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주의 오랜 별칭 중 하나는 ‘노잼도시’다. 하지만 그건 청주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알면 알수록 청주는 ‘꿀잼도시’가 된다. 꿀잼도시 청주를 즐기는 방법의 하나는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를 찾아보는 것이다. 청주 속엔 생각보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가 있어 스크린과 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그곳을 찾아 잠시 영화의 주인공이 돼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자와 함께 촬영지 탐방에 나서보자.
베테랑 거리에서 액션 영화 주인공 되기

2015년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베테랑>에서 조태오와 서도철이 격렬한 추격전과 격투를 벌이는 시퀀스는 단연 최고의 장면이다. 이 장면의 촬영지가 바로 성안길이다. 우리 학교에서 814번 버스를 타고 지하상가 정류장에 내려 곧장 걷다 보면 오른쪽에 상가가 즐비한 큰 길목이 보인다. 이 길목이 성안길인데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풍경이 일상이다. 이 평화로운 상점가가 영화 속에선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성안동우체국부터 아트박스까지 이어지는 도로는 영화 속 조태오가 서도철의 추격을 피해 차를 몰고 질주하던 곳이다. 영화에선 시원시원한 속도감에 넓은 도로처럼 보였는데, 실제로 그 길을 걸어보니 생각보다 좁았다. 영화 속 서도철이 된 것처럼 그 길을 내달려 보기도 하며 <베테랑>의 주인공이 된 기분을 만끽했다. “아, 올리브영 앞에서 차가 부딪치고 아트박스 앞에서 서도철과 조태오가 격투를 벌였구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영화 속 장면과 현실의 모습을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무엇보다 짧은 출연에도 강한 인상을 남긴 마동석이 등장한 그 아트박스를 마주하니, “나 아트박스 사장인데”라는 명대사가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아트박스 앞에서 마치 마동석이 된 듯 힘껏 인상을 찌푸리며 인증샷을 남기고 다음 촬영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신의 한 수가 놓인 곳, 청주 중앙공원

<더 글로리>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장면이 있다. 작품 속 문동은과 주여정이 수년간 바둑을 두며 복수의 밑그림을 그리던 그 공원. 그곳이 바로 청주 중앙공원(이하 중앙공원)이다. 성안길을 쭉 따라 성안동우체국을 지나 한 블록을 더 가서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중앙공원이 보인다. 중앙공원에 들어서자, “여기가 정말 그 장면이 촬영된 곳이라고?” 하는 혼잣말이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드라마 속 장면과 현실은 사뭇 다른 모습였기 때문이다. 화면 속에서 두 사람의 대화 배경인 바둑판과 테이블, 벤치는 촬영용 소품이었는지 온데간데없었다. 테이블과 벤치는 없었지만, 그 중심이 된 은행나무만은 우직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900년 수령의 거대한 압각수로 지난 2월 충청북도 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거친 나무껍질과 하늘을 뒤덮을 듯 무성한 잎사귀를 가진 압각수는 그 자체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낸다. 압각수 앞에서 복수를 그리던 드라마 주인공의 감정에 몰입해 사진을 남겼다.
드라마에서는 유서 깊은 나무 아래에서 ‘복수’라는 서사를 덧입혔지만, 현실의 중앙공원은 청주의 역사를 품은 고요한 공간이었다. 공원 한편에는 조선시대 흥선대원군 시절 세워진 척화비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역사책에서만 보던 비석의 거친 질감과 음각된 글씨를 직접 마주하니 신기했다. 이곳은 <더 글로리>의 촬영지만이 아니라, 청주의 어제와 오늘이 공존하는 살아있는 역사 유적지였다. 공원을 둘러보고 나오니 바로 앞에 있는 청주의 명물 ‘쫄쫄호떡’의 고소한 냄새가 발길을 붙잡았다.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킨 쫄쫄호떡은 유명세 탓인지 긴 줄을 서야 했지만, 기름에 튀기듯 구워낸 호떡을 한 입 먹어보니 바삭한 달콤함이 기다림의 피로를 행복으로 바꿔주었다.
격동의 현대사를 걷다: <서울의 봄>과 <1987>의 청남대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라는 의미의 청남대는 1983년 12월 완공된 이후 줄곧 대통령 별장으로 이용되다가 2003년 관리권이 충청북도로 이관됐다. 이후 충북의 대표 관광지가 되었고,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주목받고 있다. 현재까지 70여 편의 영화 및 드라마가 청남대에서 촬영됐는데, 가장 최근에는 1,3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서울의 봄>도 이곳에서 촬영했다.
대청호를 따라 이어진 청남대의 진입로는 울창한 가로수 터널이 계절별로 운치를 만든다. 주차장에서 내려 본관으로 향하는 길, 정갈하게 다듬어진 반송 나무 길이 대통령 별장의 품격을 보여준다. 본관에 들어서니 역대 대통령이 사용했던 가구와 가전이 당시 모습 그대로 전시돼 있다. 화려하면서 어딘지 모르게 권위적인 느낌을 준다. 본관을 둘러보면서 두 영화에서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기 위해 모략을 세우던 장면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실제로 당시 권력자들이 이와 비슷한 곳에서 정권 찬탈과 유지를 위해 온갖 음모를 꾸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2.12 쿠데타로 권력을 쥔 전두환이 만든 이곳에서 전두환 세력에 맞서는 내용을 담은 <서울의 봄>과 <1987>이 촬영됐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스크린에서 본 장소에 내가 서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감동적이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담겼던 그 공간이 우리가 일상을 보내는 이곳 청주에 있다. 다가오는 주말, 스크린 속 주인공이 돼 가을의 마지막을 느끼는 특별한 하루를 청주에서 보내보길 권한다.
윤상현 기자
sanm9427@chungbuk.ac.kr








윤상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