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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노을
덕후, 숨지말고 나와라
제 917 호    발행일 : 201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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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덕후’라는 단어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다. 덕후는 ‘어떤 분야에 파고들어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보유한 사람’이지만, 그보다는 ‘사회성이 결핍된 사람’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렇기 때문에 덕후는 숨겨야 하는 부정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은 덕후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많은 덕후들이 자신이 덕후임을 당당하게 외치고 있다. 어둡고 음침하다고 생각됐던 덕후는 어떻게 능력자로 추앙받을 수 있었을까?


따뜻한 시선이 가져온 긍정적인 변화

  지난해 시장조사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전국 만 19세~59세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취미생활’과 ‘덕후 신드롬’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 결과,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의 66.5%가 “요즘 뭔가에 빠져 열심히 즐기는 사람을 보면 왠지 부럽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설문조사를 통해 덕후를 바라보는 시선도 살펴볼 수 있었다. 전체 68.8%가 “덕후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고 응답했다. 더불어, 덕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많지 않았다. “덕후들을 능력자처럼 인식하는 요즘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의견은 20.4%에 불과했다. 덕후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타인과 관계를 잘 맺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응답자의 12.4%만이 덕후들은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답했다. 이희진(인천광역시 남구·21) 씨는 “덕후라는 말은 단순히 좋아하는 것 그 이상의 느낌을 준다”며 “덕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 사람은 그 분야에 엄청난 관심과 열정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덕후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이 증가하면서 이른바 ‘덕밍아웃’(자신의 덕후 성향을 주위에 공개하는 것)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특히, 과거에 연예인, 게임, 만화 등으로 한정됐던 덕후가 이제는 다양한 분야, 물건 등에도 당당하게 애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녹차 덕후, 매운맛 덕후, 버스 덕후 등 덕후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한복에 대해 많은 관심과 열정을 가진 권미루 한복여행가는 본인을 한복 덕후라 소개한다. 그는 ‘덕업일치(덕질과 직업이 일치했다는 의미)’를 이룬 성공한 덕후다. 그는 한복에 대한 애정으로 ‘한복여행가’라는 직업을 만들었으며, 버스킹, 사진전 등 한복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를 주최했다. 권미루 한복여행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하는 것은 아침에 일어날 때 가슴이 두근거리는 상태로 깨어날 수 있다는 것”이라며 “한복을 입는 것은 지금의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더불어 미래의 나도 행복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대중문화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하다

  덕후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소재이기도 하다. 과거에도 덕후를 주제로 한 방송은 있었는데, 2009년에 방영한 ‘화성인 바이러스’가 바로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는 보통의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특이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2015년 방영된 ‘능력자들’은 달랐다. 능력자들은 매주 다양한 덕후들이 등장해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애정과 지식을 뽐내며 덕후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줬다. 이에 대해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이전 프로그램에서 덕후는 이해가 되지 않고 다른 세계 사람같아 멀리하고 싶은 부정적인 이미지였다”며 “능력자들은 이런 이미지를 극복하고, 덕후에 대해 개성과 능력이라는 긍정적인 키워드를 심어줬다”고 말했다.
  또한 덕후는 시장에서도 새로운 소비 집단으로 떠올랐고, 기업들은 덕후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화장품 회사인 더페이스샵은 카카오프렌즈, 디즈니와 콜라보 에디션을 출시했다. 덕후들의 취향을 저격한 이 제품은 완판을 기록한 것도 모자라 해외 시장까지 진출했다. 또한 GS25는 미니언즈와 협업한 미니언즈 우유를 선보였다.  미니언즈 우유는 SNS에서 화제가 돼 큰 인기를 끌었다. 김유진(청주시 상당구·21) 씨는 “미니언즈 덕후인데 GS25에서 미니언즈 우유가 판매돼 한동안 그 제품만 마셨다”며 “똑같은 제품이지만 좋아하는 캐릭터가 있는 제품은 그렇지 않은 제품에 비해 더 눈이 가고 사고 싶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덕후와 대중문화산업의 관계는 일방적인 소비자와 생산자의 관계가 아니다. 이제는 덕후가 소비자이면서 생산자의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덕후들은 대중문화산업의 2차 생산자 역할을 간접적으로 하고 있다”며 “가수 하니의 직캠(직접 캠코더로 찍은 동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가수 EXID의 ‘위아래’가 차트 역주행을 한 것도 덕후 문화가 기존 산업에 영향을 미친 사례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덕후인 사람들이 대중문화산업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파고들 때의 희열, 해당 문화 정서의 익숙함, 그리고 갈수록 전문성이 구체화되고 세분화되는 대중문화 콘텐츠의 발전상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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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이 아닌,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덕후

  과거에 존재했던 덕후에 대한 편견 중 하나는 ‘사회 문제에 무감각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 덕후는 이러한 편견을 깨고 사회문제 개선에 누구보다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7일 열린 8차 촛불집회에서는 아이돌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응원봉을 들고 집회에 참여했다. 집회를 주도한 엑소, 빅뱅, 비투비 팬들로 구성된 ‘민주팬덤연대’는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집회에 참여하는 팬덤으로 만들어졌다”며 “가장 소중한 빛, 사랑의 빛으로 ooo의 어둠을 이겨내려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우리가 가진 가장 밝은 빛을 보태서’가 적힌 피켓을 들고 지난 1월까지 집회에 참여했다.
  현재 연예인 덕후 문화의 특징은 활발한 기부다. 그룹 젝스키스의 팬들은 젝스키스의 이름으로 13톤에 달하는 쌀화환을 기부했으며, 가수 유노윤호의 팬들은 도서관 건립을 위해 광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2,000만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팬들은 숲 조성 등 이색적인 기부에도 활발하게 동참하고 있다. 가수 용준형의 팬덤인 ‘12시 19분’은 1,219만 원을 모아 인천광역시 서구에 있는 매립지 드림파크에 ‘용준형 숲 1호’를 만들었다. 우물을 기증하는 것도 현재 팬덤 사이에 유행하는 이색 기부 중 하나다. 배우 류준열의 팬사이트 ‘연어’는 첫 번째 팬미팅을 기념하기 위해 월드쉐어를 통해서 캄보디아에 ‘류준열 우물 1호’를 기증했다.실제 팬덤 기부에 참여했다는 A씨는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을 위해 기부에 참여했다”며 “기부를 하는 것은 좋아하는 아이돌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기여하는 일이기 때문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 덕후가 부정적인 편견을 받았던 이유는 우리가 오랫동안 외향적이고 사회적이며 남과 다르지 않은 평범함을 사회의 미덕으로 규정해왔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인정하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면서 덕후에 대한 편견들에 변화를 줘야 한다”고 덕후에 대한 재평가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한때 대중들의 오해와 편견에 부정당해야 했던 덕후, 이제 그들의 열정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줘야 할 때가 온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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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을 기자
doce26@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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