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몸에서 물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이 70%라는 것은 대부분이 상식처럼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 일상에서 ‘쓰레기’가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과연 몇 퍼센트일까? 낮에 마신 아메리카노가 담겨 있던 일회용 컵, 야식으로 먹은 짜장면과 함께 도착한 일회용 수저, 날마다 쓰고 버리는 일회용 면도기와 면봉…. 우리는 차마 다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쓰레기를 생산하며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당연한 일상을 거부하고 쓰레기 없는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제로웨이스트(Zero-Waste)를 실천하는 제로웨이스터들이다.
나는 제로웨이스터입니다
일회용품을 숨 쉬듯이 소비하는 비(非) 친환경적인 일상 속에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굳이 자처해서 불편함을 택하는 이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숱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제로웨이스터의 길을 택한 방가람(강원도 홍천군·31) 씨와 최연진(충청남도 논산시·29)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제로웨이스트 라이프를 실천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가람 : 본격적으로 실천하게 된 건 지난해 발생한 호주 산불 사건 이후부터예요. 호주 산불의 원인이 다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라고 해요. 그런데 지구온난화는 무분별한 산림 벌목, 화석연료 개발 등, 인간이 제공한 원인이 만들어 낸 재앙이잖아요. 우리가 누린 것에 대한 대가를 자연이 대신 치루는 모습을 보며, 이제는 정말 환경을 위해 행동으로 실천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어요. 그 후로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행동을 고민하며 실천해나가게 됐습니다.
연진 : 두 가지 계기가 있었어요. 첫 번째는 필리핀으로 수출된 우리나라 재활용 쓰레기가 반송된 사건을 접했을 때에요. 집 앞에 내놓기만 하면 사라지던 쓰레기들이 저런 모습으로 어딘가에 쌓여 있다는 걸 알게 됐죠. 내 집은 깨끗해졌지만, 쓰레기는 내 눈 밖 어딘가에 사라지지 않고 더러운 모습으로 남아 있다는 걸 인식하고 나니 제가 먹고, 입고, 자고, 쓰는 모든 것이 다 쓰레기라는 걸 알게 됐어요. 두 번째는 미세먼지예요. 제가 어렸을 땐 미세먼지에 대한 걱정 없이 밖에서 마음껏 뛰어놀았는데, 요즘 아이들은 그렇지 않죠. 제가 깨끗한 자연을 고마움도 모른 채 실컷 누리기만 하고 책임지지 않았던 지난 시간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저는 지난해 1월부터 제로웨이스트를 시작하게 됐어요.
Q. ‘일회용품 천국’인 일상 속,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데요. 제로웨이스트 라이프를 실천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가람 : 생필품을 구매하는 일이 가장 어려워요. 특히 휴지와 화장품을 구매하는 건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숙제처럼 남아 있죠. 휴지를 구매할 때는, 비닐 포장 때문에 원치 않아도 쓰레기가 생기게 돼요. 그리고 화장품을 만들어 사용하는 분들도 간혹 있지만, 원재료 구매 시 발생하는 플라스틱 용기와 비닐도 무시할 수 없더라고요. 시판 화장품은 대부분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있고요. 틴케이스나 유리병으로 만들어진 화장품도 있지만, 내용물을 새지 않게 하기 위해 이음새나 뚜껑은 플라스틱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죠.
연진 : 대체재가 없는 상황이 가장 답답하죠. ‘제로웨이스트 치약’이라고 하면, 고체 치약을 떠올릴 수 있는데 그 고체 치약도 결국 플라스틱 포장에 담겨서 와요. 파스타를 먹고 싶은데 그 파스타가 비닐 포장에 담겨 있고. 반면 외국에는 식재료가 재생지 종이포장에 담겨 있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소비자의 소규모 환경운동으로는 지구온난화를 멈추는 큰 변화를 이루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기업과 정부에서 나서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죠.
