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부턴가 서점은 넓은 공간에 수만 권의 책이 진열된 곳이 됐다. 그리고 서점 내 책의 배치 기준은 대부분 ‘판매량’이다. 판매량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책은 진열대에서 사라져 독자의 선택권 밖으로 밀려난다. 이런 이유로 ‘넓은 공간과 많은 책’을 가진 대형서점이 충족시키지 못하는 독자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판매량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 책을 선별해 판매하는 독립서점이 등장하고 있다. 독립서점은 대형서점에 비해 극히 작은 규모의 공간과 적은 수의 책을 보유하고 있지만, 대형서점의 축소판은 아니다. 독립서점은 각각 자신만의 기준으로 책을 선별하고 배치해 대형서점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대형서점에서 밀려났던 책이 독립서점에서 ‘재발견’되고, 독자 앞에서 ‘재구성’된다. 책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책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연결의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는 독립서점을 만나보자.
독립서점에만 있는 것은?
‘독립서점’은 말 그대로 ‘독립’된 서점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의 독립일까? 첫째는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다. 이들은 교보문고나 알라딘 같은 대형서점 자본과의 연결고리 없이 독립적으로 서점을 운영한다. 둘째는 ‘양으로부터의 독립’이다. 독립서점은 많은 책을 싼 가격에 들여놓고, 빠른 속도로 팔아 이윤을 극대화하는 베스트셀러 중심의 서점 질서로부터 독립해 있다. 대부분 대형서점은 판매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어 특정 독자의 취향까지 반영하기 어렵지만, 독립서점은 서점별로 특정 취향의 독자에 맞춰 소량의 책을 판매한다.
독립서점의 매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독립서점은 판매를 위한 공간을 넘어 독서 모임, 작가와의 만남, 워크숍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취향 공동체’를 형성하는 플랫폼의 역할을 한다. 독립서점의 가장 큰 매력은 책방지기의 관심사와 안목이 반영된 독특한 큐레이션이다. 서점별로 책방지기의 감성과 취향을 바탕으로 콘셉트를 정하고, 책의 선별과 공간 연출, 행사 기획까지 모든 과정을 독자적으로 진행한다. 책방지기에 따라 취급하는 책의 장르도 다르다. 예술, 건강, 여행, 에세이 등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구성된 서점도 있고, 일반 단행본과 소규모 출판물을 함께 다루는 곳도 있다. 또한 커피와 술을 즐길 수 있는 서점, 숙박과 결합한 ‘북스테이’ 서점 등 독특한 콘셉트도 있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이도저도 서점’
노란 은행잎으로 가득한 대전 유성구 신성동의 골목, 아담한 책방 하나가 눈에 띈다. 이름부터 독특한 ‘이도저도 서점’. 이곳은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독립서점이다. ‘이도저도 서점’이라는 이름에는 남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다.

이도 저도 아닌 것 같아도 괜찮아
책방지기 태병권 씨는 한때 자신을 ‘특출난 한 가지가 없는 사람’이라 여겼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어느 날, 여러 관심사를 두루두루 좋아하며 살아가는 자기 모습에서 위로를 찾았다. 그는 “남들 눈에는 이도 저도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며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라며 웃는다. 이런 생각은 곧 서점의 이름이 됐고, 공간의 메시지가 됐다.
나다운 서점
책방 운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를 묻자, 그는 단호히 답했다. “저답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서점에는 책방지기의 개성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겼다. “나다운 게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저의 취향과 생각을 담아 서점을 꾸려 나가고 있어요. 서점은 나라는 사람의 고유함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고, 이 공간만큼은 제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운영하고 싶어요. 이 서점은 제 취향과 철학이 고스란히 투영된 곳이에요. 다른 사람들이 이 모습을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어요. 이곳은 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공간이니까요.”
문학과 과학이 만나는 서점
‘이 좁은 공간에 어떤 책을 놓을까?’라는 질문은 이 서점의 색깔을 결정짓는 중요한 고민이었다. 책방지기는 문학과 과학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서가를 채우기로 했다. 문학은 그가 오랫동안 사랑해 온 분야다. “소설이 가진 이야기가 삶에 큰 힘을 주잖아요.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한편, 과학 서적을 비치한 이유는 그의 가치관과 깊게 연결돼 있다.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사고하는 태도는 삶을 더 나아가게 한다고 생각해요. 반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행동하는 자세를 과학에서 배웠죠.”
대화로 전하는 책 추천
이곳에서는 책방지기가 직접 손님에게 책을 추천하는 풍경이 흔하다. 이도저도 서점에서는 손님과 대화하며 책을 추천한다. 손님의 관심사를 듣고 떠오르는 책을 건네거나, 책방지기가 직접 읽고 느낀 점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책 추천은 정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에요. 앞으로도 손님들과 함께 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이도저도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다. 책과 사람, 그리고 삶의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공간이다. 책방지기의 취향과 철학이 깃든 이 서점은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 될까 걱정하는 이들에게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라고 위로를 건넨다.
다름이 모여 닿는 곳, '다다르다'
대전 중구 은행동 성심당의 달콤한 빵 냄새를 따라 걷다 보면, 독립서점 ‘다다르다’를 만날 수 있다. 작고 아담한 이 서점은 따뜻하고도 독특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 이 서점의 슬로건, ‘우리는 다 다르고, 서로에게 다다를 수 있어요’가 이곳의 모든 걸 말해준다. 각자의 다름을 존중하며 서로의 삶에 닿는 공간으로 들어가 보자.
다름이란 서로 이해하고 닿는 과정이에요
서점 이름의 유래를 묻자 책방지기 김준태 씨는 “사실 처음에는 다른 이름을 썼는데, 이전 공간에서 퇴거 명령을 받고 이사를 해야 했어요. 그 과정에서 우리가 왜 서점을 운영하는지, 서점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죠. 결국, 다양성을 존중하는 대전이라는 꿈을 담아 ‘다다르다’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시작하게 됐어요. ‘어딘가에 다다르다’, ‘무언가를 유발한다’는 중의적인 뜻과 함께 ‘다 다르다’라는 표현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포용하는 대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라고 밝혔다.
맥락을 잇는 책장
다다르다의 서가는 단순히 장르나 주제로 책을 나누기보다는 책과 책이 가진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배치돼 있다. “책을 들여올 때 고민이 많아요. 게다가 다다르다는 책을 반품하지 않기 때문에 더 신중해야 합니다. 책을 단순히 카테고리로 나누기보다 서로 연결된 맥락을 만들어 가는 방식으로 배치해요. 예를 들어, 식물 책 옆에 생태, 숲, 기후 위기와 관련된 책들을 이어 놓아서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도록 하는 거죠.” 또 다다르다는 책 진열 방식에도 특별한 의미를 둔다. “책 표지가 보이도록 눕혀 놓은 책은 저희가 더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은 책이에요. 이 책이 누군가에게 꼭 닿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배치합니다.”

