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개발공사 김웅용 사업처장
(토목공학과卒·81)
올해 8월 말, 미국 허핑턴포스트에서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10인에 스티븐 호킹과 함께 이름을 올린 한국인이 있다. 우리 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충북개발공사에서 처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웅용 씨가 그 주인공이다. 현재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그를 세계가 주목한 이유는 무얼까.
과거 그는 5세에 4개 국어를 구사했으며 6세 때는 일본 후지 TV에 출연해 고등 미적분을 막힘없이 풀어내는 천재소년이었다. 당시 일본에서 측정한 그의 IQ는 210. 이는 10년 넘게 깨지지 않았던 기네스북 기록이었고 세계의 관심은 단연 이 소년에게 집중됐다. 이후 10대의 나이에 콜로라도 대학원에서 청강생 자격으로 핵물리학과 열물리학 수업을 들었다. 이 분야에서 인정받은 그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선임연구원으로 일했다.
“타국에서 부모님과 떨어져 살다보니 많이 외로웠어요. 어린 시절부터 항상 또래 친구들보다는 나이가 훨씬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야 했지만 다들 어린 저를 만만하게 보았죠”
결국 고립감을 견디지 못하고 그는 5년 만에 귀국길에 올랐다. 돌아온 그를 두고 언론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며 ‘실패한 천재’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제 소원은 남들과 같이 평범하게 사는 것이었어요. 지금도 늘 언급하는 말이지만 저는 정말 천재가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실패한 천재라는 말도 제겐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죠”
그는 고향인 서울을 떠나 아무 연고가 없는 청주를 택했다. 우리 학교 공과대학 토목공학과에 입학했을 때 그의 나이는 만 19세. 천재라 불리던 소년은 드디어 처음으로 또래 친구들과 수업을 듣게 됐다.
“사람들이 자꾸 왜 충북대학교에 갔느냐고 물어요. 내가 좋아서 선택한 학교인데 말이에요. 저는 하고 싶은 공부하며 처음으로 친구들과 추억을 만든 소중한 곳이거든요.”
그의 말에서 우리 학교를 무척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태어나 처음 또래들과 함께했던 대학생활. 그의 대학생활은 어땠을지 궁금해졌다.
“신입생 때 동아리를 7개나 들었어요. 바둑, 봉사, 기타. 다양한 분야의 동아리에 모두 가입했죠. 학교 오면 동아리 가기 바빴어요. 지금의 아내도 동아리 선후배 사이로 만났죠”
미적분이나 궤도 계산이 아닌 또래들과의 학교생활은 그에게 너무나도 즐거운 기억이었다. 대학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그는 다시 대학생이 된 듯 신나게 말을 이어나갔다.
“봉사동아리에서 5년간 야학 교사를 했어요. 봉사는 신기한 힘을 갖고 있더군요. 처음엔 타인에게 베풀기 위해 야학을 갔는데 돌아올 때는 오히려 제가 받아오는 것들이 많더라구요. 후배들에게도 꼭 추천해주고 싶은 활동이에요”
대학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많은 것을 배운 그인 만큼 우리 학교 후배에게 하고 싶은 말도 많은 듯했다.
“요즘엔 많은 학생들이 수능 점수에 맞춰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미래에 대한 목표가 뚜렷하지 않죠. 많은 교내·외 활동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도 대학 생활에서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우리 학교에서 시간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는 그는 모교 교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하지만 그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능력을 우선시하기보다는 오랜 시간과 경력을 필요로 하는 제도화된 시스템 때문이었다. 좌절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자신의 전공인 토목공학을 살리기로 한 것이다. 2006년, 그는 충북개발공사의 창립 멤버로 입사했다. 충북개발공사는 각종 개발공사를 통해 도민의 주거생활 안정과 복지향상 및 지역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공기업이다. 현재 사업처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우리 학교만큼이나 현 직장에 애정을 갖고 있었다.
“저를 검색하면 충북개발공사가 연관검색어로 뜬다고 해요. 제 이름이 ‘인기 검색어’에 오르는 것보다 저의 연관검색어에 우리 회사가 뜬다는 사실이 기쁘더라고요.”
그는 자신이 열심히 일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회사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고 있었다.
인터뷰하는 내내 그는 매사에 자신 있는 모습이었다. 특히 자신의 학교, 회사와 같이 자신이 소속된 곳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따라다니던 실패의 꼬리표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실패한 천재’가 아닌 ‘행복한 김웅용’이었다.
“인생의 좌우명은 ‘수처작주(隨處作主)’에요. 어느 곳에서든 주체적으로 활동하라는 뜻을 담고 있어요. 남의 일처럼 여기지 말고 모든 일은 자기 일처럼 하라는 것이죠.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따뜻한 애정을 갖고 맞이하라는 의미를 지녀요”
그는 성장의 아픔을 겪는 청춘들에게 인생 선배로서 조언도 잊지 않았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정말 할 수 없게 돼요. 내가 마음먹은 걸 하고자하면 뭐든지 이룰 수 있어요. 중요한 건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집중이죠. 어떤 일을 행할 때도 스펙을 쌓는다는 생각으로 욕심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것 하나부터 성취하는 기쁨을 느끼세요. 그런 경험이 후에 돌아보면 인생에 큰 배움이 될 겁니다.”
인터뷰 내내 천재와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옆집 아저씨 같은 웃음으로 답하던 그. 평범하게 살고 싶다던 그의 말은 이미 실현된 듯 보였다.
김민경 기자
jjokkan@cbnu.ac.kr








김민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