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도서관이 세워진 지 60년이 넘은 지금 도서관 역사의 산 증인이 있다. 바로 우리 학교 자료운영과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정상경 씨이다. 정 씨는 1982년부터 현재까지 35년 동안 도서관을 지켜왔다.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정상경 씨를 만났다.
과거 도서관에 컴퓨터가 없었을 때는 어떻게 도서를 관리했을까? 불과 15년 전만해도 도서대출반납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아 모든 일을 수작업으로 기록·검색했다.
“처음 발령받았을 때는 책을 구입하면 카드에 직접 수기로 서지사항을 작성해 목록함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어요. 그러면 책을 검색할 때 목록함의 카드를 보고 책을 찾아주는 일을 했지요. 반납되는 책도 직원들이 다 배열을 했어요. 상호대차업무를 하면서 복사도 직접 해주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때는 정말 바빠서 눈코뜰새가 없었고, 주변에서는 ‘사서 고생한다’는 얘기까지 들었답니다”
이러한 도서관이 1985년부터 변화의 기로를 맞게 됐다. 현 위치의 중앙도서관이 완공되고 도서관을 이전하게 되면서 자동 대출·반납 시스템이 도입된 것이다.
“1991년 10월에 PC를 도입하고 나서 10명의 직원들과 47일 동안 바코드를 붙이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양서 약 20만 권의 책에 바코드를 붙였던 기억이 나네요”
이러한 점진적인 발전에 힘입어 1995년에는 우리 학교가 국내 최초로 Web-database를 구축해 연구원들과 학생들에게 전자저널, 인터넷 검색, 학위논문·학술지 원문검색 등 다양한 서비스를 지원하게 됐다.
“제가 web-database 구축사업을 담당하면서 우리 도서관이 정보의 이용을 인쇄매체에서 전자매체로 갈 수 있게 한 혁명과도 같은 사업을 하며, 이용자들에게 많은 지식과 정보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는 생각에 전문 사서로서 강한 긍지감을 느낄 수 있었어요” 이 시기에 동료들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말을 덧붙였다.
한편 정 씨는 35년을 근무하면서 도서관의 발전도 있었지만 도서관 주변의 학생들의 풍경과 문화도 달라졌다고 말한다.
“예전에 근무할 때는 최루탄 가스를 마시며 출근한 날이 많았어요. 한창 시위가 많을 때였는데 출퇴근하기가 곤혹스러웠던 적도 있었지요”
도서관의 주변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없었던 솔못이 생기면서 학생들이 ‘그린호프’를 즐기기 시작했고, 야외활동이 많아졌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에요”
도서관을 이용하는 문화도 예전과 다르다.
“과거에는 학생과 교수님이 같이 도서관을 이용해 가깝고 친근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어요. 학생과 함께 자료를 찾으며 연구를 수행하는 경우도 있었죠”
무엇보다도 달라진 점은 과거보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 수가 더 늘어난 것이다. “학교 규모가 커지면서 학생과 교수·교직원의 수가 훨씬 많이 늘어났고, 열람실 외에도 브라우징룸, 인터넷검색대, 스터디룸 등 학생들에게 다양한 서비스가 증가했기 때문이죠. 뿐만 아니라 방학 중에도 냉·난방 시설에 잘 돼 있기 때문에 방학에도 많은 학생들이 이용한답니다”
정 씨는 충북대 신문에도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도서관과 충북대신문은 떼려야 뗄수 없는 관계죠. 우리 모두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우리 도서관에는 충북대신문을 창간호부터 최근호까지 모두 소장하고 있어요”
이어 정 씨는 어느 대학 못지않게 경쟁력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우리 학교 도서관을 많이 이용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학생들이 도서관 이용하는 방법과 어떤 자료가 소장돼 있는지를 잘 몰라서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도서관 홈페이지를 자주 찾아 달라”고 당부했다.
박재령 기자 dhsn0423@cbnu.ac.kr








박재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