영수증 서점일기
다다르다의 매력을 이야기할 때 꼭 언급하는 것이 ‘영수증 서점일기’다. 다다르다에서 발행하는 영수증에는 결제 정보만 담기지 않는다. 책방지기의 일상 이야기, 책 속에서 발견한 멋진 문장 등 따뜻한 기록들이 가득하다. “처음엔 책을 더 많이 알리고 싶어서 영수증 하단에 제가 좋아하는 문장을 출력했어요. 예상보다 반응이 너무 좋아서 그날 있었던 소소한 이야기나 서점에서 일어난 재미있는 일도 담기 시작했죠. 지금은 서점 일상, 독서 모임 후기, 손님과의 대화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다다르다의 손님들은 영수증 서점일기를 통해 책방지기의 이야기를 엿보기도 하고, 책장을 거닐다 우연히 새로운 책과 만나기도 한다. 다다르다는 차이를 넘어 서로 닿으려는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 만들어진 특별한 공간이다.
책방에서 만나는 감동, ‘바베트의 만찬’
대전 서구 갈마동의 한적한 골목에 자리 잡은 독립서점 ‘바베트의 만찬’. 인상적인 이 책방의 이름은 덴마크 작가 이자크 디네센의 작품 <바베트의 만찬>에서 영감을 받았다. 책방지기 부부가 대학 시절 영화를 통해 처음 만난 이 작품은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감동을 남겼다. 남편 책방지기 김민철 씨는 “농담처럼 꺼낸 이름이었지만, 아내의 긍정적인 반응 덕분에 책방 이름으로 정하게 됐었어요. 비록 반찬 가게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오히려 이 이름 덕분에 책방의 운영 철학을 잘 설명할 수 있어요.”라고 전했다.

책과 문장을 잇는 공간
책방을 둘러보면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책 사이사이에 꽂혀 있는 손 글씨 메모들이다. 이 메모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책을 대표하는 문장이나 소개 글이 적혀 있기도 하고, 때로는 책방지기가 좋아하는 문장이 담겨 있다. 또한, 독서모임 선정 도서나 손님들이 직접 작성한 책 소개도 발견할 수 있다. 메모는 책을 읽는, 읽을 사람과 책 사이를 잇는 다리가 된다.
독서모임의 역사가 담긴 큐레이션
이 책방의 또 다른 매력은 독서모임을 중심으로 한 특별한 큐레이션이다. 매월 10권 이상의 독서모임 선정 도서를 중심으로 큐레이션이 이루어진다. “선정 도서들을 통해 우리 서점의 정체성과 단골손님들의 취향을 엿볼 수 있어요. 독서모임으로 읽었던 책들을 한데 모아둔 코너는 책방의 역사와 노력을 엿볼 수 있는 가장 자랑스러운 공간입니다.”
책방지기 부부가 영화를 보고 느꼈던 감동처럼,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책 한 권이 누군가의 삶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이곳에서의 책과의 만남은 단순한 소비가 아닌 특별한 경험으로 이어진다. 바베트의 만찬은 책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와 추억이 오롯이 쌓이는 따뜻한 독립서점이다.
장윤서 기자
younseojang@chungb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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