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에 개봉한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 주인공인 쿠퍼는 지구를 떠나 인간이 이주할 행성을 찾기 위해 우주로 향한다. 그때 쿠퍼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MP3로 소리를 듣는다. 그는 지구를 떠나 우주를 보고 불안해하는 로밀리 박사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이어폰과 MP3를 건넨다.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것은 지구의 소리. 바깥으로는 우주의 어둠이 펼쳐져 있지만,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물 흐르는 소리, 바람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는 그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편안함을 주는 속삭임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발표에 따르면,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10년 28만 9,500여 명에서 2015년 45만 6,000여 명으로, 5년 사이에 57% 이상으로 급증했다. 매년 수면장애를 호소하고 있는 환자들이 늘어나다 보니 이와 관련된 산업도 활발해지는 추세다. 침구류, 아로마 등 수면과 관련된 용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고, ASMR 역시 수면 유도에 좋은 콘텐츠로 알려져 세계적으로 큰 열풍이 일어나고 있다.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를 우리말로 하면 ‘자율감각쾌락반응’이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시각, 청각 등의 자극에 반응해 나타나는 형언하기 어려운 심리적 안정감이나 쾌감 따위의 감각적 경험을 일컫는 말이다. 정식 의학용어는 아니지만, 미국의 대체의학 분야에서 시작돼 2008년부터 유튜브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이후 미국, 호주 등에서 인기를 끌다가, 국내에서는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ASMR은 흔히 심신 안정과 수면 유도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유튜브에서 제작된 초기의 ASMR 동영상들은 바람 소리, 물 흐르는 소리와 같이 수면 유도를 위한 콘텐츠들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현재, ASMR은 단순히 수면 유도에만 목적을 두고 만들지 않는다. 유튜브에서 ASMR 콘텐츠를 제작하는 닉네임 수제비 씨는 “요즘에는 단순히 재미로만 ASMR을 시청하는 분들도 있어서 그런 분들을 위한 자극적인 소리도 제작하고 있다”며 “현재 ASMR은 무조건 수면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고 밝혔다. 실제로 ASMR 동영상들은 더 다양해졌다. 딱풀의 끈적끈적한 소리, 초콜릿, 알로에 써는 소리 등 주변의 다양한 사물을 이용하고 있다. 더 나아가 마사지샵, 심리 상담소 등 다양한 역할극을 하기도 한다. 수제비 씨는 “ASMR은 종류나 범위가 없는 것이 특징이자 매력”이라며 “이 때문에 더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고, 범위가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 보는 것만큼 듣는 것도 중요해
현재 유튜브에 ASMR을 검색하면 약 980만 개의 동영상이 검색된다. ASMR만을 전문으로 하는 채널 수도 약 200만 개에 달한다. 해외에서 가장 인기 있는 ASMR 채널 구독자는 약 100만 명 이상이다. 또한, 국내 상위 5개의 ASMR 채널 구독자 수는 약 60만 명에서 20만 명 사이로, 국내의 수요도 적지 않은 편이다.
ASMR의 수요가 점점 증가하면서 광고에서의 ASMR 소비도 활발해지고 있다. 유튜브가 발표한 올해 상반기에 제작된 광고의 인기 순위 ‘톱10’을 보면, ‘김풍이 들려주는 육개장칼국수 ASMR....라면 먹고 갈래?’가 1위를 차지했다. 이 동영상의 시각적인 부분은 일반적인 라면 광고와 비슷하지만, 청각적인 부분에서 도드라진 차이를 보였다. ‘라면 먹고 갈래?’라고 속삭이며 시작한 이 광고는 봉지의 바스락거림, 파를 썰고 가스 불을 붙이는 소리, 라면을 먹는 소리 등을 극대화해 시청자의 식욕을 자극했다. 이 동영상은 약 220만 건의 조회 수를 달성했다.
