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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내가 지치고, 힘들고, 주저앉고 싶을 때
제 954 호    발행일 : 2020.11.30 
장연지(사회학과·19/창문학동인회)

  홀린 듯이.
  학교에서 돌아오고 늦은 밤. 시계는 정각으로 달려가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가방을 내려놓고 편한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피곤한 얼굴로 휴대폰을 만지며 놀다가 씻고 자야만 한다. 그러나 정말로 피곤해서 머리는 당장 휴식을 취하라고 외치는데도 몸을 바쁘게 움직여야만 할 때가 있다. 그게 바로 오늘이다. 다녀왔습니다, 인사를 하고 방으로 가서 재빨리 가방을 내려놓고 나왔다. 내 몸에 맞지 않아 불편한 교복을 갈아입지도 않고서 주방으로 향한다. 평소 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음에도 돈 값도 못하고 답답하기만 한 교복이 이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달그락 소리를 내며 선반을 뒤져 라면 끓이는 작은 냄비를 찾아낸다. 뒤에서 들리는 TV 속의 시끄러운 웃음소리와 오밤중에 넌 또 뭐 하냐는, 시험이 며칠 남았는데 공부나 하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흘려보내며 지금 내게 필요한 재료들을 모았다.
  우유, 설탕, 계량컵, 반쯤만 남아있는 라벨 스티커가 붙은 잼 병.
  먼저, 잼 병을 열탕 소독해줘야 한다. 나중에 해도 상관은 없지만, 먼저 해주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제일 먼저 해준다. 잼 병에 팔팔 끓는 물을 집어넣은 다음에 한 번 흔들었다가 버려주고, 잼 병을 거꾸로 세워서 그 위로 팔팔 끓는 물을 부으면 끝이다. 안 해주면 내용물에 알록달록 곰팡이 피기 십상이기 때문에 꼭 해줘야 한다.
  두 번째로, 계량컵으로 우유 양을 재고 냄비에 부어 주면 된다. 마찬가지로 설탕도 우유와 같은 비율로 넣어 주면 된다. 하지만 귀찮으니 눈대중으로 우유를 두 잔정도 부어 준다. 마찬가지로 설탕도 넣어주는데, 1:1 비율은 너무 단데다가 설탕이 아까운 까닭으로 우유보다 덜 넣어준다.
  세 번째, 약불로 설탕을 살살 녹여주면서 끊임없이 저어준다. 이것으로 레시피는 끝이지만 이제부터 글 몇 자에 담기지 않은 과정이 남았다. 꽤 오래 저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의자를 가지고 온다. 의자 위에서 웅크린 채로 천천히 우유를 저어준다. 머리 뒤편에서는 여전히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간간이 번쩍거리는 불빛이 벽면에 비친다. 나는 다시 흰 우유가 담긴 냄비를 응시한다. 머리는 여전히 빨리 쉬라고 외치고 있다. 정신이 몽롱한 와중에도 나는 착실히 우유를 휘젓고 있다.
  설탕이 다 녹았다. 설탕이 다 녹았으면 냄비가 탈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이때부터 레시피의 말을 듣지 않고 내 편의를 따르면 된다. 레시피를 착실히 따르면 완성은 내일 아침에야 볼 수 있을 거라고 잠깐 투덜대면서 불 세기를 높인다. 이때부터 정신을 좀 차려야 한다. 정신을 홀랑 놓았다간 렌지까지 청소해야 할 것이다. 이제야 서서히 김이 올라온다.
  그럼에도 완성되기까지 한참 남았다. 우유를 저으면서 오늘 일을 되감아 본다. 평소와 같은 학교생활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중간중간 평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나에게 하던 이야기였을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 하던 것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했던 것일지라도 듣는 나 또한 지치게 했다. 무뎌진 가슴 어딘가에 생채기가 났던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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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순간부터 웃음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아마도 엄마가 TV를 끄고 들어가신 것 같다. 거실에는 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남아있다. 우유가 끓어오르며 거품이 잔뜩 부풀어 오른다. 이럴 땐 재빨리 불을 낮춰야 한다. 띵. 띵. 띵. 거품이 부풀어 오름과 동시에 꺼지고 보글보글 기포만이 올라오고 있다. 적막한 거실의 공기가 안락하다.
