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4일, KBS 스펀지 제로에 연구를 위해 기생충을 먹어 스스로 숙주가 된 학자가 방영되어 화제가 됐다. 그 주인공은 우리학교 의과대학 기생충학과 엄기선 교수다.
(편집자주)
우리나라 기생충학계에는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있다. 제주도 사람들은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훨씬 많이 먹는다. 그런데 제주도 사람들이 소고기에서만 발견되는 갈고리조충촌충?에 더 많이 감염되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결과다.
“1989년, 제주도의 돼지간과 내장 속에서 한 기생충을 발견했습니다. 돼지고기에서 발견되는 민촌충과 비슷하게 생겼으나 왠지 달라보였습니다. 사람만이 종숙주가 될 수 있는 이 기생충의 애벌레를 스스로 삼켰습니다. 아무도 실험체가 되길 원하지 않으니까요. 사실 학자 스스로 숙주가 되어 결론을 도출해내는 상황은 기생충학에서 그리 희귀한 사례가 아닙니다.”
그는 심한 복통과 설사, 두드러기 등을 견뎌내며 75일 후 성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은 민촌충과 생김새는 비슷했지만 다른 종이였다. 학계에 발표되지 않은 전혀 새로운 종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이 새로운 기생충을 ‘아시아조충(Taenia asiatica)’이라고 명명했다.
“자면서도 기생충 생각, 일어나서도 기생충 생각뿐이였습니다. 그 당시 제가 연구하던 연구실의 모든 벽면이 기생충 사진으로 가득할 정도였으니까요. 정말 그때는 이 수수께끼 같은 문제에 미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물고 늘어졌던 것 같습니다.”
‘아시아조충’의 발견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음에도 미국, 호주, 일본 그리고 멕시코 기생충학의 대가들 모두가 그의 새로운 기생충 발견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많은 연구 자료들과 논문을 통해 대부분의 학자들이 받아들이고 있다.
“아직도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들이 있고, 그들의 주장을 방어해내는데 18년이 걸렸습니다. 현재는 미국 의학대학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저명해졌지만 우리나라 초등학교에서 교육될 정도로 확립되기 전까지 방심할 수 없습니다.”
한편 우리학교에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기생물자원은행(이하 기생물은행)이 있다. 바로 32동 301호에 있는 이 은행의 은행장 또한 그가 맡고 있다. 기생물은행이 우리학교로 들어서게 된 것도 그의 업적이 영향을 끼쳤다. 2005부터 운영한 은행은 선충 3만 9352개체, 흡충 1만 2168개체, 조충 및 기타 4만 5255개체을 보유하고 있다.
“2005년 중국산 김치에서 기생충알이 검출되어 나라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만약 그때 기생물은행이 있었다면 더 빠르게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은행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의 해외 활동 또한 주목받고 있다. 해외 기생충 퇴치를 위해 일년 중 반을 해외에서 연구를 하며 보낸다. 보건의료재단, 굿네이버스, 건강관리협회와 같은 NGO와 함께 탄자니아, 라오스, 캄보디아 등 아프리카 등지의 빈민 국가들을 주로 돌며 봉사한다.
“기생충약만을 나눠주는 단순한 봉사가 아닙니다. 약만 나눠주는 것으로는 전혀 그들에게 도움이 안됩니다. 감염되는 기생충을 조사하고 그들에게 맞는 기생충 박멸방법을 연구하여 완전히 박멸해야 됩니다. 계속적인 연구로 빈민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겠습니다.”
최근 엄 박사는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초원을 누비고 있다. 가장 오염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탄자니아에 서식하는 야생동물들의 기생충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야생동물에 기생하는 기생충은 인간의 몸에 사는 기생충의 조상 격입니다. 그 기생충들을 연구하는 것은 인간에 감염하는 기생충에 더 가깝게 접근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NGO와 양해각서를 체결하여 우리 학교 기생물은행에도 이 희귀한 샘플을 가지고 오니 일석이조입니다.”
우리나라는 기생충이 종적을 감춘 지 오래다. 덕분에 WHO에 의해 기생충 관리 모범 국가로 지정된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더 이상 국내에 연구할 것이 없다는 건 기생충학자로서 애석한 일일 수도 있다.
“사실 의대생들이 기생충학에 관심을 많이 가지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기생충학이 의학에서는 기초학문이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기생충을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항상 나옵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이끌어 가는 학문이지만 그들의 열정만큼은 너무도 커서 오히려 자랑스럽습니다.”
허동훈 기자 huhghiza@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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