이처럼 ASMR은 제품의 특성을 잘 부각시킨다. ‘리츠’ 또한 ASMR을 통해 과자의 바삭한 식감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지난해에 제작된 이 광고는 과자 봉투를 뜯는 소리, 크래커를 먹을 때 나는 바삭한 소리를 극대화했다. 원색을 이용한 단순한 배경 위에서 ASMR을 참신하게 사용한 광고로 평가받고 있다. 조회 수는 약 600만 건에 이르며, 많은 ASMR 제작자들이 패러디할 정도로 화제가 됐다. 이외에도, 시각적으로 살릴 수 없었던 ‘화장품 바르는 소리’를 ASMR을 이용해 효과적으로 전달한 이니스프리의 광고 역시 큰 호응을 받았다.
이러한 광고들의 유튜브 댓글을 보면, ‘광고인데도 계속해서 보게 된다’, ‘참신하다’ 등의 긍정적인 반응이 주를 이뤘다. 정유진(인천광역시 남구.20) 씨는 “평소 동영상을 보다가 광고가 나오면 보지 않고 넘어가는 편이었는데 ASMR을 이용한 광고는 끝까지 보게 된다”며 “볼수록 편안해지고, 중독성이 강해서 여러 번 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ASMR 광고는 기존 광고와는 다르게 시청자가 스스로 즐기는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다.
연예인이 침대에 누워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팬과 대화하는 콘텐츠인 네이버 ‘눕방’은 ASMR의 또 다른 버전이다.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마치 자신이 직접 연예인과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콘텐츠로, 많은 연예인이 활발하게 이용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인터넷에서만 갇혀 있었던 ASMR이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국에서도 점차 이용되는 추세다. 유튜브에서 ASMR 콘텐츠를 제작하는 닉네임 밤하느리 씨는 “대부분의 콘텐츠는 제작할 때 영상미와 시각적인 부분을 많이 고려하지만, ASMR은 청각적인 부분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며 “이러한 ASMR의 특성이 사람들의 수요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ASMR, 아직은 알 수 없는 영역
ASMR은 아직 연구가 부족한 미지의 영역이다. 일반적으로 ASMR이 수면 유도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지만, 이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ASMR을 향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특히 많은 이들이 ASMR은 들으면 들을수록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부작용을 지적했다. 하지만 수제비 씨는 “ASMR을 오직 수면을 위한 목적으로 소비하면 당연히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ASMR은 수면제가 아니고, 수면에 좋다는 어떠한 과학적인 근거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ASMR을 들을 때 강박적으로 수면을 생각하지 말고, 다른 동영상을 보듯이 편안한 마음으로 접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밤하느리 씨는 “ASMR을 들으며 잠을 자는 것보다 나른해질 때 휴대폰을 끈 후 숙면하는 것을 권장한다”며, “자는 동안 이어폰을 착용하는 것과 소리가 계속 재생되는 것은 잠을 방해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또한 계속 시청하다 보면 ASMR이 주는 특유의 기분 좋은 느낌이 사라질 수도 있다”며 “이때는 동영상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이후에 다시 시청하면 된다”고 말했다. 수제비 씨는 “ASMR을 시청할 때 볼륨을 적당히 줄이고 화면을 어둡게 해서 시청하는 것이 좋다”고 전했다.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어요. 이제 괜찮아요. 오늘 밤도 잘 주무세요.’ ASMR은 하루 24시간을 ‘보면서 일해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넨다. 유튜브에서 ASMR 콘텐츠를 제작하는 닉네임 멜로디 씨는 “ASMR은 자극적인 콘텐츠들 사이에서 마음에 위안이 되는 휴식처”라며 “편안함을 찾기 위해 ASMR을 이용하게 되고 더 나아가 외로운 현대인들에게 친구와 같은 존재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ASMR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과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사회적 고립이 만연하고 있는 지금, ASMR은 얼굴도 모르는 타인에게 위로받고 치유할 수 있는 유용한 콘텐츠가 아닐까. 바쁜 생활 속에 지친 당신에게, ASMR로 오늘의 고단한 마음을 달래보기를 권한다.
김노을 기자
doce26@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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