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화가 ‘신윤복’의 작품 중 ‘주사거배’에는 당시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이 주막에서 술을 즐기는 모습이 담겨있다. 작품에서 보듯 우리 민족은 술을 즐기고 사랑했다. 그리고 술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술의 종류도 다양했다. 지역마다 특색 있는 술이 있었고, 집마다 술의 맛과 향이 달랐다. 그러나 이토록 다양했던 우리의 술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은 명맥이 끊기고 말았다. 술의 원료인 쌀을 공출하기 위한 일제의 의도적인 탄압 때문이었다. 최근 우리의 전통과 가치를 되살리려는 움직임과 함께 사라진 우리 전통주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귀중한 문화와 가치가 깃든 우리 전통주에 대해 알아보자.


전통주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전통주라 하면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양조법으로 만든 모든 술을 뜻한다. 우리나라 전통주의 시작은 제천의식에서 신에게 술을 바치던 삼국시대부터 시작됐다. 제천의식이 끝나면 사람들은 술을 나눠 마셨고, 점차 제천의식과 상관없이 술을 즐기는 문화가 퍼졌다. 이후 고려 말엽 원나라로부터 증류 기술이 전해지면서 소주를 만들기 시작했고, 조선시대 유교문화의 확산으로 제사를 지내기 위해 술을 담그는 집들이 늘면서 여러 종류의 술들이 완성됐다.
  우리나라 전통주는 양조법에 따라 발효주와 증류주로 나눠진다. 발효주는 곡물과 과일 등을 재료로 발효시켜 만들며 탁주, 약주, 청주, 과실주 등이 있다. 탁주는 가장 오래된 형태의 술로 ‘탁하게 빚은 술’이라는 뜻이다. 곡류 원료에 물을 섞어 일정한 온도에서 발효시킨 술덧(누룩을 섞어 버무린 지에밥)을 체로 걸러 제조한다. 약주도 탁주와 같은 양조법으로 만든다. 현재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발효제와 새로운 양조법이 접목돼 여러 형태의 약주가 만들어지고 있다. 청주는 곡류 중 쌀(찹쌀 포함)과 입국(쌀알에 누룩 곰팡이를 번식시킨 국)에 물을 첨가해 발효시킨 다음 맑게 여과한 술로 일본의 사케를 만드는 방식과 비슷하다. 청주에는 주정(원료를 발효시켜 술덧을 만든 후 연속식 증류 방식으로 알코올 도수를 85% 이상으로 증류한 술)을 첨가할 수 있으며, 주정을 첨가한 경우에는 향류나 색소를 첨가할 수 있다. 과실주는 과일을 발효시켜 만든 술로 종류가 다양하다.
  증류주는 발효주를 끓여서 증류시킨 술로, 대표적으로 소주가 있다. 소주는 ‘불로 익혀 만든 진한 술’이라는 뜻이다. 시중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희석식 소주는 주정을 물에 희석한 다음 감미료를 첨가해 만든 술이지만, 우리의 전통방식인 증류식 소주는 곡류, 서류(고구마, 감자 등) 원료를 단식 증류해 첨가물을 넣지 않고 만든 술이다. 발효주와 증류주는 만드는 방식이 조금 다를 뿐 똑같은 우리나라의 문화적 가치를 가진 전통주이다.

다양한 우리 술을 볼 수 있는 공간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위치한 ‘전통주 갤러리’는 500여 개의 전통주를 전시해 우리 농산물을 기반으로 한 우리나라 전통주의 다양성과 가치를 알리고 있다. 전통주 갤러리는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림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주관해 지난 2015년에 문을 열었다. 전통주 갤러리에 전시되기 위해서는 다음에 열거한 기준 중 하나 이상을 만족해야 한다. ▲우리나라 식품명인의 제품 ▲매년 열리는 ‘대한민국 우리 술 대축제’에서 입상한 제품 ▲농림부에서 선정한 지역의 우수한 양조장을 일컫는 ‘찾아가는 양조장’의 제품 ▲농산품질관리위원회에서 유기농의 사용여부, 위생검사 등을 평가하는 품질검사를 통과한 품질인증 골드라벨 마크가 있는 제품이 그것이다.
  또한 이곳에선 대중에게 전통주를 알리기 위해 매달 다섯 종류의 전통주를 정해 매일 무료 시음행사를 열고 있다. 시음회에 선보일 전통주는 탁주, 약주, 청주, 증류식 소주, 과실주에서 각각 하나씩 선정한다. 시음회에 참여한 안현석(서울특별시 성북구·25) 씨는 “시음회가 전통주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돼 매달 참여하고 있다”며 “전통주를 미리 맛보고 구매할 수 있어 좋다”고 전했다. 최은영(서울특별시 도봉구·26) 씨는 “시중에서 흔히 팔리는 술이 아닌 다양한 맛과 도수를 가진 전통주들을 맛볼 수 있어 좋았다”고 전했다. 지난 11일 기자가 참여한 전통주 갤러리 시음회에는 ‘은자골 곶감 탁배기’, ‘우리 술 오늘’, ‘한산 소곡주’, ‘매실 원주’, ‘계룡 백일주’를 선보였다.
  전통주 갤러리의 남선희 관장은 “전통주 갤러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우리 술의 종류가 매우 다양해서 놀랍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며 “우리 주변에는 모두에게 알릴만한 가치 있는 전통주가 많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나만의 전통주 만들기