Q. 마지막으로, 비(非) 제로웨이스터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가람 : 제로웨이스터의 삶은 불편함과 게으름을 이겨내는 노력이 필요해요. 그렇지만 용기 내서 한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사람을 위한, 더 나아가 지구를 위한 일이라는 걸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어요. 각자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다들 지구를 지키는 일에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처음 내딛는 그 발걸음을 응원할게요.
연진 : 사실 제로웨이스트는 상당히 즐거운 과정이에요. 제로웨이스트라는 단어 뒤에 ‘챌린지’라는 말을 붙이면, 어렵지만 꽤 재미있는 일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또 제로웨이스트를 한다고 하면, 자급자족 라이프만 떠올리는 분도 있을 텐데, 이 세계도 이 세계만의 즐거운 소비가 기다리고 있답니다. 모든 시민운동이 그렇듯, 완벽한 제로웨이스트 실천가 한 명보다는 완벽하지 않은 제로웨이스트 실천가 100명이 더 큰 변화를 만듭니다. 즐거운 제로웨이스트, 함께 해요!
슬기로운 제로웨이스트 실천생활
생활 속 불편함도 소중한 가치로 일궈내는 제로웨이스터의 삶을 기자가 직접 일주일 동안 실천해 봤다. 제로웨이스트와 함께한 기자의 일주일을 소개한다.
- 제로웨이스트샵 ‘더피커(the picker)’에 가다
본격적인 제로웨이스트 실천에 앞서, 필요한 용품을 사기 위해 서울특별시 뚝섬역 인근에 있는 대표적인 제로웨이스트샵 ‘더피커(the picker)’를 방문했다. 대나무 칫솔, 밀랍랩은 물론 천연세제 소프넛까지 다양한 제로웨이스트 관련 상품이 매대 위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점은, 진열된 그 많은 상품 가운데 비닐 포장이 된 상품은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 일당백 소프넛으로 설거지부터 빨래까지
‘소프넛(Soapnut)’은 말 그대로 비누 역할을 하는 열매다. 기존 화학세제와 달리 화학 잔류물도 남지 않을 뿐더러, 과피에 포함된 사포닌 자체의 약산성 성분이 주는 섬유 유연 기능 덕에 섬유유연제도 필요치 않아 많은 제로웨이스터가 애용한다. 빨래, 설거지는 물론 샴푸나 바디워시 대용으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가격은 1kg에 만 원 초반대부터 후반대까지 다양하다. 한 번 쓰고 버리는 게 아니라, 사용 후 건조해 여러 번 재사용이 가능해 경제적이다.
대표적인 사용법은 두 가지로 열매를 물에 넣고 끓여 농축액을 만들어 사용하는 방법과 작은 병에 소프넛 몇 알을 넣고 우려내 쓸 때마다 흔들어서 사용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기자는 편의상 후자를 택했다. 소프넛 특유의 살짝 시큼한 향 때문에 처음엔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물로 헹궈내면 금방 사라지기 때문에 거슬리진 않았다. ‘진짜 씻기는 거 맞나?’ 싶기도 했지만, 설거지가 끝난 후 문질러 본 접시에서 들려오는 기분 좋은 뽀드득 소리에 의심은 바로 말끔히사라졌다.
- 비누로 머리 감는 건 8살 이후로 처음이네요
샴푸를 대체할 수 있는 샴푸바가 있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초등학생 시절 호기심에 비누로 머리를 감았다가 머릿결이 빗자루가 됐던 경험 때문에 구매가 망설여졌다. 머리카락쯤은 타협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대체품이 있는데도 타협하는 건 진정한 제로웨이스터의 길이 아니기에 큰맘 먹고 구매했다. 플라스틱에 담긴 샴푸보다는 상대적으로 보관도 어렵고, 사용도 번거로웠지만 ‘오늘도 쓰레기 하나 줄였다’라는 성취감이 불편함보다 컸다. 재구매의사 별점 5개.
