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주체성을 가져야 된다는 거죠. 지금 내가 고집부리는 생각은 어디에서 왔는가를 물어야 해요. 대부분 주입식 교육으로 내 머리에 의미 없이 입력된 것이죠. 그리고 그것은 틀림없이 내 것이 아니거든요. 당연히 책하고 어떻게 친할 것인가. 그 문제에요. 요즘 학생들 책을 너무 안 읽어요.”
요즘 대학생들의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 그가 답한 말이다. 파리에서 20여년 망명생활, 전(前) 파리의 택시운전기사, 지금은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언론인 홍세화 씨를 만나보자.
갑자기 불어 닥친 기습 한파에 옷을 꽁꽁 껴입고 한겨레신문사로 향했다. 8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홍세화 씨가 환히 웃는 얼굴로 기자를 맞이했다. 그 미소에서 기자의 긴장된 마음과 추위에 떨었던 몸은 한순간에 녹아 버렸다. 미로 같은 사무실을 헤치고 작은 방문 앞에 다다랐다. 문이 열리자 보이는 것은 여기저기 높이 쌓여진 책들. 하지만 지저분하다기보다 그 자리가 제자리인 것 마냥 느껴졌다.
-평소에 책을 얼마나 읽으세요?
책들을 보고 놀라서 한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일주일에 두 권 정도 읽으려고 하고 있죠. 어떨 땐 앞부분, 끝부분만 읽기도 하고, 사선으로 읽기도하고 때에 따라 달라요.”
홍세화 씨는 항상 책을 곁에 두고서 책을 읽는다기보다 함께 지내는 것처럼 보였다. 책상위도 온통 책들로 쌓여있었지만 이내 곧 그것들을 내려놓으며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홍세화 씨 하면 망명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인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을 빼놓을 수가 없는 데요.
“그때가 박정희 정권 때지요. 내가 파리에 있는 동안 남민전의 실체가 밝혀져서 한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20년 정도 망명생활을 했죠.”
-20여년의 세월이면 그곳에서 정착하셨을 것 같은데 왜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셨나요?
“사람이 사회적 동물인 만큼 자신이 속한 사회가 있고 그 곳에서 귀속되고 싶은 게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프랑스는 그 점에 있어서 거리가 있었죠. 내가 아무리 프랑스에 살고 있어도 생각은 한국어로 하고 있는 것이에요. 어떤 언어로 생각하느냐가 중요한데, 여기서부터 이미 나는 프랑스사회 구성원이 아녔던 거죠. 즉, 내가 프랑스에서 산다는 것은 사회적 동물로 사는 게 아닌 거죠. 반면에 내 아이들은 프랑스어로 생각하니까 프랑스 사회 구성원이라고 할 수 있죠.”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있어서 ‘만남’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만남, 만남은 굉장히 중요하죠. 사람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은 반드시 만남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죠. 그런데 요즘 사회는 사이버문화가 극단화되면서 나타난 현상들이 문제가 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아이들이 서로 장난치고 뛰어놀던 문화가 사라지면서 어울려 놀기보다는 화면 앞에 앉아서 자기만의 사이버세계에 고립되게 되었죠. 그 결과로 나타난 이른바 히키코모리(은둔형외톨이)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은 만남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기 때문에 만남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의미 있고 중요하죠.”
-요즘 세상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고 남들에게 신경 쓸 시간이 없어진 것도 그러한 만남이 없어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렇죠. 지금까지 너무나 성장 중심주의로, 끊임없이 성장 또 성장. 이제는 어느 정도 한계가 온 것이죠. 양극화가 심해지고 성장논리에도 한계가 왔죠. 그 예가 고용 없는 성장, 옛날에는 고용 있는 성장이었는데 지금은 고용 없는 성장이다 보니 젊은이들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게 되었죠. 이러한 문제들을 볼 때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안되고 그런 면에서 분배, 복지 이런 쪽으로 방향전환이 이루어져야 된다는 것이 전 지구적인 흐름이라고 봐요.”
-그럼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가장 중요한 것이 대학 서열화를 혁파(革罷)하는 것이죠. 대학으로 신분적 위치가 결정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에요. 사람들이 대학과 학과를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것도 문제지만 자기 자신 스스로도 ‘내 위치가 한국사회에서 이쯤이구나’하고 결정해 버리죠. 사실 무서운 얘기거든요. 신분적 위치를 규정하고 규정 당한다는 것은 무서운 것이죠.”
-대학 서열화를 혁파할 수 있는 해결책이 있나요?
“대학평준화에요. 이미 유럽 여러 국가에서 하고 있어요.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대학이 평준화되면 엘리트 교육은 어떻게 하냐?’ 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럼 독일이 경쟁력이 없나요? 어림도 없는 소리에요. 그리고 대학의 경쟁력은 학문의 경쟁력이에요. 보세요, 대학생들 스펙 쌓기나 하지 학문을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이 없는데 무슨 놈의 경쟁력이 있겠어요. 이 점에서는 소위 국립대, 지방 거점 국립대 학생들이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어요. 너무 이런 문제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답답한 거죠. 바로 자기 문제인데 왜들 제대로 못하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한국 대학생들의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생각의 주체성이 없다는 거죠. 지금 내가 고집부리는 생각은 어디서 왔는가를 물어야 해요. 거의 틀림없이 내 것이 아니거든요. 당연히 책하고 어떻게 친할 것인가. 그 문제에요.”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여러분이 왜 불안해요? 대학 들어갔는데도 온통 불안하잖아요. 욕망을 엄청나게 들쓰고 있는데 그 욕망을 해소할 수 있는 물적 토대는 지극히 일부만 있을 뿐이죠. 그러니까 불안할 수밖에 없죠. 현재 이러한 구조를 바꿀 생각은 안 하고 서로 자기만 어떻게 해보려고 하니까 계속 반복되는 거죠. 나만 정규직 대기업에 들어가면 되겠지 하는 생각, 하지만 그 숫자는 정해져 있는 거잖아요. 구조를 바꾸려고 해야지... 한편으로는 이해되는 부분도 있어요. 이해는 하지만 답답하다는 거죠. 그래도 조금 더 나아가야 발전이 있지 않나 하는 아쉬움인 거죠.”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대학생들이 들으면 주눅들 법한 이야기였지만 홍세화 씨는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날카로운 그의 눈빛도 이제는 사뭇 따뜻하게 느껴졌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에 대한 이런 관심도 진정한 사랑이 있어야 나오는 것이 아닐까.
오는 11월 4일 우리학교에서 홍세화 씨의 강연이 있어 그 날을 기약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릴 수 있었다.
이봉윤 수습기자
antidwons@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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