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주여자교도소 수감시설은 보안과 관련해 사진촬영 및 휴대폰 반입이 금지돼 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흔히 이야기되듯 현대적 의미에서 형벌의 근본적인 목적은 ‘복수’가 아니라 ‘범죄자의 교화를 통한 사회 복귀’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는 말이 있다.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로 수감된 이들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재사회화 교육을 시키고, 이들이 다시금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해 우리 사회를 안정적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교도관이다. 몇 년째 수감자들을 지켜본 구유미 교도관(교위)을 만나봤다.
취재진은 전국 유일한 여자교도소인 ‘청주여자교도소’를 방문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교도소를 방문하자마자 높은 흰색 장벽이 하늘 높게 쌓아져 있어 삭막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이와 다르게 교도소에 근무하는 교도관들은 제복 차림의 밝은 모습으로 출근을 하고 있었다. 그중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구유미 교위다.
“저 또한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는 교정이 많이 낯설었습니다. 삭막하기도 했고, 으스스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구 교위는 현재 보완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가족들의 면회신청을 받아 수감자와 가족들을 접견 시키는 업무를 맡고 있다.
“흔히들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데 방송 드라마에서 보면 교도관들이 자물쇠를 들고 다니며 자물통을 열쇠로 철커덩 열면 수감자들이 밖으로 나와야 하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습니다. 오해지요. 요즘에는 지문인식을 통해 수감자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전화 통화의 경우에도 국가 안보나 정치 및 사회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아니라면 감청을 하지 않아요”
일반인들은 교도관들이 수감자들을 통제하는 데 어려움이 클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교도관이 되기 위해서는 태권도는 기본이고, 무술과 합기도를 연마해 수감자들의 우발적 행동을 통제할 것이라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은 교도관들은 무술을 하고, 힘이 센 줄 알고 있죠.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수감자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카리스마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태권도나 합기도와 같은 무술 품증 같은 것은 없습니다. 수감자들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공권력입니다. 공권력이 있기 때문에 이들을 통제 관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 교위의 말에 따르면 요즈음에는 특화된 교도관들이 많다고 한다. 특공 무술을 하는 교도관을 비롯해 다문화가정과 외국인 근로자가 급증해 중국어, 배트남어, 몽골어, 인도어를 할 수 있는 특화 교도관도 증가했다. 또한 마약 밀반입 문제와 관련해 러시아어나 남미국가의 언어를 할 줄 아는 교도관도 있다고 한다.
한편 구 교위는 피해자들에 대한 측은지심 때문에 초창기에는 수감자들을 대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수감자들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보살펴줘야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기까지는 10년이라는 꽤 오랜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수감자를 볼 때마다 피해자의 가족들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죠. 얼마나 그들이 한심하게 느껴지고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억울한 생각까지 들던지…. 그래서 개인적인 감정으로 수감자들에게 더욱 엄격하고, 깐깐하게 대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수감자들과 함께 생활해야 했습니다. 수감자들을 대하는 것이 매일 스트레스가 됐습니다.”
하지만 평생 동안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구 교위는 마음가짐을 다르게 하기로 했다. 수감자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니 마음은 한결 편안해졌고, 스트레스도 덜 받게 됐다.
“수감자들을 환자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수감자들은 마음의 병을 얻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때문에 의사가 환자를 보살피고, 이들의 병을 고쳐주듯 우리도 이들에게 교육을 시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고, 자신의 죄를 반성하도록 해 출소했을 때는 다시 이곳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말이죠”
교도관의 주된 일은 수용자를 관리하는 일 이외에도 교화교육이나 사회복귀를 돕기 위한 직업훈련을 교육하고 있다. 특히 종교·문화 활동을 통해 올바른 생활을 갖게 하고 문제가 있는 수감자들이나 적응하지 못한 수감자들에 대해서는 심리상담 및 정신치료를 한다. 이들을 제대로 재사회화시키지 못하면 국가 차원에서도 재범률이 높아지고, 이들을 다시 수감시켰을 때 사회적 비용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난다.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구 교위는 덧붙였다.
문득 직업이 교도관이라고 밝혔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구 교위는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듣는 질문이라 말했다.
“예전에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아요. 교도관이라 하면 폭력적이고, 억압하고, 가두고, 괴롭히는 이미지를 연상하시는 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무섭다, 날카롭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았죠. 예전에는 교도소에도 군인이 있었는데, 군인이 저한테 그러더군요. ‘왜 굳이 이 일을 하려고 하나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라고요”
그러나 같은 교도관인 남편은 구 교위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그래서 구 교위는 당당함과 일에 대한 자부심도 찾을 수 있게 됐다.
