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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기행 2- 20일간의 스페인 배낭여행 ②
제 849 호    발행일 : 2012.05.26 


김준근(조형예술학과 교수)
 
지난호에 이어서...
5일후 마드리드에서 리스본으로 가는 야간열차 이동은 잠시나마 적응됐던 마드리드를 떠나 또 다른 낮선 곳으로 가야하는 배낭족에게는 불안감이 엄습했고, 열차 출발시간이 밤 11시였으니 밤늦은 시간의 열차역의 분위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밤새 리스본행 침대열차는 어찌나 흔들리는지 도무지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어 거의 뜬눈으로 보냈다. 이른 새벽 리스본의 텅 빈 전철 안에서 만났던 아코디언을 맨 젊은 청년과 치와와가 리스본을 방문하는 나를 먼저 맞아 주었다. 청년의 어깨에 올려 진 치와와의 목엔 동전을 담는 조그만 바구니가 걸려 있었고, 어깨위에서 떨어질까 잔뜩 긴장하고 있는 치와와의 표정과, 호메르시우 광장에서 보았던 신사 숙녀의 구두를 닦아주는 중년 구두닦이의 행복한 흥얼거림은 힘든 여행 중 잠시나마 나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해줬다. 리스본은 그리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하고 포근함이 느껴지는 편안한 도시로 기억된다.
리스본에서 북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14세기 때부터 역대 왕가의 여름 별장으로 이용되던 곳 신트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곳은 영국의 시인 바이런이 에덴동산이라 불렀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에서 30분 거리의 유럽대륙의 끝 카보다로까에서 대륙의 끝을 상징하는 기념탑에서 우연히 한국 아가씨들을 만나 그동안 들렀던 여행지와 경험들을 얘기하며 한참이나 수다를 떨었다.
리스본에서 이틀을 보낸 후 다시 스페인 세비야로 가는 야간버스에 몸을 실었다. 피곤함에 나는 깊은 잠에 빠져 세상 모르고 자다 옆 사람의 무어라 얘기하는 소리에 엉겁결에 내린 깜깜한 버스정류장, 새벽 3시 50분 내 여행 스케줄에 없는 이름 모를 정류장에 내렸다. 4시간 동안 추위와 두려움에 떨며 날이 새길 기다리는 일은 이번 여행 중 가장 힘들었던 일로 기억된다. 여기저기 술 먹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때론 가까이 다가와서 눈을 부릅뜨고 무어라 지껄이니, 이때쯤 태권도 옆차기로 괜히 벽도 한번 차보고 과장된 맨손 체조로 방어적 자세를 취하기도 하며 긴긴 아침을 기다려야 했다. 내 나이 오십 중반에... 나중에 알고 보니 세비야의 또 다른 버스 정류장이었으니 별 문제는 없었지만, 순간 9시 이전엔 민박집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전날 통화한 민박집 주인이 너무 야속하기도 했다. 민박집을 운영하는 룰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여기서 어쩜 배낭여행의 진수를 맛보았는지 모른다.