- 제로웨이스트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야식 먹기 딱 좋은 밤 11시, 미친 듯이 떡볶이가 먹고 싶어졌다. 제로웨이스트만 아니었다면 당장 어플리케이션 속 단골 떡볶이집에 “네, 여기 청주시 서원구...”를 읊었겠지만, 그랬다간 떡볶이와 함께 일회용품도 한가득 딸려올 것이 뻔했다. 그래서 배달은 일단 탈락, 남은 방법은 포장뿐. 용기를 갖고 가 집 근처 떡볶이집에서 떡볶이와 컵밥을 포장하기로 했다. ‘사장님이 혹시 이상하게 보시면 어쩌지...’ 걱정했지만, 역시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사장님은 내게 아무런 관심이 없으셨다. 매장을 나가기 전, 떡볶이와 컵밥을 담은 용기를 들고 가기 쉽게 비닐봉지에 담아주시려는 것까지 한사코 거절. 이로써, 제로웨이스트 떡볶이 포장 미션 완벽 성공이다.
- 껍데기는 가고, 알맹이만 오라
호기롭게 에코백만 덜렁 들고 나간 동네 마트. 놀랍게도 단호박을 제외한 모든 채소가 비닐과 스티로폼으로 포장돼 있었다. 내가 사고 싶은 건 버섯이랑 양파뿐인데 왜 비닐이 덤으로 오는 건지. 할 수 없이 빈손으로 마트를 나오던 길, 멀지 않은 거리에 전통시장이 있다는 사실이 번뜩 떠올랐다. 전통시장에는 비닐에 담겨 있는 식자재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식자재가 더 많았다. 덕분에 사고 싶던 식자재를 마음 편히 구매할 수 있었다. 비닐봉투에 담아 판매하는 두부도 갖고간 반찬 용기에 담아 구매했다. 이젠 물건을 살 때마다 “비닐은 됐어요!”라는 문장을 랩처럼 읊조리는 것도 즐거운 지경에 이르렀다.
- 빨아 쓰는 화장솜이 있다?
많은 여성이 날마다 쓰는 화장솜도 생각해 보면 일회용품. 이런 일회용 화장솜의 대체재로 더피커에서 면 소재로 된 다회용 화장솜을 구매해 봤다. 별 기대없이 구매했는데 이게 웬일. 보들보들한 게 보풀이 쉽게 일어나는 일회용 화장솜보다 훨 낫다. 단점이라면 쓸 때마다 빨아야 한다는 것 정도지만, 뭐 그래봤자 1-2분이면 빤다. 경제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더 유용한 다회용 화장솜. 만족도 1,000%다.
- 비닐도 지퍼백도 이제는 안녕
자취를 시작하고, 요리를 자주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일회용 비닐랩을 애용하게 됐다. 그런데, 이런 비닐랩에도 대체재가 있었다. 바로 밀랍랩. 사용법도 간편하다. 랩을 식자재에 맞게 감싼 뒤, 손의 열을 이용해 꾹 눌러 고정해 주면 끝. 뜨겁거나 기름기가 많은 육류와 생선류는 보관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일반 비닐랩보다는 훨씬 낫다.
- 제로웨이스트 실천기를 끝내며
실천 초반,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였다. 고단수 제로웨이스터들에 비하면 그렇게 빡빡하게 실천한 것도 아닌데, 평소와 다르게 산다는 것만으로도 불편했다. 그런데 제로웨이스터로 며칠을 보내다 보니 이제 다른 생각이 들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써야 했나? 이렇게까지 버리면서 살아야 했나? 내가 누리던 평범하고 흠 없는 일상이 어딘가에 쌓이고 있을 쓰레기더미로 인해 가능한 것이라면, 그 일상이 정말 평범한 일상이 맞는 것인가?’ 계획된 실천 기간인 일주일은 끝이 났지만, 이후로도 꾸준히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기로 결정했다. 지속 가능한 내일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길 소망하며 기사를 마친다.
정윤채 기자
sunwillrise@cbnu.ac.kr








정윤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