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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시혜&이진주
끝나지 않는 무대, 여성국극을 만나다
제 966 호    발행일 : 2022.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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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부터 노래를 즐겼다. 농민은 농사일로 고될 때면 ‘농요(農謠)’를 불렀고, 소리북을 치는 고수와 가창을 하는 창자가 만나 만들어내는 예술 ‘판소리’가 여전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배우가 노래와 연기를 모두 하는 뮤지컬이 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그런데 195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오로지 ‘여성’만이 무대에 오르는 독특한 뮤지컬이 인기를 끌었다. 달콤한 사랑 노래와 눈물 흐르는 슬픈 이야기, 왕자부터 거지까지, 모든 역할을 여성이 수행하는 여성들만의 무대, 여성국극을 만나보자.


무대에 오른 여자들

  여성국극은 국악원의 남성 중심적 문화에 반발해, 국악원을 나온 여성들이 1948년 따로 ‘여성국악동호회’를 조직하며 시작됐다. 여성국극은 명칭 그대로 오로지 여성만이 무대에 설 수 있었다. 2012년 <연극> 4호에 게재된 김지혜의 “여성국극의 역사, 다시보기와 재현”에 따르면 당시의 여성국극은 국악이라는 ‘전통’과 판소리를 연극적으로 현대화한 창극이었다. 그렇기에 국악에서 음의 앞과 뒤를 꾸며주는 소리인 시김새가 많은 판소리와 달리 대사 전달력을 위해 시김새를 덜어냈다. 파고 밀고 당기는 소리인 성음을 없애며 음악적인 요소를 첨가해 더 고운 소리가 나게 했다. 사람들이 여성국극에서 매력을 느끼는 포인트는 ‘두 여성이 사랑하는 남녀를 연기한다’는 점과 ‘남녀 주인공의 매력’이었다. 여성국극 무대에 여러 차례 오른 한혜선 소리꾼은 “여성이 남성의 역할을 맡으면서 여태까지 하지 못했던 말과 행동, 목소리를 내는 게 매력적이다. 그 묘하고 색다른 경험에 빠지면 여성국극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라며 여성국극의 매력에 대해 피력했다. 단국대 서한범 국악과 교수는 “우아하면서도 애절한 소리, 여성들만의 아름다운 춤사위, 화려한 문장과 복장 등등이 종래의 창극보다 훨씬 일반 대중의 가슴을 파고들었다”라며 여성국극 전성기의 인기 이유를 설명했다. 여성국극은 1948년 명동 시공관에서 공연된 민족오페라 <옥중화>를 시작으로 <햇님과 달님>, <견우직녀>, <호동왕자> 등 수많은 히트작을 남겼다. 그리고 1954년 여성국악동호회가 만든 창극단 ‘햇님국극단’이 내분으로 분열됐지만, 그 인기에 힘입어 더 많은 여성국극단이 생겨나는데 ▲임춘앵의 ‘여성국악동지사’ ▲조금앵의 ‘신라여성국극단’ ▲박녹주의 ‘보랑국악단’ ▲박홍도의 ‘화랑여성국극단’ ▲이일파의 ‘낭자국악단’ 등이 그것이다.
  1950년대 여성국극의 인기만큼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스타 배우’도 여럿 있다. 오늘날까지도 기억되고 있는 임춘앵부터 박녹주, 박귀희, 조금앵 등 많은 배우가 지금의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여성국극 배우였던 조영숙 선생에 의하면 여성국극을 보기 위해 “관객이 구름처럼 몰려와 자루에 돈을 쓸어 담고 발로 밟던” 때가 있었다. 많은 배우가 대중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중 으뜸은 남역 주연을 맡은 배우였다. 남역 주연을 맡은 배우는 이른바 여성국극의 ‘왕자’가 돼 가장 많은 부와 명성을 얻었다. 1950년대 당시 남역 주연을 맡았던 조금앵 선생이 팬이었던 여고생의 부탁으로 가상 결혼식을 올렸다는 건 이미 널리 퍼진 이야기다. 여성국극을 다룬 다큐멘터리 <왕자가 된 소녀들>에 의하면 당시 “(팬레터가) 다 혈서”였을 정도로 여성국극은 인기가 좋았고, 여성국극 배우가 되려고 가출하는 소녀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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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색’의 몰락