“저와 직업이 같은 남편이 그러더군요. ‘떳떳하지 않으면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겠어. 범죄자들을 관리해 사회 안정을 유지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자’고 말이죠.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고, 보람된 일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때부터 저도 더 떳떳하고 자신 있게 교정직에서 일을 한다고 말하죠”
마지막으로 구 교위는 앞으로 가장 소박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소망을 내비쳤다.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것입니다. 제 삶도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큰 딸이 투병생활을 할 때는 정말 가슴이 아프더군요. 그래서 남을 도우며 살기로 했습니다. 수감자들에게도요. 이들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고 도와주는 것으로 위안 받으며 평범하게 사는 것이 소박하지만 그것이 저의 꿈입니다”
“저 또한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는 교정이 많이 낯설었습니다. 삭막하기도 했고, 으스스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구 교위는 현재 보완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가족들의 면회신청을 받아 수감자와 가족들을 접견 시키는 업무를 맡고 있다.
“흔히들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데 방송 드라마에서 보면 교도관들이 자물쇠를 들고 다니며 자물통을 열쇠로 철커덩 열면 수감자들이 밖으로 나와야 하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습니다. 오해지요. 요즘에는 지문인식을 통해 수감자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전화 통화의 경우에도 국가 안보나 정치 및 사회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아니라면 감청을 하지 않아요”
일반인들은 교도관들이 수감자들을 통제하는 데 어려움이 클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교도관이 되기 위해서는 태권도는 기본이고, 무술과 합기도를 연마해 수감자들의 우발적 행동을 통제할 것이라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은 교도관들은 무술을 하고, 힘이 센 줄 알고 있죠.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수감자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카리스마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태권도나 합기도와 같은 무술 품증 같은 것은 없습니다. 수감자들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공권력입니다. 공권력이 있기 때문에 이들을 통제 관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 교위의 말에 따르면 요즈음에는 특화된 교도관들이 많다고 한다. 특공 무술을 하는 교도관을 비롯해 다문화가정과 외국인 근로자가 급증해 중국어, 배트남어, 몽골어, 인도어를 할 수 있는 특화 교도관도 증가했다. 또한 마약 밀반입 문제와 관련해 러시아어나 남미국가의 언어를 할 줄 아는 교도관도 있다고 한다.
한편 구 교위는 피해자들에 대한 측은지심 때문에 초창기에는 수감자들을 대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수감자들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보살펴줘야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기까지는 10년이라는 꽤 오랜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수감자를 볼 때마다 피해자의 가족들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죠. 얼마나 그들이 한심하게 느껴지고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억울한 생각까지 들던지…. 그래서 개인적인 감정으로 수감자들에게 더욱 엄격하고, 깐깐하게 대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수감자들과 함께 생활해야 했습니다. 수감자들을 대하는 것이 매일 스트레스가 됐습니다.”
하지만 평생 동안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구 교위는 마음가짐을 다르게 하기로 했다. 수감자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니 마음은 한결 편안해졌고, 스트레스도 덜 받게 됐다.
“수감자들을 환자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수감자들은 마음의 병을 얻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때문에 의사가 환자를 보살피고, 이들의 병을 고쳐주듯 우리도 이들에게 교육을 시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고, 자신의 죄를 반성하도록 해 출소했을 때는 다시 이곳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말이죠”
교도관의 주된 일은 수용자를 관리하는 일 이외에도 교화교육이나 사회복귀를 돕기 위한 직업훈련을 교육하고 있다. 특히 종교·문화 활동을 통해 올바른 생활을 갖게 하고 문제가 있는 수감자들이나 적응하지 못한 수감자들에 대해서는 심리상담 및 정신치료를 한다. 이들을 제대로 재사회화시키지 못하면 국가 차원에서도 재범률이 높아지고, 이들을 다시 수감시켰을 때 사회적 비용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난다.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구 교위는 덧붙였다.
문득 직업이 교도관이라고 밝혔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구 교위는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듣는 질문이라 말했다.
“예전에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아요. 교도관이라 하면 폭력적이고, 억압하고, 가두고, 괴롭히는 이미지를 연상하시는 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무섭다, 날카롭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았죠. 예전에는 교도소에도 군인이 있었는데, 군인이 저한테 그러더군요. ‘왜 굳이 이 일을 하려고 하나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라고요”
그러나 같은 교도관인 남편은 구 교위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그래서 구 교위는 당당함과 일에 대한 자부심도 찾을 수 있게 됐다.
“저와 직업이 같은 남편이 그러더군요. ‘떳떳하지 않으면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겠어. 범죄자들을 관리해 사회 안정을 유지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자’고 말이죠.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고, 보람된 일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때부터 저도 더 떳떳하고 자신 있게 교정직에서 일을 한다고 말하죠”
마지막으로 구 교위는 앞으로 가장 소박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소망을 내비쳤다.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것입니다. 제 삶도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큰 딸이 투병생활을 할 때는 정말 가슴이 아프더군요. 그래서 남을 도우며 살기로 했습니다. 수감자들에게도요. 이들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고 도와주는 것으로 위안 받으며 평범하게 사는 것이 소박하지만 그것이 저의 꿈입니다”
박재령 기자 dhsn0423@cbnu.ac.kr








박재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