  각자의 취향에 맞는 전통주를 직접 만들 수 있는 곳도 있다.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진향우리술교육원’은 농림부가 지정한 우리 술 교육기관으로 탁주, 약주, 과실주 등의 술을 직접 만들 수 있다. 진향우리술교육원은 우리 술의 저변 확대를 위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전통주 제조 방법을 교육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음주 문화, 술과 어울리는 음식들에 대해서도 교육하고 있다.
  진향우리술교육원 안진옥 원장은 “우리 술을 만드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며 “얼핏 보면 절차가 복잡해 보이고 재료들이나 도구들도 처음 보는 것이 많겠지만 과정도 간단하고 재료와 도구를 구하기도 쉽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같은 과정으로 만들어도 만드는 사람과 환경에 따라 맛은 천차만별”이라며 “많은 사람이 전통주를 빚어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술, 내 취향의 술을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연잎으로 만든 약주

  연엽주는 충청남도 아산 외암리 마을에 대대로 살아온 예안 이씨 가문에서 200년 동안 내려온 양조기술로 빚은 술이다. 연엽주는 피를 맑게 정화시키는 작용을 하며, 나이가 많은 노인들의 기력회복에 좋다. 이런 약효기능을 가진 술이라 해서 ‘약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연엽주는 전통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1990년 충청남도 무형문화제 제11호로 지정됐다.
  연엽주를 만드는 과정은 먼저 찹쌀과 멥쌀을 8 : 2의 비율로 섞어 물에 깨끗이 씻는다. 씻은 쌀을 10시간 불려 고두밥을 짓고, 식힌 고두밥을 빻은 누룩과 섞는다. 마지막으로 섞은 고두밥과 누룩, 연잎을 항아리에 같이 넣는다. 그렇게 10~15일을 발효하면 붉은 색을 띄는 연엽주가 완성된다.
  도수가 14도인 연엽주는 다양한 맛을 가진 술이다. 6대째 연엽주를 만드는 이득선 명인은 “연엽주는 몸에 좋은 연잎, 정성, 깨끗한 물이 만나 만들어진 술”이라며 “다른 술들에 비해 신 맛, 단 맛, 쓴 맛을 모두 느낄 수 있다”고 전했다.



청명에 마시는 술

  충청북도 충주시에는 청명(양력 4월 5일경)에만 먹는 특별한 술, ‘청명주’가 있다. 청명에 먹는 절기주로 일제 강점기 금주령으로 인해 명맥이 끊겼다가 1993년 다시 복원했다. 명맥이 끊기기 전, 청명주는 집집마다 빚을 정도로 흔한 술이었으나 지금은 충주시 중원당에서만 유일하게 청명주를 만들고 있다. 청명주는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됐으며, ‘2018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우리 술 분야 대상을 받은 명품 술이다.
  청명주는 김명섭 명인 집안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향전록’이라는 약방문을 통해 원형 그대로 만들고 있다. 국내산 찹쌀과 전통 누룩으로 첨가물과 감미료 없이 전통 그대로의 방식으로 만들고 있다. 이 때문에 만드는 시간도 100일 이상, 숙성까지는 6개월이 걸린다. 이러한 전통 방식은 술의 맛에도 영향을 미친다. 오로지 전통 누룩과 국내산 찹쌀 두 가지 재료만으로 만드는데도 새콤달콤한 과일 향과 맛이 나며, 끝 맛은 깔끔하다.
  청명주를 만드는 김명섭 명인은 “최근 젊은 층에서도 청명주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편이지만, 아직도 전통주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전통주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술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많은 관심과 소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김노을 기자
doce26@cbnu.ac.kr
김하연 기자
kkhhyy9802@cb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