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후에 찾으러 오세요.” 과거 사진관에 필름을 맡기면 사진사가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 말은 추억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디지털에 밀린 아날로그 사진은 향수를 불러오는 것으로 기억됐다. 그런데 선명하지 못한 화질, 번진 빛, 어두운 분위기인 아날로그 사진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다. 불편함을 알면서도 빠져드는 아날로그 사진의 매력, 이를 탐구해보자.
한 컷 한 컷 정성스러운 카메라가 좋아
2000년대, 본격적으로 디지털카메라가 대중화되면서 아날로그 방식의 카메라(이하 필름카메라)는 급격하게 쇠퇴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카메라가 장착된 스마트폰의 보급은 필름카메라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했다.
그러나 현재, 필름카메라의 수요는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지난해 12월 온라인 쇼핑몰 G마켓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2월 한 달 동안 DSLR은 7%, 미러리스 카메라는 12% 정도로 판매량이 감소한 데 반해, 일회용 필름카메라의 판매량은 55% 이상 증가했다. 또한, 지난 7월 필름제조업체인 후지필름은 일회용 필름카메라인 ‘퀵 스냅’의 누적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200% 이상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필름카메라의 인기와 맞물려 필름의 수요도 늘어나고 있는데, ‘후지필름 C200’은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해 판매량이 30% 이상 증가했다.
독특하게도, 현재 필름카메라를 소비하고 있는 고객층은 필름카메라를 경험해 보지 못한 디지털 세대, 이른바 2030 청년층이다.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카메라 전문점을 운영하는 A씨는 “과거보다 필름카메라의 수요가 월등히 높아졌다”며 “주로 20대 초.중반 대학생과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고,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분들이 아니라 취미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밝혔다. 문유진(인천광역시 남구·31) 씨는 “디지털로는 표현할 수 없는 필름카메라의 분위기에 매료돼 취미로 시작했다”며 “필름카메라는 촬영하는 횟수도 제한돼 있고 날씨, 필름, 빛에 따라서 사진이 달라지기 때문에 공부하면서 찍는 재미가 있다”고 밝혔다.
아날로그가 디지털을 만날 때
요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의 SNS에서는 ‘아날로그 감성’을 담은 사진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러한 인기에 맞춰 모바일 앱, 사진 부스 등 디지털로도 간편하게 아날로그의 감성을 담을 수 있게 됐다.
‘구닥’은 아날로그 감성을 담은 카메라 앱 중 현재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앱은 ‘앱스토어 유료 앱 인기순위’ 1위를 5주 동안 기록했다. 그뿐만 아니라 대만, 태국, 필리핀 등 해외 8개국의 유료 앱 1위를 기록하며, 총 17개 나라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렇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앱이지만, 구닥은 사용하기에 편한 앱은 아니다. 필름카메라의 뷰파인더처럼 작은 화면을 통해 피사체 확인이 가능하며, 한 필름 당 24장밖에 찍을 수 없다. 더 촬영하고 싶다면 1시간을 기다려 새로운 필름이 나와야 한다. 이렇게 찍은 사진은 3일 후에 확인할 수 있다. 구닥캠은 선명하지 못한 화질, 특유의 색감 등 필름카메라의 효과를 그대로 재현해냈다.
구닥을 만든 스크루바의 조경민 마케팅 팀장은 “사진을 찍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싶어서 일회용 카메라를 모티브로 한 구닥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구닥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필름카메라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디지털화시킨 것”이라며 “3일 동안 기다리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지만, 설렘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저렴한 가격으로 아날로그 감성의 흑백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즉석 사진 부스도 인기다. ‘포토그레이 오리진’, ‘인생네컷’과 같은 사진 부스들은 전국 곳곳에 설치돼 그 열풍을 입증하고 있다. 임예린(인천광역시 남구·21) 씨는 “SNS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직접 찍기 위해 찾아갔다”며 “저렴한 가격으로 분위기 있는 흑백 사진을 찍을 수 있어 크게 만족했다”고 말했다.
흰색과 검은색 사이, 이마고 사진관
아담한 주택가 사이에 조그맣게 숨겨져 있는 사진관이 하나 있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수동 89-2번지에 위치한 ‘이마고 사진관’은 아담한 크기지만, 특별한 매력을 가진 사진관이기도 하다. 청주시에서는 흔치 않은 ‘수동 흑백 사진관’이기 때문이다.
이마고 사진관은 지난 2014년에 문을 열었다. 이마고 사진관은 약품 투입과, 현상.인화의 과정까지 모두 수동으로 작업한다. 특히 이 사진관은 필름을 사용해 흑백과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기는 사진을 전문으로 작업한다. 이를 위해, 1850년대 유럽에서 유행했던 사진 기법인 시아노 타입, 검 프린트, 암브로 타입, 반다이크 브라운 등의 옛날 기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마고 사진관 한희준 대표와의 일문일답
Q. 어떤 이유로 흑백 사진을 시작하게 됐나요?
처음에 저는 흑백보다는 컬러 쪽을 많이 다뤘어요. 그러다가 2014년 쯤 흑백 사진에 매료됐죠. 흑백 사진은 처음 보면 흑과 백밖에는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자세히 보면 볼수록 디지털이 흉내 낼 수 없는 풍부한 색감이 있어요. 이러한 톤에 매료돼 흑백 사진을 시작한 것 같아요.
