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시 상당구에 위치한 청주대학교. 충북대학교에 ‘중문’이라는 젊은이들의 공간이 있다면 청주대학교에는 그 유명한 정문 ‘먹자골목’이 있다. 그 중에서도 지난 32년간 파전으로 전통을 이어온 가게가 있다. 바로 청주에 오면 한번쯤 먹어봐야 한다는 ‘삼미(三味)파전’이다. 올해로 꼭 32년째, 단 한 차례도 쉰 적이 없었던 삼미파전은 올해 처음으로 6개월 가까이 문을 닫아야만 했다.
“특별히 넘어지거나 다치고 이런 건 없었어요. 그냥 일하다보니 어딘가에서 자기도 모르게 다친 것이었겠죠.”
최금순(68) 씨가 삼미파전과 매일 매일을 함께 지낸 세월이 어느덧 32년. 지난해부터 안 좋았던 다리의 통증은 올해가 되면서 점차 심해졌다. 이내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파진 다리 때문에 최 씨는 휠체어 신세를 질 수 밖에 없었다. 삼미파전의 영업시간은 대체로 오전 9시 정도부터 자정이 넘어가기까지. 여유 있게 치료를 받을 시간도 없던 최 씨는 서울과 청주를 왔다 갔다 하면서 겨우겨우 병원에 다녔다. 그러나 매일 서서 일을 해 왔던 탓에 결국은 올해 4월 20일 가게 문을 닫고야 말았다. 한 달 정도를 재활 치료에 집중하자 그때서야 조금은 증세가 완화되는 듯 보였다.
“그래서 8월 26일에 다시 문을 열게 됐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몸이 완전히 나아지기는 힘들더라고요. 다리 뼈에는 금이 갔고 허리에는 협착증이 생겼으니까요.”
최 씨는 9월 17일 수술대에 올랐다. 삼미파전의 문은 다시 굳게 닫혔다. 한 번도 닫힌 적이 없던 문이었다. 지난 10월 1일, 최 씨는 영업을 개시했지만 지금도 몸 상태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몇 개월 동안 장사를 안 하고 있으니 손님들 사이에 갖가지 소문이 다 돌았더라고요. 영업정지를 당했다느니, 주인이 죽었다느니 하면서 말이죠.”
짓궂은 소문조차 단골들의 애정 어린 관심으로 보이는 까닭일까? 최 씨는 자신이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는 얘기를 하면서도 실소를 머금었다.
평일 오후 3시에서 4시 사이라면 대부분의 식당에는 손님이 없을 시간이다. 그러나 삼미파전은 이미 절반가량이 손님들로 차 있었다. 워낙 크지 않은 가게 규모이기도 하지만 주변에 다른 가게들과 비교해봤을 때, 삼미파전을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가게 안의 손님들은 최 씨를 보며 친근하게 말을 건네고, 최 씨도 자식들을 대하듯 편하게 대화한다. 칠순이 다 되어 가는 나이에 성치 않은 몸. 수술을 마치고 충분히 쉬어야만 하는 시기인데도 최 씨가 가게 문을 여는 이유가 내심 짐작이 된다. 최 씨는 오히려 “그래도 요즘엔 몸이 안 좋으니 밤 12시가 되면 문을 닫는 편”이라고 얘기한다.
처음 삼미파전을 개업했을 때 최 씨의 나이는 36살이었다. 이제는 단골손님이 자식들의 손을 잡고 오는 광경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루에 혹은 한 달에 몇 명이 찾아 오는지 세어볼 수도 없다는 것이 최 씨의 설명이다.
“단골들도 많고 요즘 대학생들도 많이 오죠. 단골들은 거의 다 얼굴을 알아요. 아마 학교 사정이나 학과 관련 얘기도 제가 요즘 학생들보다 더 많이 알걸요?”
삼미파전의 대표 메뉴는 파전과 막걸리다. 지금이야 어디를 가도 손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파전 간판이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파전의 반죽부터 삼미파전의 모든 것은 누가 뭐래도 최 씨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물론 파전 맛이야 조금씩 조금씩 나아졌죠. 조금 더 맛있게 하려고 이것저것 넣어보기도 하고 계속 연구를 하니까요. 그래도 단골들은 파전 맛이 한결같다고 한 목소리로 말해요.”
가게 벽에 걸린 메뉴판을 들여다본다. 하나같이 메뉴의 값이 저렴하다. 한동안 물가 상승으로 대부분의 가게가 값을 올린 채 양은 줄이고는 했었는데, 이곳만은 그 바람을 피해간 것 같았다.
“남는 것이 많이 있겠어요? 주로 학생들이 많이 찾아온다는 것도 알고, 학생들 주머니 사정도 뻔히 아는데... 비싸게 팔아서 남길 생각은 안 해요. 대신 학생들이 많이 찾아 와 주니 저한테도 고마운 일이죠.”
30여 년의 전통을 만들어 낸 최 씨가 한 평생을 몸담았던 이 작은 가게. 문득 최 씨의 학창시절 꿈이 궁금해졌다. 매일 대학가에서 일을 하는 만큼 젊은 시절 생각이 절실하게 떠오르지 않을까? 최 씨는 곧 덤덤하게 말을 꺼냈다.
“요즘 학생들한테 예전 얘기를 하면 감이나 올까요? 지금은 사는 형편이 많이 좋아졌으니 남녀노소 학교에 모두 다니죠. 그땐 남자애들은 공부를 가르쳐도 여자애들은 그런 기회조차 없었어요. 그 정도로 먹고 사는 문제가 급박했으니까요. 어린 나이에 꿈이야 이것저것 많이 꾸더라도 다 현실과는 거리가 먼 얘기였죠.”
말을 잇는 최 씨는 계속해서 가게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빠르게 가게 안을 훑는 시선이 너무나 익숙하다. 때때로 분주히 움직이면서도 여유 있는 태도였다. 가게가 절반이나 차 있는데도 전혀 바쁘지 않다며 웃어보인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중간에도 최 씨는 “저 사람은 성악과 출신이예요”라던가 “저 사람은 지금 의사로 일하고 있어요”라는 얘기를 계속했다. 이미 최 씨에게는 모든 손님이 가족과도 같았다.
‘앞으로도 여기서 파전 만들어 주실거죠?’라는 질문에 “그럼요. 언제든지 놀러와서 아는 척해요”라며 최 씨는 기쁜 내색을 한다. 제법 날씨가 쌀쌀한데도 삼미파전에는 따뜻한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박혜인 기자 pie00k@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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