서울을 떠나온 지 열흘이 지났다. 허리통증에 엄지 발가락이 퉁퉁 부어 오르고 온몸이 천근만근이다. 이제 남은 일주일은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을 여행하는 일정이다.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은 민족, 풍습, 언어, 음식문화가 타 지역과 상당히 다른 면을 보이는데 코로도바, 그라나다, 세비야, 론다 지역은 로마 카톨릭 문화와 혼합되긴 했지만 아직도 이슬람문화가 많이 남아 있었다. 특히 세비야에서 보았던 플라맹고는 노래 가락이 마치 이슬람 기도시간에 울려 퍼지는 리듬과 같이 절제된, 한편으론 구슬프게 느켜졌고, 남자무용수의 진지하고 정열적인 표정과 엄숙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는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이슬람 사원의 모습을 한 코로도바 성당의 규모와 아름다운 대리석 장식은 종교만이 가지는 보이지 않는 힘과 위력을 실감하기에 충분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나니 이제 조금은 여유가 생겨 세비야 강가에서 모처럼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이곳 안달루시아 지방 사람들은 마드리드나 바로셀로나와는 달리 기념품 가게나 레스토랑의 메뉴판을 살펴 볼 때도 그들은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 하지만 절대 호객행위를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리 삶에 급급해 하지 않는 표정으로 조금은 여유로와 보이는 그들만의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스페인 여행에서 꼭 놓칠 수 없는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은 내심 기대했던 만큼 나에게는 천년이 지난 그날의  감동이 되살아나는 듯 하였다. 13세기에 만들어 성채의 회벽에 새겨진 아름다운 장식과 문양들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흙판 작업을 하는 나로서는 몹시도 궁금하게 느껴졌다. 저녁식사 후 알바이신 언덕에서 바라본 알함브라 궁전의 야경 또한 똘레도의 야경과 함께 기억에서 오랫동안 지워지질 않았다. 그라나다 열차역 가까운 민박집에서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라나다에서 2시간 거리의 네르하 해변, 아름다운 풍경과 산중턱에 자리한 하얀 마을 프리힐리아니는 하루쯤 더 머물고 싶은 곳이었는데, 아마 천국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 아름답고 예쁜 곳이었다.
나의 마지막 여행지인 바로셀로나는 그동안 내가 지나쳤던 여러 여행지와는 사뭇 다른 또 다른 긴장감을 주는 곳이었다. 스페인 여행지 중 가장 많은 볼거리가 있기도 하지만, 내가 만난 대부분의 한국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한번쯤 소매치기를 당했기 때문이다. 세비야에서 만났던 여학생은 지갑과 핸드폰을 몽땅 털렸고, 마드리드에서 만났던 직장인 역시 이곳에서 몽땅 소매치기 당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여행지 바로셀로나, 아니 스페인은 어쩌면 건축가 가우디와 섬유재벌이었던 구엘이 먹여 살리는 나라가 아닌가 싶었다. 가우디가 예술혼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든든한 재정적 후원자였던 구엘의 역할이 매우 컸던 것을 알게 됐고, 가우디가 설계한 수많은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겨울비가 하루 종일 내려도 그곳을 보려는 세계 각국의 관광객이 3만 원 내외의 티켓을 사려고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니, 까사밀라, 구엘공원, 까사바트요, 구엘병원, 구엘저택 이런 곳이 어디 한 두 곳인가?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으로 대표되는 가우디의 건축물은 1882년 델 비야르가 계획하고 그 다음해 가우디가 인수받아 오늘날 현재도 건축 중인 성당으로 언제 완공될지 모르는 건축물, 여기저기에서 뿌연 먼지와 기계음으로 내부는 가득차 있었지만, 어마어마한 규모와 인간의 손으로 만들었다고 볼 수 없는 조각품과 장식들은 절로 탄성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틀 동안 비가 오다 한국에 돌아오기 하루 전 날씨가 좋아 까탈류냐 미술관 앞에서 시내 야경을 구경하고 스페인광장에서 지하철로 내려가는 길, 입고 있던 점퍼가 답답해 지퍼를 풀고 나의 여행이 거의 끝났다는 안도를 하며 지하철로 오르는 데,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 되며 내 몸을 움직일 수 없게 주변을 둘러싼 젊은 사내들, 말로만 듣던 소매치기 일당에 제물이 될 뻔 했으니 가슴이 철렁 내려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있는 힘껏 그들을 밀어 제치며 소리를 질렀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급히 빠져나와 다른 칸으로 옮겨갔다. 하마터면 바로셀로나의 마지막 밤이 정말 괴로울 뻔 했다.
배낭여행, 때론 막연함과 두려움으로부터의 지혜와 용기를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며, 인생에 한번쯤 경험해야 할 새롭고 다양한 문화체험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미래를 설계하는 젊은 청춘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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