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된 간판과 상표가 모두 ‘한글’로 디자인된다면 어떨까? ‘영어숲’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물건에 영어가 가득한 세상에서, ‘한글숲’을 꿈꾸는 이가 있다. 바로 한글디자이너 손민정 씨이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내가 제일 잘나가’가 적힌 손수건, ‘꽃보다 아름다워’가 적힌 우산 등은 독창성과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세계에서 한글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다. 그의 지난날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경기도 이천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들꽃처럼 소박한 삶을 추구하던 그가 ‘디자인’을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고등학생 때 제가 그린 그림을 보신 미술선생님이 저에게 미술대학에 갈 것을 권유했어요. 그림 공부를 시작하면서 색을 혼합해 느낌을 표현하는 것의 매력에 빠지게 됐죠. 그때부터 그림과 디자인을 저의 운명으로 여기며 살아왔던 것 같아요”
그는 1984년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가 온전히 디자인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집안사정이 기울어져 다니던 학교를 1학년 1학기 만에 휴학하게 된 것이다.
“2000년도 전까지는 염색과 한지 공예 쪽의 일을 하다가, 그 이후로는 웹디자인을 배워서 쇼핑몰 창업도 해보고 웹디자이너로 직장에 다니기도 했었어요. 하지만 빠르게 변하는 사회 환경에 적응하면서 주도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저만의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과감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학교를 그만둔 지 22년만인 2006년에 44살의 나이로 다니던 학교에 재입학하게 됐죠”
졸업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아있었던 그는 다시 학교를 다니게 된 것이 한없이 기뻤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자녀뻘 되는 학생들과 수업을 들으면서 세대차를 느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함께 마음을 나누며 어울릴 친구 없이 학교를 다니는 것이 힘들었어요. 수업과제를 하기 위해 컴퓨터그래픽을 다루는 일은 젊은 학생들을 따라가기 어렵기도 했죠. 그렇지만 졸업 때 상위 5%안에 들만큼 좋은 성적을 거뒀고, 20대들과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어요. 학교에 재입학한 것은 정말 현명한 선택이었고 저 스스로도 대견하다고 생각해요. 저의 50대 이후를 제대로 살기 위한 투자였기 때문이죠”
재입학을 하면서 ‘한글디자인’과 그의 운명 같은 만남이 시작됐다. 그는 첫 학기에 ‘한글의 조형미가 적용된 작품사례연구’의 수업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한글과 세종대왕에 대해 공부하게 됐다. 그때 그는 한글의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금 느꼈고, 자신이 느낀 한글 본연의 가치를 창출하는 한글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우리가 숨 쉴 때 필요한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듯이, 한글을 공부하기 전까지는 한글을 너무도 당연하게만 생각했었죠. 하지만 한글에 대해 알수록 정말 위대한 문자라는 것을 느꼈고 세종대왕이 선조라는 것과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어요. 그때부터 한글에 푹 빠졌죠”
그는 2010년 12월 대학교 졸업작품 프로젝트로 한글패턴을 적용한 한글스카프와 한글우산을 제작해 첫 전시회를 열어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어 그 작품들을 2011년 10월 한글문화상품 공모전에 출품해 대상인 ‘세종대왕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그해 탄생한 것이 바로 그의 이름을 내건 회사이자, 한글패턴을 적용한 핸드폰케이스.우산.스카프.손수건.가방 등으로 한국 고유의 문화를 전하고 있는 ‘손아트’이다.
“손아트 제품의 한글디자인은 자음과 모음의 단순배열이 아니라, 외국인이 한글공부하기에도 적합한 의미 있는 단어나 문장이 확실하게 읽히도록 디자인된 것이 가장 큰 특징이에요. 그렇지만 디자인인 만큼 처음 접하게 될 때 글자가 아니라 이미지로 먼저 어필하도록 신경을 쓰죠. 그 패턴 속에는 우리나라의 문학이나 시, 아리랑이나 K팝의 가사, 인사말, 삶에 힘을 주는 덕담 등을 담아 우리나라와 한글 그리고 세종대왕을 알리려고 하고 있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창업을 했지만, 1인 창업 기업인만큼 시작에 어려움이 따랐다. 제품의 소량제작이 불가해 자금 부담이 큰 데다가 유통망이 구축돼 있지 않아 오랫동안 제품이 재고로 쌓여있기도 했다. 기술력을 강조해 이를 담보로 대출을 받기도 하고, 정부에서 지원을 받아 회사를 키워나갔다. 올해 들어서 손아트는 디자인만을 제공하는 전문 디자인 회사가 돼 안정을 찾았고, 가능성을 인정받아 대형마트와 서점 등에 이번달부터 판매처를 얻어 판매를 시작한다.
“지난 4월에 회사 사무실을 이전했는데, ‘영어숲’이라는 영어학원이 있던 자리였어요. 간판, 유리창은 물론 벽지, 창문 등 모든 곳이 영어로 돼있어서 그야말로 ‘영어숲’이었죠. 그곳을 보니 작은 일상용품부터 거리의 간판까지 사방팔방이 영어인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았어요. 사무실 곳곳의 영어를 한글로 교체해 나가면서 손아트의 작은 한 공간이 ‘한글숲’이 되었듯이 우리나라 전체가 ‘한글숲’이 될 날을 기대하면서 한글디자인을 하고 있어요”
그는 한글디자인이 담긴 물건을 외국인에게 선물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는 구매자들의 이야기를 듣게 될 때와 외국에 있는 교포들로부터 손아트 제품을 선물로 받고 감동해서 전화가 올 때, 외국에서 우리 한글을 가르치는 기관인 세종학당 등에서 제품구매 요구가 있을 때 한글디자이너로서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한글디자인을 하는 사람이 워낙 없다 보니 한글로 디자인을 한다는 것 자체가 특별하게 여겨지는 것이 안타깝기도 해요. 영문디자인에 쏟는 관심과 애정을 반만이라도 한글디자인에게 준다면 좋은 한글디자인 제품이 많이 나올 것 같아요. 그렇게 된다면 한글의 우수성은 물론 그 아름다움을 전 세계로 알릴 수 있겠죠”
그의 최종목표는 좋은 의미를 담은 한글디자인이 세계에 널리 알려지는 것이다. 손아트의 다양한 한글제품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에서도 널리 쓰이게 되는 날을 꿈꾸기도 한다.
그가 만든 한글디자인에는 ‘꽃보다 아름다워’, ‘웃음가득 행복가득’ 등 세상이 그리 되기를 바라는 그의 소원이 담겨있다. 삶에 힘을 주는 좋은 문구들을 디자인에 담아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면 세상이 따뜻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들이 한글의 아름다움을 전할뿐만 아니라, 세계인과 소통하며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 그날을 기대해본다.
최혜원 기자 hwnee72@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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