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방송을 봐왔던 사람이라면 그녀를 아나운서로 기억하고 있다. 바른 이미지의 똑부러지는 말투. 하지만 그녀의 현재 직업은 기자다. 10여 년의 아나운서 생활을 접고 새로 기자에 도전한 이윤영씨를 CJB방송국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원래 꿈은 아나운서였어요. 처음 시작은 목포 MBC아나운서로 출발했는데, 3년 동안 아나운서로 취재도 하고 리포팅도 하면서 재밌게 보냈죠.”
목포 MBC에서 아나운서를 하던 당시, 청주에서 2차 민영방송이 출범하게 됐다. 민영방송에 새로운 도전을 하고자 했던 그녀는 경력직 아나운서로 CJB와 연을 맺게 됐다. 10여 년의 메인 앵커 자리, 그녀는 왜 방송의 꽃을 포기하고 기자로 도전하게 됐을까.
“아나운서는 태생적인 한계점이 있죠. 취재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도 원고대로 읽어야 하는 것. 그 때문인지 매너리즘에 빠졌어요. 그래서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필요했죠. 그러면서 진정한 의미의 ‘앵커’를 꿈꾸게 됐어요.”
크롱 카이트와 같은 유명한 앵커의 경우, 취재 경험과 어느 정도의 편집권을 가진다. 취재를 겸한 뉴스캐스터, 그녀가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앵커다.
“저는 다시 태어나도 언론인이 되고 싶어요. 매력 있는 직업이거든요. 20대의 내가 감히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지위를 막론하고 모두 만날 수 있었어요. 프로그램을 통해 진정한 인간적 교류도 할 수 있는 직업이에요. 사회적으로 영향력도 있고요.”
흔히 아나운서를 방송의 꽃이라 표현한다. 방송사의 이미지를 가장 잘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기자는 현장을 직접 뛰어다니기에 아나운서에 비해 거친 직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자의 힘이랄까요. 제가 쓴 기사를 통해서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 작은 부분이지만 바뀌어 나가는 부분도 있고… 성과물이 있으니까 매력적인 것 같아요.”
그녀는 작은 부분을 바꿔 나갈 수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그 성과는 작지 않았다. 단돈 만 원이면 고치는 계량기를 청주시는 몇 십 년째 훨씬 많은 인건비를 지출해 왔다. 이 사건을 그녀가 보도함으로써 청주시 예산에 반영이 됐고, 그 결과 연간 수십억의 예산이 절감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전쟁고아 출신의 김 모씨가 애타게 찾아왔던 아버지의 묘는 현충원에 있었다. 하지만, 같은 이름과 군번으로 두 개의 묘가 있었던 것이다. 현충원에서는 어떤 게 진짜인지 모르니 당사자에게 하나를 결정해서 다른 하나를 없애라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당사자는 결국 4년 동안 두 개의 묘에 모두 참배를 했다. 이를 의뢰받은 그녀는 현충원을 취재했고, 이 방송이 전국으로 방송돼 국방부 장관의 지시로 일주일 만에 해결됐다.
“개인 이윤영이라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인데, 이윤영 기자이기 때문에 바꿀 수 있는 일이었어요. 이게 기자가 존재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기자이기 때문에 바꿀 수 있는 일이었단 그녀의 말에는 보람뿐만 아니라 고난도 숨겨져 있는 듯했다. 그동안 두 가지의 일을 모두 해보면서 힘든 일은 없었을까.
“아나운서는 온실 속의 화초 같지만, 일 년 내내 절대로 아프면 안 되는 사람들이에요. 매일 방송을 해야 하니까요. 10년 넘게 아나운서 일을 하면서 명절 때 집에 가본 적이 없어요. 남들 놀 때 더 많이 일을 해야 하고 명절 때는 꼭 나와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휴가도 못가고 쉬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는 것. 그러면서도 내 체력을 계속 유지해 방송 때 최상의 상태를 만들어야 하는 게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기자생활도 쉽지만은 않다. 매일 아침 경찰서를 돌면서 하루 동안 있었던 사건 ? 사고를 체크해야 한다. 경찰서에는 밤샘 취조에 지친 경찰과 강력범들이 기다리고 있다.
“여자로서 굉장히 무섭고 가기 싫어요. 하지만 기자는 사건 ? 사고에 대해 물어봐야 하잖아요. 그러면 따뜻한 음료 사들고 가서 물어보는 거죠. 기자니까…”
여자로서는 무섭고 하기 싫은 일도 ‘기자’이기에 해내고 있는 모습에서 그녀가 생각하는 기자가 무엇인지 더 알고 싶었다.
“기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회를 보는 올바른 눈이라고 생각해요. 내 가치가 보편타당하지 않으면 방송보도가 비뚤게 나갈 수밖에 없잖아요. 중립적인 가치관을 가지면서도 보편적인 시각에서 시청자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소개해야 하죠. 신문도 보고 책도 많이 봐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많이 들어야 해요. 다양한 의견을 모두 실어줘야 하는 게 기자의 일이니까요.”
그녀의 인생에서 전환점이 되었던 기자. 새로운 자리에서도 굳건한 입지를 다진 지금,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역성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돼요. 서울 아나운서들은 할 수 없는 다양한 기회들을 오랜 기간 누릴 기회가 있었던 것은 지역 방송 아나운서였기 때문이에요. 저에게는 행운이었죠. 하지만 그것이 기자로서의 저에게는 한계를 가져다 준 것 같아요. 글로벌화 돼있는 사회에 살면서도 충청북도라는 곳이 세계인 것처럼 살았으니까요. 글로벌화와 더불어 디지털화가 됐는데, 이에 발 맞춰서 기자들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많은 학생들이 뉴스를 보지 않는데, 이는 젊은 학생들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저희도 반성해야 해요. 바꿔 말하면 그들의 눈을 끌만한 뉴스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되니까요.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기자였지만 이런 시대적 흐름에 맞춰 멀티형 방송인으로 변신에 성공해야 한다는 것, 그게 제일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충북의 문제만을 다뤘지만, 이제는 세계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충북 사람들에게도 세계를 알려주고… 충북과 세계의 다리 역할을 하고 싶어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항상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그녀. 그녀는 아나운서와 기자라는 직업이 ‘매력 있다’ 말했지만, 그녀 역시 ‘매력 있는’ 사람이었다.








김혜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