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ㆍ졸업의 30년 풍경을 그리다
입학과 졸업, 이 두 단어는 시작과 끝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또 다른 출발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새로운 시작만큼 설레는 일이 어디에 또 있을까. 하지만 최근 들어 입학식과 졸업식의 풍경은 이런 의미가 무색할 정도로 형식적이고 매년 똑같은 행사로만 진행되고 있어 그 본래의 의미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의 입학식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1961년 11호의 기사에서는 당시 신입생 환영식 행사로 성황리에 열린 콩쿨대회 소식을 알리며 “장내를 흥겨움 속에 몰아넣는 동시에 폭소에 폭소를 가하여 웃음의 바다를 이뤘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한다. 학생자치회가 주최한 이 행사는 교수들과 재학생 전원이 참석할 정도로 큰 행사였다. 이후 70년대에는 신입생 환영 가면무도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1972년 112호 기사에서 “신입생 230명은 학생들이 저마다 독특한 가면을 쓰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고 적고 있다. 이처럼 과거의 입학식은 신입생 자신들이 만드는 행사로 학생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렇다면 지금 ‘새터’라고 불리는 새내기 배움터는 언제 생겨난 것일까? 새터는 학생회에서 개최하는 행사로 시작해 99년에 들어서 총장과 학생처장이 참가하며 공식적인 모임의 성격을 띠는 행사로 인정받았다. 이후 2000년부터 학교와 학생회에서 공동으로 주관하여 지금에 이르게 됐다.
입학식 풍경이 점차 간소화되고 변화한 것에 비해 졸업식 풍경은 과거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문제점도 보인다. 1996년 588호 신문을 보면 “요즘 대학 졸업식은 학위를 받는 사람과 그 밖의 소수의 행사다”라고 하여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졸업생의 참여가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요즘은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정좌석제를 운영하는 등 졸업생의 참여를 유도하려는 변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문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마음·하나로 ‘개신축전’부터 ‘대동제까지
매년 돌아오는 개신축전. 대동제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우리 학교 축제는 57년이라는 긴 세월 속에서도 여전히 가슴을 설레게 하는 하나의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다. 종합대학 승격 이후 3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의 축제는 어떻게 변해왔을까.
우선 ‘민족의 고유한 멋 충분히 살려야’라는 1978년 189호 기사에서도 언뜻 볼 수 있듯이 7,80년대의 축제는 민족과 전통이 강조됐음을 알 수 있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은 민주화의 사회 분위기가 축제에까지 스며들어 있었으며,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자유와 개성이 강조되고 있다.
지금은 개교기념일에 맞물려 가을에 열리는 축제가 1979년부터 84년까지는 꽃피는 5월에 열렸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처음으로 5월에 시행된 1979년의 200호 축제관련 기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매년 가을에 열리던 축제가 처음으로 라일락의 향기와 함께 개신 들판에 무르 익었다”
지금은 운영되지 않는 주막촌도 과거에는 축제의 흥을 부르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물론 과거 기사 곳곳에서 ‘먹자판 놀자판을 경계할 것。술이란 본시 마시고 놀자는 데서 생겨났는지는 모르지만 그 자체가 곧 술의 목적은 아니라는 생각이오。(1987년 449·0호)’라며 개신인들의 과한 음주 문제에 대해 지적하는 것을 보면 흥을 과하게들 불렀던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을 듯하다.
또 한 가지. 90년 이전에는 축제를 ‘개신축전’이라 명명했으나 그 이후부터 ‘대동한마당’이라고 불렀다는 사실도 이번 기회에 알아두면 어떨까.
대학생의 영원한 숙제 ‘취업’
취업난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외환 위기를 겪은 97년부터 청년 실업 문제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을까? 그렇지만은 않다. 과거 신문을 보면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에도 취업에 대한 대학생들의 고민은 여전했음을 알 수 있다.
1978년도 181호 신문에는 본교 학생들의 취업 현황이 부진함을 꼽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업보도소 같은 취업전담 기구를 조직하여 종합적으로 취업실태를 조사, 분석하고 비평해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고 새로운 진로를 개척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라고 해 그 당시에도 취업난 문제가 여전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1989년 488호에서는 우리 학교의 취업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현대 사회의 필수인 영어에 관한 실력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를 통해 약 20년의 시간을 두고 있는 당시의 모습이 토익ㆍ토플공부로 한창인 요즘 대학생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1990년대에는 학교의 취업 지원 사업과 학생들의 노력 덕분인지 취업률이 예전보다 상승했다는 기사(495호, 509호)가 신문에 실리기도 했으나 2000년대 현재 취업문은 더욱 좁아졌다. 이처럼 취업에 대한 고민이 시대를 막론하고 대두되었듯 앞으로도 예비사회인으로서 취업에 대한 고민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김은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