  그렇게 영원히 빛날 것만 같았던 여성국극은 1960년대,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0년도 채 되지 않은 전통이 시들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새로운 미디어 매체의 등장과 시대의 변화이다. 1960년대 영상 미디어인 영화와 TV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다양한 연극예술의 인기가 흔들렸고, 이는 여성국극에도 영향을 미쳤다. 영화와 TV는 다양한 영상적 특징을 사용할 수 있지만, 여성국극은 창과 연기가 합쳐진 연극인 탓에 단조롭고 진부하게 느껴졌다. 또한, 전근대적 요소를 청산하고 서구 지향의 산업화에 전력하던 사회의 풍조 속에서 주로 현실과 동떨어진 사극류를 공연하는 여성국극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두 번째는 ‘정통성을 해친다’는 비난이었다. 2014년 아르코 연구 비평 총서 <Tradition (Un)realized> 국제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작가 정은영의 “여성국극의 전통되기와 않기”에 따르면 여성국극은 전통판소리에 기반하지만, 한국의 근현대화 과정에서 대중의 시대적 요구를 수용한 새로운 장르의 공연양식을 만들어냈다. 그렇기에 판소리에서의 고수는 악단이 되고, 사설은 장면화 및 연극화가 된다. 창을 하는 소리꾼은 ‘여성’ 소리꾼으로 성별화됐다. 이런 과정에서 여성국극은 기존 국악극의 전통을 잇는 장르를 신설했다는 정통성을 추구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창극과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아 창극의 하위 장르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 정도로 독자성이 약했다. 또 대중성을 빠르게 따라가려고 하다 보니 예술적 완성도와 세련미가 부족하다는 부정적 인식이 존재했다. 여성만이 극을 이룬다는 사회적 반감과 기생이 배우가 돼 여성국극을 끌어나간다는 데에 대한 경멸의 시선도 배제할 수 없었다. 여성국극의 최전성기였던 50년대 중반에도 각 신문에서 “요즈음 여성국극단의 공연을 대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밤낮으로 ‘왕자’ 아니면 ‘공주’를 중심으로 하는 타령에서 벗어나 줬으면 한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전성기부터 계속된 비판은 여성국극이 몰락의 길로 들어서자 더욱 거세졌다. 극작가 박황은 1976년 자신의 저서 <창극사 연구>에서 여성국극이 “창극사에 길이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을 뿐이며, 속죄할 수 없는 죄과를 범하였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비난은 문화 관계자들 사이에 공유됐고, 정통성과 독자성의 결여에 대한 지적은 여성국극의 문화재 등재 좌절까지 불러왔다.
  이밖에도 ▲여성국극단이 우후죽순 늘면서 생긴 공연의 질적 저하 ▲정부 지원 부족 ▲여성국극 배우들의 임신.출산.육아로 인한 은퇴 ▲후계자 양성 미흡 등이 일반적인 여성국극의 몰락 원인으로 언급되고 있다.

여성국극, 새로운 시작

  그런데, 역사의 유물로 사라질 것 같던 여성국극이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 계기를 제공한 것은 최근 완결한 서이레.나몬 작가의 네이버 웹툰 <정년이>이다. 소리하는 걸 좋아하는 목포 출신 소녀 정년이 부자가 되기 위해 여성국극단에 들어가고자 하는 이야기를 담은 <정년이>는 여성국극에 대한 내용과 함께 주인공 정년의 성장 서사를 담았다. 깔끔한 스토리와 눈길을 끄는 그림체는 인기의 척도를 알리는 ‘관심’을 10만 개 이상 받으며 젊은 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정년이>의 글을 쓴 서이레 작가는 “여성들이 모든 배역을 연기하면서 젠더를 마음대로 교란하는 흥미롭고 재밌는 장르를 자기들끼리만 즐겼다는 게 분했다”라며 “여성국극을 널리 알려서 이야기할 사람, 창작할 사람을 만들어 명맥을 이어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여성국극을 웹툰의 큰 틀로 잡은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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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부터 ‘여성국극 프로젝트’를 진행한 정은영 작가는 “근대 국가의 이분법적 성 규범에 ‘균열’을 낸 살아있는 증거인 여성국극 배우들에게 매료됐다”라며 여성국극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이유를 말했다. 정은영 작가가 여성국극 프로젝트로 선보인 대표적인 작품에는 2013년 국제다원예술축제 페스티벌 봄에서 선보였던 연극 <(오프)스테이지 마스터클래스>, 2016년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한 연극 <변칙 판타지> 등이 있다.
  한편, 전통적인 여성국극의 형식으로 무대를 꾸미는 공연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지난해 6월 25~26일 서울에서 공연한 <예인 황진이>, 지난해 10월 20일 안산에서 공연한 <2021레트로K-뮤지컬 여성국극라이징 in 안산>, 지난해 12월 4일 부산에서 공연한 <기장 매바위와 어사 이도재>, 지난 3월 16일 서울에서 공연한 <옥중화:사랑의 연가> 등이 그것이다. 이중 <2021레트로K-뮤지컬 여성국극라이징 in 안산>은 펀딩 커뮤니티 ‘텀블벅’으로 모금한 후원금으로 제작해, 여성국극 형식 공연에 ‘펀딩’이라는 새로운 생존 방식을 제시했다.
  또한, 주목할만한 공연으로 최근에 막을 내린 ‘극단 여행자’의 여성국극 기반 연극 <베로나의 두 신사>가 있다. 제43회 서울연극제 공식 선정작인 해당 연극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인 <베로나의 두 신사>를 모티브로 해 여성 배우 10인이 극을 이끌어 간다. 노래하지 않는다는 점을 빼고는 여성만이 무대에 오른다는 점에서 전통 여성국극과 같다.
  현재 여성국극을 표방하는 공연들은 1950년대를 풍미하던 여성국극의 모습은 아니다. 서이레 작가는 “창을 즐겨 듣거나 당시 유행했던 서사의 문법을 좋아하는 현대인은 많지 않을 거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때 그 시절 여성국극의 ‘부활’보다는 지금 우리가 즐길 수 있는 형태의 ‘새로운 여성국극’같다”라며 리부트와 리메이크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어쩌면 여성국극은 1950년대의 형태를 되찾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여성국극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늘어난다면 ‘퓨전’을 통해 새롭고 다양한 형태로 창조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잊힐지도 모르는 문화를 방관하지 말고, 계속해서 관심을 두고 잊지 않는 게 아닐까. 여성국극이 새로운 ‘왕자’를 배출해내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배시혜 기자 bsh1210@chungbuk.ac.kr
이진주 기자 dlwlswn5983@chungb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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