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우리는 생산과 수요가 넘쳐나는 이른바 ‘과잉 시대’에 살고 있다. 새것이 무한히 제공되자, 역설적이게도 중고거래가 인기다. 소유보다 공유를 중시하고, 개성 표출 욕구가 강한 새로운 소비자들의 등장은 중고거래 시장을 어느 때보다 특별하고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제 중고거래는 어려운 사정에 선택하는 궁여지책이 아닌 어엿한하나의 소비 트렌드다.
‘닐슨코리아클릭’에 따르면, 모바일 중고거래 이용자 수는 지난 2018년부터 꾸준히 규모를 불려 지난해는 117%이라는 괄목할 만한 성장률을 기록했다. 우리가 이토록 ‘헌’ 제품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근래 중고거래 시장의 인기를 논할 때 첫손에 꼽는 것은 다름 아닌 코로나19 팬데믹이다. 불황으로 인해 삶이 팍팍해질수록 중고거래 시장은 오히려 급부상한다.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이 중고거래 시장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중고거래를 통해 구매자는 저렴한 가격에 필요한 물건을 얻고, 판매자는 버리기 아까운 물건을 정리하면서 쏠쏠한 수익을 챙길 수 있다.
또한, 중고거래 붐은 ‘N차 신상’이란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N차 신상’은 말 그대로 N번째 신상을 뜻한다. 수차례 거래됐지만 새것에 버금가는 가치를 가진 중고 상품의 등장은 장기화된 불황과 코로나19가 맞물린 결과다. 중고의 개념은 과거 오래된, 낡은, 저렴한 것을 넘어서 이제 완전히 다른 의미로 인식된다. 빈티지 액세서리와 의류가 ‘힙’하다고 여겨지고, 할머니 댁 찬장 속 그릇이 ‘감성’인 시대, 중고는 내게 온 순간 다시 신상이 된다.
그런데 중고거래 열풍의 원인은 단순히 불황만이 아니다. 오늘날의 중고거래는 새로운 형태의 재테크로 떠올랐다. 온라인 소비 시장의 확대로 중고거래에 대한 접근성이 용이해지면서, 개인도 하나의 유통 주체로 떠올랐다. 중고거래 플랫폼 내 개인 판매자는 ‘세포 마켓’으로 불리는데, 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주 무대로 생산과 유통을 개별적으로 수행하는 1인 마켓을 의미한다. 한정판 아이템 등을 구매해 중고거래 플랫폼에 올려 되파는 이른바 ‘리셀(re-sell)’이 대표적인 세포 마켓의 형태 중 하나다.
이러한 중고거래의 입지 변화를 증명하듯 우리 주변의 중고거래 플랫폼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인터넷 카페 ‘중고나라’의 원탑 체제를 지나 현재는 번개장터, 당근마켓 등의 경쟁 플랫폼이 각종 서비스를 내세워 파이를 넓혀 가고 있다. 중고나라, 번개장터, 당근마켓으로 이뤄진 중고거래 시장 ‘탑3’의 가입자 수 총합은 대략 4,000만 명에 이른다. 이는 웬만한 쇼핑 플랫폼 이용자 수를 가볍게 뛰어넘는 수치로, 중고거래 시장이 확실히 주류 쇼핑 서비스의 반열에 올랐음을 보여준다.
이제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 중고거래 플랫폼 중 첫 번째로 언급할 것은 다름 아닌 중고거래 문화의 시초격인 중고나라다. 지난 2003년 인터넷 카페로 문을 연 중고나라는 90년대 말 IMF 외환위기 이후 이어진 저성장 속에 탄생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자타공인 중고거래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높은 위상을 자랑하는 중고나라지만, 뒤이어 등장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기반의 중고거래 플랫폼이 인기를 끌자 한발 늦은 지난 2016년 애플리케이션 형태 플랫폼의 첫선을 보였다.
