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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리
그녀의 도전은 ‘최초’에서 ‘최고’까지
제 848 호    발행일 : 2012.05.12 
우리나라 최초 미술품 경매사 박혜경 씨

어떤 분야에서 최초가 된다는 것. 최초의 시작은 어쩌면 눈초리 받고 손가락질 당해야 하는 것일지 모른다. 이런 고난을 이겨내고 우리나라의 ‘최초’ 타이틀을 두 개나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 최초 미술품 경매사와 최초 민간 문화예술교육기관 대표의 수식어를 갖고 있는 박혜경 씨. 그녀를 강남구 청담동의 에이트 인스티튜트에서 만났다.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미술을 ‘어려운 예술’쯤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미술품에 대한 공부는 ‘미술’과 ‘역사’ 등의 전반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하기 때문에 이 분야에 뛰어드는 것은 어려운 결정이다. 최초의 미술품 경매사. 아무도 없던 분야에서 일하게 될 수 있었던 과정은 어땠을까.

“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대기업 홍보실에서 광고 담당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졸업 후에 미국에 사는 이모가 미국유학을 권유하셨지만 하루라도 빨리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싶었어요”

그녀의 첫 사회생활은 미술품이 아니었다. 홍보실에서 광고 담당으로 일하던 그녀는 자신의 일 이외의 분야에도 관심을 가졌다. 홍보실에서 일을 하며 대학시절 방송국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살려 사내방송을 하기도 했다. 수당이 없는 사내방송 일을 그녀는 매일 1시간 일찍 출근해 준비했다.

“활동적이고 과감한 것을 좋아해서 시작한 일인데 꾸준히 하다보니 성실하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죠. 자기가 하는 일에서 어필하는 방법을 알았던 것 같아요”

사내방송뿐만 아니라 모든 일을 하는데 있어서 그녀는 직접 발로 뛰는 것을 좋아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그곳이 어디든 메모지를 갖고 찾아갔다. 이렇게 누구보다 성실함을 무기로 일해 온 그녀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사보에 ‘일하는 여성’이라는 특집 면에 소개가 됐고, 이를 본 미술업계에서 그녀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이를 통해 그녀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미술품 경매사인 ‘서울옥션’의 창립 멤버가 됐다.

특유의 활동성과 성실함으로 미술업계에 들어왔지만 새로운 분야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현장 노하우를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고 귀동냥으로 공부를 해야만 했다. 관련 서적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발로 뛰는 수밖에 없었다.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어 경매 장면이 나오는 모든 영화를 보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얻은 최초라는 타이틀. 자신의 이름 앞에 항상 붙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제가 최초 미술품 경매사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진짜 내가 최초야?’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 다음 들었던 생각은 ‘잘해야 한다’였죠. 처음이라고 해도 누군가는 저를 믿고 작품을 사고파는 것이니 아마추어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최초가 되는 것보다 최초의 자리를 빛내는 것이 그녀에게는 더 힘든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런 그녀는 항상 ‘경험’이 최고의 스승임을 강조한다.

최초라는 단어의 다른 의미는 ‘도전’이 아닐까. 황무지와 같은 미술품 경매사를 개척한 그녀. 도전의 원동력이 궁금했다.

“항상 거시적으로 생각하려고 해요. 거시적으로 생각하면 이 사회나 국가가 지향하는 흐름을 읽을 수 있죠. 대기업엔 ‘20년 뒤엔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을까’와 같이 꿈만 꾸는 부서가 있어요. 매일 미래를 상상하며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하는 거죠. 그러한 생각들이 모여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도전하는 분야에서 항상 최고가 된 그녀. 그녀가 ‘천리안’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천리안을 가지고 있다는 건 트렌드세터가 아닐까요? 제가 대학생이던 시절엔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발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항상 서점을 돌며 책 제목을 보고 트렌디한 언어를 익히려 노력했어요. 택시기사 분들에게 제 신분을 밝히지 않고 기업 선호도를 물어보기도 했고요”

1998년 처음으로 미술품 경매를 시작해 올해로 15년에 접어들었다. 미술품을 경매하는 것이 그녀의 직업이기도 하지만 민간 문화예술교육기관을 세우고 강단에 서는 등 그녀는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낸다. 이런 그녀가 가지고 있는 직업병 역시 이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활자중독이요. 새로운 것을 보면 뭐든 읽어야 직성이 풀려요. 또한 경매 등의 행사가 끝나고 녹초가 되어도 집에 오면 쉬이 잠에 들지 못해요. 그날의 긴장감 때문이죠. 영화를 보는 등 눈까지 피로해져야 비로소 잠에 들 수 있어요”

모든 심신이 피로해져야 잠이 들 수 있다는 그녀의 말에서 그녀가 얼마나 바쁘게 살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품도 경매하는 그녀. 직접 경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해외 출장도 잦다. 많은 세상을 둘러보며 다양한 문화를 접했을 그녀가 대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이 있을까.

“해외를 돌아다니면서 우리나라가 IT강국이라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어요. 문제는 우리의 기초소양교육에 있죠. 해외의 어린이 미술관은 그야말로 성황이에요. 특히 입장료가 할인되는 요일에는 더욱 붐비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린이를 위한 미술관 자체가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기초소양교육을 배울 수 있는 외국의 환경을 보면서 우리나라 대학생들도 기초소양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녀가 현재 대표로 있는 에이트 인스티튜트는 이러한 그녀의 생각을 반영했다. 자신이 현장에서 배운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직접 강의를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를 초청해 특강을 연다.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 중인 그녀의 도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양한 분야와 장르가 어우러진 문화쇼를 열고 싶어요. 세계시장 속에서 한국적인 아트쇼를 열고 싶기도 하고요. 이를 위해서 제가 대표로 있는 인스티튜트에 하드웨어를 갖추고 싶어요”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던 분야에서 최고가 된 그녀. 그녀를 인터뷰하는 동안 최초의 수식어는 그녀의 성실함에 대한 보답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앞으로 계속될 그녀의 도전에서도 ‘최초’를 넘어 ‘최고’가 되길 기대해본다.

김혜리 기자 aahyery@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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