 힘은 바로 제모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 취업준비생 서동연(창원시 성산구.25)
여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은 겨우내 꽁꽁 감춰뒀던 털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분명 우리 몸에 필요하기 때문에 털이 나는 것인데 그렇다고 가만히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처럼 제모는 여름을 맞이하는 사람들에게 피할 수 없는 요소가 된 지 오래다. 게다가 요즘은 겨드랑이 제모를 비롯해 팔 제모, 다리 제모, 헤어라인 제모 등 제모시술에 있어 기본적인 신체 부위는 물론이고, 비키니라인 제모나 브라질리언 제모* 등 다소 민감한 부위의 시술도 증가하고 있다. 이에 충북대신문에서는 당당한 여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물인 제모 도구와 제모에 대한 달라지는 남녀의 인식, 그리고 올바른 상식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브라질리언 제모: 생식기와 항문 쪽에 난 음모를 모두 제거하는 시술
진화하는 제모 도구
털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먼저 찾는 것은 가정에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모 도구다. 가장 저렴하면서도 원초적인 방법은 족집게를 이용해 제거하는 것이다. 뾰족한 족집게를 하나 구해 장인 정신을 가지고 한 올 한 올 정성스럽게 뿌리째 뽑아나가면 된다. 좀 더 간편한 방법은 왁싱이다. 왁스를 피부에 발랐다가 굳으면 떼어내어 제거하는 방법인데 고통과 자극은 여전하지만 족집게보다 그 속도와 제모 후 관리 면에서 조금 더 나아졌다. 제모의 고통에서 해방시켜주는 다양한 제모 크림도 등장했다. 털을 녹여 고통 없이 빠르게 제거하는 장점이 있지만 제모 효과가 1주일 정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는 취약점이 있다. 또 다른 도구로는 모근을 제거해주는 전동 제모 기계가 있다. 하지만 10만 원이 넘는 가격에 대한 부담은 물론 제모의 고통을 완전히 덜어주지는 못했다.
이처럼 집에서 면도를 하거나 제모 왁스 등으로 통증을 감수하며 미운 털들을 제거해 보지만 모두 일시적일 뿐이다. 또한 제모 왁스나 족집게로 뽑는 방식으로 털을 제거하다 모낭염이 생기고 그로 인해 피부에 색소 침착이 일어나 여름 내내 긴 팔이나 긴 바지를 입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요즘에는 가정에서 스스로 하던 제모의 단점은 줄이고 장점은 살린 레이저를 이용한 영구제모술이 많이 이용되고 있다. 병원에서 실시하는 영구제모술은 성장기 모낭의 멜라닌 세포를 선택적으로 파괴해 털의 성장을 억제시킨다. 통증도 적고, 치료 시간도 짧으며, 시술 후 부작용도 거의 없는 편리한 방법인데다 무엇보다도 효과가 오래간다는 사실이 가장 큰 장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레이저 제모 치료법은 단 한 번의 시술로는 만족할 만한 효과를 보기가 어렵다. 부위별로 적게는 3회에서 5회 혹은 많게는 5회에서 8회 정도 시술을 해야 한다. 그리고 치료 간격은 4주가 적당하다.
최근에는 의사 없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가정용 레이저 제모기도 등장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가정용 제모기의 레이저 원리는 병원용 레이저와 비슷한데, 레이저가 털의 검은 색소만을 공격해 보이지 않는 털의 모낭까지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50만 원대의 높은 가격으로 선택을 망설이게 하지만 팔, 다리, 겨드랑이는 물론, 인중과 비키니 라인, 손가락, 발등까지 거의 모든 부위의 제모가 가능해 인기를 얻고 있다. 피부과에서 받는 영구제모술처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모, 성역을 파괴하다?!
흔히들 ‘제모’하면 여성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최근에는 그러한 개념이 상당히 모호해졌다. 아름다운 외모를 위해 제모를 시작하는 남성들이 있는가 하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한다는 의미에서 제모를 하지 않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아예 제모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사이클 선수의 경우, 다리 털 을 제모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더 좋은 결과를 낸다는 것이 사실로 입증됐다. 따라서 사이클 선수에게 다리 털을 제거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이었다. 하지만 그 외의 남성들에게 제모는 수염이나 코털을 제거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요즘은 다르다. 제모를 하는 남성도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대학생 A(27) 씨는 온라인에서 왁싱 제품을 구입해 스스로 다리 제모를 한다. A씨는 “여름에 반바지를 많이 입는 편인데 털을 밀지 않고 입으니 보기 흉해서 제모를 하기 시작했다”며 “제모를 하고 나니 깔끔한 느낌이 들어서 2년 전부터 꾸준히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학교 김도현(환경공학과.14) 학생은 “여자 친구의 권유로 눈썹을 깎아봤는데 훨씬 인상이 깔끔해졌다”며 “요즘은 남성들도 미용의 목적으로 제모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해 G마켓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남성용 제모 용품 매출은 2013년보다 74% 증가했다. 특히 왁싱.패치를 구매한 남성은 133%, 눈썹.잔털정리기는 99%, 레이저 제모기는 286%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상당구에 위치한 와인피부과 관계자는 “하루에 2, 3명 정도의 남성분들이 제모 관리를 받기 위해서 꾸준히 병원을 방문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여성들의 제모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지만 그 가운데서도 자신의 털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드러내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털 많은 다리 클럽’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엔 털이 무성한 다리 사진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올라와 있다. 대부분 여성들이 직접 제모를 하지 않은 자신의 다리 사진을 올린 것이다. 이 커뮤니티는 ‘털이 무성한 여성의 다리 사진을 올려라’는 글로 시작하면서 “이곳은 긍정적인 공간이며 부정적인 글이나 사진이 게시되지 않은 글은 차단될 수 있다”고 공지하고 있다. 한 여성은 털이 무성한 자신의 다리 사진을 올리며 “이 커뮤니티는 나에게 영감을 줬다”면서 “우리 몸은 그 자체로도 충분해 매일 아침마다 시간을 내면서 털을 깎을 필요가 없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 벤 호퍼(Ben Hopper)는 지난해, 여성들의 겨드랑이 털을 소재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그는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세련된 여성미와 함께,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본연의 모습인 겨드랑이 털을 보여주면서 대조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이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놀라길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이청 기자 echung77@cbnu.ac.kr
최영은 기자 choyouneu@cbnu.ac.kr








이청 & 최영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