두 번째로, 지난 2010년 등장한 후발 주자인 번개장터는 MZ세대(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통칭하는 세대)의 ‘리셀족’에게 인기다. ‘리셀족’은 앞서 언급한 ‘리셀’과 접미사 ‘-족’의 합성어로, 제품을 구매한 뒤 중고 시장에서 프리미엄을 붙여 판매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번개장터의 이서연 홍보 매니저는 “번개장터가 주목하는 것은 취향의 다변화다. 요즘 소비자들은 한정 판매로 구하기 어려운 스니커즈부터 환경 혹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위한 빈티지 의류, ‘덕후’들이 수집하는 굿즈까지 기존 상거래에서는 얻지 못했던 가치를 중고거래를 통해 찾고 있다. 특히 절약을 미덕으로 삼았던 이전 세대와 달리, 소비를 통한 심리적 만족감을 중요시하는 MZ세대들이 이러한 취향·가치소비를 가장 적극적으로 한다”라며 “번개장터의 슬로건인 ‘취향을 잇는 거래’ 역시 이러한 특징을 차별화 요소로 삼아 전국 각지의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기획했다”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지난 2015년 출시된 당근마켓은 ‘당근이세요?’라는 유행어를 낳은 중고거래 시장의 신흥 강자다. ‘당신 근처의 마켓’이라는 의미처럼 동네 거래를 표방해, 일면식 없는 타인이 아닌 근처에 사는 이웃과 거래한다는 아이디어로 중고거래의 가장 큰 우려 요소인 판매 사기를 사전에 차단했다. 동시에 당근마켓은 우리 동네 커뮤니티의 역할도 한다. 사람들은 당근마켓에서 분실물을 수소문하고, 붕어빵 노점의 위치를 공유하며, 공동구매 인원을 모집한다. 우리 동네 생활과 밀접한 ‘꿀팁’도 구할 수 있다. “주말에도 여는 애견 미용실 추천받아요”, “지금 사거리 많이 막히나요?” 등의 질문에는 실시간으로 답변이 달린다. 심지어 직접 만든 눈사람, 귀여운 반려동물의 사진이 올라오기도 한다. 평소 당근마켓을 자주 이용한다는 이나영(청주시 흥덕구·33) 씨는 “당근마켓을 중고거래 용도만이 아니라 각종 게시판을 둘러보며 여가를 보내는 용도로도 사용해요. 한번 접속하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라며 사용 후기를 전했다.
기자도 직접 중고거래를 체험해 보기로 했다. 물론 ‘구매한 제품 대신 벽돌이 왔다’, ‘선입금 후에 판매자가 잠수를 탔다’ 등 괴담처럼 떠도는 중고거래 피해 후기를 읽으면서, 무의식중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무엇이든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속단할 수 없는 법. 앞서 언급한 중고플랫폼 중 기자가 선택한 것은 당근마켓이었다. 가까운 이웃과 직접 거래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요즘엔 잘 메지 않는 가방, 노트북을 구매할 당시 사은품으로 받은 무선마우스 등 누군가는 필요로 할 만한 제품을 추려서 어설픈 사진과 함께 판매 글을 작성했다. 가격은 온라인 최저가의 1/4. 연락이 오길 기다리며, 우리 동네의 다른 게시물들을 구경했다. 당근마켓에서는 의류나 가전제품은 물론, 직접 만든 수공예품까지 예상보다 다양한 제품이 거래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판매는 뒷전인 채 마음에 드는 제품들을 찜하기에 바빴다. 그러던 중, 채 한 시간도 안 돼서 ‘당근!’ 하는 문자 알람이 정신을 들게 했다. 당근마켓을 비롯한 주요 중고거래 플랫폼에는 전용 메신저 기능이 활성화돼 있다. 따라서 거래할 때 전화번호나 다른 메신저 아이디를 교환하지 않아도 돼 안전하고 편리하다. 제품의 상태에 관한 질문과 대답을 간단히 주고받고, 거래 장소와 시간을 정한 후에는 ‘예약중’으로 제품의 카테고리를 바꾼다.
약속 장소 앞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자, 한 차량이 앞에 멈춰섰다. 차창이 내려지고, “당근…”라고 운을 띄우면 그제야 말문이 터지며 구매자와 인사를 나눈다. 5,000원 안팎의 저렴한 제품의 거래는 주로 현금으로 이뤄진다. 짧은 인사 후 제품과 돈을 주고받았다면 별말 없이 헤어지면 된다. 불필요한 과정도, 복잡한 겉치레도 없는 깔끔한 거래다. 무사히 거래를 마친 후에는 제품을 ‘판매완료’로 변경한 후 후기와 평점을 남기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뜻한 거래 후기는 마음의 온도뿐만이 아니라 당근의 온도까지 높여준다. 온도는 당근마켓에서 상대방을 믿을 만한지 판별할 수 있는 기준으로, 뜨거울수록 신뢰할 수 있다는 의미다. 
몸소 경험해 본 중고거래는 즐거운 소통의 과정이자, 건강한 자원의 순환이었다. 용돈을 모아 갖고 싶은 아이돌 굿즈를 구매하는 학생, 작아진 아동복을 판매하는 신혼부부 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수많은 사람이 활발하게 중고거래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었다. 물론 때로는 시간과 장소를 조율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거래가 성사되기까지 안심할 수 없다는 불안함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내 가방이 누군가의 나들이에 함께하고, 내 마우스가 누군가의 책상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혹시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는 또 다른 물건이 없는지 방안을 살펴보게 된다. 이렇게 다들 중고거래에 중독되나 보다.
양서영 기자
ysyoung@chungbuk.ac.kr








양서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