Q. 필름카메라는 디지털 카메라에 비해 다루기가 많이 불편하지 않나요?
촬영부터 현상과 인화 작업까지 모두 다 복잡하고 불편해요. 사진을 찍을 때는 직접 조리개, 감도 등을 일일이 다 조절해야 해요. 디지털처럼 여러 장을 한꺼번에 찍을 수도 없고 횟수도 정해져 있죠.
현상과 인화 과정 역시 마찬가지로 쉬운 작업이 아니에요. 특히, 약품 처리를 잘못 하면 필름을 버릴 수도 있어요. 가장 불편한 것은 찍은 사진을 바로 확인할 수 없다는 거죠. 디지털은 사진을 찍을 때 생각할 시간이 별로 없어요. 그 순간에 바로 나오니까요. 하지만, 아날로그 사진은 인화까지 나오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그동안 충분히 생각할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단점이자 장점이죠.
Q.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을까요?
사진에는 감도가 있어요. 감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빛이 없는 곳에서도 잘 찍을 수가 있어요. 보통 필름카메라의 감도는 100에서 400 정도 되요. 디지털카메라에 비해 감도가 낮기 때문에 어두운 곳에서는 빛을 많이 필요로 해요. 이점을 꼭 숙지하고, 평소에도 삼각대를 갖고 다니면 좋아요. 필름카메라는 꼭 찍기 전에 별도로 사진 공부를 해야 해요.
Q. 마지막으로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한마디해주세요.
저는 전에 풍경을 찍으러 멀리 다니곤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아요. 내가 가장 잘 찍을 수 있는 것은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에요. 어쩌다 한번 가서 본 거랑 매일 보는 거랑 어느 쪽이 더 표현하기 쉬울까요? 근사한 곳보다 가까운 곳, 나를 잘 표현해줄 수 있는 곳, 그런 곳에 가서 사진을 찍는 것이 더 여운이 남을 거라고 확신해요.
기다림을 아는 곳, 등대 사진관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40-39 1층에 위치한 ‘등대 사진관’ 역시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사진을 찍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2015년에 문을 연 등대 사진관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습판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사진관이다.
습판 사진이란 1851년에 개발된 필름 없이 사진을 찍는 기술이다. 필름보다 오래전에 발명된 기술로써, 유럽과 미국에서 성행했다. 이곳은 틴타입 방식으로 사진을 찍는데, 먼저 철판 위에 접착제 역할을 하는 콜로디온을 도포한다. 그 위에 감광 용액을 바르면, 이것이 필름처럼 상을 기록한다. 감광 용액이 젖어 있는 상태에서만 촬영할 수 있기 때문에, 암실이 바로 옆에 있어야한다. 또한 딱 한 장만 나올 수 있는 사진이며, 확대도 할 수 없다. 촬영부터 현상과 인화까지, 직접 하나하나 손으로 만들어야만 나올 수 있는 사진이다.
등대 사진관 이창주 실장과의 일문일답
Q. 어떻게 습판 사진을 시작하게 됐나요?
저는 예전에 잡지사에서 사진 찍는 일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연예인, 유명 인사들의 사진을 찍었어요. 그 후에는 포토샵으로 사진을 보정하는 일이 많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사진들을 보면 그 사람들이 아닌 거예요. 그저 내가 찍었던, 인형과도 같은 사람들인 거죠. 예쁜 사진으로써는 가치가 있겠지만, 후에 기록으로써의 가치는 전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수정할 수 없는 사진을 하고 싶었어요. 처음엔 필름카메라로 시작하려다가 습판 사진을 알게 됐어요. 더 독특한 사진을 하고 싶어서 지금 같이 일하는 이규열 실장과 함께 독학으로 습판 사진을 공부하기 시작했죠.
Q. 흑백 사진과는 다른 습판 사진만의 특성이 있나요?
습판 사진은 불규칙한 것이 매력이에요. 온도, 습도, 약품의 컨디션 등 사소한 변수들이 사진에 불규칙적인 얼룩을 남기곤 해요. 이것은 절대로 예측할 수 없고, 사진이 인화되고 나와야 비로소 확인할 수 있죠. 또한, 흑백 사진과는 다른 습판 사진만의 독특한 색감이 있어요. 이런 고유의 색감, 예측 불가능함 등이 습판 사진만의 매력인 것 같아요.
Q. 습판 사진을 찍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나요?
항상 적정 온도를 유지하면서 약의 컨디션을 관리해줘야 해요. 또한, 판에 감광 용액을 부을 때도 긴장을 놓으면 안 돼요. 사진에 얼룩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잘못해서 스크래치라도 내면 그 사진은 쓸 수가 없기 때문에 사진을 다룰 때도 집중해야 해요. 사진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습판 사진의 카메라는 굉장히 오래됐기 때문에 한번 움직이면 초점이 나가요. 한 장만 찍을 수 있고, 다시 찍으려면 30분이 걸리기 때문에 신중해야 해요. 또한, 습판 사진 카메라의 감도는 1인데, 이것은 그만큼 빛에 대한 반응이 더디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진을 찍는 순간에는 강한 조명이 필수에요.
Q. 마지막으로, 아날로그 사진을 좋아하는 분들께 한마디 해주세요.
아날로그 사진은 기다림과 느림의 미학이에요. 아날로그 사진은 수정할 수 없기 때문에 사진 한 컷 한 컷이 소중하고 절실하죠. 그런데 우리는 무한한 복제와 수정이 가능한 디지털에 익숙해져서 이런 소중한 가치를 잊고 사는 게 아닌가 싶어요. 아날로그 사진이 갖고 있는 기다림과 느림에 익숙해진다면 분명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거예요.
김노을 기자
doce26@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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