  낮에는 내 자리를 위해 열심히 투쟁해야만 했지만 밤은 다르다. 밤에는 웅크린 내 한 몸 정도를 기댈 공간이 생긴다. 마치 전쟁에서 다친 부상병이 집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 내 머리 위는 환하지만 이 주변을 둘러싼 어둠은 전혀 낯설지 않다. 달콤한 캐러멜 향이 피어오르고 우유의 색은 갈색으로 변했다. 이제 슬슬 팔이 아파진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계속 저어야만 한다.
  하지만 너무 실망하지 않아도 된다. 끝은 시계의 바늘이 달려가는 것과 같이 내게 달려오고 있다. 이제 시계의 시침은 1시를 가리키고 있다.
  팔이 아픈 때는 대충 젓는 것을 추천하는데, 팔꿈치를 바닥에 대고 저으면 좀 낫다. 설탕을 많이 넣었으니 정성은 덜 들어가도 아주 맛있을 것이다. 불 세기를 좀 더 높여보자. 우유는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휘젓던 주걱으로 한 번씩 내용물을 퍼 올렸다가 떨군다. 우유가 시럽처럼 변한 것 같다. 진한 캐러멜 향이 속을 가득 채운다. 따듯하면서도 행복해지는 냄새다. 몸이 노곤해진다.
  우유가 다시 넘칠 것 같다. 그럼 다시 재빨리 불을 줄인다. 그래도 여전히 우유는 끓고 있다. 냉한 마음에 온기가 살그머니 들어갈 시점에서 우유는 동화 속에 나올 법한 마녀의 수프처럼 끓고 있다. 커다란 기포를 퐁퐁 터뜨리며 걸쭉하게 끓고 있다. 우유잼의 완성이다.
  완성을 하면 불을 끄고 아까 열탕 소독을 한 잼 병에 내용물을 붓는다. 냄비를 싹싹 긁어 잼을 다 털어 넣고 냄비에는 물을 받아 싱크대에 놓는다. 그러고 나서 다시 잼 병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병을 조심스럽게 손으로 감싼다. 따듯함이 손에서부터 퍼져나간다. 그렇게 몸이 좀 데워졌으면 손을 데기 전에 얼른 떼야 한다.
  이제 냉동고를 뒤져서 얼려놓았던 식빵 한 조각을 꺼내 토스트기에 넣어 바삭하게 굽는다. 통-하는 소리와 함께 빵이 튀어 오른다.
  따끈한 빵 위에 김이 폴폴 나는 우유잼을 바른다. 저절로 침이 고인다. 바사삭. 따끈따끈하고 달콤하다. 하아. 속에 가득 쌓였었던 한숨을 토해낸다. 그리고 마저 먹기 시작한다. 째깍째각 소리와 함께 빵이 부스러지는 소리가 거실을 가득 채운다. 간간이 아빠의 숨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속이 따듯하다. 몽글몽글 뭔가가 솟아올라 내 안을 가득 채운다. 어쩌면 오늘 우유잼을 만든 것은 내 생존본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고 싶어서. 나를 상처투성이로 만들었던 세상을 다시 마주하기 위해서라도 치료과정이 필요해서 이러는 거 아닐까. 허한 속이 채워지고 따듯한 피가 차가운 손끝까지 돌기 시작했다. 생채기가 하나 둘 사르르 아문다. 무뎌진 나는 못 느꼈던, 내 마음만 알고 있었던 고통들이 사그라들었다. 아픔을 몰라 준 게 약간 미안해져 내 마음에 작게 사과를 한다. 치료가 끝났다. 이제 곧 설거지를 하고 뒷정리를 해야 할 테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온기를 온전히 누리고 싶은 마음에 늑장을 부리게 된다. 조용한 밤은 그런 나를 모른 척, 장막으로 덮어준다. 어딘가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개굴개굴,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우유잼을 한 술 더 펐다. 아,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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